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협상의 배경

 

6·25전쟁에서 휴전협상은 전쟁발발 후 1년이 지난 1951 6월을 전후하여 제기되었으며, 그 후 7 10일 쌍방 협상대표들은 개성에서 만나 최초 회담을 개최하였다.’

 

 



1951 7 10, 휴전회담을 위해 개성으로 출발하기 전 헬리콥터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한 유엔 측 대표들, 왼쪽부터 버크 제독, 크레이지 공군 소장, 백선엽 소장, 조이 수석대표(해군 중장)와 대표들을 전송하기 위해 나온 유엔군 사령관 리지웨이 대장, 호디스 육군 소장.

 

쌍방의 휴전협상 제의 과정

6·25전쟁은 북한의 김일성 공산정권이 소련과 중공의 지원하에 전 한반도를 공산화한다는 목표로 1950 6 25일 남침을 자행함으로써 발발하였다.

 

이에 한국을 지원하여 자유진영의 유엔군이 참전하고, 뒤따라 공산진영의 중공과 소련(공군)이 북한을 지원하여 직접 개입하였다. 따라서 이 전쟁은 남한과 북한의 전쟁으로부터 국제적 성격의 전쟁으로 비화되었다.

 

한편 양측은 군사적으로 격돌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 전쟁이 세계전쟁으로 비화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북한의 남침 직후에는 주로 유엔의 주도 아래 평화의 회복을 위한 노력이 이루어졌다. 유엔은 한반도 문제를 전쟁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는 선에서 전쟁을 중단시키려 여러 차례 시도하였지만 공산군의 반대로 유엔의 제안은 번번이 무산되고 말았다.

 

먼저, 1950 6 25북한이 남침을 자행하자 유엔은 결의를 통해 북한이 침략을 중지하고 즉각 38도선 이북으로 철수할 것을 요구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이후 중공군이 개입한 1950 12월에는 유엔총회가‘정전 3인위원회’를 설치하여 중공에 대해 38도선 이남으로 침공하지 않도록 요구하는 등 한반도에서 평화를 회복하려 노력하였다.

 

 

 


정전위원회는 평회회복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반면 공산군은 195010월 초 북한군이 유엔군의 반격에 의해 패주할 때 38도선에서 휴전을 하자고 제의하였다. 그러나 이 제의는 ‘외국군 즉각 철수’등의 불합리한 조건을 달고 있어 유엔군 측이 수용할 수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공산군의 제의는 유엔군의 38도선 돌파를 지연시키며 이미 출병을 결정한 중공군의 참전 준비에 시간을 벌고자 하는 위장 평화제의였기 때문에 더욱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마오쩌둥의 파병결정에 따라 참전준비를 마친 중공군.

 

해가 바뀌어 1951년 초에 접어들어서도 유엔의 평화회복 노력은 계속되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3월 하순 유엔군이 38도선을 회복할 무렵 유엔군사령관 맥아더 장군이 직접 공산군사령관 펑더화이에게 휴전회담을 제의하였으나 이 제의 역시 묵살되었다. 이는 상대방이 그때마다 힘으로 전쟁목표를 달성하려는 정책을 계속 추구 한데 기인하였다.

 

전선 교착과 휴전협상

쌍방은 1951 45, 이른바 중공군의 춘계공세에서 개전 이후 최대의 결전을 치렀다. 여기에서 피아 모두 최악의 인명손실을 입은 후에야 무력으로 승리를 쟁취하려는 정책을 포기하고 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데 양측 모두 어느 정도 공감하게 되었다.

 

이 무렵 미국이 주도한 미·소의 막후 접촉에서 소련이“전쟁 전 현상에서 휴전으로 평화를 회복한다”는 데 호응해 옴으로써 마침내 휴전협상의 장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휴전을 제의하고 있는 유엔 주재 소련대표 말리크의 1951 6 23일 유엔 라디오 장면.

 

그러나 협상이 성사되기까지 힘에 의한 타결 시도가 몇 차례 더 반복되었고, 그 중에는 ‘국지적 제한 전쟁이냐 또는 확전이냐’라는 기로에까지 이른 경우도 있었다. 이 시기에 남북한은 총력전을 펼쳤고, 동서 양 진영도 동원할 수 있는 최대 역량을 투입하였다. 이 과정에서 공산군 측은 한반도의 공산화를, 유엔군 측은 침략자를 응징하고 자유를 수호하며 평화를 회복하기 위해 피를 흘렸다.

 

유엔군의 반격작전이 끝난 1951 6, 전선은 또다시 38도선 부근으로 회귀하였고 그 후 교착 상황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 무렵 중공군은 춘계공세에서의 실패와 유엔군의 반격작전으로 재기불능의 손실을 입어 더 이상의 공세가 거의 불가한 상황이었다.

 


 

휴전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도 치열한 공방전은 계속되었다.

 

1년간의 전쟁을 통해 공산군 측은 그들의 힘으로 전 한반도를 통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유엔군 측으로서도 힘에 의한 응징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전쟁을 사실상 주도한 소련과 미국은 각각 한반도에서의 전략적 이익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상대의 의도를 확인하였고, 이로써 이 지역에서 냉전구조의 균형을 파괴할 수 없다는 현실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공동의 인식하에 쌍방은 기존 정책과는 달리 전쟁을 협상을 통해 해결하기 위해 교착된 전선에서 휴전을 모색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유엔군 측에서는 유엔의 역할을 대행하고 있는 미국이 전쟁 이전 상황에서의 휴전정책을 확정한 데 이어 공산국 측에서도 소련이 중심이 되어 1951 6 13일 모스크바 조·중·소 회담에서38도선의 경계선을 복구하는 조건에서 휴전이 유익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양측의 협상목표와 전력증강

양측의 협상 목적과 목표는 각기 달랐다. 유엔군 측은 군사협상을 통해 일단 휴전한 다음 유엔기구를 통해 정치적 수단에 의한 통일 민주 독립국가를 수립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었다.

 

 

 1951 7 8일 휴전회담을 위한 예비접촉을 벌인 개성의 광문동 민가.

 

 

 

예비접촉 당시의 모습.

 

 

 

휴전 예비 회담시 북한군과 중공군.

 


 

반면 공산군도 전선이 교착된 6월부터 방어태세를 취하면서 지상군의 정비와 공군력의 전개를 통해 전력을 회복한 다음 8월 이후에 공세로 전환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었고, 이 기간 중에 휴전회담을 추진한 것은 그러한 여건을 마련하기에 상당히 좋은 기회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1951 7 10일 지프에 백기를 달고 회담장에 들어서는 유엔군 측 대표단. 백기를 다는 것이 합의사항이었지만 공산군 측의 유엔군 측을 항복사절로 선전했다.

 

 

 

1951 7 8일 첫 접촉에 나선 유엔군 측 대표단.

왼쪽은 이수영 중령, 오른쪽은 키니 대령.

 

 

 


휴전회담 첫 날의 모습.

  



이때 병력 면에서는 공산군이 2:1로 우세하였지만 화력이나 해·공군 전력 면에서는 유엔군이 단연 압도적이었다. 이처럼 1년 동안의 격전 끝에 대치한 양측은 휴전에 대비해 방어선을 강화하고 부대의 재편성·재배치를 통해 전력을 재정비하면서 휴전회담의 진전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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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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