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군민(軍民)이 만든 6ㆍ25 진지, 아직도 남아있다!(2/3)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1.12.03 17:04

 그런데 언제인가부터 마음에 한 호기심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이대용 장군이 직접 쓴 춘천 전투의 글을 이「아! 6ㆍ25」블로그에 글을 소개하면서 부터였다. 이 장군은 164고지 일대에 연대 장병들과 학생들이 구축한 진지가 미국식 교통호와 일본식 개인호 구축 방법을 혼합해서 만든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나는 일본식 개인호라면 일본군이 말하는 다꼬스보(낙지 구멍) 스타일이 아닌가 생각해서 기고 글에 그렇게 소개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정도만은 아닌 것 같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일본군 참호는 가사가다(笠型)라는 형식으로서 세 개의 참호를 삼각형으로 배치하는 것이었다.

 일본의 삿갓(笠)이 삼각형 모양이라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었다.(베트남 사람들의 삿갓이 이렇게 생겼다.) 호기심이 발동하면 못 참는 성미가 있는 나였기에 춘천의 학생들과 군인들이 협동하여 팠다는 그 독특한 형식의 진지를 꼭 눈으로 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모두 나의 생각에 부정적이었다. 60년 전에 판 참호나 교통호가 과연 남아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간 두 세대의 세월이 흘렀고 세기가 바뀌었다. 높은 산도 아니었다. 산맥 주위 농민들이 부단히 출입하면서 땔감을 구하던 시절에 참호와 교통호를 그냥 두었겠느냐는 말이었다.

 더구나 60년 동안 해마다 쏟아지는 폭우와 장마철의 빗발을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는 말들도 했었다. 하지만 나는 7연대와 학생들이 구축한 개인호나 교통호가 일부나마 남아 있을 가능성에 희망을 걸었다. 이는 내가 오래 된 참호를 목격한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군 생활 시절 수색 역 구내에서 남쪽에 미군들이 구축한 전차호들 두 개를 보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1951년 중공군이 50만을 동원해서 대공세를 취했던 1951년 4월 춘계 공세 직전에 만든 전차호로 추측된다. 그 때 서울 북방의 방어가 원체 강력해서(방어에 동원한 미군의 포만 400문이었다.) 중공군은 서울 점령을 포기하고 중부전선으로 파고 들어갔으나 한 달 간의 공세는 무참히 실패했고, 총 사령관 팽덕회의 사령부마저 함경도 성천까지 도주해야했다.

 이 전차호를 보고 대대 작전 과장과 함께 이 호들이 아직도 온전해서 금방 전차호로 다시 활용을 할 수 있다고 대화를 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참호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소멸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던 이유는 또 있었다.

 수년전 나는 중국 백두산 중턱에 있던 내두산촌이라는 곳을 찾아간 일이 있었다. 김일성의 빨치산 부대가 남만주 일대에서 날뛸 때인 1938년경 일본이 백두산 해발 800미터 지점의 고원 밀림 지대 가장자리에 이도백하진 일대에서 모집한 젊은 농민들을 40세대를 이주시키고 전략촌인 내두산 촌을 만들었었다.

 그 곳 농민에게서 그 시절에 마을 뒷산에 판 초소의 참호가 지금도 남아있다는 말을 듣고 그 때도 호기심에 무턱대고 올라가 본 일이 있었다.

[1938년에 판 중국 백두산 내두산촌의 보초 참호. 두사람이 근무하던 복초 참호다. 둥근 윤곽선이 보인다.]



 무려 70년이나 지났는데도 참호는 아주 깨끗한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많은 춘천 옥산포 주변의 참호들도 조금은 남아있겠지.... 나는 그런 기억과 기대를 가지고 몇 주 전 춘천 옥산포 164고지 능선으로 향했다.

[여우 고개 -옛날 여우가 나타나서 서당에 가는 학동들을 홀렸다는 고개. 운명의 6ㆍ25 날 7연대 1대대 장병들은 이 고개를 넘어가서 좌회전 한 뒤 진지에 투입하였다. 이 고개 우측 소양강변에 7연대와 16포병대대가 있었던 우두산이 있다.]



