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틀리스 작전(Operation Dauntless)

생생! 6·25/만화형 전쟁사 "우리가 겪은 6ㆍ25전쟁" 2013.07.17 16:02

돈틀리스 작전(Operation Dauntless)




▲ 고지 작전 중인 국군과 유엔군. (1951 4)



캔자스선을 확보한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의 대부대가 집결하여 공격을 준비하고 있는 평강-철원-김화를 연하는 삼각지대를 공격할 필요가 있었다. 이 지역에는 서울과 원산을 연결하는 도로망과 철도망이 위치하고 있었다. 서북쪽으로도 동서를 가로지르는 도로를 통해 시변리.사리원을 거쳐 평양으로 연결되는 교통망이 이 지역에 존재하였다. 한마디로 이곳은 적의 핵심적인 병참선이 통과하는 지역이었고 전방지역 일대에서 공산군의 병력 이동과 보급, 측면 공격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요충지였다.

 

러기드 작전으로 캔자스선을 확보한 후 중부지역에서 공격을 계속해 철의 삼각지대를 부분적으로 넘겨볼 수 있는 중부지역의 산악지대를 공략하는 것이 리지웨이가 구상한 작전의 큰틀이었다. 이에 따라 계획수립한 불굴작전’, 즉 돈틀리스 작전(Operation Dauntless)이라고 명명한 작전을 411일 개시하였다.

 

임진강-철원-김화-화천저수지까지 진격해 철의 삼각지대를 파고들어 가는 돈틀리스 작전의 목표 지점은 와이오밍선(Wyoming Line)이라고 불렀다. 철의 삼각지대(Iron triangle)’란 명칭은 당시 작전을 취재하던 기자들이 극적인 표현으로 이 삼각지역에 붙인 것이다.



▲ 작전에 사용된 포탄의 약협. (1951년 4월)



돈틀리스 작전이 진행 중이던 4 14일 밴 플리트 장군이 한국에 도착해 미 제8군사령관에 취임하였다. 밴 플리트 장군에게 미 제8군의 지휘권을 넘긴 리지웨이 장군은 일본 도쿄로 건너가 원래 맥아더 원수가 맡고 있던 미 극동군사령관 겸 유엔군사령관에 정식으로 취임하였다.

 

유엔군사령관이 된 리지웨이 장군은 14일 오후 5시 밴 플리트 장군에게 미 제8군과 유엔군 지상군 전부에 대한 지휘권을 넘기면서 와이오밍 선 이북으로 병력을 보낼 때는 반드시 자신의 승인을 받도록 지시하였다. 동시에 리지웨이 장군은 조이 제독이 지휘하는 극동 해군과 스트레트메이어 장군이 지휘하는 극동공군에 대해서도 전쟁을 확대하는 어떤 조치도 삼갈 것을 주지시켰다.

 

1951 4월 중순 밴 플리트 장군 취임 직후 돈틀리스 작전에 따라 북진을 계속하는 아군 앞에 갑자기 때 아닌 연기의 장막이 나타났다. 비가 간간이 내리고 안개까지 자주 끼는 상황에서 공산군은 잡초와 곤목을 불태워 전방지역 일대에 엄청난 연기를 뿜어댔다.




▲ 신임 미 제8군사령관 밴 플리트 장군.



연기가 얼마나 많은지 아군은 지상 관측은 물론 항공기를 이용한 관측에도 지장을 받았다. 보이는 것이 없었으므로 포격은 물론이고 항공 폭격까지 포기할 정도로 연기는 흑심하였다. 1950 10월 중공군이 청천강에서 최초로 공세를 감행할 때도 산에 불을 질러 연기를 이용한 장막을 친 전력이 있었다. 다시 말해 전방에 연기의 장막이 나타난 것은 공산군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고,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음을 알려 주는 불길한 신호였다.




 


▲ 산불을 일으켜 연기 속에 은폐한 상태로 공격하는 중공군.



적은 여전히 방어 지향적이었으나 중공군의 새로운 병단 규모 부대가 차례로 전선에 도착하고 있는 것도 공세 시작 가능성을 보여주는 불길한 조짐이었다. 1951 2 17일 이후 중공군은 후퇴를 거듭하고 있었지만 4월 중순을 넘어가면서 전선에는 불길한 긴장감이 팽팽하게 차오르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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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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