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 물을 수통에 담다 (국경선으로의 진격)

생생! 6·25/만화형 전쟁사 "우리가 겪은 6ㆍ25전쟁" 2013.11.28 14:13

압록강 물을 수통에 담다 (국경선으로의 진격)

 

1950 10월 하순 북한의 수도 평양을 탈환한 유엔군 지휘관들은 마치 전쟁이 끝난 것처럼 기쁨에 들떠 있었다. 미 육군부와 도쿄의 유엔사령부는 한반도 전쟁에 참가한 미 제2사단을 유럽으로 전환할 계획까지 준비하고 있었다. 심지어 미 제8군 사령관 워커 장군은 한국에 반입될 모든 탄약을 앞으로는 일본 보급창으로 전환시켜 줄 것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유엔군의 추수감사절 공세

10 24일 미군의 총공격 명령은 늦어도 추수감사절 (1950 11 23)까지는 전쟁을 끝내겠다는 의미로 추수감사절 공세라고 불렀다. 이에 북진작전을 수행하고 있던 각급 부대는 일제히 압록강과 두만강을 향한 진격에 더욱 매진하게 되었다.

 


평양탈환 환영대회에서 환호하는 시민.



그 무렵 뉴욕 타임스의 사설은 - 만 국경에서 불의의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이 전쟁의 승리는 약속되어 있다.” 고 언급하였다.

 

 

통일의 부푼 꿈을 안고

평양을 우회하여 순천에 진출한 국군 제2군단은 10 21일 오전 6시 국군 제6사단 제7연대를 선두로 개천을 향해 공격을 개시하였다. 파죽지세로 공격하는 국군 앞에 북한군은 부상자와 낙오병을 버리고 도주할 뿐만 아니라 주요 장비를 파괴하지 않은 채 대로상에 유기하였으며, 심지어 식사를 준비해 놓고도 정신 없이 달아났다. 거리 이곳 저곳에 붙은 강계로 집결하라는 다급한 벽보가 그 실상을 말해 주었고, 북한정권 간부들의 가족인 것 같은 부녀자와 어린이들이 노변 수수밭에서 울음을 터뜨리며 살려 달라고 애걸하였다. 그러나 연대가 당일 중으로 개천에 진출하기에는 시간이 빠듯하였다.

 


압록강과 두만강오르의 진격상황도

 


이때 제3대대장(중령 인성관)은 패주하고 있는 북한군의 중앙을 돌진하여 개천으로 직행하고, 만일 적이 사격하지 않으면 사격하지 말고 무조건 전진하라고 지시하였다. 이에 따라 제3대대는 북한군을 향해 전쟁은 끝났다. 총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가라고 외치며, 북한군 사이로 과감하게 돌진하였다. 이러한 위세에 눌린 북한군은 대부분 총을 버리고 도주하였다. 이로 인해 제3대대는 한 차례의 총격전도 없이 개천을 무혈점령할 수 있었다.

 


북진 중 찾아낸 김일성과 스탈린의 초상화를 들고 환호하는 유엔군 병사.

 

오후 9 30분경, 국군의 개천점령 사실을 모른 채 보급품을 가득 싣고, 전차까지 적재한 북한군의 열차가 북상하고 있었다. 이들을 향해 국군이 사격을 가하자 기관사와 호송병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쳐버렸다. 당시 국군 병사들은 하계 복장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노획한 북한군의 복장을 착용하였고, 이 때문에 적과 아군을 구분하기 곤란할 정도였다. 그러나 땀에 찌들고 다 해진 여름 군복을 그대로 입고 있으라고 강요할 수 없어 누구도 이를 통제하지 않았다. 그 후 개천에 도착한 국군 제6사단 후속부대에서도 이러한 상황이 벌어져 국군 제6사단은 북한군으로부터 보급을 받는다는 일화를 남기기도 하였다.

 



청천강을 도하하는 국군과 유엔군,



최근의 청천강의 모습

 


3대대가 개천을 점령하자 연대장 임부택 대령은 제1대대로 하여금 제3대대를 초월하여 희천을 탈환하라고 명령하였다. 얼마 후 대대는 청천강 도하지점에 이르렀다. 이곳에는 교량이 있었으나 폭격으로 파괴되어 수심이 얕은 하류를 택해 도섭하는데, 이곳을 통과하던 북한 고급관리 및 인민군 차량이 미 공군의 폭격으로 강물 속에서 파괴되어 통로가 막혀 있었다. 거기에는 고급승용차 22대를 비롯하여 일산 트럭과 미군 트럭 등 100여 대의 차량이 즐비하게 버려져 있었다. 이 노획 차량 가운데 승용차는 일반 시중에서는 보기 드문 고급 세단이었다.

 

청천강 도하지점에서 북한군이 버리고 간 차량을 노획하여 전 부대가 차량화가 된 국군 제 7연대 제1대대는 북한군 제18사단의 일부 패잔병과 교전 끝에 10 23일 희천을 점령하였다.

 



당시 노획한 승용차(항공우주박물관 소장)



국군을 환영하는 청천강변 화천의 주민들


 

이 무렵 연대본부에는 태천 부근에 중공구니 출현하였다는 소문이 들어왔고, 이 지방 주민들의 동요가 있는 듯 보였으나 연대장은 이를 공산분자 들의 역선전으로 일축하고 오직 국경선으로의 진격을 위한 만반의 태세를 갖추었다.

 

7연대는 10 26일 오전 7시에 압록강을 향해 진격을 개시하였다. 첫눈이 내려 산하가 하얗게 뒤덮인 가운데 차량에 탑승한 제7연대 제1대대가 초산을 향해 질주하였다. 초산 남쪽 6km 지점에서 돌입하였다. 그러나 시가지는 텅 비어 있었고 압록강은 보이지 않았다. 초산읍에서 압록강까지는 6km를 더 가야 하였다. 대대는 국경선을 향해 신속히 이동하였다. 신도장 일명 양토동 고갯마루에 올라서자 압록강의 푸른 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압록강이다!” 너나없이 환성이 터져 나왔다. 10 26일 오후 2 15분 국군 제6사단은 드디어 꿈에 그리던 압록강에 다다라 강변에 태극기를 꽂고 수통에 압록강의 푸른 물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패주하는 북한군의 모습 뒤로 아직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 중공군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 새로운 적과 또 다른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것을 그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채 그들이 파 놓은 함정에 한 발 한 발 다가서고 있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LG Innotek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