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군민(軍民)이 만든 6ㆍ25 진지, 아직도 남아있다!(3/3)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1.12.06 08:43

 11월 19일 토요일 11시, 나는 164고지로 올라가는 등산로 입구가 있는 신북면 천전 초등학교에서 아드님의 차를 타고 온 이 장군과 만났다. 이어서 철원군 갈말읍 문혜리에서 먼 길을 온 박상국 대령과 인사과장 송동섭 대위가 도착했고, 이어서 춘천 대첩 선양회 황한석 회장과 성길수, 지종호  부회장 등 세 명이 각자의 차를 타고 도착했다.(이들중 지종호 부회장은 건강 문제로 산에 오르지 못하고 밑에서 대기했다.)

 서로 인사가 끝나고 이 장군이 세밀하게 작성한 춘천 전투의 전투기록과 상황도를 7연대장 박상국 대령에게 기증하고 간단히 기념 촬영을 했다.

[164고지를 뒷 배경으로 전투자료를 전달하는 이대용 장군과 7연대장 박상국 대령]



 “앞으로는 박 대령이 춘천 전투 전사의 전문가가 되도록 하시오.”

 박 대령이 이지적인 미남 면모가 인상적이라 알아보니 이대용 장군의 육사 및 미 육군 대학의 40년 후배라고 한다. 

[왼쪽부터 황한석 회장, 박상국 연대장, 이대용 장군, 지종호 부회장]



 이어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걱정스럽게 생각했던 이 장군은 상상을 뛰어 넘게 산을 잘 올랐다. 나의 권유로 지팡이는 가져 왔지만 마치 산신령처럼 산길을 걸었다. 산 능선에 붙으면서 참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앞에서 박 대령과 송 대위의 같이 가던 이 장군은 추억을 참기 힘든 상황인지 연신 주변에 둘러보았다.

 “우리가 만든 참호가 맞아! 전쟁 뒤에도 사용한 흔적이 있구먼! 그 때는 모래 주머니를 사용하지 않았어!”

[능선에서 부대 배치를 설명하는 이 대용 장군]



 “여기는 3 중대가 배치 되었었지. 우리 1중대는 제일 북방에 배치되었고, 2중대는 반대편 샘밭 쪽을 향해서 배치되어 있었어.”

[참호-아직 오리지날인 사각형의 모양을 많이 유지하고 있다.]



 능선을 따라 가면서 과묵한 박상국 대령이 참호를 보고 말했다.

 “이 전투 호들이 제대로 만들어졌네요. 개인호는 능선 정상이 아니라 능선 전사면 약간 아래에 배치하게 되어 있는데 이 진지들이 정확히 그렇게 구축되어 있습니다.“

 이윽고 164고지에 도착한 이대용 장군은

 “그 때는 능선 양쪽 전방이 다 보였지... 시계가 아주 좋았어! 지금은 나무가 우거져서 안 보이는 군.”

[기념탑 앞의 이대용 장군, 박상국 대령, 황한석 회장, 맨 왼쪽은 성길수 부회장, 맨 오른쪽은 연대 인사과장 송동섭 대위]



 그리고 김용배 대대장의 명령에 의해서 1대대가 일제히 참호를 뛰쳐나와 1,500미터의 돌격을 개시했었던 그 때의 긴장된 상황을 정확한 기억력으로 회고하였다.



 박 대령은 이 장군으로 부터 옥산포 전투의 모든 것을 빼지않고 흡수하려는 듯 휴대폰 녹음기로 모두 녹음을 한다. 마치 무술의 도인이 애제자에게 비전의 무술을 전수하는 옛 무협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나게 한다.

 보병 전투 지휘관인 박 대령은 선배로부터 듣는 자기 지휘 7연대 전사를 정말 열심히 경청했다. 내려가는 길이 험하지만 어느 단체에서 설치했는지 잡고 내려가는 줄을 매어 놓아 한결 수월했다. 



 이 장군은 당시에 학생들만 군에 협조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1950년 6월 25일 1대대의 진지 투입부터 인근 부락민들이 3-40명이 달려와 포탄과 실탄, 그리고 중화기 등을 진지까지 운반하는 것을 도와주었다는 사실이었다.

 개전 초기부터 국군을 도왔던 춘천 주민들은 7연대가 낙동강 전선까지 철수하며 지연전을 할 때까지 따라와서 여러 궂은일을 해주었다는 말도 해주었다. 전투가 치열해지고 자원 봉사자들에게도 적의 총탄이 날아오자 일부 자원 봉사자들은 자기들이 입은 흰 한복을 칡넝쿨을 둘러서 위장을 하더라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었다.

 그 때 급박한 상황이었던 군은 식사 대접 외에 아무 것도 못 해준 것이 미안한 감정으로 남는다는 회상도 했었다.

[참호]



 이 장군은 나무 숲 사이로 약간 보이는 옥산포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쪽에 솔밭이 있었는데 그 때 공격할 때 병력 일부가 그 솔밭 사이로 돌진했었지!”

