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춘천 전투 참전 중대장의 수기(2/4)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1.10.17 06:56

18:00시 넘어 마지막 적의 4차 공격이 개시 되었다.

포 중대는 가래목 나루로 향하는
적 보병 대대를 보리밭에서
붙잡아 집중 포화를 가해서 삼거리
방면으로 도주하게 하였다.

전방의 1중대는 접근해온 적을 피해 500미터 정도 철수하여
방열한 후 직접 사격으로 적을 강타했다.

25일 위기의 순간에만 적에게 쏴댄 포탄만 무려
900발이나
되었다.
춘천 방어 전투 나흘 동안에 18 포병대대가 쏜 포탄은
보유탄 5,000 발 중에서 4,000발이었다.

소양강 이북의 16포병 대대는 이틀간의 눈부신 활약을 하고
26일 밤부터 적의 전체적인 압박으로  남방으로 철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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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순한 북한군 간부 김 석용 씨 증언에 의하면 25일 침공을
개시한지 4시간이 지난 점심 무렵에 포 공격으로 북 2사단
포병대장 안 빈[安 彬] 대좌가 전사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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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2사단은 원래 국군의 38선 경계 전투력이
강하여 6월 25일 당일은 돌파구 형성으로만 만족하려고 했으나
국군의 38선 경계 부대가 예상외로 빨리 와해되자
계획을 바꾸어 25일 점심까지 춘천을 점령하려는 목표를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재빠르게 전개한 포병들의 맹렬한 저항으로 그 꿈을
일찌감치 접어야 했다.



이 대용 장군은 오직 초반 포병의 활약이 있었기에 성공적인
춘천 방어가 있었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만약 포병이 없었다면 자주포를 앞세운 적은
당연히 25일 당일로 춘천을 점령했을 것이었다는
것이었다.


이 전투가 사농동 전개 2개 포병 중대의 중대장들이 서울로
교육  출장 미귀의 상태에서 진행되었다는 사실은 특기 할만하다.
두 중대장은 당일 전투 중에 귀대하였다.

큰 공을 세운 김 성 소령은 고향이 이북으로서
후에 준장으로 진급하였다.


90년대에 서울 북방에서 양계업을 하며 어렵게
사는 것 같다는 풍문만 확인한바있다.


춘천 전투의 첫 장을 장식한 사농동의 포격전은 위에서
김 운환 장군의 수기를 바탕으로 간단히 요약했다.





18 포병대대장 김  성 소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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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 춘천 방어 전투중 하이라이트인 옥산포 전투와
소양강 전투에서 활약한 7연대 1대대 1중대장인
이 대용 장군의 전투 수기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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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연대 제 1중대 전투 개요.
자 : 1950년 6월25일
지 :  1950년 6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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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상소집에서 제 1중대 방어 진지 점령
1950년 6월25일 장마철을 알리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제 7연대 1중대장이었던 나는 이날 춘천시 죽림동에 있는
하숙집에서 일찍 일어나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비가 내리는 가운데 포성(砲聲)이 은은히 들려오고 있었다.
-16 포병 대대들이 남진하는 적에게 연속 포격을 가하고
 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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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병의 전개가 얼마나 빨랐는지를 말해 준다.-

옛 춘천 봉의산 일대 항공 사진- 전면의 큰 산이 봉의산이고 왼 쪽에
소양교와 그 너머 사농동 일대[결전장 1]와 먼 끝에 옥산포 전투장[결전장 2]
이 있다.
봉의산 오른쪽 소양강이 구비치는 곳이 소양강 전투가 [결전장 3]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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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도에 한국을 방문한 중국 동포는 미국이 남한을
사주해서 북한을 사주해서 먼저 북침하게 한 것이 6.25전의
시작이라는 설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는 중국 인민 해방군에서 군 생활을 했던 학교 선생이었다.
내가 아무리 설명해도 막 무가내로 국군의 북침설을 주장했다.


남한이 먼저 북한을 공격했었기 때문에 북한이 반격했다는
북한의 거짓 주장을 중국이 학교와 사회, 군대에서 주입식으로
가르친 것이 중국 공민인 그의 머리에 깊숙이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김 일성이 악당이라는 남한 사람들의 의식에는
전적인 공감을 표하면서도 6,25 북침설 인식은 버리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내가 준 책 1984년에 복간 된 이 대용 장군의
수기,‘국경선의 밤이 오다‘라는 책의 이 대목에서 비로소
북침설이 의심을 가지기 시작하더니 내가 건네준 여러 권의
국군 전사를 읽어보고 남침설을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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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남침해서 포병이 치열한 포격을 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우리 포병부대가 일요일인데도 저렇게 열심히 사격 훈련을
하는 것으로만 생각하고 무심히 흘려보냈다.

