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의 북한 군정과 공산정권 수립

생생! 6·25/만화형 전쟁사 "우리가 겪은 6ㆍ25전쟁" 2013.10.25 11:04

소련의 북한 군정과 공산정권 수립

 

북한을 점령하고 군정을 실시한 소련은 남한을 점령한 미국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정책과 전략을 폈다. 미국의 원폭 투하로 일본의 붕괴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자 소련은 즉각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동시에 병력을 한반도에 진주시켰다. 38도선 이북에서 소련은 군정을 실시하면서, 1940년 여름에 창설된 소련 88정찰여단의 1대대장으로 근무한 김일성 대위 등 조선인 50명을 여단 해체와 동시에 1945 9월 북한에 입북시켜 지역별 인민위원회를 구성하는 핵심세력으로 삼았다.

 

소련은 이들로 하여금 지주들의 토지를 몰수하고 이를 농민들에게 분배해 주면서 공산사회에 대한 동경과 환상을 일반 대중에게 심어주도록 하였다. 이와 병행해서 소련군은 북한의 공산세력과 민족주의 세력을 포섭하는 노력을 기울여 소련군에 협조하는 동조자는 끌어들이고, 비협조자들은 남한 탈출을 방조하거나 구금하는 방법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사람들을 골라내는 작업을 서둘렀다.

 

소련군 당국은 북조선에 소비에트 질서를 수립할 생각이 아니고 조선을 일본의 지배로부터 완전히 해방하는 것, 그리고 민족자결의 통일국가를 수립하는 것에 그 진주 목적이 있다고 수차례 강조하였다. 그러나 현실은 그것과는 전혀 달리 북한을 계획대로 소련화해 갔다.

 

소련군은 일본군의 항복을 받고 무장해제를 실시하는 한편 38도선 요소요소에 진지를 구축하고 기관총을 설치한 후 남-북으로 오가는 통행인에 대한 검문검색을 강화하였으며, -북을 잇는 경의선-경원선 등 주요 철도와 도로를 끊는 등 교통과 통신을 차단하였다. 이렇게 장벽을 친 소련군은 군정을 효과적으로 실시하기 위해 인민위원회를 조직하기 시작하였다. 인민위원회는 일본으로부터 모든 국가 기관을 접수하여 행정권을 인수하였다.

 

소련은 인민위원회 위원장에 한국인을 기용하되 소련군 장교를 고문역에 임명하였다. 그리고 입북할 때 데려온 소련계 한인을 요직에 배치하였다. 따라서 이 조직은 겉으로는 북한이 자주적으로 운영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소련 군정 당국에 의해 지배되었다. 결국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인민위원회 조직은 민족진영 세력이 점차 배제되고 주로 소련계 공산주의자들이 장악해 갔다.

 

이러한 소련의 공작은 평양군중대회에서 소련군 대위 출신 김일성을 북한 주민 앞에 내세움으로써 절정에 달하였다. 김일성은 이때부터 소련의 충실한 하수인이 되어 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하였다. 소련은 김일성을 북조선 공산당 책임비서에 앉힘으로써 북한 공산당의 제1인자로 만들어 주었다.

 



^ 평양시민 환영 군중대회에서 최초로 나타낸 김일성

 

1948 2 8일 소련은 조선인민군을 창설한 데 이어 그해 9 9일 북한 전역에서 소련식 흑백선거’’ 를 실시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함과 동시에 김일성을 초대 내각수상으로 앉혔다.

 

그리고 소련은 북한정권에 대한 군사적 원조를 본격적으로 강화하면서 북한군 훈련에 주력하였다.

 

이렇듯 북한에 공산 기반을 닦아 놓고 군사력도 남한에 비해 충분히 육성한 소련은 이후 “1948 12월 말까지 소련군을 완전히 철수할 것이라고 발표하면서 주한미군도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소련군은 철수하면서 북한군에 장비를 넘겨주고, 1948 9월 이후 북한군을 4개 사단으로 늘리고 전차대대와 항공연대를 증편하였다.

  

이처럼 소련 점령군의 장비를 인수하고 중공과 소련의 군사지원을 받은 북한은 금속히 군사력을 확장해 나갔다.

 

소련은 철수와 함께 과거 중대급까지 파견하던 군사고문단을 대대급까지만 유지함으로써 그 수를 대폭 축소하긴 했으나, 그 대신 장성 5명을 포함한 특별군사사절단을 남겨서 북한군의 전력증강을 지도하였다.

 



^ 평양음악학교 학생들이 김일성과 스탈린의 초상화를 들고 북한 인민위원회 선거 경축대행진을 하고 있다

(북한도 그때까지는 태극기를 국기로 쓰고 있었다. 1946 11 3)

 

 

남북한에서 미-소 양군의 동시 철군에 대한 보장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련군이 철수를 감행한 이유는 북한에 이미 친소정권이 수립되고, 강력한 군대가 있으므로 소련이 철수하더라도 북한에 대한 소련의 통제가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평양공설운동장에서 열린 평양 김일성 장군 환영대회장의 모습 (광복 후 1945 10 14)

 

 

이리하여 한민족에게는 광복과 함께 단일국가를 건설할 기회가 주어지는 듯했으나 한반도에 위성국가를 건설하려는 소련의 팽창정책으로 북한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공산정권이 수립되어 민족과 국토의 분단이 고정화 되었고, 전쟁의 불씨는 점점 더 크게 번져가고 있었다.



 

^ 소련군의 입성을 환호하는 북한 주민들. (1945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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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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