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주

생생! 6·25/만화형 전쟁사 "우리가 겪은 6ㆍ25전쟁" 2013.12.02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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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6전쟁 때 국군은 130만여 명이 참전해 62만여 명의 손실을 입었다. 또 학도의 용군을 비롯해 많은 무명용사가 조국을 위해 장렬히 산화했는가 하면 고급 장교들도 조국 수호와 통일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쳤다.






채병덕 장군김백일 장군




이용문 장군, 밤범집 장군,




 

채병덕 육군 소장, 김백일 육군 소장, 이용문 육군 준장, 박범집 공군 준장은 장군 신분으로 전사해 1계급씩 추서됐다.

 

함준호(연대장), 김현수(육군 보도과자), 이상근(수도사단 참모장), 권태순(연대장), 박노규(연대장), 안병범(청년방위대 수도방위 고문단장), 김용배(연대장), 전성호(장사동상륙작전 시 전략 고문), 권동찬(연대장), 이근석(비행단장), 김영환(비행단장) 등은 계급으로 전사해 장군으로 추서됐다.

 

625전쟁 때 군이 불리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싸울 수 있던 힘은 광복 5, 건국 2년도 안 돼 나라를 다시 잃어서는 안 된다는 반공에 기초한 애국심에서 우러나왔다.

 

이의 중심에서 장교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 부자, 장인과 사위, 형제, 처남과 매부, 동서로 맺어진 장교들의 역할이 돋보였다.

 

부자지간으로 김기원(육군 준장 예편) 장군과 김정렬(공군 준장 예편 공군 총참모장 역임) 장군 및 김영환(공군 준장 추서) 장군, 이응준(육군 중장 예편 육군 총참모장 역임) 장군과 이창선(육군대령), 신태영(육군 중장 예편 육군 총참모장 국방부장관 역임) 장군과 신응균(육군 중장 예편) 장군, 유승열(육군 소장 예편) 장군과 유재흥(융군 중장 예편 국방부장관 역임) 장군, 김석원(육군소장 예편) 장군과 김영국(육군 소령 예편), 원용덕(육군 중장 예편 헌병 총사령관 역임) 장군과 원창희(육군 중장 예편) 장군, 안병범(육군 대령 자결 육군 준장 추서) 장군과 안광호(육군 중장 예편) 장군이 있다.

 




김정렬 장군과 김영환 장군




신태영 장군과 신응균 장군




유승열 장군과 유제홍 장군 그리고 원용덕 장군






장인과 사위로는 이응준 장군과 이형근(육군 대장 예편 육군 총참모장 역임) 장군, 백홍석(육군 소장 예편) 장군과 채병덕 장군이 있다.

 

형제로는 백선역(육군 대장 예편 육군 총참모장 역임) 장군과 백인엽(육군 중장 예편 군단장 역임) 장군, 이형근 장군과 이상근(육군 준장 추서) 장군, 김계원(육군 대장 예편 육군 참모총장 역임) 장군과 김계일(육군 소장 예편) 장군, 강문봉(육군 중장 예편 2군사령관 역임) 장군과 강태봉(육군 대령 예편), 박영석(육군 준장 예편) 장군과 박경석(육군 준장 예편) 장군이 있다.





이형근 장군


 

처남과 매부롯는 김응수(육군 소장 예편 - 6군단장 역임) 장군과 강영훈(육군 중장 예편 육사교장 역임) 장군, 김용배(육군 대장 예편 육군 참모총장 역임) 장군과 김종면(육군 준장 예편) 장군이 있다. 이외에도 알려지지 않은 많은 명문가들이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하였다.

 

한편 6,25전쟁은 미국의 전쟁이라고 할 만큼 178 9,000여명이 참전해 많은 피를 흘렸다. 미군은 전사 3 6,940, 부상 9 2,134명 등 13 7,250명의 피해를 입었다. 여기에는 미국 최고 명문대학인 하버드대학교 학생 20여 명도 포함돼 있다.

 

이는 미국이 참전한 4개 전쟁의 전-사상자 비율과 비교할 때 가장 높다. 미군은 한국전에서 9명 중 1, 2차 세계대전 때에는 13명 중 1, 월남전에선 17명 중 1, 걸프전에선 5,000명 중 1명이 피해를 입었다.

 

특히 625전쟁 때 미군 장군의 아들이 많이 참전하였고, 고급 지휘관이 희생되었다. 아이젠하워 원수를 비롯하여 장군의 아들 142명이 참전, 그 가운데 35명이 피해를 입었다.

 

여기에는 유엔군사령관 클라크 장군, 미 제8군사령관 웤커 장군과 밴 플리트 장군, 미 해병항공사단 해리스 장군의 아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 가운데 공군 중위로 전략폭격기 조종사였던 밴 플리트 장군의 아들은 작전임무 수행 중 실종됐고,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의 아들은 보병중대장으로 중상을 입고 입송됐으며, 미 해병항공사단장인 아들 해리스 소령은 해병대대장으로 장진호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밴 플리트 장군과 그의 아들


 

고급 지휘관 중 마틴 미 제34연대장은 천안전투에서 전사하였고, 워커 미 제 8군사령관(교통사고)과 무어 미 제9군단장(헬기 사고)은 사고로 순직하였다. 미 제24사단장 딘 소장은 대전전투 당시 실종 되기도 하였다.

 

이렇듯 625전쟁 때 한국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강한 애국심과 반공에 기초한 국가 수호 정신, 미국에서는 자유민주주의 시민사회의 사회적 지위에 걸맞은 도덕적 의무로 나타났다





무어 장군 추모비 (경기도 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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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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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Venapro review 2013.12.09 18: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쟁에서 달성하지 못한 군사목표를 이루겠다는 흑심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회담은 결렬되고 중단되는 사태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2. 이강수 2013.12.16 09: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용상 오류에 대한 지적으로 단 댓글 지우지 마시고, 내용을 수정하세요...
    626 전쟁이 아니라 625전쟁이고, 백선역 장군이 아니라 백선엽장군이고 띄워쓰기 에도 신경을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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