 나는 전번에 옥산포를 방문했을 때 옥산포와 164고지 능선의 사이에 위치한 이 숲을 눈 여겨 보았었다. 이 장군은 그 때 소나무들 키가 사람 키를 조금 넘는 높이였다고 했지만 지금은 거대한 거목들로 성장해있다.

 지도를 보니 상금솔이라는 명칭이 표시되어있었다. 생태적으로 보호받고 있는 숲으로 보인다. 이 숲이 생태적 가치외에도 더해서 역사적 사연도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동네 뒤에 멀리 병풍처럼 둘러진 솔밭이 돌격 부대가 통과한 상금솔밭이다. 지금은 거목들이 되어 있다.]



 사족이지만 포스팅 직전 아래 글을 추가한다. 7연대 1대대 옥산포 돌격에 자주포와 중포의 지원을 받던 적 2개 대대는 완전 패닉(panic-공포)에 빠져서 패주했다. 얼마나 놀랐는지 그들은 멍청하게 마비되어 있다가 공격대대가 1,500미터를 거의 달려 옥산포에 도달했을 때에야 겨우 몇 발 쏘고 패주했다.

 자주포병들까지 차를 버리고 줄행랑을 쳤다.

[북한의 자주포 SU-76]



 이런 기갑 무기와 중포로 지원받는 두배나 더 큰 적에게 돌격을 명한 김용배 대대장의 용기와 직관의 지휘가 볼수록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1대대 돌격에 놀란 자주포병들은 차를 버리고 도망쳤지만 한명은 불을 지르고 도주를 시도하다가 사살되었다.

[교통호  안에 나무가 자라고 있다. 세월의 한 자국이다.]



 사단과 연대 지휘소가 있던 봉의산에서 지켜 본 허영호 소령은 1대대가 164고지 능선에서 밀물처럼 쏟아져 내려가며 함성과 함께 감행한 돌격은 참으로 무서운 기세였다고 감탄하던 것을 이 장군이 기억하고 있다.

[김용배 대대장이 만주에서 일본군에 근무할 때의 사진.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왔다가 다시 소집되어 가서 오랫동안 일본군 생활을 했었다.]



 그는 이대용 장군에게 자신의 일본군 복무를 후회하는 말을 자주했었다. 

 적의 붕괴를 정확히 읽고 돌격을 명한 김용배 1 대대장의 지휘 감각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이는 책에서 배우는 기술이 아니라 ‘직관’에 의한 것이었다. 클라우제비츠는 나폴레옹은 승리는 그가 가진 승리의 비결이 남이 갖지 못한 직관의 힘이었다고 분석했었고, 이 직관을 불어로 꾸되이(coup d'oeil)라고 명명했다.

[클라우제비츠]



 그 직관은 영어에서 말하는 improvision이나 일본 국민작가 시바 료타로가 표현한 전각(戰覺)과도 같은 뜻인 듯하다. 독일 장군 롬멜이 이 본능의 감각에 의한 전투 지휘에 능했었고, 이스라엘의 아리엘 샤론과 중국의 임표의 전투 지휘에 이런 면모가 보인다. 임진란의 영웅 이순신 장군의 전투 지휘에도 이 직관의 흔적이 뚜렷한 해전이 여럿 있다.

 삼년간 일선 전투 지휘관을 하면서 수 십 번의 전투를 경험한 이대용 장군이지만 항상 김용배 장군의 전투 솜씨를 격찬하기에 본 필자가 알아 본 내용을 소개했다.

 김용배 대령은 연대장 재직시인 1951년 7월 중부 전선에서 적의 포격에 전사했다. 고향 문경에 그를 기린 용배 공원이 있다. 사후 준장으로 추서되었다.

 방문에서 새로 들은 정보는 그 뿐만 아니었다. 우리와 동행한 춘천 선양회의 황 회장은 164고지 능선에 학생들과 병사들이 공들여 판 방어 진지가 옥산포 전투에서 한번만 사용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자기가 어린이였던 1.4후퇴 시에 이 164고지를 점령한 국군과 옥산포가 아닌 샘밭에서 정면으로 능선을 공격해온 중공군과 벌인 격전을 직접 목격했다고 했다. 눈이 하얗게 쌓인 들판을 새까맣게 덮은 중공군 대병력이 164고지 능선을 공격했다가 능선 진지에서 쏘는 국군의 사격에 첩첩히 쓰러진 시체에서 흘러내린 피가 눈 벌판을 붉게 물든 전투 상황을 동네의 창고 틈새로 내내 지켜봤다는 것이다.

 이 장군의 중대가 돌격을 개시한 시점이기도 한 성황당 고갯길을 만나 내가 전번에 내려왔던 옥산포 쪽이 아니라 반대편으로 내려가 황석환 회장이 접대하는 막국수 점심 식사로서 이번의 방문을 마감하였다. 시골인 샘밭에 대형 막국수 식당이 있었다.

