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군민(軍民)이 만든 6ㆍ25 진지, 아직도 남아있다!(2/3)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1.12.03 17:04

 그런데 언제인가부터 마음에 한 호기심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이대용 장군이 직접 쓴 춘천 전투의 글을 이「아! 6ㆍ25」블로그에 글을 소개하면서 부터였다. 이 장군은 164고지 일대에 연대 장병들과 학생들이 구축한 진지가 미국식 교통호와 일본식 개인호 구축 방법을 혼합해서 만든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나는 일본식 개인호라면 일본군이 말하는 다꼬스보(낙지 구멍) 스타일이 아닌가 생각해서 기고 글에 그렇게 소개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정도만은 아닌 것 같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일본군 참호는 가사가다(笠型)라는 형식으로서 세 개의 참호를 삼각형으로 배치하는 것이었다.

 일본의 삿갓(笠)이 삼각형 모양이라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었다.(베트남 사람들의 삿갓이 이렇게 생겼다.) 호기심이 발동하면 못 참는 성미가 있는 나였기에 춘천의 학생들과 군인들이 협동하여 팠다는 그 독특한 형식의 진지를 꼭 눈으로 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모두 나의 생각에 부정적이었다. 60년 전에 판 참호나 교통호가 과연 남아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간 두 세대의 세월이 흘렀고 세기가 바뀌었다. 높은 산도 아니었다. 산맥 주위 농민들이 부단히 출입하면서 땔감을 구하던 시절에 참호와 교통호를 그냥 두었겠느냐는 말이었다.

 더구나 60년 동안 해마다 쏟아지는 폭우와 장마철의 빗발을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는 말들도 했었다. 하지만 나는 7연대와 학생들이 구축한 개인호나 교통호가 일부나마 남아 있을 가능성에 희망을 걸었다. 이는 내가 오래 된 참호를 목격한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군 생활 시절 수색 역 구내에서 남쪽에 미군들이 구축한 전차호들 두 개를 보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1951년 중공군이 50만을 동원해서 대공세를 취했던 1951년 4월 춘계 공세 직전에 만든 전차호로 추측된다. 그 때 서울 북방의 방어가 원체 강력해서(방어에 동원한 미군의 포만 400문이었다.) 중공군은 서울 점령을 포기하고 중부전선으로 파고 들어갔으나 한 달 간의 공세는 무참히 실패했고, 총 사령관 팽덕회의 사령부마저 함경도 성천까지 도주해야했다.

 이 전차호를 보고 대대 작전 과장과 함께 이 호들이 아직도 온전해서 금방 전차호로 다시 활용을 할 수 있다고 대화를 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참호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소멸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던 이유는 또 있었다.

 수년전 나는 중국 백두산 중턱에 있던 내두산촌이라는 곳을 찾아간 일이 있었다. 김일성의 빨치산 부대가 남만주 일대에서 날뛸 때인 1938년경 일본이 백두산 해발 800미터 지점의 고원 밀림 지대 가장자리에 이도백하진 일대에서 모집한 젊은 농민들을 40세대를 이주시키고 전략촌인 내두산 촌을 만들었었다.

 그 곳 농민에게서 그 시절에 마을 뒷산에 판 초소의 참호가 지금도 남아있다는 말을 듣고 그 때도 호기심에 무턱대고 올라가 본 일이 있었다.

[1938년에 판 중국 백두산 내두산촌의 보초 참호. 두사람이 근무하던 복초 참호다. 둥근 윤곽선이 보인다.]



 무려 70년이나 지났는데도 참호는 아주 깨끗한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많은 춘천 옥산포 주변의 참호들도 조금은 남아있겠지.... 나는 그런 기억과 기대를 가지고 몇 주 전 춘천 옥산포 164고지 능선으로 향했다.

