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군민(軍民)이 만든 6ㆍ25 진지, 아직도 남아있다!(1/3)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1.12.01 14:07

 6ㆍ25전쟁시 서울 북방에서 전차를 앞세운 적의 대군에게 무참히 붕괴된 국군 사단과는 대조적으로 중부 전선의 춘천을 지킨 6사단은 대단한 전투력을 발휘해서 북한군을 격퇴하고 일부 부대는 북으로 도주하는 북한군을 추격까지 했었다.

[6사단 7연대 -1949년, 국방 장관 부대 방문시의 군장 사열]



 6사단의 활약을 소개하는 전사에는 접두어처럼 반드시 앞에 붙는 한 사실이 있다. 6사단은 6ㆍ25전쟁 전에 북한의 침공에 대비해서 군과 민이 합동으로 적의 접근로에 대규모의 진지를 구축했었다는 사실이다.

 6ㆍ25전쟁 당시 군경만 싸운 것이 아니라 수많은 민간인들이 크고 작게 호국의 일선에서 군을 도왔었고, 또 직접 싸우다가 희생했었다. 그러나 춘천 전투에서처럼 수 천 명의 학생들이 적의 침략에 대비한 방어 준비를 한곳은 찾기가 힘들다.

 민간인들이 군을 지원하여 진지 공사를 한 사례는 서부전선의 1사단 지역에서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임진강 지역에서 군 생활을 할 당시 군민 합동의 진지 공사를 했을만한 지역들을 찾아보았지만 그 지역이 민감한 접적 지역들인지라 전쟁 후에도 미군과 국군이 수없이 후속 진지 공사들을 해서 1사단의 장병들과 학생들이 구축했던 진지들은 도저히 알아 볼 수가 없었다.

 춘천 전투 때 적군의 측면을 기습했던 7연대 1대대 돌격을 선두에서 지휘했던 이 대용 장군은 6ㆍ25 첫 3일간 전투에서 자신의 공훈보다도 25일 단독으로 적 침공 부대를 가로막고 격파했던 16포병대대의 활약과 용맹한 1대대장 김용배 중령(준장 추서)의 리더십을 더 크게 평가했었지만 60년 전에 춘천의 학생들과 7연대 장병들이 땀 흘려 구축했었던 방어 진지의 덕택을 크게 보았다는 말을 자주했었다.

 여러 책자에 소개되었던 춘천 방어의 숨은 공신인 방어 진지 공사에 대해서 이대용 장군은 자세히 회고 하였다. 방어 진지 구축의 명령은 육군 본부 작전국에서 사단에 전달되었었다. 북괴의 하는 짓이 수상하니 유사시에 대비한 방어진지를 잘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당시 육군 본부 작전 국장은 작고한 강문봉 대령이었다. 춘천의 7연대는 1949년 북한이 파견한 유격대들을 토벌하는 전투를 겪은 터라 이 지시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진지 공사는 봄에 시작되었다. 7연대의 옥산포 승리를 가져온 164고지 낮은 구릉지대를 방어 진지로 결정한 것은 7연대장 임부택 중령이었다.

[비오는 날 옥산포에서 당겨서 찍은 164고지]



 이 지형은 약간 특이하다. 길이 4km 정도의 낮은 구릉형 산맥으로서 남북으로 뻗혀 있다. 너무 평범한 야산이라서 산맥의 이름도 없다. (이하 이 무명 능선을 164 고지 능선이라고 부른다.)

 6ㆍ25전쟁 전에는 나무하나 없는 민둥산이어서 산 능선 좌우 쪽의 시야가 아주 좋았었다. 이 야산 산맥을 점거하면 서쪽으로는 옥산포 쪽으로 남하하는 적을 칠 수가 있고 동쪽으로는 샘밭 쪽에서 오는 적을 칠 수가 있다.


[164 고지 능선-소양강으로 가는 길목의 여우고개와 춘천 병원의 중간에 위치하여 있다. 푸른 펜으로 표시한 곳이 능선과 164 고지, 옥산포다.]