 아무 곳에서나 올라가도 된다는 안이한 생각으로 산에 붙었는데 중턱에서 두어번 미끌어지고 단념했다. 산의 사면은 낙엽이 쌓인 곳으로 발을 디디면 두부를 밟은 것처럼 밑으로 밀려 버렸다. 이대로 포기 해야 하는 난감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지나가는 한 주민이 알려 주어 남쪽 여우 고개 근처에서 희미한 등산길을 발견하고 산에 오를 수가 있었다. 164고지 능선은 아프리카 정글이 무색할만큼 우거진 숲으로 덮여 있었다. 산 아래 인간 세상의 소음은 모두 숲에 차단당하여 마치 고요한 터널 속을 혼자 걷는 듯했다. 서너시간을 능선에서 보냈지만 오가는 등산객 한 명 없었다.

 이 산이 과연 1951년의 6월 25일의 민둥산이었을까 하는 느낌마저 가져 보았다. 능선 좌우에는 나무가 우거져서 양 쪽을 내려다 볼 수가 없었다.

[아무 것도 안 보이는 길에서도 약간 산 아래 전망이 나오는 부분의 능선 길]



 그러나 능선에서 드디어 첫 참호를 만나 볼 수가 있었다. 그 참호는 서쪽의 옥산포가 아닌 반대편의 동쪽의 샘밭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나중에 옥산포에 공사한 참호들이 양쪽으로 침공할 경우를 대비해서 서쪽의 옥산포와 동쪽의 샘밭을 향해 능선 사면 양쪽에 참호를 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긴가민가 하면서 계속 능선을 타고 164고지 쪽을 향하여 걸어가자 드디어 능선을 따라 개인 참호들과 끊어졌다 이어졌다하는 교통호들도 드문드문 나타났다. 60년이란 긴 세월 잊혀졌던 춘천 군과 민들의 지성어린 손길로 구축해놓은 호국의 방어진지는 아직도 숲속에 그 생명을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발견한 개인호]



 표현하기 힘든 감동이 가슴을 벅차고 올라왔다. 개인호는 164고지로 갈수록 점점 더 온전하게 형태의 보존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높은 곳은 사람들의 출입이 뜸하다 보니 더 잘 보존되었다고 생각되었다.

 나는 일본식 가사가다의 참호 배치가 있나 찾아보았다. 좁은 능선의 좁은 부분에는 그런 여유가 없었지만 조금 여유가 있는 곳에는 가사가다의 형의 삼각형으로 구축한 참호들이 있었다.

[교통호 - 많이 메위져 있다.]



 이 장군은 참호가 교범대로 직사각형의 장방형으로 팠고 깊이는 각 병사의 가슴 높이였다고 말했다. 병사들이 참호 안에 앉으면 완전히 머리를 감추어 포사격에도 엄폐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개인호들은 모두 둥근 원형이었고, 깊이는 무릎 깊이 정도였다.

 주변의 벽이 조금씩 무너져서 호는 넓어지고 바닥은 쌓이는 흙에 의해서 얕아 진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안경 모양의 이중 호도 있었는데 이것은 말굽형으로 팠던 공용화기 호가 무너져서 그런 모양이 된 것이었다. 교통호는 무너진 현상이 더 해서 아주 낮아지고 좁아져있었다.

 세월의 노쇠함은 참호에게서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진짜 놀랄 일은 164고지에 올랐을 때였다. 주변이 숲으로 빽빽이 뒤 덮인 그 곳에 기념비가 서있었다.

 



164고지가 1950년 6월 26일 옥산포 침공 북한군을 파쇄한 국군 6사단 7연대 1대대 지휘소가 있던 곳을 기념하는 상징물이었다. 알고보니 춘천의 춘천 대첩 선양회라는 민간 단체가 춘천시와 2군단의 도움으로 세워놓은 것이었다.

 나는 164고지를 넘어 능선을 따라 앞으로 가다가 중간에 산의 샘 밭에서 능선의 안부(鞍部)를 가로질러 옥산포로 가는 옛 고갯길을 발견하고 그 오래된 길로 옥산포로 왔다. 그 고개에 성황당이 있어서 이채로웠다. 옥산포에는 두 번이나 왔었지만 다시 찾아가 보니 감회가 깊었다.

 소박한 초가집들이 있던 그곳은 현대식 건물들이 들어서 도시가 되어 있었다.