[이대용 장군의 맞은 편이 지 종호 부회장. 1950년 국군 포병 16연대 입대했던 노병. 건강때문에 산에 올라가지는 못했지만 끝까지 기다렸다가 일행과 자리를 같이했다.]



 정말 뜻밖의 옛 격전지 방문이었었지만 끝까지 정정하게 산행을 종주한 이 장군의 건강도 경탄스러웠다. 옛 격전지를 후배 지휘관에게 보여주고 자신의 전투 경험을 들려준 이 장군은 세상에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행복한 기분이었다.

 식당에서 이 장군은 60년 만에 옛 격전지를 방문한 감동을 자신이 치열하게 겪었던 전투를 정확한 기억으로 거침없이 풀어냈다.

[제일 젊은 덕에 진로 개척, 전방 정찰, 후방 연락, 이 장군 수발등을 도맡아 정신없이 뛰어다닌 송 대위 - 소담스런 식욕으로 체력 소비를 해결한다.]



 

[이 장군은 식당문을 나서서 전방에 보이는 봉의산 자락을 가리키며 1대대의 소양강 전투를 자세히 설명한다. 역시 열심히 경청하는 박상국 연대장과 황한석 회장]



 얻은 바가 컸던 방문이었다. 7연대장 박상국 대령과 송동섭 대위가 대선배를 모시는 깍듯한 지극 정성도 인상 깊었지만, 이날 내내 동행하며 열심히 경청하는 춘천 대첩 선양회의 황회장과 두 명의 회원들의 자발적인 성실함은 또 다른 감동이었다.

 황 회장은 자신의 직업이 농부라고 말했었고, 다른 회원들도 평범한 자영업자들이라고 했었다. 황 회장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전적지외에 혹시 내가 알고 있는 춘천 지역 다른 전적지도 있는지도 진지하게 물어 보았다.

 민간인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춘천 일대 호국 유적지 관리를 하고 있는 것은 아주 특이한 일이었다.

 전사 해설사로서 나는 이 방면에 안 좋은 기억들이 많다. 숨겨진 전사의 전적지를 알려 주고 이를 잘 관리하도록 권고했다가 담당 관리들의 무지하고 게으른 반응에 기가 막혔던 것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올해 봄 외국인 참전 용사가 전적지를 방문할 때도 해당 지역의 전사를 포함한 역사 담당자는 나의 동행 요청을 거절했었다. 생각해 보니 그 날이 이번과 같이 토요일이었다. 춘천 민간단체의 사람과 달리 공무원인 자신은 휴일에는 편히 쉬어야겠다는 복지부동(伏地不動) 의 게으른 이기심이 발동한 행위였다.

 그 방문은 겨우 국방부 6ㆍ25 사업단의 도움으로 잘 마무리 할 수가 었다. 지금도 그 외국인 참전 용사는 나에게 고맙다는 메일을 보내고 있다. 그 전적지는 나중에 참전국의 대사와 무관(武官)도 방문했었다. 지역의 역사를 담당한다는 그는 내가 다섯 번이나 찾아 가서 발굴한 전사를 도용해서 지역내 군 부대를 돌아다니며 강연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었다. 이런 일을 겪은 필자에게 춘천의 보통 시민들의 이러한 자발적인 호국과 숭모의 정신이 매우 특별하게 느껴졌다.

 춘천 시민에게는 무엇인가 호국의 충정이 유전인자로 내려온 것이 아닌가 한다. 6ㆍ25 개전 초기 춘천 방어시 1사단 사령부가 있었고, 소양강 전투의 방어선이었던 봉의산에는 과거 춘주성이 있었다.

 1953년 9월초에 고려를 침공한 몽골군은 성 주변을 목책으로 둘러싸고, 호(豪)까지 둘러 판 뒤에 성에서 농성하는 군민을 수 십 차례나 잔혹하게 공격했다.

[군민 모두 산화한 옥쇄 전투의 춘주성]



 안찰사 박학기와 문학이 지휘하는 성의 군민은 물이 떨어져 마소를 죽여 그 피를 마시며 저항했지만 식량과 시석(矢石)이 떨어지자 남은 600명의 병력으로 최후의 돌격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몽골군의 집중 사격에 성을 둘러싼 호를 넘지 못하고, 모두 장렬하게 전사하고 말았다. 몽골군은 성으로 난입하자 노약자들만 남은 성민들은 끝까지 저항하였다. 몽골군은 이들 성민들은 모두 몰살해 버렸다. 세계에 잘 알려진 미국의 알라모 요새나 이스라엘의 마사다 요새에서 있었던 군민 옥쇄의 처절한 역사가 춘천에도 있었다.