 휴전선 전방을 가보면 방어 진지들이 북을 보고 옆으로 횡렬로 뻗어 있는데 이 진지는 위 아래로 종렬로 구축되어 있다. 이대용 장군이 말하는 진지 공사의 내력은 이랬다. 육본의 지시에 진지를 만들 지형을 선정하고 7연대는 자체 연대 병력만으로 공사를 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공사할 진지들이 많아 연대 병력만으로 진지 공사를 하면 도대체 어느 정도 세월이 걸릴지도 모르는 좀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생각 밖으로 고마운 구원 군이 나타났다. 춘천 시내 각 중고등학교 학교에 배치된 배속장교들이 학생들에게 호국 교육을 시킬 겸해서 장병들의 진지 공사에 협조하겠다고 자발적으로 자원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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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전사에 호국군이나 배속 장교들의 이야기가 자주 나와 혼란스런 분들이 많으리라. 이 글을 쓰면서 이대용 장군에게 확실히 알아보았다.

 6ㆍ25전쟁에서 활약한 배속 장교들은 각 중고등학교 체육 선생들 중에서 선발했었다. 태릉의 육사는 서울 공대 자리에 육사 분교를 설치하고, 이들을 5주간 훈련시켜 예비역 소위로 임관시킨 사람들이다. 각 학교마다 크기에 따라 1-2명씩 배치되었었다. 배속 장교로 근무할 때는 군 장교와 꼭 같은 계급장과 군복을 착용했었다.

 한국의 배속 장교들은 일제가 각 학교에 배치했었던 배속 장교 제도를 도입한 것이었다. 배속 장교들은 전쟁 발발과 동시 전부 현역으로 동원되었었다. 현역으로 소집된 배속 장교 출신들은 주로 행정 분야에 근무했었으나 일선 소대장으로 임명되어 전투에 참전한 사람들도 있었고, 그 중에 뛰어난 전공을 세운 장교들도 있었다.

 군에 계속 남아 직업 군인의 길을 간 배속 장교들도 다수 있어서 이 중에 육군 대장도 나왔었다. 정진권 대장이 그 분이다. 호국군은 배속 장교들과는 다른 조직으로서 각 연대에서 지방 젊은이들을 모아서 단기 훈련을 시키고 간부를 역시 예비역 장교로서 임관시켰었다. 

 당시 국방 장관이었던 이범석 장군이 시작한 제도로서 간부들을 두어번만 배출하고 호국군 선발은 중단되었다. 호국군 장교들은 군모도 국군의 군모가 아닌 헬로 모자라고 불리는 모자(해군들이 쓰는 개리슨 햇)를 썼었고, 배속 장교보다는 다소 낮은 대우를 받았다.

 전쟁 발발과 함께 호국군 소위들도 소집되어 현역이 되었다. 역시 이 호국군에서도 육군 대장이 나왔다. 박노영 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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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춘천 시내의 춘천 고등학교, 춘천 사범학교, 춘천 농업 고등학교의 학생들이 모두 공사 지원에 나섰다. 놀랍게도 춘천 여자 고등학교도 자원해서 여학생들도 진지 공사를 지원해주었다고 했었다. 특히 춘천 농고 학생들은 삽이나 괭이같은 농기구를 지참하고 나와 작업 속도가 높았었고, 또 제일 많은 학생들이 참여했었다.

 이 뜻밖의 도움에 7연대 주변의 춘천 진지 공사는 아주 쾌속으로 진행되어 6ㆍ25전쟁 두 달 전에 그 엄청난 임무가 다 완료되었다. 이 장군은 7연대 1대대가 맡은 164고지 능선에 대한 공사는 한 열흘 정도 걸렸다고 회상했다.

