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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5.01 전투경찰의 칠보 발전소 탈환 작전(1/2) (141)
  2. 2011.04.25 영연방군의 전설, 임진강-가평전투(1/3) (114)
  3. 2011.04.15 영국 라이플 밴드 군악연주회 (181)

전투경찰의 칠보 발전소 탈환 작전(1/2)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1.05.01 15:28

6ㆍ25전쟁 기간동안 남한 도처에서 준동하던 공비들과 싸운
군대는 국군도 있었지만 전투경찰도 있었다.

전투 경찰의 호국 공적은 전사자 숫자로서 입증된다.
1945년부터 전쟁이 끝난 1953년까지의 8년간의
세월 동안 전투 경찰 전사자들은 무려 1만 명이 넘는다.

총 30만 명의 한국인이 싸웠던 참전 8년간의 월남전에서
전사한 분들이 5,000명이었던 사실에 비하면 두 배나 되는 피해다.

전투 경찰들은 장비도 열악했었고 훈련의 정도도 낮았다.

9.28수복 후 공비들이 창궐하던 지역 경찰서는 중앙에서 무기 지급을
해주지 못하자 유지들에게 성금을 거두어 암시장이나 미군들에게서
무기를 구입해서 공비를 토벌했었다.

공비들은 이런 배경으로 허약한 전투력을 가진 전투경찰을 멸시했었다,
그러나 남한 중심부 산간지역에서 준동하던 공비들을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말살시킨 것은 전투 경찰들이었다.

전투경찰은 군이 가지지 못한 지역 밀착의 이점을 살려 매복과
사찰과 수사로서 공비 조직의 실핏줄을 하나하나 말려 죽였다.

그러나 전투경찰들의 활약과 희생은 공비들이 준동하던 지역에서만
먼 전설처럼 전해오기만 할 뿐 그 전투 기록은 너무도 보기 힘들다.

이들의 공적이 역사의 망각 속으로 사라질 우려에 큰 불안을 안 가질 수가 없다.

전쟁 기념관의 전투경찰 전사자 명단[1945-1953],
공비들이 준동하던 호남지방의 전남과 전북 경찰국 소속 경찰들이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다.

이 블로그에서 가능한대로 6ㆍ25전사의 당연한 한 부분으로 존재해야할
한국 전투 경찰의 전투 기록을 발굴, 소개하고자 한다.

아래는 지리산 공비의 대명사 남부군 이현상 부대와 최후까지 추적해서
남부군과 이현상의 종말을 가져오게 하고 사살 된 그의 사체를 화장하여
섬진강에 뿌려준 차일혁 총경의 칠보 발전소 탈환작전 수기이다.

차 일혁 총경은 전북 김제 출신으로 중국의 중앙 군관 학교를
나온 뒤 귀국, 국민 방위군과 육군을 거쳐 경찰에 투신했다.

공비들이 창궐하던 9.28 수복후 경감의 계급으로 전북도경 전투경찰
18대대장이 된 차일혁 총경은 여러 공비 토벌 전투를 승리로 이끌며
지전사[지리산 지구 전투 사령부]와 그 후신인 서전사[서남부 지구 전투 사령부]의
연대장으로서 공비 토벌에 큰 활약을 하였다.

전후 행정 경찰로 변신하여 임실, 충주, 진해, 경찰서장등을 거쳐
공주 경찰서장이던 1958년 8월8일 금강에서 수영을 하다가 심장마비로 작고하였다.

아래 칠보 발전소 탈환 작전기는 차 일혁 총경의 아드님 되는 차길진 씨가
아버지가 싸우시던 현지를 방문하고 당시의 관계자 분들을 면담한 결과를 토대로
자서전 형식으로 쓴 부친의 일대기 중에서 빌려온 것이다.

차일혁 총경

1951년 1월 12일이었다.
수복 후 경감으로 임관하자마자 급편한 전투경찰 18대대를 지휘하여
전북 완주군 구이면에서 준동하던 공비들을 성공적으로 소탕한 나는
전주 전북 도경에서 급하게 소집한 공비대응 작전회의에 참석했다

1.4 후퇴 직후 남한에서 유일하게 전력을 생산하고 있는 정읍군
칠보면 섬진강 상류 운암호 [지금은 옥정호로 이름이 변경되었다]에 있는
칠보 발전소가 공비 부대의 공격으로 완전 포위되었다는 것이다.