[옥산포 거리에서 보이는 164고지]



 옥산포 골목에서 파파 할머니를 만났다. 그 할머니는 전쟁 때 옥산포에 거주했다는 말을 해주었다.

 "북한군이 몰려 올 때 어떻게 하셨어요?"

 "공산당이 몰려오니 빨리 피난 가라고 해서 피난 갔어요."

 옥산포 공격 때 장병들이 옥산포 민간 가옥을 수색하여 숨어든 적병들을 모두 찾아내 섬멸했던 배경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때 옥산포 민가들이 다 비어 있어서 수색이 쉬웠다고  이 장군이 말했었다.

[옥산포의 뒷골목 - 나에게 북한 침공 당일 주민들이 피난을 떠났다는 말을 전해 주었던 할머니의 총총히 사라지는 뒷 모습]



 나는 춘천에서 돌아오자 여러 도움 말씀을 주신 이대용 장군에게 60년 전에 춘천의 학생들과 7연대 장병들이 파놓은 방어진지들이 아직도 164고지 능선에 많이 남아있다는 말씀을 드렸다. 그러면서 촬영을 위해 다시 한 번 가야 할지 모른다는 나의 계획도 말했었다.

 장군은 크게 놀랐다. 

 "나도 꼭 가보고 싶네! 다시 가보세!"

 87세의 연세에 산을 올라간다는 말인가! 더구나 다리까지 불편하신 분이! 나는 완곡하게 만류했다. 그러나 장군의 의지는 완강했다.

 "7연대 사람들도 부르세!"

 옥산포 돌격을 선두에서 이끈 이대용 장군은 최초로 압록강에 도착했던 북진 중대를 지휘했었던 지휘관이었다. 6사단 7연대는 매년 1950년 10월 26일 초산군 압록강 진격을 기념하는 기념식을 가진다.

 기념식에는 잊지 않고 참전 선배 노병들을 꼭 초대하기 때문에 이 장군은 7연대와 유대가 있다.

 "부르시려면 독도법 할 줄 아는 보병 중대장을 부르세요."

 장군이 산을 타다가 탈진하면 모시고 내려와야 하는데, 아무래도 힘께나 쓰는 젊은이가 낫겠다고 내심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의 예상을 깨고 7연대장 박 광덕 대령이 직접 오겠다는 말에 크게 놀랐다.

 나는 이 기회에 인적미답(人跡未踏)의 그 외진 164고지에 기념물을 세운 “춘천 대첩 선양회”도 같이 동행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 이 장군의 동의를 받고 이 단체에도 연락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창립한지 5년이 되었고, 회원들도 300명이나 되었다. 회장인 황 씨는 나의 전화에 큰 관심을 보였다. 

 "임원들과 함께 같이 꼭 같이 가겠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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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민하 2012.03.25 19: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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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Social Bookmark 2013.05.28 05: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장군은 164고지 일대에 연대 장병들과 학생들이 구축한 진지가 미국식 교통호와 일본식 개인호 구축 방법을 혼합해서 만든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8. borrow money 2013.09.23 20: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지가 미국식 교통호와 일본식 개인호 구축 방법을 혼합해서 만든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9. Look for Cruz Blanca Salud 2014.03.29 18: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지가 미국식 교통호와 일본식 개인호 구축 방법을 혼합해서 만든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10. jeffrey killino 2014.05.08 14: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니다....^^재미있는 동영상 자료 많은곳. 연예인 방송 노출 사고 등등.. 화제의 연예인[H양] [K양] 동영상 풀버전.짤리기 전에 보셈.아직 못보신 분들은 여기서

  11. jeffrey killino 2014.05.08 14: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장군은 참호가 교범대로 직사각형의 장방형으로 팠고 깊이는 각 병사의 가슴 높이였다고 말했다. 병사들이 참호 안에 앉으면 완전히 머리를 감추어 포사격에도 엄폐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개인호들은 모두 둥근 원형이었고, 깊이는 무릎 깊이 정도였다.

  12. http://iphone5unlockinggood.com 2014.05.22 16: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월의 노쇠함은 참호에게서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진짜 놀랄 일은 164고지에 올랐을 때였다. 주변이 숲으로 빽빽이 뒤 덮인 그 곳에 기념비가 서있었다.

