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지암 514고지의 기관총 기습 작전(2/2)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1.11.21 09:42

 밤 11시에 중대장에게 보고하고 목표를 향해 출발하였다. 기관총 1정당 실탄 400발과 소총 실탄 80발, 수류탄 4개씩을 휴대하고 눈을 헤치며 앞으로 나갔다.



 내가 선두에 서서 가는데 눈이 많이 쌓인 곳은 허리까지 빠져 도저히 빨리 전진할 수가 없었다.

 한 발씩 한 발씩 전진해 가는데 달빛은 없으나, 온 산이 눈으로 덮여 찾아 가는데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앞이 안 보였다. 불과 1킬로의 거리를 무려 3시간이나 걸려 고지 중간까지 올라갈 수가 있었다.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서 2개조로 편성하여 좌우에서 은밀하게 올라갔다. 긴장하여 위를 감시하며 올라가는데 아무런 저항이나 움직임도 없어서 정상에 오를 수가 있었다. 정상은 너무나도 급경사이고 암석으로 이루어진 칼날 같은 봉우리였다.



[높은 산이 514고지고 옆 산에 올라가 기습 사격을 한 듯한데 산에 나무들이 뒤덮혀 자세한 지형을 알아보기가 힘들다. 곤지암cc 앞에서 촬영]

 기관총 장치하기도 힘들 정도로 협소해서 분대장과 정상을 둘러보니 바위를 사이에 두고 한정씩 장치할만한 곳이 있어서 기관총 1정은 제 1공격 목표 지점으로 대충 조준해놓고 1정은 정상을 향해 조준 해놓은 다음 중대장에게 보고했다.

 "화기 소대장 이상없이 목표 지점에 도착했습니다."

 "수고했다. 그 곳에서 공격 목표가 잘 보이는 가?"

 "잘 보입니다. 날만 밝으면 적의 움직임을 똑똑히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 소위만 믿겠다. 조용히 대기하라. 이상!"

 분대장이 차고 있는 야광 시계가 2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기관총이 있는 곳에 한 사람을 경계 배치하고 남은 인원은 능선 밑의 바위 옆에 모여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렸다.

 우리는 침묵을 지키면서 날 밝기만을 기다렸다. 동녘 하늘이 뿌옇게 트기 시작하고 조금 지나니 적진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각자 정위치!"

 기관총을 중심으로 대원들을 배치시키고 나는 제 1목표를 직접 조준했다.



 교통호가 훤히 내려다 보였다. 사수에게 인계하고 옆의 기관총을 조준해 보았다. 514고지 정상으로부터 제 1목표 지점으로 연결된 교통호가 한 눈에 들어왔다. 

 분대장이 조준해 논 교통호 복판이 잘 되어 있어서 "움직이는 놈만 있으면 갈겨 대!" 하고 분대장과 사수에게 지시한 다음 중대장에게 보고를 했다.

 "적 진지가 잘 보입니다. 공격 목표를 될 수 있으면 좌측으로 이동시키는 것이 좋겠습니다."

 "알았다! 지원 사격 잘 부탁한다!"

 공격 개시 10분 전.

 드디어 105mm 곡사포와 81mm 지원포 사격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교통호에 명중되는 것은 한방도 없었다. 적군들은 한 놈도 움직이지를 않았었다. 10분간의 지원 포사격이 끝나서야 교통호에서 일제히 나뭇가지로 위장한 중공군이 모습을 나타나더니 사격 자세를 취했다.



 그 때 우리 기관총이 불을 뿜었고 예광탄이 정확하게 중공군 세 놈을 명중시켰다. 다시 두 놈이 일어서다가 불의의 측면 공격을 받고 푹푹 쓰러졌다. 바로 그 때 교통호를 조준하고 있던 분대장이 방아쇠를 당겼다.

 예광탄이 밝히는 지점을 보니 교통호를 따라 내려오다가 정통으로 맞았는지 앞으로 푹 쓰러지며 밑으로 굴렀다. 다시 다섯 놈이 뛰어 내려 오다가 모조리 굴러버렸다. 제 1목표 지점을 보았지만 연막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다. 81mm 박격포는 몇 발씩 연막탄만 쏘아주고 있으나 서북풍이 부는 관계로 좌측 진지는 연막에 싸였다가도 바로 개여서 관측이 잘 되었다.

 제 1목표에 대해서도 계속 사격을 하니 꼼짝 못하고 있다. 그때 중대장으로부터 무전이 왔다.

 "목표 지점에 육박했으니 사격연신하라!"

 나는 제 1목표를 향해 쏘던 기관총 사격을 중지시키고 목표 지점을 관찰했다. 그 때 두 놈이 고개를 들고 일어났다.

 "쏴!"

 총탄은 다시 명중하여 푹 쓰러진다. 적들은 150m 거리의 측 후방에서 사격하고 있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중대장으로부터 다시 사격 연신하라는 지시를 받고 514 고지 교통호를 조준케 했다. 그때 분대장의 기관총이 한 상자를 다 쏘고 실탄을 장진했었다.