[여우 고개 -옛날 여우가 나타나서 서당에 가는 학동들을 홀렸다는 고개. 운명의 6ㆍ25 날 7연대 1대대 장병들은 이 고개를 넘어가서 좌회전 한 뒤 진지에 투입하였다. 이 고개 우측 소양강변에 7연대와 16포병대대가 있었던 우두산이 있다.]



 아무 곳에서나 올라가도 된다는 안이한 생각으로 산에 붙었는데 중턱에서 두어번 미끌어지고 단념했다. 산의 사면은 낙엽이 쌓인 곳으로 발을 디디면 두부를 밟은 것처럼 밑으로 밀려 버렸다. 이대로 포기 해야 하는 난감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지나가는 한 주민이 알려 주어 남쪽 여우 고개 근처에서 희미한 등산길을 발견하고 산에 오를 수가 있었다. 164고지 능선은 아프리카 정글이 무색할만큼 우거진 숲으로 덮여 있었다. 산 아래 인간 세상의 소음은 모두 숲에 차단당하여 마치 고요한 터널 속을 혼자 걷는 듯했다. 서너시간을 능선에서 보냈지만 오가는 등산객 한 명 없었다.

 이 산이 과연 1951년의 6월 25일의 민둥산이었을까 하는 느낌마저 가져 보았다. 능선 좌우에는 나무가 우거져서 양 쪽을 내려다 볼 수가 없었다.

[아무 것도 안 보이는 길에서도 약간 산 아래 전망이 나오는 부분의 능선 길]



 그러나 능선에서 드디어 첫 참호를 만나 볼 수가 있었다. 그 참호는 서쪽의 옥산포가 아닌 반대편의 동쪽의 샘밭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나중에 옥산포에 공사한 참호들이 양쪽으로 침공할 경우를 대비해서 서쪽의 옥산포와 동쪽의 샘밭을 향해 능선 사면 양쪽에 참호를 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긴가민가 하면서 계속 능선을 타고 164고지 쪽을 향하여 걸어가자 드디어 능선을 따라 개인 참호들과 끊어졌다 이어졌다하는 교통호들도 드문드문 나타났다. 60년이란 긴 세월 잊혀졌던 춘천 군과 민들의 지성어린 손길로 구축해놓은 호국의 방어진지는 아직도 숲속에 그 생명을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발견한 개인호]



 표현하기 힘든 감동이 가슴을 벅차고 올라왔다. 개인호는 164고지로 갈수록 점점 더 온전하게 형태의 보존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높은 곳은 사람들의 출입이 뜸하다 보니 더 잘 보존되었다고 생각되었다.

 나는 일본식 가사가다의 참호 배치가 있나 찾아보았다. 좁은 능선의 좁은 부분에는 그런 여유가 없었지만 조금 여유가 있는 곳에는 가사가다의 형의 삼각형으로 구축한 참호들이 있었다.

[교통호 - 많이 메위져 있다.]



 이 장군은 참호가 교범대로 직사각형의 장방형으로 팠고 깊이는 각 병사의 가슴 높이였다고 말했다. 병사들이 참호 안에 앉으면 완전히 머리를 감추어 포사격에도 엄폐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개인호들은 모두 둥근 원형이었고, 깊이는 무릎 깊이 정도였다.

 주변의 벽이 조금씩 무너져서 호는 넓어지고 바닥은 쌓이는 흙에 의해서 얕아 진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안경 모양의 이중 호도 있었는데 이것은 말굽형으로 팠던 공용화기 호가 무너져서 그런 모양이 된 것이었다. 교통호는 무너진 현상이 더 해서 아주 낮아지고 좁아져있었다.

 세월의 노쇠함은 참호에게서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진짜 놀랄 일은 164고지에 올랐을 때였다. 주변이 숲으로 빽빽이 뒤 덮인 그 곳에 기념비가 서있었다.