 그 유전자가 면면히 흘러 900년의 세월이 지나 1950년 국가 위기에 반응하는 어린 남녀 학생들의 국방 의식으로 나타났었고, 그 유전자 더 흘러 이런 호국 의식을 기리는 민간 단체까지 나온 것이 아닌가한다. 그런 자랑스러운 호국의 전통이 이번에 방문했던 군의 7연대 장병들과 춘천의 어린 학생들이 공사한 방어 진지도 춘천의 민관군 노력의 보존으로 장래에도 길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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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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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성 ! 상병 박성현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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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منتديات 2012.11.20 02: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때는 능선 양쪽 전방이 다 보였지... 시계가 아주 좋았어! 지금은 나무가 우거져서 안 보이는 군.”

  6. boca Raton plumber 2013.04.28 03: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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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울프 독 2013.05.01 14: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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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Payday loans 2013.09.23 21: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밀하게 작성한 춘천 전투의 전투기록과 상황도를 7연대장 박상국 대령에게 기증하고 간단히 기념 촬영을 했다.

춘천 군민(軍民)이 만든 6ㆍ25 진지, 아직도 남아있다!(2/3)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1.12.03 17:04

 그런데 언제인가부터 마음에 한 호기심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이대용 장군이 직접 쓴 춘천 전투의 글을 이「아! 6ㆍ25」블로그에 글을 소개하면서 부터였다. 이 장군은 164고지 일대에 연대 장병들과 학생들이 구축한 진지가 미국식 교통호와 일본식 개인호 구축 방법을 혼합해서 만든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나는 일본식 개인호라면 일본군이 말하는 다꼬스보(낙지 구멍) 스타일이 아닌가 생각해서 기고 글에 그렇게 소개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정도만은 아닌 것 같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일본군 참호는 가사가다(笠型)라는 형식으로서 세 개의 참호를 삼각형으로 배치하는 것이었다.

 일본의 삿갓(笠)이 삼각형 모양이라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었다.(베트남 사람들의 삿갓이 이렇게 생겼다.) 호기심이 발동하면 못 참는 성미가 있는 나였기에 춘천의 학생들과 군인들이 협동하여 팠다는 그 독특한 형식의 진지를 꼭 눈으로 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모두 나의 생각에 부정적이었다. 60년 전에 판 참호나 교통호가 과연 남아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간 두 세대의 세월이 흘렀고 세기가 바뀌었다. 높은 산도 아니었다. 산맥 주위 농민들이 부단히 출입하면서 땔감을 구하던 시절에 참호와 교통호를 그냥 두었겠느냐는 말이었다.

 더구나 60년 동안 해마다 쏟아지는 폭우와 장마철의 빗발을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는 말들도 했었다. 하지만 나는 7연대와 학생들이 구축한 개인호나 교통호가 일부나마 남아 있을 가능성에 희망을 걸었다. 이는 내가 오래 된 참호를 목격한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군 생활 시절 수색 역 구내에서 남쪽에 미군들이 구축한 전차호들 두 개를 보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1951년 중공군이 50만을 동원해서 대공세를 취했던 1951년 4월 춘계 공세 직전에 만든 전차호로 추측된다. 그 때 서울 북방의 방어가 원체 강력해서(방어에 동원한 미군의 포만 400문이었다.) 중공군은 서울 점령을 포기하고 중부전선으로 파고 들어갔으나 한 달 간의 공세는 무참히 실패했고, 총 사령관 팽덕회의 사령부마저 함경도 성천까지 도주해야했다.

 이 전차호를 보고 대대 작전 과장과 함께 이 호들이 아직도 온전해서 금방 전차호로 다시 활용을 할 수 있다고 대화를 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참호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소멸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던 이유는 또 있었다.

 수년전 나는 중국 백두산 중턱에 있던 내두산촌이라는 곳을 찾아간 일이 있었다. 김일성의 빨치산 부대가 남만주 일대에서 날뛸 때인 1938년경 일본이 백두산 해발 800미터 지점의 고원 밀림 지대 가장자리에 이도백하진 일대에서 모집한 젊은 농민들을 40세대를 이주시키고 전략촌인 내두산 촌을 만들었었다.

 그 곳 농민에게서 그 시절에 마을 뒷산에 판 초소의 참호가 지금도 남아있다는 말을 듣고 그 때도 호기심에 무턱대고 올라가 본 일이 있었다.

[1938년에 판 중국 백두산 내두산촌의 보초 참호. 두사람이 근무하던 복초 참호다. 둥근 윤곽선이 보인다.]



 무려 70년이나 지났는데도 참호는 아주 깨끗한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많은 춘천 옥산포 주변의 참호들도 조금은 남아있겠지.... 나는 그런 기억과 기대를 가지고 몇 주 전 춘천 옥산포 164고지 능선으로 향했다.

[여우 고개 -옛날 여우가 나타나서 서당에 가는 학동들을 홀렸다는 고개. 운명의 6ㆍ25 날 7연대 1대대 장병들은 이 고개를 넘어가서 좌회전 한 뒤 진지에 투입하였다. 이 고개 우측 소양강변에 7연대와 16포병대대가 있었던 우두산이 있다.]