 그 틈을 이용해서 뛰어 내려오고 있던 5-6명에게 대기하고 있었던 다른 기관총이 불을 토했고 뛰어 내려오던 적병은 탄력 때문에 정지하지 못하고 모두 기관총 실탄에 맞아 나가 뒹굴었다.

 "소대장님! 점령했습니다."

 탄약수가 소리를 쳐서 제 1목표를 돌아보니 아군 2명이 올라와서 참호를 향하여 M1 소총을 쏘고 이어서 수류탄을 투척하고 있었다. 수류탄 폭음이 나고 뒤이어 10여 명이 올라와서는 514고지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바로 그 때, "쉬익! 쉬익!" 하며 적의 포탄이 우리를 향해 날아왔다. 그러나 너무나도 날카로운 봉우리라 명중시킨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직사포가 아니 곡사포라면 명중이 가능할까, 포탄은 50m 쯤 후방에서 터졌다. 다시 두 발이 날아오더니 전방 산 밑에서 터졌다.

 우리는 그 조준선상 밖에 있었다. 나는 마음을 놓고 514고지 교통호 시발점에 대고 쏘도록 하고, 기관총 1 정을 내가 직접 적의 철수로를 향해 조준했다. 아니나 다를까 적병 수 십 명이 자세를 구부리고 철수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곳을 향해 가로 활대와 세로 활대를 다 풀어놓고 좌우상하로 마구 갈겨댔다.

 더러는 맞아 쓰러지고 더러는 능선너머로 도망쳤다. 공격 소대는 514고지 9부 능선에까지 도달했다. "따쿵!" 소리가 들려 나는 기관총을 놔두고 뒷걸음쳐서 산 뒤로 몸을 낮추며 대원들을 차폐시켰다.

 뒤이어 "따따따---!" 수백발의 실탄이 우리를 향하여 날아왔다. "땡!" 하는 금속성이 들리더니 기관총이 굴렀다. 나는 구르는 기관총을 한 손으로 잡자 옆에 있던 사수가 다리 부분을 같이 잡았다.

 기관총 삼각대에 총탄이 맞아 쇠가 우그러지고 맞을 때의 충격으로 굴렀던 것이다. 포탄과 소총탄도 사격이 중단되어 고개를 들고 보니 514고지 정상에 1명이 뛰어 올라가더니 수류탄을 후사면을 향하여 힘껏 던지고 앉아서 소총을 마구 쏘더니 옆으로 쓰러졌다. 곧이어 10여명이 올라가 앞드려서 도주하는 적을 향해서 쏘았다.


                                           [영화 고지전의 돌격장면]

 81mm 박격포와 61mm 박격포가 도주하는 적을 향해 맹타하고 사단포는 적의 후방 포진지를 향해 때렸다.

 그 때 정찰기 한 대가 날아와 전방을 두 바퀴 돌았는데 무스탕 전투기 3대가 날아왔다. 정찰기는 적진으로 내려 박히는가 했더니 치솟아 올랐고 연막탄이 터져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전투기 3대는 기수를 아래로 쏜살같이 내려 박으며 기관총 사격에 이어 로케트 사격을 하고 치솟았다. 교대로 때리던 전투기는 폭탄 2개씩을 떨어뜨리고 마지막으로 네이팜 탄의 불바다를 만든 다음 유유히 남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이렇게 해서 난공불락이던 514고지는 점령하게 되었다. 중대장으로부터 철수명령을 받은 나는 병력을 인솔하고 제 1목표로 올라갔다.

 "분대장 몇 놈이나 죽었나 세어 봐!"

 가슴 높이까지 파논 교통호에는 중공군들이 발 들여 놀 틈도 없이 죽어 있었다. 그런데 총 맞아 죽은 자 같지 않게 옆으로 누워있는 자가 있어서 나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그자의 가슴을 향해 카빈총을 한 발 쏘았다.

 그 중공군은 "아---!" 소리를 지르며 고통의 몸부림을 치다가 죽어갔다.

 "이 뙤놈들 봐라! 죽은 척하고 누워있어 어이 너희들 교통호와 벙커 속에 있는 놈들 모조리 한방씩 쏴 버려!"

 대원들이 모조리 확인 사살을 하니 벙커 속에서 한 놈이 손을 들고 나왔다. 일일이 확인 사살을 한 다음 포로를 나무에 묶어 놓았다. 중대장과 잔여 중대원들이 모두 올라왔다.

 "정 소위 공로가 컸소! 정말 수고했소."

 "아닙니다. 중대원들이 중대장님을 중심으로 단결했었기 때문입니다."

 514고지에 방어 부대를 배치하고 교대 부대가 도착할 때를 기다리는데 1소대장이 보고를 한다.

 "중대장님 뙤놈들 시체가 121구나 됩니다. 이 고지 뒤에 즐비합니다."

 "1소대장 오늘 잘 싸웠어!"

 나는 1 소대장 손을 꽉 쥐고 번쩍 올려주었다.