 학생들이 협조한 진지 공사가 164고지 능선 한 곳만이 아니었다. 2대대 지역인 소양강 남안에도 진지가 만들어졌고, 6ㆍ25전쟁 첫 사흘간 7연대 본부와 포병 지휘소가 있던 우두산에도 진지 공사가 있었으며, 6사단 사령부 전방 지휘소가 있었던 봉의산에도 진지 공사를 했었다.

 방어 진지가 완성되자 7연대 1대대는 6ㆍ25전쟁 당일까지 두 번에 걸쳐 진지 투입 훈련을 해서 지형 숙지를 했었다. 6ㆍ25전쟁 중 최대의 선방(善防)을 했던 6연대는 이렇게 학생들의 도움으로 적어도 반쯤은 전투 준비를 하고 적의 침공에 맞섰었다.

 기억력 좋은 이대용 장군은 학생들과 함께 진지 공사에 적극 협조 해주었던 각 학교의 배속 장교들의 이름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전한병, 김정남... 등등.

 춘천 전투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내가 옥산포에 처음 가본 것은 작년 연말이었다. 첫 방문은 춘천에 갈 일이 있던 참에 옥산포가 어떤 곳인지 그저 한 번 알아본다는 호기심 차원에서 한 것이었다.

[옥산포에서 촬영한 164고지 능선]



 물어물어 소양교를 건너 옥산포에 도착했을 시각은 날도 어두워지고 당시는 옥산포 전투에 대해서 잘 아는 지식도 없던 터라 작은 강변 마을의 이미지가 있었던 옥산포가 번화한 시가지가 된 것만 발견하고 그냥 돌아왔었다.

[왼쪽이 임부택 연대장. 오른 쪽이 김종오 사단장]



 또 춘천에 갈 일이 있었던 지난 봄, 미리 옥산포 전투 상황도 잘 숙지하고, 164고지 능선의 지도도 구해서 아침 일찍부터 서울을 떠났다.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비가 추적추적 왔었다.

[옥산포 거리-북쪽을 보고 촬영한 사진이다.]



 비 때문에 산에 올라갈 생각은 엄두도 못 내고 옥산포에서 비안개 속에 떠있던 164고지 능선의 원거리 사진만 찍고 돌아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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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omputer Network 2012.02.10 18: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난 이런 행사를 통해 6.25전쟁이 어떻게 전쟁이 났는지 알게되었다.
    그리고 내가 봉사를 많이하고 돈을 아껴써야되는 것도 깨달게되었다
    난 이런 캠페인이 더욱더 개발되어 더 많은 사람들한테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2. Computer Network 2012.02.10 18: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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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송재철 2012.03.24 16: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진!!1사단 15연대 일병송재철입니다.
    진지들이 아직도 남아있다니 무언가 가슴이찡한 느낌입니다.
    한번쯤 진지에 가서 경계자세를 취해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6.25전쟁의 아픔을 다시한번 느끼면서 국방부의 이런 활동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위국헌신 군인본분 잊지않겟습니다.
    wocjf1991@naver.com

  4. 일병 오태근 2012.03.31 13: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골!
    3사단 방공중대 일병 오태근입니다.
    6.25 전쟁 안에 있는 작은 이야기들. 작은 곳, 그런 곳 하나하나까지
    각각의 사연들이 있는 것을 느낍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6.25에 대해 모르는 것을 하나하나 더 배워나갈 수 있다는 것이 매우 기쁩니다.
    과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더 나아갈 수 없습니다. 6.25에 대해 더욱 더 알아서
    제 2의 6.25가 발생하지않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nonoboysot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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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쓴 신화, 백마고지전투(1/3)

생생! 6·25/6·25전쟁 10대전투 2011.11.29 19:27

 6ㆍ25전쟁은 끝을 맺지 못한 전쟁입니다. 국토는 전쟁 이전처럼 계속 분단된 상태고, 북의 계속되는 도발로 인해 이전보다 더 팽팽히 대치중인 상태입니다. 정확하게 3년 1개월 2일이라는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었던 6ㆍ25전쟁은 지금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3년이 넘는 시간 이 전쟁을 분석해 보면 군사적으로 가장 극적인 전투가 벌어진 순간은 전쟁 초기 1년간뿐이었습니다.