 아무 곳에서나 올라가도 된다는 안이한 생각으로 산에 붙었는데 중턱에서 두어번 미끌어지고 단념했다. 산의 사면은 낙엽이 쌓인 곳으로 발을 디디면 두부를 밟은 것처럼 밑으로 밀려 버렸다. 이대로 포기 해야 하는 난감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지나가는 한 주민이 알려 주어 남쪽 여우 고개 근처에서 희미한 등산길을 발견하고 산에 오를 수가 있었다. 164고지 능선은 아프리카 정글이 무색할만큼 우거진 숲으로 덮여 있었다. 산 아래 인간 세상의 소음은 모두 숲에 차단당하여 마치 고요한 터널 속을 혼자 걷는 듯했다. 서너시간을 능선에서 보냈지만 오가는 등산객 한 명 없었다.

 이 산이 과연 1951년의 6월 25일의 민둥산이었을까 하는 느낌마저 가져 보았다. 능선 좌우에는 나무가 우거져서 양 쪽을 내려다 볼 수가 없었다.

[아무 것도 안 보이는 길에서도 약간 산 아래 전망이 나오는 부분의 능선 길]



 그러나 능선에서 드디어 첫 참호를 만나 볼 수가 있었다. 그 참호는 서쪽의 옥산포가 아닌 반대편의 동쪽의 샘밭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나중에 옥산포에 공사한 참호들이 양쪽으로 침공할 경우를 대비해서 서쪽의 옥산포와 동쪽의 샘밭을 향해 능선 사면 양쪽에 참호를 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긴가민가 하면서 계속 능선을 타고 164고지 쪽을 향하여 걸어가자 드디어 능선을 따라 개인 참호들과 끊어졌다 이어졌다하는 교통호들도 드문드문 나타났다. 60년이란 긴 세월 잊혀졌던 춘천 군과 민들의 지성어린 손길로 구축해놓은 호국의 방어진지는 아직도 숲속에 그 생명을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발견한 개인호]



 표현하기 힘든 감동이 가슴을 벅차고 올라왔다. 개인호는 164고지로 갈수록 점점 더 온전하게 형태의 보존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높은 곳은 사람들의 출입이 뜸하다 보니 더 잘 보존되었다고 생각되었다.

 나는 일본식 가사가다의 참호 배치가 있나 찾아보았다. 좁은 능선의 좁은 부분에는 그런 여유가 없었지만 조금 여유가 있는 곳에는 가사가다의 형의 삼각형으로 구축한 참호들이 있었다.

[교통호 - 많이 메위져 있다.]



 이 장군은 참호가 교범대로 직사각형의 장방형으로 팠고 깊이는 각 병사의 가슴 높이였다고 말했다. 병사들이 참호 안에 앉으면 완전히 머리를 감추어 포사격에도 엄폐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개인호들은 모두 둥근 원형이었고, 깊이는 무릎 깊이 정도였다.

 주변의 벽이 조금씩 무너져서 호는 넓어지고 바닥은 쌓이는 흙에 의해서 얕아 진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안경 모양의 이중 호도 있었는데 이것은 말굽형으로 팠던 공용화기 호가 무너져서 그런 모양이 된 것이었다. 교통호는 무너진 현상이 더 해서 아주 낮아지고 좁아져있었다.

 세월의 노쇠함은 참호에게서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진짜 놀랄 일은 164고지에 올랐을 때였다. 주변이 숲으로 빽빽이 뒤 덮인 그 곳에 기념비가 서있었다.

 



164고지가 1950년 6월 26일 옥산포 침공 북한군을 파쇄한 국군 6사단 7연대 1대대 지휘소가 있던 곳을 기념하는 상징물이었다. 알고보니 춘천의 춘천 대첩 선양회라는 민간 단체가 춘천시와 2군단의 도움으로 세워놓은 것이었다.

 나는 164고지를 넘어 능선을 따라 앞으로 가다가 중간에 산의 샘 밭에서 능선의 안부(鞍部)를 가로질러 옥산포로 가는 옛 고갯길을 발견하고 그 오래된 길로 옥산포로 왔다. 그 고개에 성황당이 있어서 이채로웠다. 옥산포에는 두 번이나 왔었지만 다시 찾아가 보니 감회가 깊었다.

 소박한 초가집들이 있던 그곳은 현대식 건물들이 들어서 도시가 되어 있었다.

[옥산포 거리에서 보이는 164고지]



 옥산포 골목에서 파파 할머니를 만났다. 그 할머니는 전쟁 때 옥산포에 거주했다는 말을 해주었다.

 "북한군이 몰려 올 때 어떻게 하셨어요?"

 "공산당이 몰려오니 빨리 피난 가라고 해서 피난 갔어요."

 옥산포 공격 때 장병들이 옥산포 민간 가옥을 수색하여 숨어든 적병들을 모두 찾아내 섬멸했던 배경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때 옥산포 민가들이 다 비어 있어서 수색이 쉬웠다고  이 장군이 말했었다.

