신 기자, 아직 살아 있었나? - 한국인 AP종군기자 신화봉

생생! 6·25/August의 군사세계 2009.12.29 15:46

“신 기자, 아직 살아 있었나?”

 

 


한국인 AP종군기자 ‘신화봉’




 

  <언론인 신화봉 : AP기자가 본 동경·서울·평양(신화봉 저)>


 

신화봉 기자(외국명 Bill Shin)는 한국인이면서 AP통신기자 자격을 갖고 6·25전쟁을 취재한 종군기자입니다. 다른 외국 종군기자들과 달리 인천상륙작전을 특종하면서도 한국인이 겪는 한국인의 전쟁이라는 시각에서 접근하여 한국의 입장을 대변한 기자이기도 합니다. 이승만 대통령도 정부 대변인을 맡기려고 했을 정도로 신화봉 기자는 신임을 받기도 했습니다. 6·25전쟁을 겪고 나서 쓴 「휴전선 열리는 날」이라는 책은 6·25전쟁을 생생하게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특종을 많이 하여 ‘스쿠프(scoop) 신’으로 불렸던 그를 만나보겠습니다.


  1950년 9월 15일 부산. 세계적 통신사인 AP통신의 한국 특파원이던 신화봉 기자는 어디론가 정신없이 뛰었다. 어서 소식을 동경 AP지국에 전해야 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외국 특파원들이 공동으로 쓰던 미군 보도과로 달려가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종의 생명은 보안이다. 손원일 해군참모총장 방으로 방향을 잡았다. 교환수가 나왔다. “동경 2201 또는 2202번 대 주시오.” 동경의 랜돌프 기자가 전화를 받았다. “아직 살아 있나?” 평상시라면 그의 농담을 넉살 좋게 받아주었겠지만 이날은 사정이 달랐다.

  “중대 기사다. 인천이다. 빨리해.”신기자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이고 기사를 읽어댔다. “유엔군이 오늘 아침 인천 월미도에 상륙했다…”로 시작하는 AP통신의 이 기사는 6·25전쟁 중 가장 극적인 순간의 하나였던 인천상륙작전을 처음으로 보도한 특종이었다. 오후 1시50분의 일이었다. 맥아더 사령부의 공식 발표는 그로부터 수시간 뒤인 그날 밤에 있었다.


       <월미도에 상륙하는 한·미 해병대 : AP기자가 본 동경·서울·평양(신화봉 저)>


  그의 나이 32살, 신출내기 ‘한국인’ 기자 신화봉은 그렇게 해서 입사 7개월 만에 세계적인 특종을 낚았다.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한국인 기자가 수 많은 외국 기자들을 제치고 이뤄낸, 의미 있는 특종이었다. 


   언론인 신화봉(미국명 Bill Shin)은 1918년 함경남도 장진에서 태어났다. 그의 고향에서 그 유명한 ‘장진호 전투’가 벌어진 것도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일본 중앙대학 법학부를 다녔고 해방 후에는 38선을 넘어 월남, 서울에서 삶을 꾸렸다. 대학 시절부터 유창했던 영어 실력 덕에 미군의 통역일을 도우며 인연을 쌓다가 1947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헤이스팅스 대학 졸업반에 편입했고, 1949년 말에는 네브라스카 주립대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미국에서의 안정된 일자리를 권유하는 주변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제 집에 불이 났을 때 자기만 살려고 도망쳤다가, 가족과 이웃이 불을 다 끈 뒤에 돌아와서 ‘내가 이 집의 주인이노라’ 한다면 어떻게 되겠소. 나는 내 나라가 어려운 지경에 있으니 더욱 더 빨리 조국으로 돌아가서 일하고 싶소.” 그렇게 고국에 돌아와 1950년 2월 AP통신 서울특파원 무어 기자의 추천으로 기자의 길로 들어섰다. 


  그로부터 4개월 뒤인 1950년 6월 25일. 운명은 그를 또 다른 길로 이끌고 있었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서울엔 비가 내렸다고 한다. 휴일 고즈넉한 분위기의 거리에 퍼지던 얇은 빗소리는 한층 여유를 뿜어냈다.

  신화봉은 그날 이삿짐을 꾸리다 오전 11시쯤 이상한 광경을 목격한다. 서울 상공에 못보던 항공기가 북을 향해 바삐 날아가고 있었다. 전쟁이었다. 이날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은 38선 전역에서 남침을 개시했다. 그는 이날부터 1953년 7월 27일의 휴전성립 후까지, 전쟁의 현장에서 그 진상을 전 세계에 타전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미군 C-54 수송기로 비행중인 종군기자들, 맨뒷줄 맨 오른쪽이 

신화봉 기자 : AP기자가 본 동경·서울·평양(신화봉 저)>


   그는 인천상륙작전 특종 이후 ‘스쿠프(특종) 신’으로 불렸다. 일부에서는 당시 AP통신의 인천상륙작전 보도가 작전 시행(15일) 전인 13일에 이뤄진 ‘위험한’ 특종이었다는 식으로 알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보인다. 전쟁을 가름할 중대한 작전을 미리 보도한다는 것은, 아무리 종군(從軍)기자의 욕심이 앞선다 해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전시 상황에서 작전기밀을 누설하면 이적행위로 군법회의에 회부된다.

  그의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인천으로 향하던 함정에 타지 못했던 그는 부산에서 당일 아침 모든 인맥을 동원해 상륙 성공 사실을 여러 차례 확인한 뒤 한국군을 설득, 국군 총사령관이었던 정일권 소장의 발표 형식을 빌어 역사적인 1보를 타전했다. 이튿날인 9월 16일자 동경발 AP기사에도 이 같은 사실이 언급돼 있다. “인천상륙 뉴스를 최초로 보도한 AP통신 특파원 빌 신은 오늘(16일) 미군에 의해 군용전화 사용을 금지당했다… 신은 어제(15일) 정일권 소장이 인천상륙을 발표했을 때 그곳에 있었던 단 한 사람의 국제 통신사 특파원이다.”

    <미군에 의해 군용전화 사용이 금지 되었다는 1950년 9월 16일 AP통신 기사 

: AP기자가 본 동경·서울·평양(신화봉 저)>


  그는 이후에도 1952년 5월 7일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발생한 전대미문의 난동 사건(포로수용소의 미군 사령관이 공산군 포로의 포로가 됐다), 1953년 5월 휴전협상을 벌이던 유엔군측이 대폭 양보를 담은 새로운 극비 제안을 했다는 사실 등을 여러 차례 특종 보도했다.


                 <1952년 6월 거제도 76포소수용소의 폭로 폭동을 진압하는 유엔군

: AP기자가 본 동경·서울·평양(신화봉 저)>

 


  <1953년 3월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중앙)에게 휴전 회담 전망을 묻고 있는 신화봉 기자,

     왼쪽 민간복은 신태영 구방장관 : AP기자가 본 동경·서울·평양(신화봉 저)>


  1957년 AP통신을 떠난 뒤에도 언론의 일을 잊지 못하고 세계통신사, 미군 전문지 성조에서 일했고, 64년 일본으로 건너가서도 시사통신사의 동경지국장을 지내고 한반도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시사평론’을 발행하는 등 언론 외길을 걸었다. 1980년 말 미국으로 이주해 가족과 함께 생활하던 그는 2002년 10월 7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자택에서 별세했다. 그의 나이 84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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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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