[6ㆍ25전쟁은 초기 1년간 극적인 작전이 모두 벌어졌다고 보아도 될 정도입니다.]



 전쟁이 발발한지 거의 1년이 되는 1951년 5월말의 중공군 제6차 공세 이후부터 휴전까지 전선의 변화는 거의 없었습니다. 쉽게 말해 전쟁 초기 1년 동안 서울의 주인이 무려 4번이나 바뀌었을 만큼 남북으로 무려 2,300여 킬로미터를 쉴 새 없이 오르내렸지만, 나머지 2년 동안은 겨우 50여 킬로미터 정도를 밀고 당긴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전쟁 종결에 대한 목표가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북한이 남침을 개시하여 낙동강까지 밀어붙였을 때, 우리가 반격에 나서 한만국경까지 달려갔을 때, 그리고 중공군이 참전하여 무려 여섯 차례의 대공세를 연이어 계속하였을 때만 하더라도, 피아 모두는 전쟁을 자신의 승리로 종결 짖겠다는 의지가 강하였습니다. 그것은 전쟁을 벌어진 이상 당연한 이치였고, 그렇기 때문에 승기를 잡았을 때 상대를 완전히 굴복시켜 끝장을 보려하였던 것입니다.

[피아 모두 승기를 잡았을 때 상대를 완전히 굴복시키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1951년 6월이 되자, 어느덧 전쟁을 주도하던 미국과 중국 모두는 승리에 대한 집념을 내려놓았습니다. 최초 세 차례의 공세에서 아군을 매몰차게 몰아붙여 재미를 보았던 중공군도 이후 1951년 봄에 연이어 벌인 일련의 공세에 실패하고 엄청난 피해를 입자 자신들의 능력으로는 유엔군의 화력을 이길 수는 없다고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전쟁의 주도권을 다시 가져온 미군도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처음에는 중공군에게 어이없이 무너졌었지만, 중공군의 약점을 정확히 파악한 이후 유엔군은 눈앞에 개미떼처럼 밀려오는 적들이 더 이상 두려운 대상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저돌적이었던 밴 플리트(Van Fleet) 신임 미 8군사령관은 북으로 내달리기 위해 유엔군사령부에 공세를 허락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을 정도였습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1951년 후반기에 유엔군이 북진을 개시하였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아군이 주도권을 다시 잡았지만 그렇다고 공세를 펼치기도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습니다. 지난 가을 북진 당시에 유엔이나 미 행정부는 그 한계선을 압록강과 두만강까지로 보았습니다. 유엔군 입장에서는 국경선까지 진격하여 적을 소탕하면 원론적으로 전쟁이 끝나는 것이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한반도에 내려온 중공군은 엄연히 교전 대상이었는데 단지 이들을 만주로 몰아낸다고 과연 중국이 전쟁을 포기할 것인지는 의문이었습니다.

 유엔군 입장에서 압록강과 두만강은 정치적 한계였지만, 참전을 단행한 중공군 입장에서는 단지 하나의 강이었을 뿐이었습니다. 따라서 미국이 만주로 확전을 불사하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이곳까지 진격하여도 전쟁이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였습니다. 따라서 정치 외교적으로 종전을 이루지 못하는 한, 군사적 공세로 전쟁을 마무리 짖지 못할 가능성이 컸고, 때문에 군사적으로 우위에 섰음에도 재 북진을 주저한 것입니다.

[전쟁은 성격이 바뀌면서 고지전으로 변하였습니다.]



