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불씨 : 38도선과 남북 분단

생생! 6·25/만화형 전쟁사 "우리가 겪은 6ㆍ25전쟁" 2013.10.28 15:05

전쟁의 불씨 : 38도선과 남북 분단

 

1945년 초 독일이 항복한 후 연합국은 일본의 항복을 유도하기 위해 모든 힘을 기울였다. 일본이 연합국의 무조건 항복 요구를 받아 들이지 않으므로 미국은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기 위해 8 6일과 9일에 일본 본토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각각 원폭을 투하했으며, 소련도 8 9일 선전포고와 함께 일본과의 전쟁에 뛰어들었다.

 

연합국의 총공세에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 일본은 1945 8 10일 무조건 항복 의사를 표시하였다. 일본의 항복은 그동안 원폭을 투하하고 일본 본토 진격까지 준비하고 있던 미국으로서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일본에 선전포고를 한 소련의 군대가 급속히 한반도에 접근하고 있었으므로 한반도 문제에 대해 신속할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때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은 한반도에서 군사작전을 실시하겠다는 종래의 계획을 바꾸어 일본군 무장해제와 군사적 점령이라는 전략을 추구하기 위해 한반도에서 미군과 소련군으 ㅣ작전경계선을 신속히 설정하기로 하였으며, 1945 8 11일국무부 육군부 해군부의 3부조정위원회가 그 임무를 수행하였다.

 




^ 나가사키 원폭투하 장면

 

실무를 담당한 찰스 본스틸(Charles H. Bonsteel) 대령과 딘러스크(National Geographic) 대령은 이날 새벽 [내셔널 지오그래픽 (National Geographic)] 지의 1942년판 지도를 보고 한반도에서의 미-소 작전담당 구역의 분할선을 북위 38도선으로 정하기로하였다. 이 시기에 소련군은 이미 북한의 동북부를 폭격하고 있는데 반해, 미군은 1,000km 떨어진 일본의 오키나와에 있었다. 그들은 만일 소련이 자신들의 안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미국은 이 선까지도 확보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렇지만 이 선은 미국이 현실적으로 진주할 수 있는 가장 북쪽에 있는 선으로서 한반도를 대략 반으로 나누고, 무엇보다 그 지역 내에 서울-부산-인천 등 주요 도시가 포함되어 있었다.

 



^ 항복 접수도 : 이 선은 미국이 현실적으로 진주할 수 있는 가장 북쪽에 있는 선으로서 한반도를 대략 반으로 나누고

무엇보다 그 지역 내에 서을, 부산, 인천 등 주요 도시가 포함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이 선은 일본의 항복을 받는 선을 최대한 북상시키려는 희망과 소련이 미국의 안을 수용할 것인가의 현실 사이에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안이었다.

 

한반도에서의 작전지역 분할은 이 시기 이전에도 검토된 적이 있었다. 우선 미- 3개국의 포츠담회담(1645 7)에서 해리 트루먼(Harry S. Truman) 대통령을 수행한 관리들이 소련이 일본과의 전쟁에 참가하는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한반도의 육상분계선을 고려한적 있다. 1945년 여름에 작성한 것으로 추측되는 미국의 합동전쟁계획서의 비밀보고서에도 언급되어 있다. 이를 통해 판단할 때 미국은 한반도 문제에 소련이 참여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었으며, 일본이 갑자기 항복할 경우 소련이 한반도 전체를 점령하려고 시도할 것으로 판단하여 우선 그 절반만이라도 확보하기 위해 38도선을 고려하게 된 것이다.


 

한편 작전한계선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지던 당시에 해군 측 대표는 요동반도의 여순과 대련을 포함할 수 있는 북위 39도선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이 선을 확보하기에는 미군이 한반도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곤란하다는 육군 측의 의견과 대련보다 한반도가 더 중요하다는 국무부 측의 의 견을 참작해서 3부조정위원회는 38도선을 극동에서의 작전한계선으로 결정하여 일반 명령을 작성하였다. 작성된 명령초안은 서울을 확보할 수 있고, 신탁통치시에 영국과 중국에 할애할 지역적 공간이 있다 는 논평을 곁들인 합동참모본부의 승인을 받은 후 국무-육군-해군 장관의 동의를 얻어 트루먼 대통령의 결재를 받았다. 이 명령은 8 15일 태평양지역 연합군 최고사령관 맥아더 (Douglas A. MacArthur) 장군에게 하달되었다. 동시에 더글라스 연합국의 동의를 얻기 위해 영국과 중국 정부, 그리고 소련의 스탈린에게 즉시 보내졌다. 다음날인 8 16일 스탈린은 명령초안에 대한 답신에서 극동의 작전한계선으로 제시된 북위 38도선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로써 38도선을 경계선으로 하여 그 이북에서는 소련군이, 그 이남에서는 미군이 일본군의 항복을 받는다는 방침이 양국 간에 확정되었다.

 

이어서 일본군이 어디에서 누구에게 항복할 것인가를 주 내용으로 하는 [일반명령] 1호가 작성되었으며, 9 2일 도쿄만의 미주리호 함상에서 항복문서 조인식이 있는 후 발표되었다. 요컨대 일반명령 제1호는 미국이 초안을 만들고 연합국의 동의를 받아 일본에 제시한 것이며, 대본영이 일본 국내를 비롯해 일본 지배하에 있는 모든 군대에 내린 명령이었다. 아울러 이 명령에 언급된 38도선은 단지 일본의 항복 접수와 무장해제를 위한 책임구역의 할당을 목적으로 선정된 것일 뿐이었다.


 

38도선과 관련된 일반명령 제1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국 대본영은 연합군 최고사령관에게 대한 항복의 결과로서 일본국 국내 및 국외에 있는 모든 지휘관에 대하여 적대행위를 즉시 정지하고 무장을 해제하며 현 위치에서 다음에 있는 모든 지휘관에 대하여 적대행위를 즉시 정지하고 무장을 해제하며 현 위치에서 다음에 지시하는 각 지휘관에 대하여 무조건 항복할 것을 명령한다.

 

1)    생략

2)    만주, 북위 38도선 이북의 한국, 사할린, 쿠릴열도에 있는 일본국의 선임지휘관과 모든 육군-해군-공군 및 보조부대는 소련 극동군사령관에게 항복하라.

3)    일본국과 일본국 본토에 인접한 모든 소도, 북위 38도선 이남의 한국, 유구열도 및 필리핀 제도에 있는 일본국의 선임지휘관과 모든 육군-해군-공군 및 보조부대는 미국 태평양 육군 최고 사령관에게 항복하라.

 

 

사실 미국 입장에서 38도선은 소련의 일본 군정 참여를 저지하기 위해 되도록 일본과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소련군의 진격을 멈추게 한다는 정치적 군사적 목적에서 설정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공산주의 시력의 남하를 일단 저지했다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38도선은 결국 한반도를 지리적으로 둘로 나누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소련이 북한을 점령하고, 미국이 남한을 점령하여 군정을 실시함으로써 한반도를 이념적으로도 둘로 나누어 놓고 말았다. 그리고 북한이 무력으로 남한을 점령하기 위해 전쟁계획을 수립함으로써 38도선에 의한 남북분단은 결과적으로 전쟁의 불씨가 되어 타들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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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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