아침 식사를 끝내고 오전 8시 30분 경 나는 카키 군복에 우의를 입고
검은 긴 고무 장화를 신고 춘천 도서관[봉의산 기슭에 있는 미 문화원,
옛 일본 신사 건물]에 가서 책이라 읽으려고 하숙집을 나왔다.


내가 춘천 공화탕 앞에 이르렀을 때 제 7연대 제 1대대장
김 용배 소령이 급파한 제 1중대 연락병을 만났다.

북한군이 남침을 해서 비상소집을 한다는 급보였다.
춘천역 부근에 있는 제 7연대 본부와 함께 있는 제 1대대 본부로
달려갔더니 대대장은 북한 공산군이 38선을 돌파하고 이미 8km나
남진하여 춘천을 육박하고 있다는 상황 설명과 함께 제 1중대는
신속히 전투 준비를 하고 우두산 북방 약 3km 지점에
있는 제 1 중대 진지로 가서 진지 점령을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1952년 대대장 시절의 이대용 장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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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용 장군의 개인 수기에서 보여 주듯 춘천의 6사단이
적의 내침을 미리 내다보고 전후 외출을 금지하고 비상
대기 중이었다고 쓰고 있는 글들은 전혀 사실이
아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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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진지는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서 춘천 방어를 위해
각 고등학교 남녀학생들과 제 7연대가 공동 작업을 하여
1950년 방어 진지 공사를 완료하고 제 7연대 제 1대대는
일단 유사시에 이 진지를 점령하고 방어 임무를 수행하는
진지 투입 훈련을 해놓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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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진지 구축 역시 6사단이 자체적으로 판단해서
한 것이 아니라 육본의 긴급지시에 따라 실시했다.


이 대용 장군에게서 이 진지들이 일본군 출신이었던 7연대 작전주임
조 남호 소령이 미군 교범보다도 일본군 경험을 되살려 진지를
설계 했다는 말을 들었다.

아마도 일본군이 다코쓰보[ 낙지 구멍]라는 개인용 참호
처럼 깊고 좁게 파고 이를 교통호로 연결했다는 뜻 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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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중대 본부로 뛰어 가서 중대 출동 준비를 명령하고
불이 나게 전투복으로 갈아입고 철모를 썼으나 군화는 두 컬레
모두 하숙집에 벗어놓고 고무 장화를 신고 왔기 때문에 중대
보급 창고에 있는 군화 중에서 골라 신으려 했으나 모두 작아서
못 신고 다급한 김에 방한화를 신어 봤더니 발에 맞는 것이 있어서
그대로 신고 M 2 카빈 총을 둘러메고 실탄을 탄대에 차고
제 1 중대 장병들을 정렬시키고 인원을 점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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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용 대위는 이후 하숙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이 대용 대위가 하숙집으로 돌아갔을 때는 9.28 수복후
국군이 북진할 때였다.


그러나 하숙집은 폭격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주인 부부도 행방불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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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중대 장교 4명이 모두 집결하였다.
그들의 명단과 직책은 다음과 같다.


제 1 중대장
중위 이 대용 [육사 7기]
제 1 소대장 중위 한 도선 [육사 8기]
제 2 소대장 중위 강 구석[육사 8기]
제 3 소대장 소위 손 종구[육사 9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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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소대장중에 한 도선 중위와 강 구석 중위가
낙동강 전선에서 전사하고  
3년 뒤 1953년 금성 전투에서
전사해서 전쟁중 세 명 모두 전사하고 말았다.

이 대용 장군은 세 명의 소대장 중에서 특히
용맹무쌍했던 1 소대장 한 도선 중위에 대한
추억을 자주 언급했었다.


그는 7월 점촌 전투에서 전사했으나 평안도가
고향이라서 남한 땅에 그의 호국 영현을 돌 봐주는
친척 한 명도
없는 것이 더욱 애처롭다는 생각을 표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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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날이 일요일이어서 토요일에 외박 나
사병중 약 40명이 아직도 중대에 돌아오지 못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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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용 장군의 윗 기록 역시 기습을 당한 국군 사단중에서
6사단만이 유일하게 적의 도발을 예감하고 전 장병의 외출을
금지하고 임전태세를 갖추고 있었다는 기존의 기록들이 사실과
다름을 알 수가 있다.