춘천 군민(軍民)이 만든 6ㆍ25 진지, 아직도 남아있다!(1/3)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1.12.01 14:07

 6ㆍ25전쟁시 서울 북방에서 전차를 앞세운 적의 대군에게 무참히 붕괴된 국군 사단과는 대조적으로 중부 전선의 춘천을 지킨 6사단은 대단한 전투력을 발휘해서 북한군을 격퇴하고 일부 부대는 북으로 도주하는 북한군을 추격까지 했었다.

[6사단 7연대 -1949년, 국방 장관 부대 방문시의 군장 사열]



 6사단의 활약을 소개하는 전사에는 접두어처럼 반드시 앞에 붙는 한 사실이 있다. 6사단은 6ㆍ25전쟁 전에 북한의 침공에 대비해서 군과 민이 합동으로 적의 접근로에 대규모의 진지를 구축했었다는 사실이다.

 6ㆍ25전쟁 당시 군경만 싸운 것이 아니라 수많은 민간인들이 크고 작게 호국의 일선에서 군을 도왔었고, 또 직접 싸우다가 희생했었다. 그러나 춘천 전투에서처럼 수 천 명의 학생들이 적의 침략에 대비한 방어 준비를 한곳은 찾기가 힘들다.

 민간인들이 군을 지원하여 진지 공사를 한 사례는 서부전선의 1사단 지역에서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임진강 지역에서 군 생활을 할 당시 군민 합동의 진지 공사를 했을만한 지역들을 찾아보았지만 그 지역이 민감한 접적 지역들인지라 전쟁 후에도 미군과 국군이 수없이 후속 진지 공사들을 해서 1사단의 장병들과 학생들이 구축했던 진지들은 도저히 알아 볼 수가 없었다.

 춘천 전투 때 적군의 측면을 기습했던 7연대 1대대 돌격을 선두에서 지휘했던 이 대용 장군은 6ㆍ25 첫 3일간 전투에서 자신의 공훈보다도 25일 단독으로 적 침공 부대를 가로막고 격파했던 16포병대대의 활약과 용맹한 1대대장 김용배 중령(준장 추서)의 리더십을 더 크게 평가했었지만 60년 전에 춘천의 학생들과 7연대 장병들이 땀 흘려 구축했었던 방어 진지의 덕택을 크게 보았다는 말을 자주했었다.

 여러 책자에 소개되었던 춘천 방어의 숨은 공신인 방어 진지 공사에 대해서 이대용 장군은 자세히 회고 하였다. 방어 진지 구축의 명령은 육군 본부 작전국에서 사단에 전달되었었다. 북괴의 하는 짓이 수상하니 유사시에 대비한 방어진지를 잘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당시 육군 본부 작전 국장은 작고한 강문봉 대령이었다. 춘천의 7연대는 1949년 북한이 파견한 유격대들을 토벌하는 전투를 겪은 터라 이 지시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진지 공사는 봄에 시작되었다. 7연대의 옥산포 승리를 가져온 164고지 낮은 구릉지대를 방어 진지로 결정한 것은 7연대장 임부택 중령이었다.

[비오는 날 옥산포에서 당겨서 찍은 164고지]



 이 지형은 약간 특이하다. 길이 4km 정도의 낮은 구릉형 산맥으로서 남북으로 뻗혀 있다. 너무 평범한 야산이라서 산맥의 이름도 없다. (이하 이 무명 능선을 164 고지 능선이라고 부른다.)

 6ㆍ25전쟁 전에는 나무하나 없는 민둥산이어서 산 능선 좌우 쪽의 시야가 아주 좋았었다. 이 야산 산맥을 점거하면 서쪽으로는 옥산포 쪽으로 남하하는 적을 칠 수가 있고 동쪽으로는 샘밭 쪽에서 오는 적을 칠 수가 있다.


[164 고지 능선-소양강으로 가는 길목의 여우고개와 춘천 병원의 중간에 위치하여 있다. 푸른 펜으로 표시한 곳이 능선과 164 고지, 옥산포다.]