아군의 인천 상륙작전으로 남한을 점령하고 있던 공산군이
물러갔다고는 하나 호남 지방은 아직도 공비들이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회문산에 공비 도당 사령부가 설치되어 있고 쌍치면 가마 골에
공비들 연합 사령부가 준거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읍군 칠보면
시산리에 소재하고 있는 칠보 발전소가 공비들에 의해서 완전 포위 된 것이다.

칠보에 파견된 이 원배 경위의 아(我)부대와 칠보 지서원,
향방(鄕防)대원 및 학도병들은 실탄이 떨어져 전투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식사조차 못하는 상태에 놓여 있었다,

칠보 발전소와 칠보 지서의 함락이 경각에 달려있는 위기의 순간이었다.

칠보 방어 소병력의 아군을 포위하고 있던 공비 부대는
무려 2,000명으로 추산되는 대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당시 칠보 발전소는 남한 유일의 전기 생산 발전소였다
강원도 영월 발전소가 적에게 점거된 직후라
남한 일대의 송전을 도맡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랫동안 적의 포위로 송전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호남 일대 평야 부근의 관개에 큰 역할을 하는 동진 수리조합의
저수지[운암호-지금의 옥정호]까지 적의 수중에 들어가 버려서
우리가 받는 피해가 컸기때문에
중앙 정부에서도
이를 조기에 해소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중앙 치안국의 성화와 압력도 대단했다.

경비계장 정 순식 경감이 침통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풍전등화에 위기에 놓인 발전소와 지서를 탈환하고 죽음 직전의
동료를 구출하기 위해서 구의면에서 토벌 전투를 끝내고 집결지
행동중인 나의 18대대 출동을 요청한다는 것이었다.

라이프 잡지 사진, 차량 기습을 방지하기 위해서 고개 위에 설치한
감시 초소에서 고개 아래 차량들에게 통과 신호를 보내고 있다.
아직도 99식 소총을 사용하고 있다.

11사단 13연대가 현재 전주에 주둔하고는 있었으나 마침 순창에서
작전 수행중 엄청난 손실을 입어 출동이 불가능해서 칠보 지서와
칠보 발전소에 증원할 만한 부대는 우리 부대 밖에 없다는 설명이었다.

상황파악을 한 나는 입을 열었다.
“전투를 하기 위한 전투 부대인만큼 전투를 위한 출동은 
 당연한 일이나 선결 문제는 부대 수송용 차량의 확보입니다.
 차량만 배치해 주면 지금 곧 출동하겠습니다.“

1.4후퇴 직후 민심이 극도로 불안해져 중공군이 ‘천안에 왔네, 대전에 임박했네’
하는 헛소문들이 돌아 부유층과 권력층들이 피난 짐을 나르느라고
대부분의 민간 차량이 피난 행렬에 들어섰기 때문에
공비토벌을 위한 차량 동원은 용이치 않았다.

지방의 치안이 시시각각 위협받고 있는데 대다수의 동족을 뒤로 하고
나만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에서 대부분의 자동차가 소수의 특권층을
위해
안전지대로 향했기 때문에 전투 부대가 출동하려고 해도
차량 동원이 어렵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한탄스럽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출동을 그만 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노력 끝에 전북 도경의 스리쿼터 3대, 김제 경찰서 트럭 2대,
마침 치안국에서 온 차 1대등 겨우 5대의 배치를 받아 일단
나의 부대가 주둔하고 있던 구이면 항가리로 향했다.

전라북도 경찰 60년사에서 빌려옴. 1952년 고창 경찰서 공음지서. 공비침투를
막기 위해서 지서 주변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다.인기있었던 노획품인
데크챠레프 기관총들이 보인다.

1월 13일 저녁
5대의 차에 불과 105명의 대원과 중화기를 싣고 항가리를 떠나 칠보로 출정했다.

음력 섣달의 어스름한 초승달 밑아래 영하 9도의 추위, 쌩쌩 몰아치는
혹독한 맞바람을 뚫고 달릴 때 뼛속 마디마디가 얼어붙는 듯하였다.