 결국 중국도 미국도 전쟁을 일방의 승리로 끝낼 수 없다고 판단이 서자, 지지 않는 선에서 전쟁을 마무리 짖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전쟁 이전과 비슷한 상태로 전선이 형성된 바로 지금, 휴전을 하는 것이 양측 모두에게 이익이었습니다. 결국 회담은 시작되었고, 그러다보니 전쟁의 목표는 휴전시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방향으로 바뀌었습니다. 바로 6ㆍ25전쟁 후반기를 상징하는 고지전이 개시된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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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omputer Network 2012.02.10 18: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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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지암 514고지의 기관총 기습 작전(2/2)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1.11.21 09:42

 밤 11시에 중대장에게 보고하고 목표를 향해 출발하였다. 기관총 1정당 실탄 400발과 소총 실탄 80발, 수류탄 4개씩을 휴대하고 눈을 헤치며 앞으로 나갔다.



 내가 선두에 서서 가는데 눈이 많이 쌓인 곳은 허리까지 빠져 도저히 빨리 전진할 수가 없었다.

 한 발씩 한 발씩 전진해 가는데 달빛은 없으나, 온 산이 눈으로 덮여 찾아 가는데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앞이 안 보였다. 불과 1킬로의 거리를 무려 3시간이나 걸려 고지 중간까지 올라갈 수가 있었다.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서 2개조로 편성하여 좌우에서 은밀하게 올라갔다. 긴장하여 위를 감시하며 올라가는데 아무런 저항이나 움직임도 없어서 정상에 오를 수가 있었다. 정상은 너무나도 급경사이고 암석으로 이루어진 칼날 같은 봉우리였다.



[높은 산이 514고지고 옆 산에 올라가 기습 사격을 한 듯한데 산에 나무들이 뒤덮혀 자세한 지형을 알아보기가 힘들다. 곤지암cc 앞에서 촬영]

 기관총 장치하기도 힘들 정도로 협소해서 분대장과 정상을 둘러보니 바위를 사이에 두고 한정씩 장치할만한 곳이 있어서 기관총 1정은 제 1공격 목표 지점으로 대충 조준해놓고 1정은 정상을 향해 조준 해놓은 다음 중대장에게 보고했다.

 "화기 소대장 이상없이 목표 지점에 도착했습니다."

 "수고했다. 그 곳에서 공격 목표가 잘 보이는 가?"

 "잘 보입니다. 날만 밝으면 적의 움직임을 똑똑히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 소위만 믿겠다. 조용히 대기하라. 이상!"

 분대장이 차고 있는 야광 시계가 2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기관총이 있는 곳에 한 사람을 경계 배치하고 남은 인원은 능선 밑의 바위 옆에 모여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렸다.

 우리는 침묵을 지키면서 날 밝기만을 기다렸다. 동녘 하늘이 뿌옇게 트기 시작하고 조금 지나니 적진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각자 정위치!"

 기관총을 중심으로 대원들을 배치시키고 나는 제 1목표를 직접 조준했다.



 교통호가 훤히 내려다 보였다. 사수에게 인계하고 옆의 기관총을 조준해 보았다. 514고지 정상으로부터 제 1목표 지점으로 연결된 교통호가 한 눈에 들어왔다. 

 분대장이 조준해 논 교통호 복판이 잘 되어 있어서 "움직이는 놈만 있으면 갈겨 대!" 하고 분대장과 사수에게 지시한 다음 중대장에게 보고를 했다.

 "적 진지가 잘 보입니다. 공격 목표를 될 수 있으면 좌측으로 이동시키는 것이 좋겠습니다."

 "알았다! 지원 사격 잘 부탁한다!"

 공격 개시 10분 전.

 드디어 105mm 곡사포와 81mm 지원포 사격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교통호에 명중되는 것은 한방도 없었다. 적군들은 한 놈도 움직이지를 않았었다. 10분간의 지원 포사격이 끝나서야 교통호에서 일제히 나뭇가지로 위장한 중공군이 모습을 나타나더니 사격 자세를 취했다.



 그 때 우리 기관총이 불을 뿜었고 예광탄이 정확하게 중공군 세 놈을 명중시켰다. 다시 두 놈이 일어서다가 불의의 측면 공격을 받고 푹푹 쓰러졌다. 바로 그 때 교통호를 조준하고 있던 분대장이 방아쇠를 당겼다.

