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해병 전차대의 서울 관통 작전(2/3)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1.04.06 14:52

어지럽게 파괴 된 거리에 땅거미가 스며드는 저녁이 되었지만
해병들은 아직도 시가지 전투의 수렁 속에서 좀체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었다.

서울 시가전 -요소요소에 파놓은 참호가 인상적이다.

저항하는 북한군의 표독스러운 독기는 아직 식지를 않았다.
주도로와 옆 골목에서 총격전이 간단없이 터졌다.

적의 저항은 서쪽 산(봉원사 주변 산)에서 제일 격렬했다.
이 방면 공격을 감행하던 머래이 중령의 5연대는
아직 능선을 넘지 못하고 고전을 하고 있었다.

해병들이 예상하지 못하던 적의 저항에 고전하며
작전계획대로 전진하지 못하고 전황이 지지부진하자
해병 1사단이 배속 된 육군 10군단장 아몬드 장군은 노발대발하며
1사단장 스미스 소장에게 밤을 지새우더라도 공격을 계속하라고 윽박질렀다.

아몬드는 맥아더의 신임을 받았지만 일종의 만용스런 기질이 있어
예하 부대를 휘몰아쳐 곤란한 지경에 몰아넣는 일이 자주 있었다.

평소 성질마저 독선적이어서 학자형의 점잖은 해병 1사단장
스미스 소장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사실 첩첩 건물들이 밀집한 도시에서 야간 진격은 무리였다.
스미스 소장은 아몬드 장군에게 실정을 설명하고 명령 철회를 요청했다.

사단장이 말을 듣지 않자 대노한 아몬드 장군은 스미스 장군을 건너 뛰어
마포로를 공격하는 풀러 1연대장에게  직접 공격을 명령했다.

맹장으로 유명한 풀러 연대장이었지만
그도 무리한 아몬드의 명령에 내심 크게 분개했다.
그러나 겉으로는 그의 명령에 복종하며
2시쯤 야간 공격을 개시하겠다고 대답은 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잘 알지도 못하는 이 도시에서
정말 야간 공격을 해야 하는지 고민을 했다.

육군 군단장과 해병 지휘관들의 갈등이 격화된 상황에서
묘하게도 북한군이 이 갈등을 자연스럽게 해결해주었다.

북한군은 자정부터 파상 역습을 가해왔다.
북한군의 첫번째 야간 공격은 서대문 형무소 뒷산에 연결된 105-N고지를 노렸다.

5연대는 막강한 화력을 동원해서 북한군을 격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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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 5연대와 7연대가 공격한 서울 서쪽 지역에
해발 105미터가 되는 고지가 세 개가 있었다.
구별을 위해서 제일 북쪽의 105고지는 105-N(north),
경의선 터널이 있는 충정로 옆의 고지는 105-M(middle),
맨 아래 남쪽 노고산이 105- S(south)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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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의 팔로군 출신 북한군 25여단장 장 월기 대좌는
이판사판으로 최후의 대반격을 발령했던 것이다.
서쪽 능선 공격은 전력 탐색과 전력 분산을 위한 일종의 양동작전이었다.
적의 주목표는 마포로의 1연대였다.

01:58분
북한군이 총력을 동원한 주력의 공격은 있었다.
500명의 북한군 주력은 7량이나 되는 T-34전차들과
2량의 SU자주포의 지원을 받고 01:58분 마포로 밀고 내려왔다.

30대의 중령으로 5연대장이었던 머래이 중령.
태평양 전쟁에서 수훈을 세운 경험 많은 지휘관이다.
장진호 유담리에서 리첸버그 대령의 7연대와 함께
압도적인 중공군을 대상으로 큰 전공을 세웠다.

풀러의 1연대는 후방에 포진한 포병을 총가동해서
가공할 화력으로 북한군의 공격을 분쇄 해버렸다.