 "아닙니다. 특공대 덕입니다! 뙤놈들이 고개를 들지 못하니 별로 저항도 받지 않고 점령할 수가 있었습니다."

 광주 곤지암 514 고지 전투에서 중공군을 섬멸하고 고지를 점령했지만 아군들도 실패한 1차 공격과 성공한 2차 공격에서 40명의 전사자가 발생했다. 기발한 기습으로 점령을 했었지만 큰 격전이었다. 이 전투의 특징은 여순 203 고지와 같이 적이 신체적으로 접근 또는 공격해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방심하는 곳에 의외로 화력만은 마음대로 도달하는 허점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1951년 6월 27일 강 건너에 국군이 떠난 것을 안심하고 도강하다가 측면 봉의산에 있던 인접 부대가 1km가 넘는 장거리에서 퍼부은 대전차포와 기관총, 그리고 박격포, 곡사포등의 화력에 섬멸된 북한군의 사례를 생각하게 한다.

 정철모 씨는 후에 중공군에게 포로가 되었지만 탈출해서 북상, 신의주 앞 바다에 있는(유격대가 점령하고 있는) 섬을 거쳐 귀환한 특이한 이력이 있다. 당시 책에는 소령 때 전역하여 공무원을 하다가 개인 사업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몇 년 뒤 잡지에서 보니 정 철모 씨가 6ㆍ25 때 헤어진 연인과 다시 결합했다는 기사가 있던 것을 본 기억이 난다. //끝//



 

Posted by LG Innotek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hp 5600 tattoo cartridges 2012.04.30 13: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거의 그 위에 새해를 찾기 이전에 몇 시간 있었 때문에 우리가이 페이지를 찾는 것을 따라서 열광적이다. 사람은 진리에 상당히 문제를 해결하고 또한이 기사를 기존 보고서를 읽고 나는 문제의이 종류에있는 새것과 편리한 정보를 많이 발견했습니다. 이러한 특정을 드러내는 주셔서 감사합니다!

  2. lexmark inkjet cartridges 27 2012.04.30 13: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은 절대적으로 우수한 교육을 현재 웹사이트를 통해 진행해야했습니다. 그것은 정말 좋은 사실에 의해 위치하고 제대로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면 상상력을 사용하는 동안 경계를 운영하고있다. 내 자신의 노트북에서 일반적으로 오른쪽이 웹 사이트 백업 보자. 감사와 공유

  3. how to refill lexmark ink cartridges 33 2012.04.30 13: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단지 놀라운 게시! 우리는 의심할 여지없이 그들을 통해 읽고 즐겁게 생각하면 놀라운 기사 작가가 될 것입니다. 귀하의 블로그 게시물을 기념 예약 가능성 및 급속히 잠시 돌아 올 것이다. 제가 작성 대단한을 계속할 것을 장려하고자, 좋은 저녁 보유!

  4. Good Relationship With Symeons Greek Restaurant 2014.02.15 23: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간 있었 때문에 우리가이 페이지를 찾는 것을 따라서 열광적이다. 사람은 진리에 상당히 문제를 해결하고 또한이 기사를 기존 보고서를 읽고 나는 문제의이 종류에있는 새것과 편리한 정보

  5. cash value life insurance 2014.02.19 17: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향해 출발하였다. 기관총 1정당 실탄 400발과 소총 실탄 80발, 수류탄 4개씩을 휴대하고 눈을 헤치며 앞으로

  6. Pretty Little Liars online 2014.02.20 20: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를 향해 출발하였다. 기관총 1정당 실탄 400발과 소총 실탄 80발, 수류탄 4개씩을 휴대하고 눈을 헤치며 앞으

  7. Baby Minding Tips 2014.03.29 19: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뒤이어 "따따따---!" 수백발의 실탄이 우리를 향하여 날아왔다. "땡!" 하는 금속성이 들리더니 기관총이 굴렀다. 나는 구르는 기관총을 한 손으로 잡자 옆에 있던 사수가 다리 부분을 같이 잡았다.

북 99식 소총과 아식 보총의 춘천 대결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1.11.15 08:07

[1950년  대의 봉의산과 오른쪽 춘천 시내  봉의산 오른쪽에 북한군이 전차를 앞세우고 들어온 소양교가 보인다.]



 1950년 춘천 전투는 16포병대대와 7연대의 선전(善戰)에 의해서 북한군 2사단은 큰 타격을 입었다. 초조해진 군단장 김광협은 양구 쪽의 전선에서 공격했던 정예 7사단 병력 일부를 춘천으로 돌렸다. 결국 전차를 앞세운 7사단이 앞장서서 소양교를 건너 춘천을 점령했다. 이 때가 1950년 6월 28일 정오경이었다.

[SU-76, 소양교 앞에서 두 량이 격파되고 자주포 대대장 현파 소좌가 크게 부상을 입고 후송되었다. 28일 공격한 T-34는 이 자주포를 밀어 버리고 소양교를 건넜다.]



 여기서 춘천 시내에 진주한 북한군 두 사단에 대해서 간단히 알아보자.

