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이 펼친 논리적 오류

생생! 6·25/퍼싱의 군사 이야기 2010.08.09 08:00
  전쟁 발발 직전 북한에서 자체 생산된 PPsh 41인 49년식 기관단총의 초도 생산분 출고 기념사진에 찍힌 김일성.
  그는 치밀한 준비를 갖춘 남침이 반드시 성공하리라 믿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전황은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04시 30분, 작전명 "폭풍"을 필두로 감행된 북한군의 무력남침 기도는 인천상륙작전과 반격작전으로 여지없이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특히 전력의 대부분을 쏟아부었던 낙동강 전선의 후유증으로 인해 북한군은 지리멸렬 패주를 거듭하다 간신히 중공군의 개입과 지원으로 구사일생으로 겨우 구출됐지만 김일성을 비롯한 지휘부 내부에서는 그 동안의 패전으로 상당한 군사·정치적인 혼란을 겪어야 했습니다. 
  특히 평양을 탈환한 것은 좋았지만 연이은 공세의 실패로 인해 중공군조차 혹심한 인명피해를 입고 전선이 오늘날의 휴전선 일대에서 고착되는 상황에 이르자 그 혼란의 수위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같은 내부적 혼란 수습을 위해 김일성은 1950년 12월 만포 북방 3km에 위치한 별오리에서 조선노동당중앙위원회 제3차 정기대회를 소집합니다.

  속칭 '북한의 별오리 회의'라 불린 이 정기대회는 6월 25일, 남침 이후 6개월간의 작전 실패 요인을 결산하고 앞으로의 당면과제를 제시하는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이 대회의 목적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김일성이 6·25 전쟁의 남침 작전 실패 책임을 김책·전우·김무정·김일·김열 등에게 전가함으로써 자칫 잘못하면 자신에게 떠넘겨질 수 있는 책임을 회피함과 동시에 당 내부에서 가속화되고 있는 군사·정치적 혼란을 타개하고자 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죠.
  흔히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당신이 할 소린 아니잖아?!'는 이런 때 써먹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회의에서 김일성은 개전 초기 북한 제2 군단의 춘천 전역을 시작으로 초창기 작전에서의 패인 등 남침 실패의 원인들을 신랄하게 지적하며 비판했습니다. 


 
1953년 휴전 협정에 서명하기 직전의 김일성. 외모에서 오는 편견과 달리 그의 치밀함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비판은 단순한 감정적이면서도
즉흥적인 것이 아닌 꽤 세밀하면서도 논리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우선 김일성은 남침 이후 6개월간의 과정을 3단계로 분류했습니다.
   즉, 제1 단계에서는 북한군의 진격, 제2 단계는 북한군의 후퇴, 제3 단계를 북한군과 중국군의 재반격 시기 등으로 각각 설정한 것이죠.
   이어 각 시기에 따라 작전 실패 요인을 간부들의 지휘 결함을 비롯한 병참지원·부대규율 취약·패전의식 팽배, 그리고 유격투쟁 미약 등 무려 8가지로 분석해 지적하는 치밀함을 보였습니다.

  김일성은 개전 초기 속전속결로 부산까지 진격하는 작전에서의 주 실패 원인을 간부들의 지휘 결함으로 야기됐다고 비판하며 무모하게 작전을 추진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김일성은 우선 북한의 남침계획인 소위 ‘선제타격작전계획’은 미군이 참전하기 이전 속전속결로 전쟁을 마무리한다는 것이 핵심이었는데 한국군 제 6 보병사단의 선전과 제 8 보병사단의 부대 건재 유지 퇴각, 그리고 국방군(
북한 측에서 한국군을 지칭한 용어)의 유생역량들이 무사히 전투력을 보존한 채 한강 이남으로 철수하고 미군이 조기에 참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비할 예비부대가 사전에 확보되지 않은 것 등 북한군의 패전 원인은 간부들의 지휘 결함에 그 원인이 있음을 강조하며 신랄한 비판을 이어갔습니다.
  이것을 보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들까요?
  저는 그저 "놀고 있군! 이것이야 말로 한편의 만담이 아닌가?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이라는 반응이 나올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김일성 본인은 사전에 이를 충분히 예측하고 있었을 것이냐? 는 의문이 들 법한 비판이라 할 수 있죠.
  개전 초기 북한군은 장비가 열악한 한국군을 맹렬히 몰아부치며 개전 3일 만에 수도 서울을 함락시키는 전과를 거두었습니다.

  "우리를 너무 우습게 봤어!" 개전 초 열악한 장비와 전력에도 불구하고 한국군은 북한군의 진격을 필사적으로 저지하며 분투했고 김일성은 사전에 충분한 변수를 고려하지 않은 책임을 회피하는데 급급했습니다.

  이 때만 해도
김일성 본인부터 승리에 도취돼 이런 변수가 발생한 것에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춘천 패전의 책임을 물어 제2 군단장 김광협 중장과 제2 보병사단장 리청송 소장을 해임하는 등 노발대발은 했어도 어찌되었든 서부 전선에서 거둔 발군의 전공이 너무나도 값졌으니까요.
  문제는 그 다음인데 이후 오산 죽미령에서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와의 교전과 더불어 연기군 전의면에서 벌어진 미군 M24 채피 경전차들과의 조우전, 그리고 치열했던 대전 전투 등을 거쳐 낙동강에 이르는 과정이었습니다.
  김일성은 이 과정에서 일선의 북한군 사단장 및 참모들이 미군의 압도적으로 우수한 포병과 항공전력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도 그저 전투교리를 기계적으로 적용해 지형과 야간을 이용한 전투를 수행하지 못함에 따라 금쪽같은 전력인 전차·병력 등이 치명적인 손실을 입었다며 이를 강도높게 비판했습니다.