이판사판의 심정으로 있는 전력을 다 긁어모아 결행했던
북한군 25여단의 역습은 02:30 숱한 사상자와 장비를 내버리고
패주하는 결과로 끝장이 났다.

단지 SU-76 한 량이 새벽까지 포를 쏴대며 저항을 했지만
날이 밝자 이것도 격파되었다.

SU-76 자주포 -소련군은 이 자주포를 수크(암캐)라는 별칭으로 불렀다.

날이 밝아 9월 26일이 되었다. 해병 1연대와 B 전차 중대는
시내 전차 철로를 따라 신중하게 전진을 시작했다.

마포로 진격한 해병 1연대는 적의 자살적인 육탄 공격을 경계해서
전차를 에워싸듯이 호위했지만
때로는 전차도 좁은 골목도 수색해야 하는 상황에서
전차들의 손실을 어쩔 수없이 발생했다.

공격 재개후 커밍스 중위의 탱크가 아군이 매설한 대전차 지뢰를 밟았다.

전날 밤 해병 공병대가 북한군 전차의 야습에 대비해서 매설했던 지뢰였다.

아침이 되면 매설했던 지뢰는 다시 수거해야 했는데
북한군의 야간 공격이 빚은 혼란 중에 공병이 이를 망각했던 것이다,

지뢰 폭발에 커닝햄의 전차 궤도 전면부가 대파되었다.
화염 방사 전차 한 량은 갑자기 달려 든 북한 특공병이 던진 폭발물 뭉치가
엔진 상판 후방에 떨어져 역시 엔진이 사용 불능 상태로 파괴되었다.
북한 특공병 역시 폭발에 사지가 날아가 전사를 했다.

태평양 전쟁 시 유황도에서 전투중인 M4A3 화염방사 전차. 월미도에서 큰 활약을 했다.

전진 도중 보병들은 전차를 엄호하기 위해서 전차에 밀착하기도 했지만
적의 사격에서 보호받기 위해서도 전차에 밀착하는 경우가 많았다.

전차에 바짝 다가붙었다가 피해를 입는 보병들도 있었다.
보병이 엄폐를 위해 전차에 밀착하는 동안 적의 격멸을 하기 위해서
전차포 사격을 해야 할 긴급한 경우가 여러 번 생겼었다.

전차 소대장 스위트 중위는 만년에 이렇게 회상했다.
“갑자기 사격할 때마다 보병들에게 미안했죠. 고막이 날아간 친구도 한 명이 있었어요.”

그의 옆에 있던 전우 헤이니는 그 말에 첨부 설명을 했다.
“한 보병 소대장이 진격 중에 전차 포구 옆에 서 있었어요.
우리는 접적(接敵)상황이 다급해서 발사했죠.
그런데 나중에 보니 포구에서 쏟아지는 화염이 그의 얼굴에 큰 화상을 입혔고
수염을 다 태워 버렸더군요. 그는 오랫동안 듣지 못했을 겁니다.”

한편 서울 서쪽 서대문 형무소 방향에서 7연대 2대대가
양쪽에 큰 산들이 늘어선 서대문-홍제동 길을 따라 진격했다.
적들은 서대문 형무소 담에 의지해서 강하게 저항했다.

북한 증원병들이 양쪽 산에서 속속 달려 내려와 형무소 저지선에 증강되었다.

5연대 2대대는 어느새 북한군에게 포위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전차대가 공격해서 구출하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다음날 아침 보병 중대와 체이서 대위의 D전차 중대가 능선에 진지를 구축하고
포위망을 만들고 있던 북한군을 패주시키고 2대대를 구출하였다.

9월 27일
5연대가 서대문 북쪽 인왕산 자락의 북한군을 소탕하고 이 일대 산악 지역을 확보하자
비로소 해병 3개 연대가 서울의 중심부를 진격할 진형이 완비가 되었다.

1연대는 서울 탈환 마지막 작전에 시동을 걸었다.
운이 없어 아군의 지뢰를 밟고 전차가 파괴되었던 커닝험 중위의 소대가
연대의 선봉에 섰다.