 예광탄이 밝히는 지점을 보니 교통호를 따라 내려오다가 정통으로 맞았는지 앞으로 푹 쓰러지며 밑으로 굴렀다. 다시 다섯 놈이 뛰어 내려 오다가 모조리 굴러버렸다. 제 1목표 지점을 보았지만 연막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다. 81mm 박격포는 몇 발씩 연막탄만 쏘아주고 있으나 서북풍이 부는 관계로 좌측 진지는 연막에 싸였다가도 바로 개여서 관측이 잘 되었다.

 제 1목표에 대해서도 계속 사격을 하니 꼼짝 못하고 있다. 그때 중대장으로부터 무전이 왔다.

 "목표 지점에 육박했으니 사격연신하라!"

 나는 제 1목표를 향해 쏘던 기관총 사격을 중지시키고 목표 지점을 관찰했다. 그 때 두 놈이 고개를 들고 일어났다.

 "쏴!"

 총탄은 다시 명중하여 푹 쓰러진다. 적들은 150m 거리의 측 후방에서 사격하고 있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중대장으로부터 다시 사격 연신하라는 지시를 받고 514 고지 교통호를 조준케 했다. 그때 분대장의 기관총이 한 상자를 다 쏘고 실탄을 장진했었다.

 그 틈을 이용해서 뛰어 내려오고 있던 5-6명에게 대기하고 있었던 다른 기관총이 불을 토했고 뛰어 내려오던 적병은 탄력 때문에 정지하지 못하고 모두 기관총 실탄에 맞아 나가 뒹굴었다.

 "소대장님! 점령했습니다."

 탄약수가 소리를 쳐서 제 1목표를 돌아보니 아군 2명이 올라와서 참호를 향하여 M1 소총을 쏘고 이어서 수류탄을 투척하고 있었다. 수류탄 폭음이 나고 뒤이어 10여 명이 올라와서는 514고지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바로 그 때, "쉬익! 쉬익!" 하며 적의 포탄이 우리를 향해 날아왔다. 그러나 너무나도 날카로운 봉우리라 명중시킨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직사포가 아니 곡사포라면 명중이 가능할까, 포탄은 50m 쯤 후방에서 터졌다. 다시 두 발이 날아오더니 전방 산 밑에서 터졌다.

 우리는 그 조준선상 밖에 있었다. 나는 마음을 놓고 514고지 교통호 시발점에 대고 쏘도록 하고, 기관총 1 정을 내가 직접 적의 철수로를 향해 조준했다. 아니나 다를까 적병 수 십 명이 자세를 구부리고 철수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곳을 향해 가로 활대와 세로 활대를 다 풀어놓고 좌우상하로 마구 갈겨댔다.

 더러는 맞아 쓰러지고 더러는 능선너머로 도망쳤다. 공격 소대는 514고지 9부 능선에까지 도달했다. "따쿵!" 소리가 들려 나는 기관총을 놔두고 뒷걸음쳐서 산 뒤로 몸을 낮추며 대원들을 차폐시켰다.

 뒤이어 "따따따---!" 수백발의 실탄이 우리를 향하여 날아왔다. "땡!" 하는 금속성이 들리더니 기관총이 굴렀다. 나는 구르는 기관총을 한 손으로 잡자 옆에 있던 사수가 다리 부분을 같이 잡았다.

 기관총 삼각대에 총탄이 맞아 쇠가 우그러지고 맞을 때의 충격으로 굴렀던 것이다. 포탄과 소총탄도 사격이 중단되어 고개를 들고 보니 514고지 정상에 1명이 뛰어 올라가더니 수류탄을 후사면을 향하여 힘껏 던지고 앉아서 소총을 마구 쏘더니 옆으로 쓰러졌다. 곧이어 10여명이 올라가 앞드려서 도주하는 적을 향해서 쏘았다.