불과 105명의 병력으로 2,000여 명의 적과 부딪친다는 것은
전략상 어떻게 보아도 승리를 기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비겁하게 동료를 버리고 후퇴하느니 적과 부딪쳐 돌가루처럼
깨끗이 산화하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하였기에 용기가 저절로 났다.

적과 싸우다 함께 죽겠다는 비장한 각오는 했지만 한편 적의
포위망을 뚫고 우군 동료들과 양민들을 구출한 후에 남한에서
유일의 전기를 공급하고 있는 칠보 발전소를 탈환해서
원상 복귀시키겠다는 결의만은 버리지 않았다.

혹한의 한밤중 거친 산길을 달리던 자동차 한 대가 금구에서
고장이 나서 그 차에 탔던 30명을 내려놓고 75명만이 다음 날
아침 5시 경 태인에 도착했다.

태인 지서의 상황 보고에 의하면 적은 칠보, 옹동 방면을 완전히
포위하고 시시각각으로 태인을 위협하고 있으며 이미 포위당한
우군은 전멸의 위기에 놓여 있다는 것이었다.

70 : 2,000.
아군과 칠보를 포위하고 있는 적과의 비율이다.
고금의 전장에서 찾아보기 힘든 비율이다.

더구나 적은 지형상 유리한 고지를 모두 점령하고 있고
아군보다 우수한 장비를 갖추고 있다.

아무리 작전 계획을 구상해보아도 어떤 큰 기적이 없으면
도저히 승리를 기대할 수 없는 구조였다.

그러나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지고 오전 6시 출발, 차를 몰아 옹동으로 향했다.
옹동에 거의 이르니 칠보를 포위하고 있는 적의 기척이
칠보 언저리에서 희미하게 느껴졌다.

칠보와 지척지간인 옹동에 다다랐을 때는 긴 겨울밤이 샐 무렵이었다.
“이제 구부러진 길모퉁이만 돌면 적과 직면한다.”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앞에 보이는 길모퉁이가 무슨 암시를 주는 것 같았다.

“그렇다! 차를 정지시켜라.”

급커브 하는 길 앞에서 공비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4 대의 차를 세워놓고
먼저 1대씩 커브를 돌아 저편으로 갔다가 헤드 라이트를 끄고
다시 이쪽으로 돌아오고 또 다음 차가 갔다가 불을 끄고 되돌아 오고
이렇게 하기를 여러 차례를 하였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빨간 신호탄을 계속 쏘아 올려
아군의 도착과 전개를 칠보 지서와 발전소에 있는 우군에게
알려주고 동시에 마치 적에게 수십 대의 차량으로
수송되는 대병력이 증원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기만 행동을 했다.

예측한대로 적은 대규모 병력이 공격해 오는 줄 알고 당황하기 시작했다.
때를 놓치지 않고 산 중턱의 공비들을 향하여 일제 사격 명령을 내렸다.
각 대원들의 총구는 불을 뿜기 시작했고 그 위세는 어둠 속에서는
분간할 수 없는 엄청난 숫자인 것처럼 당당했다.

당황한 적들은 일부 포위를 풀고 비껴 시작하였고 그 틈을 이용하여
계속 기관총을 난사하면서 포위를 뚫고 칠보 지서에 도착하자마자
지서를 포위한 적병들이 발사하는 실탄들이 비오듯 곁에 떨어졌다.

지서에서 3일간이나 적에게 갇혀서 이제는 총알조차 떨어져 최후의
백병전을 각오하고 있던 지서원 및 향방대원 학도병 등 300여명이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며 우리를 맞이하였다.

나는 김 진환 지서주임의 보고를 받음과 동시에 박격포로 지서와
발전소 사이에 있는 시산 고지를 때리기 시작하는 한편 지서 후방에 있는
선왕봉 고지를 우희갑 경위로 하여금 학도병을 이끌고 올라가서
점령하게 하였다.