궤도가 대파되었던 그의 전차는 정비반의 밤샘 정비의 덕택에 기동이 다시 가능해졌다.

그러나 그의 불운한 전차는 전진 얼마 뒤에 다시 지뢰를 건드려 앉은뱅이가 되고 말았다.

지뢰 폭발에 파괴 된 전차 - 드물게도 궤도 후방이 당한 경우다.
궤도 전방 부분 파손보다 수리가 훨씬 어렵다.

한편 5연대 2대대를 지원하는 A전차 중대의 2소대는 서대문에서는
적 SU-76 자주포 두 량의 저지를 받았다.
짧은 포화의 교환 끝에 북한군 자주포들은 격파되었다.

그날 계속 된 혼전 중에 북한군의 지휘체계가
협조와 통신 기능을 잃고 붕괴되어 가고 있음이 자주 노출되었다.

전차장 스렛저는 사직공원 옆의 능선을 넘어 경복궁 서쪽지역에 진입하다가
전방 경복궁 앞 큰 대로에 북한군이 출현한 것을 발견하였다.

전차대가 이미 능선을 넘어 경복궁 서쪽 산에 붙었다는 사실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는지
1개 소대 병력의 북한군은 천연스럽게 대오를 갖추어 전차의 화선 앞으로 행군해왔다.

그들이 경복궁 돌담 모퉁이를 끼고 돌 순간 스렛저는 포수 로스에게 사격 명령을 내렸다.

로스는 먼저 넋 놓고 행군하는 북한군에게 주포를 한 방 갈기고
전차 공축 기관총의 방아쇠를 당겨 이들을 빗질하듯이 쓸어 버렸다.
북한군은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가려 했으나 다수가 전차 포화의 밥이 되었다.

해병대의 시가전

한편 A전차중대 2소대의 댄 게그넌은 나중에 이렇게 회상했다.
“시내는 콘크리트의 정글이었습니다.
북한군들은 정글의 주요 빌딩마다에 구멍을 내고 사격을 했습니다.”

댄 개그넌은 시가전에 겪은 여러 경험들을 만년에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전차에 한 보병이 다가와서 도로 옆의 큰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대문 좀 전차로 밀어줘. 우리는 열 수가 없군.”

전차에게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개그넌은 응락했다.
“우리가 열테니까 넌 비켜 서있어!”

보병은 비켜섰다. 개그넌은 전차를 돌려서 후진으로 철문을 밀었다.
전차의 미는 힘에 철문은 나가 떨어졌다.
동시에 엄청난 폭음과 함께 폭발이 전차를 덮쳤다.
북한군이 철문에 부비트랩을 설치했던 것이었다.

개그넌 전차 포탑 후방에 적재했던 식수 캔과 오일캔들이
큰 구멍들이 생겨 물과 오일이 쏟아져 차체를 얼룩지게 하였다.
보병 역시 다리에 파편상을 입고 뒤로 나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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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약을 장치했다는 것을 보면 이 건물이 민간 건물이 아니라
중요 정부 기관이 자리 잡고 있던 빌딩이 아닌가 한다.
그 때 개그넌의 전차는 서울역을 거쳐 남대문로로 전진하고 있었다고 하니
이 건물은 서울시 경찰국 건물이 아니면 한국은행,
또는 중앙 우체국 빌딩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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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그넌은 부비트랩의 폭발을 모면하고 얼마 뒤 시청 광장 북쪽 주변에 도달했다.
두 명의 공병들이 손을 흔들며 전차를 세웠다.

차를 세운 그는 전차 해치를 열고 그들에게 말을 하려고 했지만
엔진 소리 때문에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전차 아래로 내려갔다. 그 순간이었다.

공병 한 명이 팽이처럼 팽글팽글 돌더니 그대로 쓰러져서 숨을 거두었다.