 휴전선 전방을 가보면 방어 진지들이 북을 보고 옆으로 횡렬로 뻗어 있는데 이 진지는 위 아래로 종렬로 구축되어 있다. 이대용 장군이 말하는 진지 공사의 내력은 이랬다. 육본의 지시에 진지를 만들 지형을 선정하고 7연대는 자체 연대 병력만으로 공사를 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공사할 진지들이 많아 연대 병력만으로 진지 공사를 하면 도대체 어느 정도 세월이 걸릴지도 모르는 좀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생각 밖으로 고마운 구원 군이 나타났다. 춘천 시내 각 중고등학교 학교에 배치된 배속장교들이 학생들에게 호국 교육을 시킬 겸해서 장병들의 진지 공사에 협조하겠다고 자발적으로 자원한 것이었다.

====================================================================================

 한국 전사에 호국군이나 배속 장교들의 이야기가 자주 나와 혼란스런 분들이 많으리라. 이 글을 쓰면서 이대용 장군에게 확실히 알아보았다.

 6ㆍ25전쟁에서 활약한 배속 장교들은 각 중고등학교 체육 선생들 중에서 선발했었다. 태릉의 육사는 서울 공대 자리에 육사 분교를 설치하고, 이들을 5주간 훈련시켜 예비역 소위로 임관시킨 사람들이다. 각 학교마다 크기에 따라 1-2명씩 배치되었었다. 배속 장교로 근무할 때는 군 장교와 꼭 같은 계급장과 군복을 착용했었다.

 한국의 배속 장교들은 일제가 각 학교에 배치했었던 배속 장교 제도를 도입한 것이었다. 배속 장교들은 전쟁 발발과 동시 전부 현역으로 동원되었었다. 현역으로 소집된 배속 장교 출신들은 주로 행정 분야에 근무했었으나 일선 소대장으로 임명되어 전투에 참전한 사람들도 있었고, 그 중에 뛰어난 전공을 세운 장교들도 있었다.

 군에 계속 남아 직업 군인의 길을 간 배속 장교들도 다수 있어서 이 중에 육군 대장도 나왔었다. 정진권 대장이 그 분이다. 호국군은 배속 장교들과는 다른 조직으로서 각 연대에서 지방 젊은이들을 모아서 단기 훈련을 시키고 간부를 역시 예비역 장교로서 임관시켰었다. 

 당시 국방 장관이었던 이범석 장군이 시작한 제도로서 간부들을 두어번만 배출하고 호국군 선발은 중단되었다. 호국군 장교들은 군모도 국군의 군모가 아닌 헬로 모자라고 불리는 모자(해군들이 쓰는 개리슨 햇)를 썼었고, 배속 장교보다는 다소 낮은 대우를 받았다.

 전쟁 발발과 함께 호국군 소위들도 소집되어 현역이 되었다. 역시 이 호국군에서도 육군 대장이 나왔다. 박노영 대장이다.

====================================================================================

 당시 춘천 시내의 춘천 고등학교, 춘천 사범학교, 춘천 농업 고등학교의 학생들이 모두 공사 지원에 나섰다. 놀랍게도 춘천 여자 고등학교도 자원해서 여학생들도 진지 공사를 지원해주었다고 했었다. 특히 춘천 농고 학생들은 삽이나 괭이같은 농기구를 지참하고 나와 작업 속도가 높았었고, 또 제일 많은 학생들이 참여했었다.

 이 뜻밖의 도움에 7연대 주변의 춘천 진지 공사는 아주 쾌속으로 진행되어 6ㆍ25전쟁 두 달 전에 그 엄청난 임무가 다 완료되었다. 이 장군은 7연대 1대대가 맡은 164고지 능선에 대한 공사는 한 열흘 정도 걸렸다고 회상했다.

 학생들이 협조한 진지 공사가 164고지 능선 한 곳만이 아니었다. 2대대 지역인 소양강 남안에도 진지가 만들어졌고, 6ㆍ25전쟁 첫 사흘간 7연대 본부와 포병 지휘소가 있던 우두산에도 진지 공사가 있었으며, 6사단 사령부 전방 지휘소가 있었던 봉의산에도 진지 공사를 했었다.

 방어 진지가 완성되자 7연대 1대대는 6ㆍ25전쟁 당일까지 두 번에 걸쳐 진지 투입 훈련을 해서 지형 숙지를 했었다. 6ㆍ25전쟁 중 최대의 선방(善防)을 했던 6연대는 이렇게 학생들의 도움으로 적어도 반쯤은 전투 준비를 하고 적의 침공에 맞섰었다.