장수군 산서 지서 보루

서의 안전을 확보한 작전의 다음 단계는 발전소의 안전 확보였다.
칠보 발전소를 경비하다가 적 대병력의 기습으로 발전소 지하실에
고립되어 있던 아군 175명에게 박격포를 지원할테니 산내면에 통하는
800고지 장군봉을 장악하라는 명령을 전달하는 전령을 보내야 했다.
작전을 통지해주고 두 부대가 동시에 공비들을 협격하자는 작전이었다.

칠보 지서에서 발전소까지 불과 1.5 킬로에 불과했으나 사방의
고지들을 적들이 점령하고 있어서 발전소까지의 진출은 목숨을 걸어야했다.

무모하지만 다시 특공대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먼저 현지 지리에 밝은 학도병이 지원하여 지서 옆의 개천 뚝 밑을 따라
엄폐하며 발전소로 나가던 중 1백 미터를 남겨 놓은 지점에서
남방 고지에서 날아온 적탄에 맞아 나동그라졌다.

다시 한 학도병이 나섰다.
그는 손에 작전 명령서를 쥐고 200미터를 나갔으나 다리에 실탄을 맞고 또 쓰러졌다.
바라보는 대원들의 입안이 바싹바싹 타들어갔다.
나는 더 이상 학도병을 보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이한섭 경위의 화랑 소대원 중 자원한 한 대원에게 다시 작전명령을 전하게 하였다.

우리 모두는 일심으로 그의 성공을 빌었다.
그러나 그 역시 300미터 지점에서 어깨에 관통상을 입고 쓰러지고 말았다.

대원들은 모두 숙연한 채로 말이 없었다.
적의 총탄은 불을 뿜었지만 부대원들 사이에는 팽팽한 고요만이 감돌았다.

나는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그 때 다시 한 대원이 앞으로 나섰다.

“대장님! 제가 가겠습니다!”

그는 화랑 소대장 이한섭 경사였다.
학교 선생이 꿈이라는 이한섭은 노총각이었다

“가면 죽을 수도 있을텐데 그래도 가겠느냐?”
“제 고향은 제가 지켜야죠.”

소대장에 이어 같은 화랑소대 대원 이영수와 심갑천, 양성근이 앞으로 나섰다.

“너희들도 죽음을 마다않고 같이 가겠다는 것이냐?”
“함께 죽겠습니다. ”

네 명의 대원은 즉시 배낭에 흙을 잔뜩 담아서 방패처럼 둘러메고
제방 밑을 포복해서 나아가기 시작했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바라보았다.
엄폐물을 이용해서 네 명의 결사대는 낮은 포복으로 이동하자
주변 공비들이 사정없는 총탄 세례를 쏟아 붓기 시작했다.

그러나 네 명의 결사대는 무사히 사격 노출 지대를 벗어났다.
휴우우! 하고 모든 대원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작전명령은 이원배 중대장에게 전달되었다.
나의 신호로 증원대와 지서 부대가 공격을 개시하였다.
칠보 발전소에 포위 고립되었던 아군 175 명도 우리 부대의 공격으로
적이 지리멸렬 도주하기 시작한 틈을 타 최후의 위기에서 뛰어 나와
환호성을 지르며 양면 공격을 전개했다.

적도 우리 편에 대한 집중사격을 가해 자동차 타이어가 터지고
총탄이 계속 비오듯 펑펑 날아왔으나 우리는 적을 향해 돌진하였다.

적은 점차 도주하여 선왕봉 고지를 오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선왕봉을 따라 후퇴하는 적을 계속 추격하였다.

그러나 적들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나는 학도병을 이끌고 여섯 번 공격하였다가 여섯 번 물러난
제 1중대장 우희갑 경위를 불렀다.
“너도 알다시피 공비들이 경찰들을 검은 개라고 부르지 않느냐?
 이래 가지고서 무슨 빨치산 토벌을 할 수 있겠느냐?
 이번이 일곱 번째 후퇴다. 또 후퇴한다면 모두 다 여기서 죽자!”

우희갑 부대는 옥쇄로 부딪쳐 죽겠다는 각오를 하고
일곱 번째 적을 공격하여 발전소 후방 고지 장군봉과 8백고지까지
진격하기 시작했다.

밀고 밀리는 육박전 속에서 공비들은 발전소 지역에서 완전히 퇴각해 버렸다.