기겁을 한 개그넌은 전차로 뛰어 들어가서 해치를 닫았다.
그는 그가 내리자마자 사격을 한 것은
저격수가 자기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공병이 그 탄을 맞았던 것이다.

그는 저격탄이 날아온 방향을 살펴보았다.
멀리 보이는 시계탑이 있는 건물이 수상했다.
(이것은 당시 국회의사당, 현재의 시의회인듯 했다.)
그 곳을 빼놓고는 저격병이 숨을 곳이 없었다.

그는 고폭탄을 장진케 하고 발사명령을 내렸다.
포탄은 그 시계탑 건물로 빨아 들어가듯 명중했다.
그 뒤에 시청 일대에서 저격은 사라졌다.

9월 27일 16:40분.
북한군의 조직적인 저항은 실질적으로 끝장이 났다.
그들의 부대는 그대로 붕괴되어 버렸다.
북한군들은 무질서하게 동북 쪽으로 패주하였다.

그러나 패잔병들의 산발적인 저항이 여기 저기 있었다.
미군들과 한국군은 서울시 골목골목을 뒤지며 패잔병 소탕을 했다.

이틀 뒤 9월 29일.
중앙청에서 이승만 대통령과 맥아더 원수의 참석하에
다소 성급한 서울 수복의 행사가 있었으나 북한 패잔병의 저항은 여전했다.

중앙청에 깃발을 게양하는 한미 해병대

9월 28에 서울 시내에서 북한군의 마지막 SU-76 자주포가 격파될 만큼
그들의 산발적인 저항은 여전했다. 9월 29일에는 역습을 시도한 소부대가 소탕 되었다.

1연대와 개그넌의 전차 중대는 학교 운동장을 본부로 설정하고 야영에 들어갔다.
서울시를 탈환한 미군들은 절대로 건물을 사용하지 않았다.
주요 빌딩에는 북한군이 장치한 부비트랩이 자주 발견되었었다.

중앙청과 시청 점령 후 보병들은 소탕 작전으로 여전히 바빴으나,
전차병들은 느긋하게 휴식을 즐겼다.

그러나, 서울의 완전한 확보를 위해서 서울 북방의 북한군을 내몰고,
의정부나 문산 같은 외곽 도시를 점령 할 다음의 과제가 남아 있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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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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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병 전차대의 서울 관통 작전(1/3)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1.04.01 10:55

1950년 9월 15일 크로마이트 작전의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미 해병대와 육군,
그리고 한국 해병대는 서울로 진격했다.

부천과 영등포 등에서 전차를 동원한 적의 저항이 있었지만,
모두 격파하고 한강을 건너는 도하작전에 착수한다.

미군은 세 지점에서 한강을 도하했다.

행주나루(5연대 7연대)와 마포나루(1연대)
그리고 동작나루(보병 7사단 32사단과 한국군 수도 사단 17연대)였다.

도하에는 인천에서부터 가져온 상륙정(LVT)이 사용되었다.
9월 24일 마포나루를 도강한 해병 1연대를 마지막으로,
해병 1사단은 한강 이북으로의 전개를 완료했다.
한강 돌파에 성공한 유엔군은 서울탈환작전에 돌입하게 된다.

상륙주정으로 행주나루를 도하하는 한미 해병대
(LVT가 바다가 아니라 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는 한국전이 최초이다)

서울탈환작전에 총 5개 연대 한미 해병과 육군이 동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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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남산을 중심으로 동서로 나누어
동쪽 부분은 동작나루를 도하한 미 육군[7사단 32연대]과
한국군[수도 사단 17연대]의 2개 연대가 공격하고,
미 해병 1사단의 3개 연대는 서울 서쪽을 진격했다.
각 미 해병 연대들에는 한국 해병대 1개 대대들이 배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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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는 서울 서쪽 절반 부분을 상중하로 세 등분해서 작전구역을 세분화했다.

서쪽에서 공격하는 해병 두 개 연대중 7연대가 중앙청 부분을
5연대가 광화문 시청 부분을 그리고
마포나루를 도하한 1연대가 남쪽에서 남대문 부분을 담당했다.

