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 (웨이크섬 회담과 총공격 명령)

생생! 6·25/만화형 전쟁사 "우리가 겪은 6ㆍ25전쟁" 2013.11.08 14:34

중국은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 (웨이크섬 회담과 총공격 명령)

 

미국은 6.25전쟁에 개입하면서부터 북한의 우방적인 소련과 중국의 정치군사적인 반응을 면밀히 주시하였다사실 38도선을 돌파해 북진을 하기로 결정하기 전에는 중-소의 전쟁개입 가능성특히 소련의 지원 아래 중국이 개입할 가능성을 판단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경주하였다그러나 경이적인 인천상륙작전 성공 후에는 중국의 개입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안일한 분위기에 젖어들었다.

 

마오쩌둥과 스탈린.

 

중공군 개입 가능성에 대한 예측과 판단

유엔군사령부가 중공군의 북한 투입 가능성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는 것은 무척 힘들었다병력과 물자의 이동상황이나 보급 등에서 나타난 점으로 추정할 수 있었으나 그것만으로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는 어려웠다.

 

한반도의 사태와 관련해 중국 측의 대미 경고가 격화되기 시작한 것은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에 접근하고 있던 9월 말께였다그러나 전세가 호전되어 감에 따라 고조되어 가는 낙관적인 분위기속에서 미 정책당국은 중국 측의 경고와 군사개입 가능성을 단순한 위협 정도로 간주하였다.

 

트루먼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으 정책수립자들이 맥아더 장군과 더불어 중국의 개입 의도와 능력을 경시하는 가운데 북한의 조기 점령을 낙관하였다는 사실은 1950 10 15일 트루먼 대통령의 지시로 태평양상의 웨이크섬(Wake Island)’ 에서 이루어진 만남에서도 여실이 드러났다원래는 트루먼 대통령이 맥아더 장군으 본토 귀한을 지시하였으나맥아더 장군이 전쟁지휘로 인해 장시간 전장을 떠날 수 없다는 뜻을 밝힘에 따라 이를 존중하여 결정된 만남이었다.



웨이크섬에서 만난 트루먼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


그날의 만남에서 트루먼 대통령은 전쟁의 전망과 중공군의 개입가능성에 관해 질문하였고 맥아더 장군은 전쟁의 전망에 대해 북한군의 조직적으로 저항은 추수감사절.때면 끝날 것이며크리스마스 이전까지 미 제8군을 일본으로 되돌려 보내는 것이 희망사항이다 라고 말하였다또한 중공군의 개입 가능성에 대해 중공군은 개입시기를 상실하였고설렁 중공군의 일부가 압록강을 넘어 침입하더라도 그들은 공군의 지원이 매우 빈약하므로 유엔군의 막강한 공군력으로 최대의 살육전을 펼칠 것이다라고 장담하면서전쟁의 조기 종식과 더불어 미군의 조기 철수가 가능함을 확인하였다트루먼 대통령은 맥아더 장군의 낙관적인 언급에 별다른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생포된 중공군 포로의 모습

 

중공군 개입 가능성을 잘못 판단한 배경

중공군이 실제로 북한에 들어온 시기는 19월 중순이었으며그들이 아군에 의해 전장에서 발견된 시기는 10월 말이었다그러나 중공군이 발견된 후에도 유엔군사령부는 중국이 전쟁에 개입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이처럼 미국이나 유엔군사령부가 중국의 개입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원인으로는 크게 다음 네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1949 10 1일에 정권을 수립한 신생 중국은 정치적-경제적으로 매우 취약하므로 북한에 대한 군사적 개입은 불가능할 것이다.

 


유엔군의 한-만 국경선을 향한 북진작전계획



둘째중국의 대미 경고는 유엔 가입을  위한 외교적 위협 또는 정치적 공갈 정도의 협박에 불과하다.

 

셋째만약에 중국이 개입할 의사가 있었다면 낙동강선이나 인천상륙작전 시에 개입을 결심하였을 것이다.

 

넷째소련이 미국을 의식하여 중국에 해-공군의 지원을 하지 않을 것이며따라서 공군의 지원이 없는 중공군은 유엔군의 막강한 공군력과 화력에 의해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압록강을 넘을 준비를 하고 있는 중공군.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을 개시하자 중국의 총리 저우언라이(오른쪽)는

중국 주재 인도대사를 통해 개입 가능성을 시시하였다.

 

유엔군의 총공격 명령

맥아더 장군은 중공군은 개입하지 않을 것이며전쟁은 머지 않아 종결될 것이라는 판단 아래 당시 유리하게 전개되는 상황에 기초하여 평양탈환 후 저용될 유엔군사령부 작전명령 제4(1950 10월 17)를 하달하였다이 명령에서 맥아더 장군은 유엔군의 북진한계선을 보다 북상시켜 한-만 국경선으로부터 남쪽으로 48~64km 떨어진 지점을 연결하는 선천-고인동-평원-풍산-성진을 연하는 선(일명 신맥아더라인)으로 이동시켰다.

 

이후 순조로운 진격으로 서부전선에서 미 제8군의 주력이 청천강을 도하하고 동부전선에서는 미 제10군단의 원산상륙이 임박해지고 있을 때 맥아더 장군은 10 24일 미 제8군사령관과 미 제10군 단장에게 휘하이 전 부대를 동원하여 최대한의 속도로 국경선까지 진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그리고 1주일 전(10 17)에 설정한 북진한계선도 단순한 최초 목표에 불과하며국군만이 그 목표선 북방에서 작전할 수 있다는 제한 역시 적이 항복 할 경우만 의미가 있는 것이지 항복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처럼 제한없는 총공격 명령에 유엔군 병사들은 머지않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들뜨게 되었다국군 병사들도 조국통일의 부푼 꿈을 안고 압록강을 향해 맹진격을 하였다그러나 중공군이라는 새로운 덫이 깔려 있는지 그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고 한 발 한 발 그 덫에 다가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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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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