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두려움을 극복하다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8.06 08:00

 

  펑떠화이가 30만의 대군을 동원하여 서울 재점령을 목표로 야심만만하게 개시한 중공군의 제5차 공세는 전선을 지난 1월 4일 위치로 되돌려 버리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실 지난 제3차 공세 당시에 중공군이 서울을 차지한 것은 그들이 잘해서라기보다는 아군이 미련 없이 서울을 포기하였기 때문에 이룬 결과였고 엄밀히 말해 중공군 스스로도 서울 점령까지는 예상하지는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4차 공세 실패 후 2개월간 준비를 하였던 이번 공세는 차원부터 달랐고 펑은 충분한 준비기간을 거쳤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중공군은 서울 재점령을 목표로 야심만만한 공세를 준비하였습니다.]


  하지만 울프하운드 작전의 성공이후 유엔군은 그동안 가져왔던 중공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신감을 회복하였습니다. 아군은 그들의 화력이 중공군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음을 알게 되었고 설령 중공군에 의해 일시적으로 고립되었어도 이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매몰되어 아군 주변에 몰려있던 중공군은 유엔군 폭격기와 포병의 좋은 먹잇감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결국 펑의 의지와 달리 이번 공세에서 중공군은 유엔군 격멸과 서울 점령은 고사하고 오히려 서울 북방에서만 8만여 명이 사살되고, 5만여 여명이 부상당하는 등 엄청난 손실을 보았습니다.


  더불어 이런 결과에는 그 당시 신임 제8군 사령관이 된 밴 플리트의 저돌성도 크게 한 몫 하였습니다. 전임 사령관 리지웨이는 단지 심리적인 상징성이나 역사성을 철저히 배제하고 서울을 순전히 군사전략적인 관점에서만 보았기 때문에 군사적으로 필요하다면 서울을 적에게 내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3월 15일 서울을 수복하고도 민간인의 이주를 철저히 금지시킨 체 비워 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시각은 중공군도 같았습니다. 이미 서울은 철저하게 파괴되고 지난 1.4후퇴 당시에 완전히 소개되어 텅 빈 폐허 뿐 이었습니다. 유엔군도 지난 1월에 뒤 돌아보지 않고 서울을 내주었지만, 중공군도 중부전선에서 참패를 당하며 2월의 제4차 공세가 실패로 끝나자 미련 없이 서울을 내주고 38선 근처로 후퇴해 버렸던 것도 바로 이러한 실리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하지만 밴 플리트는 서울이 차지하는 심리적, 전략적 중요성을 감안하여 어떠한 경우라도 이제는 다시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였습니다.


[서울 재탈환 당시의 국군 제1사단]


  물론 사창리전투처럼 전선 일부에서 급박한 위기를 겪기도 하였지만 결과적으로 유엔군은 회복한 자신감에 밴 플리트의 의지가 더해져서 사상 최대로 평가되던 중공군의 제5차 공세를 성공적으로 저지하고 서울을 지켜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으로 서울은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수도로서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만일 이때 다시 한 번 더 서울을 피탈 당하였다면 이후 역사는 어떻게 쓰여 졌을지 상상하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아마도 한강을 중심으로 DMZ이 형성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농후하고 그렇다면 서울은 현재 북한의 최전선이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반면 제5차 공세의 결과는 중공군이 아무리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여도 보급능력 부족으로 1주일이상의 공세를 계속할 수 없다는 결정적인 취약점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이제 약점을 철저히 파악한 유엔군에게 중공군은 더 이상 신비스러운 군대가 아니었습니다. 또한 유엔군은 어이없이 도망만 다닌 지난 세 차례의 중공군 공세 당시와 달리 제4차, 5차 공세를 효과적으로 막아냄으로써, 이제는 결코 지지 않는다는 확고한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즉, 공세 초기의 어려움만 버티어 낸다면 결국 이길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이었습니다.


  4월 26일, 펑은 마오쩌둥에게 실패를 보고한 후, 4월 29일부터 방어로 전환함으로써 중공군의 제5차 공세가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는데, 이때 마오에게 보고한 실패원인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구석이 하나있습니다. 여러 가지 분석 중 하나가 중공군이 너무 깊게 남하하면 후방지역으로 적(유엔군)의 후방 상륙이 우려된다는 점이었습니다. 당시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 같은 대규모 작전은 고려조차 하지 않았지만 그만큼 지난해 9월에 있었던 인천상륙은 중공군 스스로 발목을 잡게 만든 효과를 발휘한 것이었습니다.


[많은 피해를 보았음에도 펑떠화이는 새로운 공세를 곧바로 준비하였습니다. ]


   그런데 펑은 실패를 조기에 만회하기 위해 다음 공세를 예전보다 빨리 실시하기로 하고 곧바로 다음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이 같은 대응은 6·25전쟁의 중공군 대공세 과정 중 이래가 없는 즉각적인 행보였습니다. 지금까지의 패턴으로 보았을 때 중공군의 다음공세는 빨라야 6월 초나 가능했는데, 이러한 중공군의 급박한 준비는 아군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는 행보였습니다. 그리고 예측이 빗나간 만큼 위기가 빨리 닥쳐왔습니다.

Posted by LG Innotek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JEAN 2010.11.18 03: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 '당신들이 지킨 대한민국'보다는
    '우리들이 일군 대한민국'의 의미가 더 큰 시점이다.
    60년 가까이 우리들을 질식시켰던 당신들의 질서와
    사고방식은 이제 역사속으로 사라져야 할 때이다.
    대한민국의 우익이란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해 싸웠고, 이겨서
    자신들만 편하고 잘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다 였다.
    대한민국은 당신들만의 희생과 노력으로만 이루어진 나라가 아니다.
    이제 현실 정치에서 또는 사회적 영향력에서 역사의 뒤안길로 조용히 물러날
    때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였다면 과감하게
    쫓아버릴 준비와 역량이 충분하다고 본다.

  2. 미친넘 2010.11.20 11: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완전 정신병자 녀석이 나타났구나.
    몇주전부터 횡설 수설하고 자빠졌군.


    여기 있지말고 북한에 가서 정은이
    따까리나 해라.

  3. Computer Network 2012.02.10 18: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난 이런 행사를 통해 6.25전쟁이 어떻게 전쟁이 났는지 알게되었다.
    그리고 내가 봉사를 많이하고 돈을 아껴써야되는 것도 깨달게되었다
    난 이런 캠페인이 더욱더 개발되어 더 많은 사람들한테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4. free of charge married couples therapy l . a . 2012.05.22 15: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끊임없이 자신을 도울 수있는 인터넷 콘텐츠를 구입하고 있습니다. 빅은 귀중한 정보에 감사드립니다.

  5. free therapy consultations detroit 2012.05.23 10: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환상의 검토와 함께 아래 게시물의이 유형을 많이 고마워, 내가 정말 놀라울 있어요! 이것은 도착과 같은 물건을 잡아.

  6. free therapy times in san francisco bay area 2012.05.23 10: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 게시하고 또한 검토 이러한 종류의에 대한 감사, 완벽하게 감동하고 있습니다! 도착이 방법 유형의 물건을 보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