7연대와 5연대의 일부는 사직동 뒷산을 넘어 경복궁과 중앙청을 점령했다.
5연대는 서대문 형무소 남쪽에서 서소문 사이 중간 지대가 전투구역으로
주력이 광화문과 시청 쪽으로 진격했다.

1연대는 마포 로타리를 거쳐 서소문로로 따라 시청 쪽으로 진격했었고,
일부는 서울역을 점령하고 남대문로를 따라
신세계 백화점 앞을 거쳐 시청 쪽으로 진격했다.

한미 해병들과 육군의 공격 배치도

해병들은 위에서 말한 줄기 격인 도로만 따라 선(線)의 전진을 한 것이 아니라,
가지에 해당하는 대로 주변의 골목을 다 소탕하고
주요한 거점은 점령하는 면[面]적인 점령을 해가면서
부채살 같은 형태로 진격해 들어갔다.

이들 서울 탈환작전에 해병 1사단 소속 1전차대대[A, B, C, D중대로 구성]가
중대별로 보병연대들에 배속되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전차들은 중대 단위로 분산하여 각 연대를 배속되어 이들의 서울 진격을 지원했다.

해병대의 전차들은 90mm 전차포를 장비한 M26 전차와

105mm 곡사포를 장비한 M4 셔만 전차가 주 장비였었고
화염 방사 M4 셔만 탱크도 있었다.
그 외에 역시 셔만 전차 버디를 개조한 M32 구난차가 있었다.

M26 퍼싱전차는 제 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 유럽전선에서 처음 선을 보였다

1951년 9월 25일 서울 탈환의 막바지 전투가 개시되었다.

07:00 해병들과 육군은 진격을 개시하였다.

주요 공격 목표는 중앙청과 서울시청의 연결선이었다.

중앙에서 진격하는 5연대는 며칠 동안 서울 연희고지 전투 등 격렬한 전투를 겪었다.

손실 병력이 많고, 인원도 부족해서 연대 해병들은 지쳐 있었다.

그래서 중앙의 5연대와 남쪽의 1연대 사이의 성근 틈을 메울(충정로 남쪽 지대)
작은 특별 기동부대가 파견되었다.

이 미니 기동 부대는 B전차 중대의 2개 전차 소대가 주축이었다.


미니 기동부대에 부여된 임무는 현 서강대 뒷산인 노고산의 확보였다.

해병 5연대와 7연대가 공격했던 안산 연맥들-서대문 홍제동 사이의 서쪽
산들인데 지금은 너무 변해서 어디가 어딘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적은 고지는 며칠전 점령하고 있던 북한군이

미군의 치열한 공격을 받고 도망쳐서 비어 있던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해병들이 모르는 사이 북한군은 다시 돌아와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쉽게 생각하고 산에 오르던 해병의 보병들과 공병 소대는
적의 가혹한 집중 사격을 받았다.

기동대 대장 불르스 윌리암 대위는 M4화염 방사 전차 1량과

M26전차 1량을 긴급히 앞으로 전진시켰다.

두 전차는 노고산 왼쪽 평탄한 지역으로 우회하여

사면에 참호를 파고 있던 북한군을 공격했다.

염 방사 전차는 북한군들에게 접근하여 뜨거운 불비를 퍼부었다.

북한군들은 불길을 피해 참호 밖으로 튀어 나와서 정신없이 도망쳤다.

호에서 쫓겨난 그들은 커밍스 중위가 지휘하는

전차 소대가 대기하던 화망[火網]속으로 뛰어 들었다.

화염 방사 전차의 화염을 피해 무턱대고 도망쳐 나왔다가

전차들의 포화에 죽은 북한군은 약 150여명으로 추산되었다.

더 많은 북한군들이 일대에 파둔 방공호 속이나 산자락 민가에 숨어 있다가

공병 소대와 전차들의 합동 공격으로 일망타진 되었다.