 북한군 2사단은 소련군 특무장(원사) 출신 이청송이 사단장이었고 1948년 10월에 나남에서 창설된 사단이다. 춘천 북방에서 그들과 대결한 국군 6사단 7연대보다 4개월 정도 늦게 태어난 부대다.

 7사단은 49년 모택동 군대에서 북한군으로 전입한 부대였다. 부대원들이 중국 내전에서 실전을 경험한 노련한 부대원들이었다. 사단장은 모택동 군에서 간부로 있다가 북한군에 편입된 전우였다.

[북한군 7사단장 전우]



 이들의 기본 무장에 특징이 있었다. 북한에서 창설된 2사단은 모두 소련제 무기로 무장되어서 사병들이 장비한 화기는 소련제 모신 나강 소총이었다. 북한군은 이 총을 아식 보총[我式 步銃]이라고 불렀다.


 구경은 7.62mm였다. 19세기 말 1891년도에 탄생해서 1ㆍ2차 대전을 다 겪은 소총이었다.

 반면 모택동 군에서 북한군으로 넘어 온 7사단은 기본화기가 모두 일제 99식 소총이었다. 일제 99식 소총은 일 패전 후 만주에 진주한 소련군이 항복한 일본 관동군에게서 대량으로 압수한 것들이다. 그들은 일제 소총뿐만아니라 기관총 화포 그리고 탱크들까지도 모택동 군에게 넘겨주었다. 6ㆍ25 침공에 참가한 조선족 부대가 거의 소련 모신 나강이 아닌 99식 소총으로 장비하였었다.

 동두천 방향에서 의정부 전선과 미아리 고개 돌파, 서울 입성, 한강 도강 오산의 스미스 부대를 격파했었던 북한 최강 부대 북 4사단 18연대 소대장이었던 중국 동포 말씀은 소대장들에게는 따발총이 지급되었었지만, 병사들은 모두 99식을 들고 싸웠으며, 서울 점령 뒤에야 소련제 모신 나강이 지급되었다.

 99식 소총은 이전의 38식 소총을 구경을 바꾸고 총신을 짧게 한 것이다. 구경은 7.7mm다.

[99식 소총. 전 모델 38식 6.5mm의 구경과 총신의 길이를 바꾼 것이다.]



 두 총의 구경은 비슷하지만 실탄의 크기는 일제 7.7mm탄이 작다. 즉 추진 장약의 양이 작다는 양이고 따라서 탄속도 느리고, 총소리도 분명히 다르다. 이런 각기 다른 소총을 들고 춘천에 들어 온 두 사단은 북한군의 맹포격으로 불이 붙어 사방으로 퍼진 춘천의 화재 진압부터 해야 했다.

 시가전을 각오 했었던 두 북한군 사단이었지만, 국군은 질서 정연하게 철수해서 춘천 남방 원창 고개에 전개하고 있었다. 춘천 시내로 진주한 북한군 2사단은 밤 9시경 춘천 우체국에 전술 지휘부를 설치했다. 겨우 한숨 돌린 북한군은 여기 저기 자리를 잡고 춘천 첫밤의 숙영에 들어갔다.

[춘천 시내로 앞장서 들어 온 전차와 같은 T-34 형]



 그러나 밤이 깊어지자 긴장했던 북한군 한 명이 움직이는 물체를 보고 총 한 발을 발사했다. 사격 군기가 형편없었던 것을 보면 중국 대륙에서 실전을 많이 겪은 노련한 7사단 병사가 아니라 신편한 2사단 병사가 아닌가 한다.

 이 총성에 근처에 있던 다른 사단 사병이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기들 소총의 발사음과는 전혀 다른 총성이었다. 이미 북한군 2 사단은 침공 첫 날(6월 25일)적진에 몰래 침투해온 7연대 특공대에게 기습을 당해서 혼난 일이 있었다.

 이어 26일 밤에는 소양강 북방에서  7연대 1대대와 2대대에게도 각각 기습을 당해 야간 신경이 고도로 날카로운 상태였었다.

 “국방군 아새끼들의 야습이다!”

 크게 놀란 그는 호들갑을 떨며 즉각 사격을 했다. 그의 호들갑에 놀란 동료들도 이에 합류했다. 실수로 총을 쏘았던 부대도 그냥 있지 않았다. 그들은 대규모 사격에 더 놀랐다.

 “국방군 간나들이 또 습격했다!”

 순식간에 두 북한 사단이 벌이는 총격전의 총성이 심야의 춘천 시가지를 뒤 흔들었다. 사격에 가담한 소총들만 해도 수천 정이었다. 한참을 이 짓을 하던 뒤늦게야 군관들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인접 부대 지휘관끼리 유선으로 확인하고 자기들이 서로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즉시 사격 중지 명령을 내렸지만, 공포에 질린 병사들은 말을 듣지 않았다. 군관들은 욕을 하며 권총을 빼들고 말렸지만, 놀란 사병들은 좀체 사격을 멈추지 않았다.