포병 김 운환 장군은 당시 국군의 급식 사정이 너무 열악하여
지급되는 식량으로는 전 장병을 배불리 먹이기가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그래서 병력의 30%는 휴가를 주었고 주말이 되면 장병들을
외출을 내보내 남게 되는 쌀로 남은 겨우 장병들을
배불리 먹였다고 했다.

이 휴가와 주말 외출은 1950년 4월과 5월에 적정이 심상치 않아
전군에게 하달된 비상태세 상태에서도 어쩔 수없이 비공식적으로
행해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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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대 선임하사관 이 한직 상사에게 중대에 남아서
이 약 40명이 복귀하는대로 제 1 중대 방어진지로 급파하라고
지시하고 대대장이 준비해준 4대의 2.5톤의 GMC 군용트럭에
중대 전투원을 태워 가지고
속도를 내어 우두산 북방에 있는 여우 고개로 달렸다.

[ 이 한직 대위는 낙동강 전선에서 전사하게 된다.]

우두동을 지날 때 아군 사단 포병[105 ,HOW.M3]의 발사 포성이
우두동을 진동시키고 있었으며 옥산포 쪽에는 북한 공산군의
머리에 포탄이 작렬하고 있었다.

급한대로 제 1 중대는 여우고개를 넘어서 약 5-600미터 더 가서
하차하여 모두 뛰어 가서 북방 약 2km 지점에 있는 준비된 진지를
점령하였다.


6월 25일 1대대의 이동 경로를 보여 주는 지도다.
이대용 중대는 아래 소양교를 건너 북상, 여우고개[X를 지나 표시를
한 164 고지 북방 참호 진지에 투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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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고지 - 사진 촬영을 한 날 6.25처럼 비가 많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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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결된 능선 진지는 북한군의 침공 루트와 길게
평행해서 길게 형성 된 능선으로서 침공로에서 1.5 km
쯤 떨어져 있다.


적 침공 대비 침공 방어 진지로서 너무 멀지 않은가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북한군은 1.5km의 간격에 방심하고 국군에게
측면을 보여주며 남하했었다.


이 방심이 결국 북한군이 7연대 1 대대의 함정에 걸려들어
격멸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춘천 전투에서와 같이 적의 예상 공격로에 평행한 고지를
점령해서 방어 진지를 만드는 것은 국군 중 대대 전술에
교리 발전을 위한 한 사례로서 연구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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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가 대강 1950년 오전 10시 반경이었다.
제 1 중대가 진지를 점령하고 서쪽과 북쪽을 바라보니 아군 사단 포병은
역골과 한계울 쪽의 북한 공산군 부대를 효과적으로 집중강타하고 있었다.
춘천시에 제 1 중대 본부에 잔류하고 있던 이 한직 상사는
외박으로부터 중대 본부에 돌아 온 사병들을 계속
제 1 중대 진지로 보내 주고 있었다.


그날 해질 무렵까지 외박 나갔던 제 1중대 사병 약 40명은
몇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제 1중대 방어 진지에 와서 배치되었다.

2.춘천 지구 전투의 제 1 중대 상황

가 . 1950년 6월 25일 상황
제 7연대 제 1 중대가 사전 준비된 중대 방어 진지를 점령하고
약 30분후인 6월 25일 오전 11시 경 북한 공산군 약 1개 소대 병력이
금광의 서쪽 능선끝 부분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것을 우리
제 1 중대는 사격으로 [60mm 박격포, 기관총, 개인화기]으로 이를
집중 공격하였으며 이 북한 공산군 소수 병력은 제 1 중대 전방
약 400미터 지점까지 내려왔다가 북쪽으로 퇴각해 버렸다.
교전 시간은 약 1시간이었다.


이 교전이 끝나고 점심 식사가 운반되어 와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귀대 사병들을 인솔하고 온 이 한직 상사가 “ 중대장님!
저기 인민군 탱크가 나오고 있습니다.“ 하며 손으로 가리키는
서쪽을 보니 북한 공산군 탱크 5대가 옥산포로 진격하고 있었다

이 탱크들은 사실은 북한 SU-76 자주포였으나 우리는 그것이
탱크로 오인하고 있었다.


오후 4시 [16:00] 제 1 중대 전면에는 또 약 1개 소대의 북한군이
출현하여 사격을 가하면서 우리 제 1 중대 정면에서 남쪽으로
내려오고 있어 우리 제 1 중대는 오전 11시 경에 한 것과
마찬가지로 박격포, 기관총. 자동소총, 소총등으로 응사하여
이를 북으로 격퇴시키고 방어진지를 고수했다.
이 때의 교전 시간은 약 2시간이었다.


