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연

생생! 6·25/August의 군사세계 2011.11.09 16:17

 1972년 6월 21일, 용산 유엔군사령부의 나이트 필드(Knight Field)에서 작은 행사가 벌어졌습니다. 중대급 부대의 철군식이었지만 국무총리, 유엔군사령관, 태국군 총참모장 등의 VIP들이 대거 참석한 의미 있는 행사였습니다. 주한 태국군 제23중대의 송별식이었는데, 지휘관 음삭 줄라짜릿 소령이 마이켈리스 유엔군사령관에게 신고하는 것으로 행사의 대미를 장식하였고, 이로써 음삭 소령은 주한 태국군의 마지막 지휘관이 되었습니다.

[철군 신고를 하는 태국군과 지휘관 음삭 줄라짜릿 소령]



 우리 정부는 철군을 만류하였지만 군사적 공백을 야기하기에는 거의 미미한 수준인 불과 1개 보병중대였으므로 1년 전에 벌어진 미 7사단의 철군 때와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더불어 1개 군단 규모의 주월 한국군의 철군이 조만간 완료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군사적인 무의미함과 표면적인 조촐함과는 달리 주한 태국군의 철군이 내포한 의의는 상당히 컸습니다.

[훈련 중인 주한 태국군]



 바로 유엔군의 실질적인 해체를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유엔군은 1950년 6월 27일 유엔 결의에 의해 구성된 다국적군이었는데, 태국군의 철군으로 이제 유엔의 이름으로 전투병을 한국에 주둔시킨 나라는 미국만 남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현재도 유엔군사령부가 존속하고 이곳에 연락무관을 파견 중인 국가들도 있지만, 1978년 한미연합사령부에 지휘권을 넘긴 이후 정전관련 임무만 담당하는 행정기구화 되었습니다.

[초대 유엔군사령관 맥아더에게 유엔기를 전달하는 수여식]



 이것은 다시 말해 참전 16개국 중 미국을 제외하고 태국이 가장 오래 동안 전투부대를 주둔시킨 우방이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유엔이 전쟁개입을 결의하고 회원국들에게 동참을 권유하자 1개 여단 규모인 4,000명의 파병을 즉각 밝혔을 만큼 태국은 가장 먼저 호응한 국가였습니다. 그런데 본진 파병직전이던 1950년 10월 말이 되면서 조기 종전이 예상되자 1개 대대규모로 병력을 축소하였습니다.

[최초 한국 도착 당시의 태국군. 복장과 장비가 구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10월 22일, 태국 출발 당시에 태국군 대대는 한국에 도착하여 오늘날의 평화유지군처럼 전후 처리 임무에만 투입될 것으로 예측되었습니다. 하지만 보름간의 항해 후, 11월 7일 부산에 도착하였을 때는 중공군의 기습 참전으로 전쟁의 상황이 완전히 바뀐 상태였습니다. 그들은 여독을 풀 틈도 없이 곧바로 전선으로 달려가야 했고, 그것은 앞으로 22년간 한반도에 머무르게 되는 인연의 시작점이었습니다.

[작전 중인 태국군]



 처음에는 급박하게 변해가는 전선의 상황과 더불어 기후마저 상이한 한국의 혹독한 겨울로 말미암아 온갖 고생을 다 겪었지만, 태국군은 1951년 중반기 이후 전선이 정체되자 서서히 그 진가를 발휘하였습니다. 특히 1952년 11월 연천 서북방의 폭찹고지(Porkchop Hill)전투에서 백병전으로 중공군을 물리쳐, 함께 싸운 미군들이 리틀 타이거(Little Tiger)라는 애칭을 부여하였을 만큼 끈질긴 전투력을 선보였습니다.

[태국군의 최종 주둔지였던 운천에 조성된 태국군 참전 기념관]



 태국군은 파병 이후 1년 주기로 병력을 교대하였는데 그때마다 부대 단대호가 바뀌었습니다. 최초 내한한 왕립 21연대 선발대대가 제1대대가 되었고 이후 제2대대, 제3대대 하는 식으로 부대명이 바뀌었는데, 1972년 철군당시 부대가 제23중대였으니 부대명만으로도 태국군이 22년간 한국에 주둔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태국군은 총 3,650명이 참전하여 전사 129명, 부상 1,139명의 손실이라는 고귀한 희생을 하였고 이후에도 든든한 우군으로 한반도 방위를 함께 하여왔습니다.

[최초 파한 부대장인 보리분 줄라짜릿, 그는 마지막 철수 부대장의 음삭 줄라짜릿 소령의 부친입니다.]



 최초 파한 부대인 태국군 제1대대를 이끌던 지휘관은 보리분 줄라짜릿 대령이었는데 그는 이후 장군이 되어 태국 육군 참모차장까지 오른 용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22년 후 마지막 철수 부대인 제23중대를 이끈 음삭 소령의 아버지이기도 했습니다. 아마 그가 처음 한국에 발을 내려놓았을 때 20여년 후 그의 아들이 철수부대를 지휘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입니다. 줄라짜릿 가문과 한국의 재미있고도 질긴 인연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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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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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난 이런 행사를 통해 6.25전쟁이 어떻게 전쟁이 났는지 알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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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chat random 2013.05.02 01: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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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rapid weight loss 2013.05.08 13: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로써 음삭 소령은 주한 태국군의 마지막 지휘관이 되었습니다.

  17. ㅇㅇ 2013.07.19 17: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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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Code de reduction Rosy 2014.02.14 04: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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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트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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