 서로의 총격전은 무려 한 시간이나 계속 되다가 겨우 끝이 났다.

[1949년 군장 검사하는 7연대 장병들]



 자세한 뒷 이야기는 없었지만 이렇게 마구해 댄 난사에 죽은 북한군들도 상당히 될 것으로 생각된다. 북한군끼리 벌인 오합지졸(烏合之卒)스러운 사격전은 김일성에게까지 알려져 그렇지 않아도 춘천 공격전에서 크게 점수를 잃은 군단장 김광협과 2사단장 이청송, 7사단장 전우가 모두 해임당하는 결과를 가져 오게 했다. 

 *여담이지만 7 사단은 안동 공격 뒤에 12사단으로 변경했다. 6ㆍ25 전사에서 매우 혼란스러운 테마지만 이를 확인하기가 곤란했었다. 마침 참전 7사단 중국 동포의 증언에 있기에 여기에 후기한다.*  //끝//

Posted by LG Innotek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Computer Network 2012.02.10 18: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난 이런 행사를 통해 6.25전쟁이 어떻게 전쟁이 났는지 알게되었다.
    그리고 내가 봉사를 많이하고 돈을 아껴써야되는 것도 깨달게되었다
    난 이런 캠페인이 더욱더 개발되어 더 많은 사람들한테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2. car insurance quotes britain 2012.05.01 11: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도 그래서 관심을 완전히 신선 준비하는 데 도움이됩니다 그것도 아주 세련된입니다. 작은 천사가 완료됩니다. 그들은 마음이 많은 역경에 부담 무섭지 않을 테니. 사이트 사이트에 당신은 그들을 아늑하고 배치할 수 이외에 단지 한랭의 움직임에 트래픽 보호막 측면을 대상으로.

  3. ins quotes vehicle ireland in europe 2012.05.01 11: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의 환상적인 제품은 사람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나는 사전에 것들 요소 통과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너무 대단해요. 난 당신이 지금 여기에 나열된 모든 것을 좋아해요. 당신이 접대 아이디어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여전히​​ sensible.This 정말 멋진 사이트가 귀하의 공유를 주셔서 감사 실제로 유지하기 위하여 그것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4. perplexed car insurance estimates 2012.05.08 10: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크레 더블, 좋은 게시물이 이에 대해 한 게시물에 people.Be 확실하게하기 위해 공개하여 p​​osting.Appreciate하여 충분한 자원을 볼 수 있는지 검색할 수 많은 남성이나 여성이 있습니다.

  5. phen375 2013.03.05 19: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I don't think there is such thing as this friendly car. Now I got to learn something from it. It's really awesomeな

  6. discount scrubs 2013.03.26 19: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Great post i must say and thanks for the information. Education is definitely a sticky subject.물이

  7. Kealan 2013.04.05 21: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 준위의 드라마틱한 삶은 페인의 인생과 비교되며, 좋은 영

  8. ChatRandom 2013.05.02 01: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950년 춘천 전투는 16포병대대와 7연대의 선전(善戰)에 의해서 북한군 2사단은 큰 타격을 입었다.

  9. wholesale picture frames 2013.05.05 01: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른 Writing most likely began as a consequence of political expansion in ancient cultures, which needed reliable means for transmitting information, maintaining financial accounts, keeping historical records, and similar activities

호주 공군 6ㆍ25전쟁 참전기(2/2)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1.11.14 13:15

 미그 15기 성능이 이렇게 막강했었던 것은 독일 메서슈미트 제트기에서 영향을 받은 유선형 날개와 영국 정부가 실수로 제공한 롤스 로이스 넨(NENE) 엔진을 카피 생산한 크리모프 RD-45 엔진의 덕택이었다. 넨 엔진은 미국이 해군 전투기 F9F 팬서기(6ㆍ25전쟁 참전)에 장착할 것을 검토하기도 했을 만큼 우수한 기능을 발휘했었다.

[미 해군 F9F 팬더기 - 미국 라이센스 생산 넨 엔진 장착을 계획하다가 변형하였다. 6ㆍ25전쟁에서  미그기들과 격돌하여 이를 격추하기도 했었다.]



 소련 미그 항공기 국은 신형기의 기체 디자인은 완료했지만 그 디자인을 뒷받침 해줄 엔진이 없어서 고민하고 있었다. 소련 엔진 설계자들은 허탕 칠 셈하고 영국에 엔진을 구해 보기로 했다. 그 때 영국에 갔던 디자이너 인솔자가 넨 엔진을 복사한 엔진을 만들어낸 크리모프였다.

 당시는 영국이 진보파인 노동당이 집권하고 있었을 때다. 소련의 스탈린조차 영국이 그런 최고 기밀을 넘겨주겠느냐며 하며 믿지를 않았었는데 친소파인 상무장관 스테포드 크립스 경이 의외로 선선히 넘겨주어 MIG-15기의 탄생을 도왔다.