 기억력 좋은 이대용 장군은 학생들과 함께 진지 공사에 적극 협조 해주었던 각 학교의 배속 장교들의 이름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전한병, 김정남... 등등.

 춘천 전투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내가 옥산포에 처음 가본 것은 작년 연말이었다. 첫 방문은 춘천에 갈 일이 있던 참에 옥산포가 어떤 곳인지 그저 한 번 알아본다는 호기심 차원에서 한 것이었다.

[옥산포에서 촬영한 164고지 능선]



 물어물어 소양교를 건너 옥산포에 도착했을 시각은 날도 어두워지고 당시는 옥산포 전투에 대해서 잘 아는 지식도 없던 터라 작은 강변 마을의 이미지가 있었던 옥산포가 번화한 시가지가 된 것만 발견하고 그냥 돌아왔었다.

[왼쪽이 임부택 연대장. 오른 쪽이 김종오 사단장]



 또 춘천에 갈 일이 있었던 지난 봄, 미리 옥산포 전투 상황도 잘 숙지하고, 164고지 능선의 지도도 구해서 아침 일찍부터 서울을 떠났다.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비가 추적추적 왔었다.

[옥산포 거리-북쪽을 보고 촬영한 사진이다.]



 비 때문에 산에 올라갈 생각은 엄두도 못 내고 옥산포에서 비안개 속에 떠있던 164고지 능선의 원거리 사진만 찍고 돌아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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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omputer Network 2012.02.10 18: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난 이런 행사를 통해 6.25전쟁이 어떻게 전쟁이 났는지 알게되었다.
    그리고 내가 봉사를 많이하고 돈을 아껴써야되는 것도 깨달게되었다
    난 이런 캠페인이 더욱더 개발되어 더 많은 사람들한테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2. Computer Network 2012.02.10 18: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난 이런 행사를 통해 6.25전쟁이 어떻게 전쟁이 났는지 알게되었다.
    그리고 내가 봉사를 많이하고 돈을 아껴써야되는 것도 깨달게되었다
    난 이런 캠페인이 더욱더 개발되어 더 많은 사람들한테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3. 송재철 2012.03.24 16: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진!!1사단 15연대 일병송재철입니다.
    진지들이 아직도 남아있다니 무언가 가슴이찡한 느낌입니다.
    한번쯤 진지에 가서 경계자세를 취해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6.25전쟁의 아픔을 다시한번 느끼면서 국방부의 이런 활동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위국헌신 군인본분 잊지않겟습니다.
    wocjf1991@naver.com

  4. 일병 오태근 2012.03.31 13: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골!
    3사단 방공중대 일병 오태근입니다.
    6.25 전쟁 안에 있는 작은 이야기들. 작은 곳, 그런 곳 하나하나까지
    각각의 사연들이 있는 것을 느낍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6.25에 대해 모르는 것을 하나하나 더 배워나갈 수 있다는 것이 매우 기쁩니다.
    과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더 나아갈 수 없습니다. 6.25에 대해 더욱 더 알아서
    제 2의 6.25가 발생하지않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nonoboysot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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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Get more about Fly Me To The Moon Productions 2014.03.29 19: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물어물어 소양교를 건너 옥산포에 도착했을 시각은 날도 어두워지고 당시는 옥산포 전투에 대해서 잘 아는 지식도 없던 터라 작은 강변 마을의 이미지가 있었던 옥산포가 번화한 시가지가 된 것만 발견하고 그냥 돌아왔었다.

피로 쓴 신화, 백마고지전투(1/3)

생생! 6·25/6·25전쟁 10대전투 2011.11.29 19:27

 6ㆍ25전쟁은 끝을 맺지 못한 전쟁입니다. 국토는 전쟁 이전처럼 계속 분단된 상태고, 북의 계속되는 도발로 인해 이전보다 더 팽팽히 대치중인 상태입니다. 정확하게 3년 1개월 2일이라는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었던 6ㆍ25전쟁은 지금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3년이 넘는 시간 이 전쟁을 분석해 보면 군사적으로 가장 극적인 전투가 벌어진 순간은 전쟁 초기 1년간뿐이었습니다.