그 때는 시각이 어둠의 장막이 덮이기 시작하는 오후 5시,
적과 교전한지 11시간 만이었다.

이 때가 1월 15일이었다.
선왕봉 고지, 시산 고지, 남방 고지, 장군봉, 800고지 등이 모두 탈환한 뒤에
발전소에 고립되었던 아군 부대와 감격적인 상봉의 악수를 나누었다.

3일간 적에게 포위되어 죽음을 눈앞에 두어야 했던 아군 동료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배부르게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기쁜 일이었다.

그 날 저녁은 선왕봉 전투에서 어린 학도병의 몸으로서 크게 용전한
학생이 있어서 그를 불러서 공로를 치하하였다.
그는 17살의 김우술이라는 학생이었다.

적을 단시간 내에 몰아내고 지서와 발전소를 확보한
기대 이상으로 전과를 올린 것은 큰 천운이라고 생각되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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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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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medical pills xls 2013.06.01 04: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간 적에게 포위되어 죽음을 눈앞에 두어야 했던 아군 동료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배부르게 제공할 수.

  3. debt relief 2013.06.09 00: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전 8년간의 월남전에서
    전사한 분들이 5,000명이었던 사실

  4. Supplements for healthy skin 2013.06.14 05: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두어야 했던 아군 동 두어야 했던 아군 동 두어야 했던 아군 동 두어야 했던 아군 동

  5. weblink 2013.06.16 19: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들이 준동하던 지역비들이 준동하던 지역비들이 준동하던 지역

  6. fat burners 2013.06.19 05: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하던 지역비들이 준동하던 지역비들이 준동하던 지역비들이 준

  7. www.smslån10000.net 2013.08.01 07: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들의 공적이 역사의 망각 속으로 사라질 우려에 큰 불안을 안 가질 수가 없다.

  8. good resource 2013.08.19 01: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불리하게 돌아갔는지 이해됩니게불리하게 돌아갔는지 이해됩니게불리하게 돌아갔는지 이해됩니게

  9. webbsite 2013.08.27 20: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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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webbsite 2013.08.27 20: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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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Don M 2013.09.15 00: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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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www.411-money.com 2013.09.27 19: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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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lån med betalningsanmärkning 2013.10.12 20: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주 경찰서장이던 1958년 8월8일 금강에서 수영을 하다가 심장마비로 작고하였다.

  14. Resouces 2014.01.18 13: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서가 굉장 난 정말 기사 작가에 대한 그것과 엄지 손가락을 즐겼다

  15. Quality Cufflinks 2014.02.03 01: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들의 공적이 역사의 망각 속으로 사라질 우려에 큰 불안을 안 가질 수가

  16. choosing cufflinks 2014.02.03 20: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갔는지 이해됩니게불리하게아갔는지 이해됩니게불리하게아갔는지

  17. http://www.buymorelike.com 2014.02.05 03: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갔는지 이해됩니게불리하갔는지 이해됩니게불리하갔는지

  18. http://www.buymorelike.com 2014.02.05 03: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갔는지 이해됩니게불리하갔는지 이해됩니게불리하갔는지

  19. perfect gift ideas for boyfriend 2014.02.11 00: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주 경찰서장이던 1958년 8월8일 금강에서

  20. Discover China US Ability 2014.03.27 17: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희들도 죽음을 마다않고 같이 가겠다는 것이냐?

  21. علاج الادمان 2014.04.03 22: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희들도 죽음을 마다않고 같이 가겠다는 것이냐?

영연방군의 전설, 임진강-가평전투(1/3)

생생! 6·25/6·25전쟁 10대전투 2011.04.25 16:31

우리를 돕기 위해서 16개국에서 전투병을 파병하였던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중 영국은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즉시 파병하여 주었던
고마운 나라였는데 우리에게는 조금 낯선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비록 나라의 이름을 걸고 따로 참전하였지만 영국을 위시한
영연방(Commonwealth)국가들인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에서
파견된 부대들이 함께 모여서 전투를 벌였다는 점입니다.