 영국의 챔버린 정부가 히틀러에게 유화 정책을 썼다가 큰 피해를 보았었는데 이번에도 그런 실수를 했었다. 엔진 개발사 롤스 로이스 사는 소련이 불법 카피한 자사 제품에 대해서 로얄티를 제공받지 못했었다. 당시 넨 엔진은 그 후 소련이 개발하는 모든 제트 전투기와 제트 폭격기들의 시발점이 되었다.

 영국이 생각 없이 넘겨준 엔진은 결국 자기 발등을 찍는 결과를 가져왔다. 호주 공군 77비행대대의 기종 전환은 1951년 4월부터 7월 사이 일본 이와쿠니 기지에서 이루어졌다. 호주 공군 조종사들은 미티어 기의 성능에 상당한 자신을 가졌었다.

 하지만 현실을 냉혹하였다. 미티어 기가 작전에 전개 되면서 일본 이와쿠니 기지 상공에서 행해진 F-86기들과 모의 공중전들이 있었다.

[미티어 기]



 미티어 기는 이 F-86기와의 공중전에서 열세를 보였다. 단지 상승력이 약간 앞섰을 따름이다. 미그기를 상대해본 미 공군은 이 미티어 기가 미그 15기와 결투하는 것은 역부족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이 영국제 전투기에 대한 사용 영역에 대한 미 공군과 호주 공군 사이에 격론이 있었다. 호주 공군이 미티어 기가 원래 제작된 목표대로 요격 목적으로 사용하겠다는 입장이었고 미국은 미티어의 성능과 변한 공중 작전 상황에서 필요한 지상지원을 하는 것이 좋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호주 공군은 미티어 기가 F-86기가 상승력에서 우세를 보였을 뿐만 아니라 저공에서도 선회 능력이 미그기보다 나을 수도 있다는 사실로 미그 15기를 상대할 만하다고 믿었다.

 미국ㆍ호주 공군 사이에 열띤 논쟁이 오갔지만, 호주 공군은 미군의 권고를 거절하고 미티어 기로 미그 15기와 맞서 보기로 하였다. 그러나 공산기와 맞대결을 자주 해보아서 경험을 축적한 미 공군의 판단이 역시 맞았다.

 미티어 편대는 1951년 7월 29일 김포 비행장에서 최초로 북한을 향해 출격을 했다. 1951년 8월 29일 고대했던 미티어 기와 미그기의 결투가 압록강 상공에서 벌어졌다. 첫 대결은 미티어 기의 패배로 결말이 났었다.

 77 비행대대 미티어 조종사 론 거트리가 조종하는 미티어 기는 미그 15기에게 격추 당했다. 조종사 론 거트리 준위는 38,300 피트의 고공에서 낙하산으로 비상 탈출하였다. 그는 피까지 어는 것 같은 차가운 고공 대기를 뚫고 지상까지 20분이나 걸려 낙하 했지만 멀리서 보고 달려와 대기하고 있던 북한군에게 포로가 되어 전쟁이 끝날 때까지 포로 수용소에서 지내야했다.

[론 거트리 준위]



 1951년 12월 1일은 미티어 기 대참사의 날이었다. 14기의 미티어 기는 북한 북방에서 50여기의 미그 15기 대군에 습격을 받았다. 중과부적의 적 미그기들과 힘겨운 공중전을 벌였던 호주 미티어 부대는 적 미그 15기 1기를 격추했지만, 호주 미티어 기 3대가 격추 당했다.

 그 중 한 명인 반스 드럼몬드 상사는 평양 동남쪽에서 낙하산으로 탈출했다가 포로가 되었다. 비록 중과 부족의 상황이었지만 미티어기의 완전한 참패였다. 소련 전투기 조종사의 회고에 의하며 역시 F-86 전투기가 가장 상대하기 힘든 연합국측 전투기였었고, 다음으로 힘든 것이 F-84였으며 그 다음이 F-80, 그리고 미티어 기가 가장 격추하기 쉬었다고 다는 것이었다.

 미티어 기는 날렵한 미그 15기를 상대하기에 너무 크고 느리고 둔했다는 평가였다. 엔진을 잠재 적국에 넘겨주어 미그 15기 같은 걸작을 탄생시킨 영국이 제작한 미티어 기가 제일 열악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아니 할 수가 없다.

[한국 주둔의 호주 공군 미티어 기]



 호주 공군은 공중전에서 미티어 기가 열세에 있다는 비참한 결과를 앞으로의 작전에 반영하여야 했다. 호주 77비행대대장은 배속된 5공군 사령관에게 미티어 기들의 작전 구역을 미그 15기의 위협이 적은 북한 남쪽으로 한정해달라는 건의를 했다.

 새로 부임한 5공군 사령관으로부터 요청을 승낙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미터어 기들은 벅찬 미그 15기와 결투를 포기하고 대신 지상 공격에만 전념하기로 했다. 미 공군의 성능이 떨어지는 F-80 슈팅 스타나 F-84 선더 제트는 이미 그 임무를 대지 공격으로 전환 받았었다.