[옥산포의 뒷골목 - 나에게 북한 침공 당일 주민들이 피난을 떠났다는 말을 전해 주었던 할머니의 총총히 사라지는 뒷 모습]



 나는 춘천에서 돌아오자 여러 도움 말씀을 주신 이대용 장군에게 60년 전에 춘천의 학생들과 7연대 장병들이 파놓은 방어진지들이 아직도 164고지 능선에 많이 남아있다는 말씀을 드렸다. 그러면서 촬영을 위해 다시 한 번 가야 할지 모른다는 나의 계획도 말했었다.

 장군은 크게 놀랐다. 

 "나도 꼭 가보고 싶네! 다시 가보세!"

 87세의 연세에 산을 올라간다는 말인가! 더구나 다리까지 불편하신 분이! 나는 완곡하게 만류했다. 그러나 장군의 의지는 완강했다.

 "7연대 사람들도 부르세!"

 옥산포 돌격을 선두에서 이끈 이대용 장군은 최초로 압록강에 도착했던 북진 중대를 지휘했었던 지휘관이었다. 6사단 7연대는 매년 1950년 10월 26일 초산군 압록강 진격을 기념하는 기념식을 가진다.

 기념식에는 잊지 않고 참전 선배 노병들을 꼭 초대하기 때문에 이 장군은 7연대와 유대가 있다.

 "부르시려면 독도법 할 줄 아는 보병 중대장을 부르세요."

 장군이 산을 타다가 탈진하면 모시고 내려와야 하는데, 아무래도 힘께나 쓰는 젊은이가 낫겠다고 내심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의 예상을 깨고 7연대장 박 광덕 대령이 직접 오겠다는 말에 크게 놀랐다.

 나는 이 기회에 인적미답(人跡未踏)의 그 외진 164고지에 기념물을 세운 “춘천 대첩 선양회”도 같이 동행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 이 장군의 동의를 받고 이 단체에도 연락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창립한지 5년이 되었고, 회원들도 300명이나 되었다. 회장인 황 씨는 나의 전화에 큰 관심을 보였다. 

 "임원들과 함께 같이 꼭 같이 가겠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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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민하 2012.03.25 19: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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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Social Bookmark 2013.05.28 05: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장군은 164고지 일대에 연대 장병들과 학생들이 구축한 진지가 미국식 교통호와 일본식 개인호 구축 방법을 혼합해서 만든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8. borrow money 2013.09.23 20: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지가 미국식 교통호와 일본식 개인호 구축 방법을 혼합해서 만든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9. Look for Cruz Blanca Salud 2014.03.29 18: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지가 미국식 교통호와 일본식 개인호 구축 방법을 혼합해서 만든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10. jeffrey killino 2014.05.08 14: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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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jeffrey killino 2014.05.08 14: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장군은 참호가 교범대로 직사각형의 장방형으로 팠고 깊이는 각 병사의 가슴 높이였다고 말했다. 병사들이 참호 안에 앉으면 완전히 머리를 감추어 포사격에도 엄폐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개인호들은 모두 둥근 원형이었고, 깊이는 무릎 깊이 정도였다.

  12. http://iphone5unlockinggood.com 2014.05.22 16: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월의 노쇠함은 참호에게서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진짜 놀랄 일은 164고지에 올랐을 때였다. 주변이 숲으로 빽빽이 뒤 덮인 그 곳에 기념비가 서있었다.

춘천 군민(軍民)이 만든 6ㆍ25 진지, 아직도 남아있다!(1/3)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1.12.01 14:07

 6ㆍ25전쟁시 서울 북방에서 전차를 앞세운 적의 대군에게 무참히 붕괴된 국군 사단과는 대조적으로 중부 전선의 춘천을 지킨 6사단은 대단한 전투력을 발휘해서 북한군을 격퇴하고 일부 부대는 북으로 도주하는 북한군을 추격까지 했었다.

[6사단 7연대 -1949년, 국방 장관 부대 방문시의 군장 사열]



 6사단의 활약을 소개하는 전사에는 접두어처럼 반드시 앞에 붙는 한 사실이 있다. 6사단은 6ㆍ25전쟁 전에 북한의 침공에 대비해서 군과 민이 합동으로 적의 접근로에 대규모의 진지를 구축했었다는 사실이다.

 6ㆍ25전쟁 당시 군경만 싸운 것이 아니라 수많은 민간인들이 크고 작게 호국의 일선에서 군을 도왔었고, 또 직접 싸우다가 희생했었다. 그러나 춘천 전투에서처럼 수 천 명의 학생들이 적의 침략에 대비한 방어 준비를 한곳은 찾기가 힘들다.

 민간인들이 군을 지원하여 진지 공사를 한 사례는 서부전선의 1사단 지역에서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임진강 지역에서 군 생활을 할 당시 군민 합동의 진지 공사를 했을만한 지역들을 찾아보았지만 그 지역이 민감한 접적 지역들인지라 전쟁 후에도 미군과 국군이 수없이 후속 진지 공사들을 해서 1사단의 장병들과 학생들이 구축했던 진지들은 도저히 알아 볼 수가 없었다.