2차대전 당시 토브룩전투에서 영국군의 일원으로 싸우는 오스트레일리아군

사실 처음이 아니라 이들에게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참전방식으로
영국이 참여한 전쟁에 영연방국가들이 영국을 도와서 함께 싸우고는 하였습니다.
6ㆍ25전쟁도 마찬가지여서 영국과의 관계가 특히 밀접한 위 국가들은
영국군과 함께 전투를 벌였고 1951년 7월 28일에는 부대를 통합해
영연방 제1사단을 구성하였는데 이는 6.25전쟁에 파병 된 부대 중
미군이외 유일한 사단급 부대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참전 영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의 부대들은
전공을 함께 공유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특히 1951년 4월에 연이어 벌어진 임진강전투와 가평전투는
이들에게 전설로 남아있습니다.
비록 하나는 격전 끝에 일부가 전멸하는 아픔을 겪었고
다른 하나는 대승이어서 차이가 있었지만
공통점은 중과부적에도 결코 굴하지 않고
투혼을 발휘하였다는 점입니다.
앞으로 소개할 내용은 참전 영연방군에게는 전설로 전해지는 이야기입니다.

영연방군은 6.25전쟁의 주요 고비에서 신화를 썼습니다
(참전용사 방문행사 사진-뉴시스 )

1950년 10월 중공군의 참전이후의 상황은 한마디로 암울 그 자체였습니다.
이듬해 1월 4일 서울을 다시 적에게 내주고 평택~삼척 선까지 후퇴하였을 때는
대한민국이 역사상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습니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중공군의 예상 못한 참전에 놀란 미군 정책 당국은
이 상태에서 금강까지 50여km를 더 후퇴한다면 한국을 포기하고
철군하기로 예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절체절명의 순간에 중공군의 판단 착오로 반전의 기회가 생겼고
전선은 다시 북으로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중공군은 한 번의 공세를 더 가하면 사기가 바닥까지 떨어진 아군을
금강선까지 밀어 붙일 수 있을 가능성이 컸지만 참전이후 3차례의 공세를
연이어 실시하면서 너무 지쳤기 때문에 서울을 점령하고
제풀에 주저앉은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크게 기대도 안한 아군의 소규모 정찰작전에
의외로 쉽게 무너지는 허점을 보였습니다.

1951년 1월 4일 서울에 입성하는 중공군
나중에 밝혀진 사실인데 이때가 대한민국이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아군은 낯선 전술을 구사하는 중공군에 속수무책으로 당해 왔지만
보급이 고질적인 문제여서 공세를 일주일 이상 계속할 수 없다는 중공군의
치명적인 약점을 간파하고, 병력에서는 열세지만 화력으로 이를 충분히
만회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서자 반격에 나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3월이 되었을 때 서울을 다시 탈환하고
전선을 38선 부근까지밀어 올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전선의 주도권은 중공군이 잡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중공군은 계속하여 전쟁을 자기의도대로 끌고 가서 끝내기를 원했고
아군은 어떻게든 상황을 악화시키고 않고 전선을 고착시키기를 갈망하였습니다.
역시 뒤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1951년 봄이 되었을 때 유엔군 최고 지휘부는
1950년 가을에 있던 북진을 다시 시도하여 한반도를 통일하려는 생각은
완전히 접은 상태였습니다.

지평리전투는 압도적인 중공군을 물리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만든 전환점이었습니다
(지난해 지평리에서 벌어진 재현행사의 모습)

결국 38선 일대를 중심으로 격전은 예상되었는데
곧바로 중공군이 선공을 시작하였습니다.
1951년 2월에 개시된 중공군의 4차 공세였는데
이때 앞으로 국군과 유엔군에게 반면교사가 될 만한 상당히 의미 있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중공군 주공이 돌파를 시도한 지평리를 미 2사단 23연대가 고립방어에 나서
적을 붕괴시켰던 것입니다.
즉 포위를 당하여도 버티면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중공군의 4차 공세는 좌절되었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공산군 최고사령관 펑떠화이(彭德懷)는 서울 재점령을 목표로 5차 공세를
즉시 준비하였는데 주공이 파주 일대로
조공이 춘천 일대로 돌파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파주에는 영국군 29여단이, 춘천 후방에는 영국군을
중심으로 편제된 영연방 27여단이 전선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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