오합지졸로 보이는 이들 포로들 121명의 포로들은
단 두 대의 전차가 후방으로 호송했다.

서울 서쪽에서 서울로 진입하는 해병 전차대
후미가 불도저가 달린 M4A3 전차, 앞이 M26

12시경에야 이들의 소탕을 완료한 커밍스 중위의 전차 소대는
5해병 연대를
지원하기 위해서 5연대와 1연대의 배치 경계선[충정로 선]을 되 넘어 왔다.

루이스 체스티 풀러 대령이

(과달카날에서 대대장으로 전설적인 무공을 세움. 미 최다 무공훈장 수여자임)
지휘하는 1연대는 공격개시 신호와 함께
운행용 전차 철로가 깔린
마포 가도를 따라 서울 심장부로 공격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과달카날 대대장 때의 루이 체스티 풀러
미 해병대의 마스코트인 핏불 테리어와 닮은 인상으로 유명하다

서울 진입의 전투는 바리케이드 전투로 불린다.
북한군은 인천상륙 직후부터 서울 시민을 동원하여
주요 도로 요충지에 2-300미터의 간격으로 전진 방해 바리케이드를 만들었다.

흙을 담은 가마니를 주로하고 돌과 온갖 잡동사니를 쌓아 올려 만든

이 바리케이드 주변에는 적의 지뢰와 저격수와 반 탱크 총이 배치되어 있었다.

북한군 병사들은 빌딩의 지붕이나 창문마다 득실거렸다.

그들은 전진하는 미군들을 저격하거나 휘발유로 만든 사제 폭탄을 던졌다.

바리케이드들의 극복은 매우 느리고 위험하지만

해병들은 즉석에서 체계적인 방법을 고안해서 사용하였다.

먼저 보병들이 바리케이드 주변의 저격수나 기총수들을 사살하거나 패주시켰다.
다음에 공병들이 뛰어 들어 지뢰를 제거하고
그 후에 전차가 바리케이드를 깔아뭉개서 진격로를 열었다.
바리케이드를 한 개를 돌파하는 데에는 약 1시간 정도가 걸렸다.
매우 느린 속도였다.

북한군이 서울 시민들을 강제 동원해서 구축한 바리케이트

나중에 참전장병들이 악몽같이 길게 느껴지던 시가전은
욱한 연기와 화재가 발생한 빌딩들과 사살된 적 시체,
공포에 질려 이리 저리 도망 다니는 서울 시민들 사이에 전개되었다.

구식이 다 된 M4A3 셔만 전차는

서울시의 아주 좁은 골목에서 톡톡히 제 몫을 해내었다.
셔만 전차의 주포는 76mm였다.
그러나 한국으로 출동한 셔만 전차는 근접전용 단포신 105mm포였다.

M26 퍼싱 전차는 90mm 주포의 긴 포신 때문에

사격할 때마다 장애물에 걸려 곤란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M4 전차의 짧은 포신의 105미리 주포는 도로 주변 장애물에 구애 받지 않고,

방 어느 목표든지 360로 회전하여 포를 조준하고 발사할 수가 있었다.

105mm 포신의 M4 셔만 전차. 1951년 춘계공세에서 지뢰에 파괴된 상태

기동이 불가능한 상태에서도 계속 사격한 사실이 전차 옆의 포탄피들이 말해준다.

그래서 지원을 요청하는 보병들에게 신속한 화력을 제공하는 등

서울 시가전 맞춤형 탱크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105mm 포신의 M4 전차 중에는 불도저가 달린 전차도 있었다.

불도저 전차들은 일본군 참호나 동굴 진지를 밀어내는 용도로 사용되었는데

월미도 상륙작전에서 불도저는 파놓은 굴속에 숨어있던
북한군들을 매장하는 임무를 해냈다.

서울에는 이런 것들이 없었으나 불도저 전차는

바리케이드를 제거하는 용도로 안성맞춤이었다.