이들 북한 공산군 소규모 병력을 5번 국도를 축으로 하여
주공을 펴고 있는 북한군 주력을 측방을 엄호하는
수색대[정찰대]같이 생각되었다.


164 고지 남쪽 능선. 옥산포에서 정동쪽으로 최단 거리다.
이곳의 능선이 1 대대의 돌격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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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야간 상황

6.25일 야간에는 우리 제 1 중대는 중대 정면인 금광터 지내의
남쪽 한계울 등 지역에 60미리 박격포 포탄 사격을 가하여
적진지를 교란시켰다.
이날 밤 북한군과의 교전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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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6월 25일의 첫날에는 보병들의 본격적인 대반격전은 없었다.
다음 날인 6월 26일이 7연대 1 대대의 분전이 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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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1950,년 6월 26일 상황

6월 26일 아침 일찍 옥산포를 점령한 북한군에 대한
파쇄 공격[destroying attack]이 전일 [6.25일]오후 일찍부터
옥산포 일대를 점령하고 춘천시로의 진격을 목전에 두고 있는

북한 공산군 부대에 대한 측방 기습 파쇄 공격 명령이
제 7연대 본부로부터 제 1대대에 하달되어 제 1대대 중대장들은
대대장 김용배 소령이 있는 164 고지에 불려가서 옥산포
북한 공산군 부대에 대한 공격 명령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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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 돌격은 고지에서 옥산포 일대 북한군의 경계 태세를
면밀히 관찰하던 대대장 김 용배 소령이 드디어 적의 허점을
맹공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고 연대장 임 부택 중령에게
긴급 건의해서 단행된 것이다.

김 용배 소령은 경북 문경 출신으로서 이 대용 대위가 6.25 전중
가장 뛰어났던 전투 지휘관으로 격찬한 분이다.


김 용배 소령은 며칠 뒤 중령으로 진급했으며 1951년 
1951년 7월 2일,7 사단  5연대장 재직시
적의 포격에 전사했다,
전사후 정부에서 준장으로 추서했다.


평소 부하들에게 싫은 소리를 잘 하지 않는 온후한 성품이었지만
전투에 임해서는 인간의 한계를 넘는 대담함과 명석함을 발휘하였다.


이 대용 장군의 이 날 김 용배 소령이 옥산포의 적에게 장거리 돌격을
결단한 것은
전투 중대장인 자신의 입장에서도 감히 상상도 못할
과감한 전투 지휘였다고 한다.

이 대용 장군의 여러 수기와 강연들에서 이 분에 대한 회고로
알려지게 되어 그 분의 전기인 “ 세월의 이끼에 가려진 보석”
이라는 책도 출판되었고 고향인 문경에 용배 공원이라는
추모 공원도 생겼다.



용산 전쟁 기념관의 김 용배 장군 흉상.

전쟁중 누구 못지 않은 전투 경험을 많이 축적했었던 이 대용 장군은 
몇번이나 6.25전중 최고의 명장중 한 명은 단연 김 용배 장군이라고 회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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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고지 북방 능선에 배치 되었던 1 대대 주력은
은밀히 능선을 타고 남쪽으로 이동하여
옥산포 최단거리 능선에서 돌격 준비를 했다.

오전 10 시경에 옥산포 일대의 적에게 포병의
준비 사격이 시작되어 30분간 집중적인 포격이
행해졌다.

오전 10시 30분 공격 개시선을 넘은 제 1중대는 좌측의
제 3중대와 함께 제방을 터뜨린 홍수와 같이
옥산포에 고함과 사격의 노도와 같이 쏟아져 내려갔다.

선두 보병이 옥산포에 접근 시점에 포병의
사격이 연신되며 종료되었다.

옥산포는 순식간에 점령되고 북으로 도주하는 북한군을 추격하는
한 편 옥산포내 각 가옥에 숨어버린 북한군에 대한 수색 소탕 작업을
전개하였다.

옥산포 점령과 동시에 추가 투입된 제 2중대에게 제 1 중대는
옥산포 동네의 주택 수색 소탕 작전을 넘겨주고 제 1중대는 도주하는
북한군 부대를 추격하여 옥산포 북방 삼거리를 지나 지내리에서
내려오는 개울다리까지 진출,북쪽을 향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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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반격은 내침한 적을 격파하고 북진했었던 6.25 최초의
전투였다.