 비록 미그 기들이 출몰하는 북한 북쪽의 출격을 중지하고, 북한 남쪽 대지 공격에만 전념했지만 1953년 미티어기들은 바로 전선 북쪽 사리원 상공까지 내려온 미그기들과 격돌한 일이 있었다.

 그간 미공군들은 적지에 격돌을 피하고 숨어만 다니는 공산군 공군에서 피하지만 말고 정정당당하게 나와 한판 붙자는 조롱의 전단지를 뿌렸는데 이에 자극받은 공산군 MIG-15기들이 보조 연료 탱크를 부착하고 남쪽 깊숙이 기습해 온 것이다. 미티어 기가 미그기와 한판 붙을 뻔했는데 미 공군 18비행단의 소령의 F-86 달려와서 한 기의 미그기를 격추하여 미티어기는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다.

 전쟁이 2년간 지나자 호주 공군은 조종사 부족 문제에 시달리게 되었다. 1952년부터 호주 공군은 영국공군 남아연방공군 뉴질랜드 공군으로부터 조종사를 파견 받아 비행대를 운용해야했다. 적 포화로 격추되는 전투기들도 많았고, 고참 조종사 자원들이 자꾸 줄어들어 전쟁끝 무렵에 호주 본토에서 한국으로 배치되는 조종사는 갓 비행 학교를 졸업한 평균 연령 20살의 어린 조종사들이었다.

 77비행단의 조종사들은 19,000 개인 출격을 기록했다. 호주 조종사들의 고되고 희생큰 활약은 외교적으로도 큰 결실을 가져 왔다. 그들의 뛰어난 능력은 미국으로 하여금 호주나 뉴질랜드가 염원하던 미국 뉴질랜드 호주의 군사 동맹 조약인 ANZUS 조약이 탄생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호주는 공군뿐만 아니라 항공모함 15700톤급의 HMS 시드니도 파견하였다.]



 3년간의 6ㆍ25전쟁 참전동안 77비행대대는 명성을 얻는 대신 값비싼 댓가를 치렀다. 40명의 조종사가 한국 방어를 위한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다. 30명은 전투 비행중 격추되어 전사했고, 8명은 사고로, 2명은 지상 사고로 희생되었다.

 6명은 격추된 후에 탈출했지만 공산군에게 포로가 되었다. 비행대대가 운용했던 90기의 미티어 기 중 54기가 격추ㆍ추락ㆍ 파손 등의 원인으로 손실되었다.

[미티어 기]



 77 비행대대는 전후 1954년 3월까지 김포에 주둔하고 있다가 다시 군산 비행장으로 이동하여 미국으로 들어가는 미공군 F-84 49 비행대대의 공백을 매웠었다. 그러나 비행대대 본부는 일본 이와쿠니로 돌아 와서 한 달 주기로 돌아가며 군산 비행장에 돌아와 주둔했었다.

 휴전이 되자 77비행대대는 일본으로 돌아갔다가 1954년 11월 선편으로 일본을 떠났다. 77비행대대는 1954년 12월 3일 호주로 돌아왔다. 여담이지만 호주의 미티어기는 한국을 떠났지만 호주기라는 애칭을 50~60년대 한국에 남겼었다. 김포와 군산 비행장을 오가며 활동하던 미티어기는 그 독특한 디자인의 기체가 한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었다.

 한국인들은 미티어같은 수직익을 가진 미군의 F-80, F-84들도 호주기라고 총칭했었다. 호주기의 인상은 전투기에서 머물지 않고 한국 일반 사회에 까지 퍼졌었다. 동작이 빠른 사람을 호주기라고 별명을 짓는 등 한국 민족은 호주기를 빠른 것의 대명사로 활용하였다

 77비행대대는 현재 미 해군이 쓰는 것과 같은 형인 F/A 18 호넷기로 장비하고 호주 영공을 지키고 있다. //끝//



 

Posted by LG Innotek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이전 댓글 더보기
  2. Merchant Services 2014.02.23 01: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러분들이 단순히 제공하는 그녀에게 매우 팁을주는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더 중요한 아이디어와 더 많은 사이트에 대해 예측하고 있습니다. 것들은 행복한 사람은 이런 종류의 정보는 다음 선물 바구니를 가지고 있습니다.

  3. Payment Processing Solutions 2014.02.24 16: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The aboriginal time I saw this blog I was anon afflicted because this is actual acceptable blog.. I achievement you can broadcast advantageous accessories again.. Actual usefull information.. thx for sharing잠재 고객으로 문을 입력

  4. online casino 2014.03.01 20: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는 일본으로 돌아갔다가 1954년 11월 선편으로 일본을 떠났다. 77비행대대는 1954년 12월 3일 호주로 돌아왔다. 여담이지만 호주의 미티어기는 한국을 떠났지만 호주기라는 애칭을 50~60년대 한국에 남겼었다. 김포와 군산 비행장을 오가며 활동하던 미티어기는 그 독특한 디자인의 기체가 한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었다.