해병전차들은 북한군의 저격수나 지뢰의 위험뿐만 아니라
북한군의 14.5mm 반탱크 총에 여러 번 저격당하기도 하였다.

14.5mm 반탱크 총

퍼싱 전차는 전면 차체에 3인치의 두께,
포탑에 4.5인치의 두께의 장갑을 가지고 있었다.

14.5mm의 적탄들은 전차의 두꺼운 장갑을 뚫지는 못했다.
그러나 명중한 자리에 직경이 1인치, 깊이가 반 인치되는 큰 흔적을 남겼다.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반 탱크 총이 전차의 잠망경을 파괴하는 경우도 많았다.
잠망경이 파손되는 것은 전차의 기동에 막대한 지장을 받기도 하였다.

시가전에서 생각치도 않은 장애물이 나타났다.
도로에 늘어진 전차용 전선들이었다.
도로변에 서 있다가 넘어진 전선들과 전화선들도 같은 골치거리였다.

전선들은 전진하는 전차의 궤도에 이끌려 들어와 둘둘 말려 지기도 했다.
전선에는 전봇대가 붙어 있어 그냥 전진하기도 힘들었다.

전차병들은 할 수없이 저격의 위험을 무릅쓰고
전차에서 내려와 전선들을 절단하여 제거해야 했다.

해병들은 전차에 장비한 절단기를 사용했지만 다 잘라내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귀찮아진 전차병들은 전선 뭉치들을 포탑에 묶어서 아예 잡아끌었다.

뽑힌 전봇대가 전차에 질질 끌려오다가 보면
어느새 전선과 전봇대는 전차에서 떨어져 나갔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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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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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동작나루(보병 7사단 32사단과 한국군 수도 사단 17연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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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차들은 중대 단위로 분산하여 각 연대를 배속되어 이들의 서울 진격을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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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loan payment default 2013.09.30 22: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앙에서 진격하는 5연대는 며칠 동안 서울 연희고지 전투 등 격렬한 전투를 겪었다.

무비유환(無備有患)의 대표적 전투, 오산전투(3/4)

생생! 6·25/6·25전쟁 10대전투 2011.03.31 21:02
드디어 7월 5일 07시 북한군 107땅크(전차)연대 소속 전차 8대가
북한군 4사단ㆍ18연대 소속 정찰대의 호위를 받으며
죽미령을 향해 1번국도로 남진하는 것이 관측되었습니다.

이들은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의 최정예 부대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던 것과 달리 이렇게 중무장한
북한군을 보게 되었음에도
아직까지도 위기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 전초부대가 나타났습니다>

북한군 선두가 죽미령 1.8km까지 접근하자
포대에서 일제히 포격을 가하면서
한반도에서 미군과 북한 사이의 최초 교전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이것은 6ㆍ25전쟁이 국제전으로 확대되었음을 의미하는
역사적인 전환점이었습니다.

그런데 포대의 사격에도 불구하고
북한군 선두의 전차는 전진을 계속하였습니다.
미개하다고 생각한 북한군 전차는
당시 미군의 주력이던 M-4 전차를 훨씬 능가하는 소련제 T-34 전차였습니다.

제 2차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전차는 치열하게 교전을 벌인 독일의 전차와 비교하면
대부분 상대가 되지 않았을 정도로 약했지만,
반면 같은 시기에 소련의 주력이었던 T-34 전차는
대부분의 독일전차들을 충분히 압도하였을 만큼 뛰어난 전차였습니다.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의 포격 장면>

즉, T-34 전차는 독일과 소련의 전쟁에서
소련을 승리로 이끌었던 명품무기로
전문가들도 당대 최고로 손꼽는데 주저하지 않는 전차였습니다.

하지만 제 2차세계대전 때 소련과 같은 편이었던 미군이

이 전차와 전장에서 맞붙어 본 경험은 없었으므로 이것은 최초의 교전이었습니다.