1대대가 파쇄 공격을 가한 거리는 대단히 멀었다.
무려 1.5km의 논과 밭을 가로질러 돌진했으며 이에 LMG와
60mm 박격포가 이 돌진에 가세했다.


나중의 전선 고착후 고지전 때 돌격거리는 수류탄
투척 거리의 밖에서 실시되었다는 사실과 비교가 된다.


장거리 돌격의 성공은 국군 전사의 교리 발전에서
관심 있는 연구 대상이다.


26일 164 고지 능선으로 부터 옥산포에 가해진 7연대 1 대대 부대원들의 총돌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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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급해진 북한군은 SU-76 자주포 5량을 옥산포에 버리고 도주하였다.
이중 1량은 북한군의 방화로 파괴되고 도주하던 승무원 두 명이 사살되었다.
옥산포에서 패주한 공산군은 모두 한계울 역골 방향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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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76 한 량의 승무원들은 포탑 내부에 인화물을 쌓아 놓고
그 위에 76mm 포탄들을 얹어 놓은 상태로 불을 질러
자주포를 파괴했다.

비행모[ 소련제 가죽 전차병 헬멧]를 썼던 전차장이

소지했던 토카레프 권총은 이 대용 장군이 노획해서 사용했다.


적이 유기하고 도주한 SU -76들은 아쉽게도 예인할 방법이 없어
그냥 놔두었다가 철수하는 바람에 북한군이 다시 회수해갔다.




SU -76 자주포 9.28 서울 탈환 작전 때도 최후까지 시내에 남아
저항하다가 파괴된 경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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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약 3시간 후인 오후 2시[14:00]경,북한군 부대는
자주포 5 량을 앞 세우고 한계울 방향으로부터 남으로 공격을 개시하였다.

[한계울 - 지도 참조]
피아간의 공방전이 약 4-50분 전개되고 있는데 164 고지에 있는
제 1대대장 김 용배 소령으로부터 제 1 중대를 위시한 옥산포에 있는
모든 중대에게
옥산포를 이탈하여 원진지로 되돌아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옥산포 적 부대 파쇄 공격의 작전 효과는 이미 거두었고 병력이 열세한
제 1대대는 구축된 진지가 없는 옥산포에서 보다는 호가 깊이 구축된
능선에서의 방어 전투가 더 중요하다 효율적이라고 판단했었기 때문이었다.


제 1 중대가 원 방어진지에 되돌아 와서 중대 방어 재배치가
다시 끝난 것은 6월 26일 오후 4시 30분[16;30 분]경이었다.


6월 26일 오후 6시 30분경 갑자기 제 1대대장 김 용배 소령은
예하 각 중대장들을 164 고지에 집합하도록 했다.

1. 그 곳에는 양구 방면에서 내평을 거쳐 춘천시로 진격해
내려오는 북한군을 내평에서 방어하고 있던
제 2대대 제 7중대장 이 건옥[육사 7기]중위가 소대원 7-8명을
거느리고 와 있었다.


피로에 지친 모습이었으며 그는 양구로부터 밀고 내려오는
북한군 부대가 오늘 밤에 아마도 샘밭을 거쳐 우두동 여우 고개까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제 1대대 일부 병력으로 한계울의 북한 공산군 부대에 야간
기습 파쇄 공격을 계획하고 있던 제 1 대대장 김 용배 소령의
계획에 차질을 빚게 됐다.


때를 같이 하여 제 7연대 본부로부터 “ 제 1대대는 양구로부터
내려오는 북한군 부대에 의해 후방을 차단당하게 되니
6월 26일 일몰(日沒)과 동시에 우두동 남동에 있는 네다리 여울을
건너서 소양강 남쪽 석사동에 집결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2] 방어진지 철수 석사동으로 철수.
제 7연대 제 1대대는 제 7연대장 명령에 따라 6월 26일 저녁 식사를
일찍 끝내고 철수 준비를 한후 일몰(日沒)과 동시에 점령확보하고 있던
방어진지를 포기하고 철수 작전을 개시하였다.


제 1 중대, 제 3중대, 제 2 중대 순으로 우두동으로 이동, 우두동
동쪽 남단에 있는 도섭가능한 네다리 여울을 건넜다.
여울의 수심(水深)은 사람의 허리까지 찼다.


도섭이 가능한 우두동 네다리 여울의 나투터 정면 넓이는
150m 내지
200m 쯤으로 보였다.
제 1 중대는 춘천시 후평동을 거쳐 춘천시 석사동 야산으로 갔다.
제 1 대대 전병력을 그곳 야산 맨 땅위에 누워서 수면을 취하며
밤을 보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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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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