 춘천 전투 때 적군의 측면을 기습했던 7연대 1대대 돌격을 선두에서 지휘했던 이 대용 장군은 6ㆍ25 첫 3일간 전투에서 자신의 공훈보다도 25일 단독으로 적 침공 부대를 가로막고 격파했던 16포병대대의 활약과 용맹한 1대대장 김용배 중령(준장 추서)의 리더십을 더 크게 평가했었지만 60년 전에 춘천의 학생들과 7연대 장병들이 땀 흘려 구축했었던 방어 진지의 덕택을 크게 보았다는 말을 자주했었다.

 여러 책자에 소개되었던 춘천 방어의 숨은 공신인 방어 진지 공사에 대해서 이대용 장군은 자세히 회고 하였다. 방어 진지 구축의 명령은 육군 본부 작전국에서 사단에 전달되었었다. 북괴의 하는 짓이 수상하니 유사시에 대비한 방어진지를 잘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당시 육군 본부 작전 국장은 작고한 강문봉 대령이었다. 춘천의 7연대는 1949년 북한이 파견한 유격대들을 토벌하는 전투를 겪은 터라 이 지시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진지 공사는 봄에 시작되었다. 7연대의 옥산포 승리를 가져온 164고지 낮은 구릉지대를 방어 진지로 결정한 것은 7연대장 임부택 중령이었다.

[비오는 날 옥산포에서 당겨서 찍은 164고지]



 이 지형은 약간 특이하다. 길이 4km 정도의 낮은 구릉형 산맥으로서 남북으로 뻗혀 있다. 너무 평범한 야산이라서 산맥의 이름도 없다. (이하 이 무명 능선을 164 고지 능선이라고 부른다.)

 6ㆍ25전쟁 전에는 나무하나 없는 민둥산이어서 산 능선 좌우 쪽의 시야가 아주 좋았었다. 이 야산 산맥을 점거하면 서쪽으로는 옥산포 쪽으로 남하하는 적을 칠 수가 있고 동쪽으로는 샘밭 쪽에서 오는 적을 칠 수가 있다.


[164 고지 능선-소양강으로 가는 길목의 여우고개와 춘천 병원의 중간에 위치하여 있다. 푸른 펜으로 표시한 곳이 능선과 164 고지, 옥산포다.]



 휴전선 전방을 가보면 방어 진지들이 북을 보고 옆으로 횡렬로 뻗어 있는데 이 진지는 위 아래로 종렬로 구축되어 있다. 이대용 장군이 말하는 진지 공사의 내력은 이랬다. 육본의 지시에 진지를 만들 지형을 선정하고 7연대는 자체 연대 병력만으로 공사를 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공사할 진지들이 많아 연대 병력만으로 진지 공사를 하면 도대체 어느 정도 세월이 걸릴지도 모르는 좀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생각 밖으로 고마운 구원 군이 나타났다. 춘천 시내 각 중고등학교 학교에 배치된 배속장교들이 학생들에게 호국 교육을 시킬 겸해서 장병들의 진지 공사에 협조하겠다고 자발적으로 자원한 것이었다.

====================================================================================

 한국 전사에 호국군이나 배속 장교들의 이야기가 자주 나와 혼란스런 분들이 많으리라. 이 글을 쓰면서 이대용 장군에게 확실히 알아보았다.

 6ㆍ25전쟁에서 활약한 배속 장교들은 각 중고등학교 체육 선생들 중에서 선발했었다. 태릉의 육사는 서울 공대 자리에 육사 분교를 설치하고, 이들을 5주간 훈련시켜 예비역 소위로 임관시킨 사람들이다. 각 학교마다 크기에 따라 1-2명씩 배치되었었다. 배속 장교로 근무할 때는 군 장교와 꼭 같은 계급장과 군복을 착용했었다.

 한국의 배속 장교들은 일제가 각 학교에 배치했었던 배속 장교 제도를 도입한 것이었다. 배속 장교들은 전쟁 발발과 동시 전부 현역으로 동원되었었다. 현역으로 소집된 배속 장교 출신들은 주로 행정 분야에 근무했었으나 일선 소대장으로 임명되어 전투에 참전한 사람들도 있었고, 그 중에 뛰어난 전공을 세운 장교들도 있었다.

 군에 계속 남아 직업 군인의 길을 간 배속 장교들도 다수 있어서 이 중에 육군 대장도 나왔었다. 정진권 대장이 그 분이다. 호국군은 배속 장교들과는 다른 조직으로서 각 연대에서 지방 젊은이들을 모아서 단기 훈련을 시키고 간부를 역시 예비역 장교로서 임관시켰었다. 

 당시 국방 장관이었던 이범석 장군이 시작한 제도로서 간부들을 두어번만 배출하고 호국군 선발은 중단되었다. 호국군 장교들은 군모도 국군의 군모가 아닌 헬로 모자라고 불리는 모자(해군들이 쓰는 개리슨 햇)를 썼었고, 배속 장교보다는 다소 낮은 대우를 받았다.