[6ㆍ25전쟁은 초기 1년간 극적인 작전이 모두 벌어졌다고 보아도 될 정도입니다.]



 전쟁이 발발한지 거의 1년이 되는 1951년 5월말의 중공군 제6차 공세 이후부터 휴전까지 전선의 변화는 거의 없었습니다. 쉽게 말해 전쟁 초기 1년 동안 서울의 주인이 무려 4번이나 바뀌었을 만큼 남북으로 무려 2,300여 킬로미터를 쉴 새 없이 오르내렸지만, 나머지 2년 동안은 겨우 50여 킬로미터 정도를 밀고 당긴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전쟁 종결에 대한 목표가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북한이 남침을 개시하여 낙동강까지 밀어붙였을 때, 우리가 반격에 나서 한만국경까지 달려갔을 때, 그리고 중공군이 참전하여 무려 여섯 차례의 대공세를 연이어 계속하였을 때만 하더라도, 피아 모두는 전쟁을 자신의 승리로 종결 짖겠다는 의지가 강하였습니다. 그것은 전쟁을 벌어진 이상 당연한 이치였고, 그렇기 때문에 승기를 잡았을 때 상대를 완전히 굴복시켜 끝장을 보려하였던 것입니다.

[피아 모두 승기를 잡았을 때 상대를 완전히 굴복시키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1951년 6월이 되자, 어느덧 전쟁을 주도하던 미국과 중국 모두는 승리에 대한 집념을 내려놓았습니다. 최초 세 차례의 공세에서 아군을 매몰차게 몰아붙여 재미를 보았던 중공군도 이후 1951년 봄에 연이어 벌인 일련의 공세에 실패하고 엄청난 피해를 입자 자신들의 능력으로는 유엔군의 화력을 이길 수는 없다고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전쟁의 주도권을 다시 가져온 미군도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처음에는 중공군에게 어이없이 무너졌었지만, 중공군의 약점을 정확히 파악한 이후 유엔군은 눈앞에 개미떼처럼 밀려오는 적들이 더 이상 두려운 대상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저돌적이었던 밴 플리트(Van Fleet) 신임 미 8군사령관은 북으로 내달리기 위해 유엔군사령부에 공세를 허락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을 정도였습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1951년 후반기에 유엔군이 북진을 개시하였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아군이 주도권을 다시 잡았지만 그렇다고 공세를 펼치기도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습니다. 지난 가을 북진 당시에 유엔이나 미 행정부는 그 한계선을 압록강과 두만강까지로 보았습니다. 유엔군 입장에서는 국경선까지 진격하여 적을 소탕하면 원론적으로 전쟁이 끝나는 것이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한반도에 내려온 중공군은 엄연히 교전 대상이었는데 단지 이들을 만주로 몰아낸다고 과연 중국이 전쟁을 포기할 것인지는 의문이었습니다.

 유엔군 입장에서 압록강과 두만강은 정치적 한계였지만, 참전을 단행한 중공군 입장에서는 단지 하나의 강이었을 뿐이었습니다. 따라서 미국이 만주로 확전을 불사하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이곳까지 진격하여도 전쟁이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였습니다. 따라서 정치 외교적으로 종전을 이루지 못하는 한, 군사적 공세로 전쟁을 마무리 짖지 못할 가능성이 컸고, 때문에 군사적으로 우위에 섰음에도 재 북진을 주저한 것입니다.

[전쟁은 성격이 바뀌면서 고지전으로 변하였습니다.]



 결국 중국도 미국도 전쟁을 일방의 승리로 끝낼 수 없다고 판단이 서자, 지지 않는 선에서 전쟁을 마무리 짖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전쟁 이전과 비슷한 상태로 전선이 형성된 바로 지금, 휴전을 하는 것이 양측 모두에게 이익이었습니다. 결국 회담은 시작되었고, 그러다보니 전쟁의 목표는 휴전시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방향으로 바뀌었습니다. 바로 6ㆍ25전쟁 후반기를 상징하는 고지전이 개시된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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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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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omputer Network 2012.02.10 18: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난 이런 행사를 통해 6.25전쟁이 어떻게 전쟁이 났는지 알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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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이런 캠페인이 더욱더 개발되어 더 많은 사람들한테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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