 



164고지가 1950년 6월 26일 옥산포 침공 북한군을 파쇄한 국군 6사단 7연대 1대대 지휘소가 있던 곳을 기념하는 상징물이었다. 알고보니 춘천의 춘천 대첩 선양회라는 민간 단체가 춘천시와 2군단의 도움으로 세워놓은 것이었다.

 나는 164고지를 넘어 능선을 따라 앞으로 가다가 중간에 산의 샘 밭에서 능선의 안부(鞍部)를 가로질러 옥산포로 가는 옛 고갯길을 발견하고 그 오래된 길로 옥산포로 왔다. 그 고개에 성황당이 있어서 이채로웠다. 옥산포에는 두 번이나 왔었지만 다시 찾아가 보니 감회가 깊었다.

 소박한 초가집들이 있던 그곳은 현대식 건물들이 들어서 도시가 되어 있었다.

[옥산포 거리에서 보이는 164고지]



 옥산포 골목에서 파파 할머니를 만났다. 그 할머니는 전쟁 때 옥산포에 거주했다는 말을 해주었다.

 "북한군이 몰려 올 때 어떻게 하셨어요?"

 "공산당이 몰려오니 빨리 피난 가라고 해서 피난 갔어요."

 옥산포 공격 때 장병들이 옥산포 민간 가옥을 수색하여 숨어든 적병들을 모두 찾아내 섬멸했던 배경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때 옥산포 민가들이 다 비어 있어서 수색이 쉬웠다고  이 장군이 말했었다.

[옥산포의 뒷골목 - 나에게 북한 침공 당일 주민들이 피난을 떠났다는 말을 전해 주었던 할머니의 총총히 사라지는 뒷 모습]



 나는 춘천에서 돌아오자 여러 도움 말씀을 주신 이대용 장군에게 60년 전에 춘천의 학생들과 7연대 장병들이 파놓은 방어진지들이 아직도 164고지 능선에 많이 남아있다는 말씀을 드렸다. 그러면서 촬영을 위해 다시 한 번 가야 할지 모른다는 나의 계획도 말했었다.

 장군은 크게 놀랐다. 

 "나도 꼭 가보고 싶네! 다시 가보세!"

 87세의 연세에 산을 올라간다는 말인가! 더구나 다리까지 불편하신 분이! 나는 완곡하게 만류했다. 그러나 장군의 의지는 완강했다.

 "7연대 사람들도 부르세!"

 옥산포 돌격을 선두에서 이끈 이대용 장군은 최초로 압록강에 도착했던 북진 중대를 지휘했었던 지휘관이었다. 6사단 7연대는 매년 1950년 10월 26일 초산군 압록강 진격을 기념하는 기념식을 가진다.

 기념식에는 잊지 않고 참전 선배 노병들을 꼭 초대하기 때문에 이 장군은 7연대와 유대가 있다.

 "부르시려면 독도법 할 줄 아는 보병 중대장을 부르세요."

 장군이 산을 타다가 탈진하면 모시고 내려와야 하는데, 아무래도 힘께나 쓰는 젊은이가 낫겠다고 내심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의 예상을 깨고 7연대장 박 광덕 대령이 직접 오겠다는 말에 크게 놀랐다.

 나는 이 기회에 인적미답(人跡未踏)의 그 외진 164고지에 기념물을 세운 “춘천 대첩 선양회”도 같이 동행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 이 장군의 동의를 받고 이 단체에도 연락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창립한지 5년이 되었고, 회원들도 300명이나 되었다. 회장인 황 씨는 나의 전화에 큰 관심을 보였다. 

 "임원들과 함께 같이 꼭 같이 가겠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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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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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민하 2012.03.25 19: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방부 인트라넷에 있는 울프독님인가요? 항상 잘보고 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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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borrow money 2013.09.23 20: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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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Look for Cruz Blanca Salud 2014.03.29 18: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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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jeffrey killino 2014.05.08 14: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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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jeffrey killino 2014.05.08 14: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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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http://iphone5unlockinggood.com 2014.05.22 16: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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