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적, 그들은 누구인가?

생생! 6·25/만화형 전쟁사 "우리가 겪은 6ㆍ25전쟁" 2013.12.13 15:04

새로운 적, 그들은 누구인가?

 

인민지원군의(人民志願軍)의 실체

중국이‘인민지원군’으로 불렀던 군대는 사실상 중국의 정규군, 즉‘인민해방군’의 일부였다(이 책에서는 중국이 사용한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공간사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는‘중공군’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한국에 투입된 중공군은 동북변방군이 주축이었으며 참전경험이 많은 정규군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지휘부도 마오쩌둥의 명령에 의해 총사령관에 펑더화이, 부사령관에 덩화(鄧華)·홍쉬에쯔(洪學智)·한시엔추(韓先楚), 참모장에 셰방(解方)이 임명되었다. 중공군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중공군, 북한군 지휘부

 

 

중공군의 신문과 잡지: 그들은 의도적으로 지원군이라는 제호를 강조하였다.

 

 

 

중공군의 편제는 사--병단-야전군으로 되어 있는데 당시 유엔군의 편제와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중공군의 편제 비교

유엔군

사단

군단

야전군

집단군

중공군

병단

야전군

 

중국은 그들이 파병한 군대를‘지원군(支援軍)’이라 하지 않고 인민이 자원해서 이루어진‘지원군(志願軍)’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중국 인민이 조선 인민을 돕는 민간 차원의 군대라고 위장하려 하였기 때문이었다. 이 같은 명칭은 한동안 유엔군 측을 혼란스럽게 하였고, 중공군의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게 만드는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중공군의 전략·전술

중공군은 과거 국부군[장제스(蔣介石)의 정부군]과 국·공내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전력은 온전하게 보전하면서 국부군의 전력을 최대한 소모시키기 위해 ‘거보적(巨步的) 전진·후퇴’를 반복하는‘운동전(運動戰: 기동전)’전략을 적용하였다. 그러나 중공군 지휘부는 기동공간이 좁은 한반도에서는 그러한 전쟁수행방법이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따라‘분리와 소멸’이라는 개념하에 진지전(지역방어)과 운동전(기동전)을 배합한 작전을 수행한다는 방침을 세운 중공군은 상황에 따라 역습·기습·매복으로‘적’의 유생역량(병력)을 소멸하는 전술을 구사하였다.

 

 

 

 

피리와 나팔을 불며 공격하는 중공군

 

 

산악지역에 편성한 중공군의 포병부대

 


 

중공군의 인해전술

 

 

중공군은 그 같은 개념에 입각해 먼저 국군의 방어지역을 돌파·소멸한 후 미군의 측방을 노출시켜 그 퇴로를 차단·포위함으로써 소멸시키는‘분리와 소멸’이라는 개념을 기본으로 작전을 수행하였다.

 

그 같은 전술에 의해 중공군은 방어에 유리하고 유엔군이 공격하기 어려운 산악지역에 진지를 구축한 뒤 은밀하게 숨어 적이 통과하기를 기다렸다가 유엔군의 측방과 후방을 포위·공격하였다.

 

또한 그들은 피리·나팔, 꽹과리 같은 도구를 이용하며, 협소한 정면에 압도적인 병력을 투입해 밀집대형으로 전진하는 이른바‘인해전술(人海戰術)’과 유엔군의 집중 화력과 공중공격을 피해 야간에 공격을 감행함으로써 화력의 열세를 극복하고 최대의 전과를 거두려 하였다. 그 같은 중공군의 전략·전술은 초기전투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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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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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bout us 2013.12.17 16: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방어지역을 돌파·소멸한 후 미군의 측방어지역을 돌파·소멸한 후 미군의 측방어지역을 돌파·소멸한 후 미군의 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