                                           [영화 고지전의 돌격장면]

 81mm 박격포와 61mm 박격포가 도주하는 적을 향해 맹타하고 사단포는 적의 후방 포진지를 향해 때렸다.

 그 때 정찰기 한 대가 날아와 전방을 두 바퀴 돌았는데 무스탕 전투기 3대가 날아왔다. 정찰기는 적진으로 내려 박히는가 했더니 치솟아 올랐고 연막탄이 터져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전투기 3대는 기수를 아래로 쏜살같이 내려 박으며 기관총 사격에 이어 로케트 사격을 하고 치솟았다. 교대로 때리던 전투기는 폭탄 2개씩을 떨어뜨리고 마지막으로 네이팜 탄의 불바다를 만든 다음 유유히 남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이렇게 해서 난공불락이던 514고지는 점령하게 되었다. 중대장으로부터 철수명령을 받은 나는 병력을 인솔하고 제 1목표로 올라갔다.

 "분대장 몇 놈이나 죽었나 세어 봐!"

 가슴 높이까지 파논 교통호에는 중공군들이 발 들여 놀 틈도 없이 죽어 있었다. 그런데 총 맞아 죽은 자 같지 않게 옆으로 누워있는 자가 있어서 나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그자의 가슴을 향해 카빈총을 한 발 쏘았다.

 그 중공군은 "아---!" 소리를 지르며 고통의 몸부림을 치다가 죽어갔다.

 "이 뙤놈들 봐라! 죽은 척하고 누워있어 어이 너희들 교통호와 벙커 속에 있는 놈들 모조리 한방씩 쏴 버려!"

 대원들이 모조리 확인 사살을 하니 벙커 속에서 한 놈이 손을 들고 나왔다. 일일이 확인 사살을 한 다음 포로를 나무에 묶어 놓았다. 중대장과 잔여 중대원들이 모두 올라왔다.

 "정 소위 공로가 컸소! 정말 수고했소."

 "아닙니다. 중대원들이 중대장님을 중심으로 단결했었기 때문입니다."

 514고지에 방어 부대를 배치하고 교대 부대가 도착할 때를 기다리는데 1소대장이 보고를 한다.

 "중대장님 뙤놈들 시체가 121구나 됩니다. 이 고지 뒤에 즐비합니다."

 "1소대장 오늘 잘 싸웠어!"

 나는 1 소대장 손을 꽉 쥐고 번쩍 올려주었다.

 "아닙니다. 특공대 덕입니다! 뙤놈들이 고개를 들지 못하니 별로 저항도 받지 않고 점령할 수가 있었습니다."

 광주 곤지암 514 고지 전투에서 중공군을 섬멸하고 고지를 점령했지만 아군들도 실패한 1차 공격과 성공한 2차 공격에서 40명의 전사자가 발생했다. 기발한 기습으로 점령을 했었지만 큰 격전이었다. 이 전투의 특징은 여순 203 고지와 같이 적이 신체적으로 접근 또는 공격해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방심하는 곳에 의외로 화력만은 마음대로 도달하는 허점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1951년 6월 27일 강 건너에 국군이 떠난 것을 안심하고 도강하다가 측면 봉의산에 있던 인접 부대가 1km가 넘는 장거리에서 퍼부은 대전차포와 기관총, 그리고 박격포, 곡사포등의 화력에 섬멸된 북한군의 사례를 생각하게 한다.

 정철모 씨는 후에 중공군에게 포로가 되었지만 탈출해서 북상, 신의주 앞 바다에 있는(유격대가 점령하고 있는) 섬을 거쳐 귀환한 특이한 이력이 있다. 당시 책에는 소령 때 전역하여 공무원을 하다가 개인 사업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몇 년 뒤 잡지에서 보니 정 철모 씨가 6ㆍ25 때 헤어진 연인과 다시 결합했다는 기사가 있던 것을 본 기억이 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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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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