 전쟁 발발과 함께 호국군 소위들도 소집되어 현역이 되었다. 역시 이 호국군에서도 육군 대장이 나왔다. 박노영 대장이다.

====================================================================================

 당시 춘천 시내의 춘천 고등학교, 춘천 사범학교, 춘천 농업 고등학교의 학생들이 모두 공사 지원에 나섰다. 놀랍게도 춘천 여자 고등학교도 자원해서 여학생들도 진지 공사를 지원해주었다고 했었다. 특히 춘천 농고 학생들은 삽이나 괭이같은 농기구를 지참하고 나와 작업 속도가 높았었고, 또 제일 많은 학생들이 참여했었다.

 이 뜻밖의 도움에 7연대 주변의 춘천 진지 공사는 아주 쾌속으로 진행되어 6ㆍ25전쟁 두 달 전에 그 엄청난 임무가 다 완료되었다. 이 장군은 7연대 1대대가 맡은 164고지 능선에 대한 공사는 한 열흘 정도 걸렸다고 회상했다.

 학생들이 협조한 진지 공사가 164고지 능선 한 곳만이 아니었다. 2대대 지역인 소양강 남안에도 진지가 만들어졌고, 6ㆍ25전쟁 첫 사흘간 7연대 본부와 포병 지휘소가 있던 우두산에도 진지 공사가 있었으며, 6사단 사령부 전방 지휘소가 있었던 봉의산에도 진지 공사를 했었다.

 방어 진지가 완성되자 7연대 1대대는 6ㆍ25전쟁 당일까지 두 번에 걸쳐 진지 투입 훈련을 해서 지형 숙지를 했었다. 6ㆍ25전쟁 중 최대의 선방(善防)을 했던 6연대는 이렇게 학생들의 도움으로 적어도 반쯤은 전투 준비를 하고 적의 침공에 맞섰었다.

 기억력 좋은 이대용 장군은 학생들과 함께 진지 공사에 적극 협조 해주었던 각 학교의 배속 장교들의 이름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전한병, 김정남... 등등.

 춘천 전투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내가 옥산포에 처음 가본 것은 작년 연말이었다. 첫 방문은 춘천에 갈 일이 있던 참에 옥산포가 어떤 곳인지 그저 한 번 알아본다는 호기심 차원에서 한 것이었다.

[옥산포에서 촬영한 164고지 능선]



 물어물어 소양교를 건너 옥산포에 도착했을 시각은 날도 어두워지고 당시는 옥산포 전투에 대해서 잘 아는 지식도 없던 터라 작은 강변 마을의 이미지가 있었던 옥산포가 번화한 시가지가 된 것만 발견하고 그냥 돌아왔었다.

[왼쪽이 임부택 연대장. 오른 쪽이 김종오 사단장]



 또 춘천에 갈 일이 있었던 지난 봄, 미리 옥산포 전투 상황도 잘 숙지하고, 164고지 능선의 지도도 구해서 아침 일찍부터 서울을 떠났다.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비가 추적추적 왔었다.

[옥산포 거리-북쪽을 보고 촬영한 사진이다.]



 비 때문에 산에 올라갈 생각은 엄두도 못 내고 옥산포에서 비안개 속에 떠있던 164고지 능선의 원거리 사진만 찍고 돌아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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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omputer Network 2012.02.10 18: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난 이런 행사를 통해 6.25전쟁이 어떻게 전쟁이 났는지 알게되었다.
    그리고 내가 봉사를 많이하고 돈을 아껴써야되는 것도 깨달게되었다
    난 이런 캠페인이 더욱더 개발되어 더 많은 사람들한테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2. Computer Network 2012.02.10 18: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난 이런 행사를 통해 6.25전쟁이 어떻게 전쟁이 났는지 알게되었다.
    그리고 내가 봉사를 많이하고 돈을 아껴써야되는 것도 깨달게되었다
    난 이런 캠페인이 더욱더 개발되어 더 많은 사람들한테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3. 송재철 2012.03.24 16: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진!!1사단 15연대 일병송재철입니다.
    진지들이 아직도 남아있다니 무언가 가슴이찡한 느낌입니다.
    한번쯤 진지에 가서 경계자세를 취해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6.25전쟁의 아픔을 다시한번 느끼면서 국방부의 이런 활동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위국헌신 군인본분 잊지않겟습니다.
    wocjf1991@naver.com

  4. 일병 오태근 2012.03.31 13: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골!
    3사단 방공중대 일병 오태근입니다.
    6.25 전쟁 안에 있는 작은 이야기들. 작은 곳, 그런 곳 하나하나까지
    각각의 사연들이 있는 것을 느낍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6.25에 대해 모르는 것을 하나하나 더 배워나갈 수 있다는 것이 매우 기쁩니다.
    과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더 나아갈 수 없습니다. 6.25에 대해 더욱 더 알아서
    제 2의 6.25가 발생하지않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nonoboysot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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