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것이 약

생생! 6·25/August의 군사세계 2011.08.09 15:58

 1950년 6월 28일 서울 함락까지, 전쟁 초기에 국군 수뇌부가 보여주었던 행태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더라도 비판받아야 할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서울 사수에 급급한 나머지 총참모장 채병덕(蔡秉德)의 주도로 의정부축선에 축차적으로 병력을 투입하여 일거에 소모시켜 버리고, 한강 이북에 5개 사단을 방치한 상태로 한강교 폭파를 단행하였던 전술은 무능함의 극치였다고 혹평을 받아 마땅합니다.

[전쟁 초기 대처가 미흡하였던 것으로 평가되는 채병덕 총참모장]


 결국 이 때문에 10만이었던 국군이 전쟁발발 일주일도 되지 않아 3만 선까지 몰락하게 되었고, 낙동강까지 밀려나 유엔군의 도움을 받은 다음에야 겨우 북한군의 진격을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당시 축차 투입되어 순식간에 해체 된 부대는 2, 5, 7사단이었고, 수도경비사령부(수도사단)은 패전 부대를 긁어모아 간신히 재편성할 수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전략, 전술, 작전, 철학이 부재하여 벌어진 참변이었습니다.

[서울을 피탈당한 후 벌어진 한강방어전의 디오라마]


 의정부 축선을 담당하던 7사단이 북한군의 주력인 3, 4사단과 105땅크여단의 집중 공격으로 밀려난 것은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크고, 충분히 이해 할 수 있었던 부분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에 있었던 서울에 대한 육군본부의 무의미한 집념이었습니다. 물론 서울이 대한민국의 수도로써, 150만의 시민이 살던 한반도에서 가장 큰 도시로 정치적 가치가 컸고, 이후 인공치하에 엄청난 탄압이 자행되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방어에 나선 것은 타당합니다.

[전쟁 초기 북한군의 선봉이었던 전차부대]


 하지만 군사적으로 도저히 방어해 낼 능력이 없다면 시민을 안전하게 소개시키고 도시를 과감히 포기하는 것도 고려해 봐야 했습니다. 아군의 북진 시, 북한이 도주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평양을 미련 없이 포기하였던 것과 1.4후퇴 당시에 서울을 순순히 적에게 내어주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위정자들과 군부는 거짓 정보로 시민을 혼란시킨 것으로도 모자라 국군의 급속한 몰락을 불러오는 자충수를 두었습니다.

* 자충수 : 바둑에서 자기가 돌을 놓으면 도리어 자기 수가 죽게 되는 수

[대부분의 중장비를 유기한 체 한강을 건너 후퇴하는 국군]


 이렇게 서울 북부에서 한심한 장면이 벌어지던 바로 그때 중동부전선을 담당하던 6사단은 북한군 2군단을 몰락시키는 엄청난 대승을 거두었는데, 역설적이지만 6사단이 대승을 거두게 된 데는 육군본부의 무능함이 크게 한 몫 하였습니다. 전쟁이 발발하자 6사단은 육군본부와 연락이 두절되어 상부의 지시 없이 단독으로 작전을 벌이던 중이어서 타 전선의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하였습니다.

[연락이 두절된 상황에서도 일부부대는 선전을 펼쳤습니다.]


 오히려 국군이 해주로 진입했다는 라디오 방송을 그대로 믿어 모진교 폭파에 실패하였을 정도였습니다. 당시 춘천과 인제 일대로 북한군의 압박이 심해지자 김종오 사단장은 사단 예비부대로 원주에 주둔하던 19연대에게 출동을 명하였습니다. 명령을 받은 19연대는 우선 선도대대를 징발된 차량 등을 이용하여 춘천으로 급거 출발시켰고, 본대는 열차편으로 청량리를 거쳐 춘천으로 이동에 들어가 성공적으로 전개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6사단 19연대의 이동로(점선-선도대대, 실선-본대), 열차를 이용한 본대는 의정부 인근인 청량리를 거쳐 춘천으로 향하였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이날까지 6사단은 육군본부와 통신이 개방된 상태가 아니어서 사단의 의지대로 작전을 펼칠 수 있었는데, 이것은 이후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당시 육군본부는 후방에서 올라온 부대들을 앞뒤 가리지 않고, 의정부 축선에 축차적으로 투입하기에 급급하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19연대가 이곳과 가까운 청량리에 왔다는 사실을 파악하였다면 임의로 부대의 작전지역을 바꾸었을 가능성이 컸습니다.

[춘천전투 기념비]


 물불을 가리지 않고 후방에서 이동하는 족족 축차적으로 의정부축선 일대에 투입하였던 육군본부의 대응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가설입니다. 만일 그랬다면 예비대의 조력을 받을 수 없었던 6사단은 춘천과 홍천 방어에 실패하였을 것이고, 북한군 2군단은 신속히 수원까지 남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모르는 것이 약이어서 개전 초기의 유일무이한 대승이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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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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