포대의 집중사격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전차들이 돌진하여왔지만

아직도 미군 병사들은 진정한 무서움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진지 600m 부근까지 다가왔을 때 75mm 무반동총으로 공격하였으나,

북한군 전차는 이를 가볍게 튕겨내고 주포와 기관총을 난사하며
죽미령으로 올라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전차가 보병진지 10m 앞까지 도달하자 2.36인치 로켓포 사수들이
용감하게 앞으로 나가 전차의 약한 부분인 측면과 후면에 사격을 하였으나,
이 역시 계란으로 바위치기였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도 미군은 자만심에 빠져 있었습니다.

<2.36인치 로켓포를 발사하는 모습, 하지만 T-34전차를 잡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전사에 나와 있는 한 대목입니다.
북한군 전차가 진지를 돌파하면서 미군들을 무시하듯 통과 하자
미군 중사가 외쳤다.

"야 이놈들아! 우리는 한국군이 아니다. 우리는 미군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미군인 것을 모르는 북한군이

건방지게 공격을 계속 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선두 T-34전차가 죽미령 정상에 도달하자 미리 조준하고 있던 5번 포가
대전차고폭탄 공격을 가하여
처음으로 선두전차 2대의 궤도를 끊어
기동을 저지하는데 간신히 성공하였습니다.


하지만 후속하던 전차들이 파괴된 전차를 길옆으로 밀어내고

죽미령을 통과하여 포대 쪽으로 급속히 내려갔습니다.

미처 손쓸 틈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적 전차가 격멸되었을 것으로 믿고 유유자적하며
수청리에 방열하고 있던 포병들은
적 전차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자
혼비백산하여 진지를 이탈하는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이에 혼란에 빠진 포대를 바로잡기 위해 장교들이 앞장서서 포탄을 장전하고
부사관들이 조준사격을 하자 점차 사태가 수습되긴 하였지만,
그들은 이렇게 빨리 적의 전차가 나타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
다.

<적 전차는 거침없이 고지를 통과하여 오산으로 진격합니다>
(죽미령고개에서 내려다 본 오산방향)

다만 불행 중 다행이었는지 적 전차들은 도로를 따라 급히 남하할 속셈으로
우선 그 주변만 유린하고 오산방향으로 곧바로 진격하였습니다.

겨우 이틈을 타서 부대를 재정비할 수 있었지만,

간신히 수습된 포대원들은 이미 형언할 수 없는 공포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만심만으로 이길 수 있는 전투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기 시작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진지 속에 가한 일제공격에도 불구하고,
적의 전차가 유유히 고개를 통과하여 오산으로 진격하는 것을 쳐다만 보았던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의 대원들에게 아침까지의 자신만만한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그리고 최초 교전이 있은 지 3시간이 지난 오전 10시경
수 km에 이르는 보병부대로 구성된 적 주력이 전차 3대를 앞세우고
죽미령을 향하여 등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병사들은 뭔가 잘못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 등장한 주력에 비하면 최초 교전을 벌인 북한군 선두부대는
단지 맛보기에 불과한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그것만으로도 미군은 너무 크게 당하고
충분히 교훈을 얻은 직후였습니다.

예상과 달리 미군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그것도 수적으로 그들을 압도하는 엄청난 적들과의 교전을 앞두게 되자
미군 병사들은 겁에 질려가고 있었습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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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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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visit website 2012.05.15 14: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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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Relationship Tips by Kurma Bio Fund 2014.02.16 23: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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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pure garcinia cambogia side effects 2014.02.22 20: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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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child abuse lawyers 2014.04.20 21: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두 T-34전차가 죽미령 정상에 도달하자 미리 조준하고 있던 5번 포가
    대전차고폭탄 공격을 가하여 처음으로 선두전차 2대의 궤도를 끊어
    기동을 저지하는데 간신히 성공하였습니다.

  7. http://motowynajem.pl/ 2014.04.26 18: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 그것만으로도 미군은 너무 크게 당하고
    충분히 교훈을 얻은 직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