  "우리를 고려 안한 것이 실수야!" 김일성은 미군이 그토록 빠른 속도로 한반도에 개입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상상치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무모한 작전을 지시한 것이 누구인지 뻔한 상태에서 김일성의 비판은 논리적인 오류가 분명했죠.
  더욱이 당시 낙동강까지 진격한 북한군은 병참선 신장으로 인한 보급품 부족과 그 동안 누적된 전투 손실로 이미 공격력이 극도로 떨어진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무모한 공세가 불가능했음에도 무리한 공격을 지시한 핵심이 이를 비판하는 것이었으니 참으로 황당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무모한 김일성의 작전 지시와 전장 지휘는 크나큰 파국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것을 타인에게 전가시키는 무책임한 행동을 보자면 우리는 절대 저와 같은 사례가 발생해서는 안되겠죠.
  결국 김일성의 무모한 공격지시로 인해 북한군은 그나마 가지고 있던 정예 전력을 대부분 소진한 채 38도선 이북으로 무질서하게 분산 퇴각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이 대회는 김일성이 제 스스로 패전 책임을 휘하 장성 및 간부들에게 전가하는 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셈이고 우리 입장에서 볼 때 그저 쓴웃음을 짓게 하는 몇 안되는 해프닝 중 하나라 하겠습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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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안종현 2012.08.25 19: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단결!
    25사단 217포병대대의 일병 안종현 입니다.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는 내내 저는 우리 대한민국이 북한의 침략을 저지할 수 있었던 게 당연한 거라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김일성은 자신의 상대인 우리의 전력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채 섣불리 전쟁을 벌여 수많은 사람들을 피해의 구렁텅이로 빠뜨린 걸로도 모자라 자신의 안위를 보존하기 위해 싸우기도 전에 책임을 회피하려는 사전공작을 펼쳐놓았습니다. 게다가 전투에 패했을 때는 지도자로서의 책임감을 보여주기 보다는 그 동안 누려왔던 권력을 위해 부하에게 전가했습니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그렇다고 결사의 의지와 불굴의 용기로 무장을 하지도 못했던 김일성.
    다시 한 번 상대방에 대해 파악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가 되었고,
    반면교사로서 저러면 안 되겠다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좋은 자료 감사했습니다. 단결!

  3. best VPN service 2013.03.21 15: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문제를 논의 할 수있는 노력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이 주제에 대해 그리고이 방법에 대한 자세한을 연구 하듯이 강하게 느낀다.

  4. affordable seo links 2013.04.27 16: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공한 미국과 지원결의안에 반대한 유고슬라비아, 소련진영 5개국을 제외한 국가) 지원을 요청하자 전투부대를 파견하지 않은 다

  5. Chatrandom 2013.05.02 01: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950년 6월 25일 새벽 04시 30분, 작전명 "폭풍"을 필두로 감행된 북한군의 무력남침 기도는 인천상륙작전과 반격작전으로 여지없이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6. pioneer living museum in arizona 2013.05.13 01: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침 이후 6개월간의 작전 실패 요인을 결산하고 앞으로의 당면과제를 제시하는 자리였습니

  7. Bookmarking Junction 2013.05.14 01: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에 걸쳐 북한군의 공격이 가해지고 있는 가운데 개성 시내에까지 북한군이 기습적으로 나타나자 개성 일대의 상황은 대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8. fifa ultimate team millionaire autobuyer 2013.05.19 02: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군의 공격이 가해지고 있는 가운데 개성 시내에까지 북한군이 기습적으로 나타나자 개성 일대의 상황은 대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9. buy likes 2013.05.19 16: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히 전력의 대부분을 쏟아부었던 낙동강 전선의 후유증으로 인해 북한군은 지리멸렬 패주를

  10. vaporizers for sale 2013.05.22 16: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리까지 종심 70여 킬로미터의 대규모 돌파구가 형성되자, 군 예비로 후방에 배치하고 있던 미 제3사단과 미

  11. example condolences 2013.06.16 00: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부에서는 그 동안의 패전으로 상당한 군사·정치적인 혼란을 겪어야 했습니다.

  12. plumber clifton nj 2013.06.20 21: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치밀한 준비를 갖춘 남침이 반드시 성공하리라 믿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전황은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13. painting new jersey 2013.07.08 15: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부분을 쏟아부었던 낙동강 전선의 후유증으로 인해 북한군은 지리멸렬

  14. buy sandhi sudha 2013.07.11 21: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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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만 유감스럽게도 전황은 전혀 지만 유감스럽게도 전황은 전혀

  17. sajt 2013.10.12 20: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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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Click Odyssea 1 Link 2014.02.13 00: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춘 남침이 반드시 성공하리라 믿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전황은 전혀 그렇지 못했습

  19. yellow teeth 2014.03.31 08: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일성의 오류가 꽤 심각한 수준이네요.

  20. U2 Brothr Blog 2014.03.31 16: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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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http://usdruglawsuit.com/topics/drugs/vaginal-mesh/ 2014.04.13 21: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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