  5. what does bubblegum casting do 2014.03.02 02: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는 일본으로 돌아갔다가 1954년 11월 선편으로 일본을 떠났다. 77비행대대는 1954년 12월 3일 호주로 돌아왔다. 여담이지만 호주의 미티어기는 한국을 떠났지만 호주기라는 애칭을 50~60년대 한국에 남겼었다. 김포와 군산 비행장을 오가며 활동하던 미티어기는 그 독특한 디자인의 기체가 한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었다.

  6. baju kerja 2014.03.13 20: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러분들이 단순히 제공하는 그녀에게 매우 팁을주는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더 중요한 아이디어와 더 많은 사이트에 대해 예측하고 있습니다. 것들은 행복한 사람은 이런 종류의 정보는 다음 선물 바구니를 가지고 있습니다.

  7. accounting tutor 2014.03.22 21: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착 할것입니다, 일부 직접 물어 직원을 요구하고 있습니다.그들이 당신에게 무언가를 판매하거나 제공하려는 경우에도 언젠가는 당신에게서 물건을 구입해야 할 수 있기 때문에 잠재 고객으로 문을 입력 사람을 취급합니다.

  8. what does bubblegum casting do 2014.03.23 19: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매혹이다. 당신은 실제로 정보와 매우 교묘하게 유지하고. 사람은 남자와 여자가​​하는 모든 사람을위한 피사체가 재미있는 만들어 실현할 수있는 무언가를 발간했습니다. 지금은 잠재력의 사용을 위해 이런 종류의인양 해요.

  9. Cruz Blanca Salud Homepage 2014.03.29 18: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에서 낙하산으로 비상 탈출하였다. 그는 피까지 어는 것 같은 차가운 고공 대기를 뚫고 지상까지 20분이나 걸려 낙하 했지만 멀리서 보고 달려와 대기하고 있던 북한군에게 포로가 되어 전쟁이 끝날 때까지 포로 수용소에서 지내야했다.

  10. utah web design 2014.04.04 05: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시는 영국이 진보파인 노동당이 집권하고 있었을 때다. 소련의 스탈린조차 영국이 그런 최고 기밀을 넘겨주겠느냐며 하며 믿지를 않았었는데 친소파인 상무장관 스테포드 크립스 경이 의외로 선선히 넘겨주어 MIG-15기의 탄생을 도왔다.

  11. is bubblegum casting legitimate 2014.04.06 18: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발견했습니다. 또한 비즈니스 카드 또는 청구서의 뒷면에 부착 할것입니다, 일부 직접 물어 직원을 요구하고 있습니다.그들이 당신에게 무언가를 판매하거나 제공하려는 경우에도 언젠가는 당신에게서 물건을 구입해야 할 수 있기 때문에 잠재 고객으로

  12. Daniel Houghton 2014.04.09 21: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This is a nice clinical innovation you have used. I am not in the medicine field but i find this blog really amusing. Keep blogging more on medicine. 안

  13. roofing companies seattle 2014.04.13 15: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로그에 표시됩니다에 내가 정말 존경하고 있습니다. 이 블로그에 놀라운 서비스를 공유 많이

  14. 2014.04.26 16: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5. 2014.04.26 16: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6. friv 2014.04.26 16: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업의 수는이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또한 비즈니스 카드 또는 청구서의 뒷면에 부착 할것입니다.그들이 당신에게 무언가를 판매하거나 제공하려는 경우에도 언젠가는 당신에게서 물건을 구입해야 할 수 있기 때문에 잠재 고객으로 문을 입력 사람을 취급합니다.

  17. handmade 2014.04.26 16: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구서의 뒷면에 부착 할것입니다, 일부 직접 물어 직원을 요구하고 있습니다.그들이 당신에게 무언가를 판매하거나 제공하려

  18. best pregnancy test 2014.05.12 02: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달하기 위해 사용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또한 비즈니스 카드 또는 청구서의 뒷면에 부착 할것입니다.그들이 당신에게 무언가를 판매하거나 제공하려는 경우에도 언젠가는 당신에게서 물건을 구입해야 할 수 있기 때문에 잠재 고객으로 문을 입력 사람을 취급합니

  19. reishimushroom.pw 2014.05.17 16: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에 대한 미 공군과 호주 공군 사이에 격론이 있었다. 호주 공군이 미티어 기가 원래 제작된 목표대로 요격 목적으로 사용하겠다는 입장이었고 미국은 미티어의 성능과 변한 공중 작전 상황에서 필요한 지

  20. reishi mushrooms 2014.05.22 22: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달하기 위해 사용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또한 비즈니스 카드 또는 청구서의 뒷면에 부착 할것입니다.그들이 당신에게 무언가를 판매하거나 제공하려는 경우에도 언젠가는 당신에게서 물건을 구입해야 할 수 있기 때문에 잠재 고객으로 문을 입력 사람을 취급합니

  21. onlinecasino 777 2014.05.24 07: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에 대한 미 공군과 호주 공군 사이에 격론이 있었다. 호주 공군이 미티어 기가 원래 제작된 목표대로 요격 목적으로 사용하겠다는 입장이었고 미국은 미티어의 성능과 변한 공중 작전 상황에서 필요한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