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가 본 6ㆍ25전쟁(1) <존 포드 감독의 '이것이 한국이다'>

생생! 6·25/할리우드가 본 6·25전쟁 2012.01.20 07:29

 '아바타'라는 영화가 국내 개봉영화 흥행순위 1위를 차지했다는 뉴스가 2009년 우리를 놀라게 했다. 우리나라에서 외화가 국내 영화를 제치고 흥행순위 1위를 기록한 것은 1998년 2월 개봉된 '타이타닉' 이후 처음이다. 흥미롭게도 역사적인 흥행기록을 세운 '아바타'와 '타이타닉'은 제임스 카메론 감독(James Francis Cameron·1954~ )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들이다.

 필자는 본격적인 3D 영상혁명이라고 평가받는 '아바타'를 보면서 "영화는 시대정신이 반영된 종합예술이다"는 말을 실감했다. 가상과 현실이 일체화돼 가는 오늘을 사는 우리 생활의 단면이 이 영화에 투영됐음을 느꼈다. 

 동시에 필자는 엉뚱하지만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그의 나이보다 60년 앞선 1894년에 태어났었다면 하는 상상을 해 보았다. 2년전이 6·25전쟁 발발 6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그랬더라면 그는 1950년 6월 27일 오전(한국시간 6월 27일 밤), 전쟁 발발 이틀 후에 발표된 트루먼 대통령의 대국민성명을 들었을 것이다.

 "한국 내부의 안정과 국경침범을 경계하기 위해 무장을 하고 있던 한국 정부군이 북한 침략군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침략군에게 적대행위를 중단하고 38선 이북으로 물러가도록 요구했습니다. 북한군은 이러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공격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안보리는 전 유엔 회원국에게 유엔 결의안을 이행하는 데 모든 지원을 해주도록 요구했습니다."

 또 카메론 감독은 1953년 7월 26일 밤(한국시간 7월 27일 오전)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휴전을 알리는 대국민성명도 들었을 것이다.

 "오늘 밤, 바로 한 시간 전에 한국에서 휴전이 서명되었습니다. 이로써 유엔군과 공산군 간의 전투는 종료되었습니다. 우리 미국에게 공산 침략을 물리치는 대가는 매우 컸습니다. 수많은 가정이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대가를 치렀고, 그것은 비극 그 자체였습니다."

 이런 상상을 하면서 필자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그 당시에 살았더라면 미국의 젊은이들이 한반도에서 흘린 피를 외면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공교롭게도 그보다 60년 전에 태어난 할리우드의 명감독 존 포드(John Ford·1894~1973)와 마찬가지로 6·25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을 하나 정도는 남기지 않았을까 한다. 


[존 포드 감독]

 카메론은 포드와 같이 이야기의 깊이를 추구하는 감독은 아니지만, 할리우드 영화사에서 포드의 계보를 잇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할리우드에 오늘의 제임스 카메론이 있다면, 그때에는 존 포드 감독이 있었다. 포드는 미국 영화계의 독보적인 영화 작가이자 영원한 전설이라고 불린다. 

 그는 서부영화 최고의 명작 ‘역마차(Stagecoach·1939)’를 비롯해 ‘수색자(The Searchers·1956)’,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1940)’ 등 140편의 작품을 남겼다. 아카데미 최우수 감독상을 4회나 수상한 그의 최다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존 포드 감독은 1951년 ‘이것이 한국이다(This Is Korea)’라는 6·25전쟁에 관한 영화를 만들었다. 그가 6·25전쟁에 관한 영화를 감독했다는 것을 아는 세계의 영화팬들은 흔치 않은 것 같다. 이 다큐는 미 해군이 미 국방부의 승인을 받아 제작한 영화이며, 미국 해군·해병대·육군·공군이 촬영한 동영상을 편집하고, 내레이션을 넣은 50분짜리 영화다.


['이것이 한국이다' 영화포스터]

 1951년 8월, 미국 전역에는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은 이 작품의 개봉을 알리는 영화포스터가 게시됐다. 세로 99㎝, 가로 63㎝ 크기의 포스터는 다음과 같은 광고 문구로 보는 이의 눈을 자극한다. ‘세 차례나 아카데미 감독상에 빛나는 존 포드(註: 1952년 네 번째 수상)의 이것이 한국이다’, ‘가장 인간적이고 극적인 우리 시대의 이야기’, ‘짜릿한 감동을 주는 천연색 특선영화’

 이런 글귀와 함께 이 영화 포스터의 중간에는 열두 장의 흑백사진이 실려 있다. 아홉 장의 사진은 우리나라 아이들과 미군, 한 장은 우리나라 노인과 미군, 한 장은 우리나라 여인과 미군, 그리고 나머지 한 장은 미군 혼자 등장하는 사진이다.

 전쟁의 끔찍한 포화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타이틀이 등장하면서 우리나라의 시골 풍경으로 장면이 바뀐다. 순박한 사람들이 결혼하고, 널뛰며 평화롭게 사는 마을. 이 마을에 미군이 등장하고, ‘오, 작은 고을 베들레헴(O Little Town of Bethlehem)’이라는 감미로운 노래가 흐른다. 그리고 생명·자유·행복을 위한 미군의 행군과 전투. 특히 끔찍했던 한겨울의 장진호 전투 장면이 생생하게 전개된다. 

 영화 내용에 대한 더 이상의 설명보다는 독자들이 직접 감상해볼 것을 적극 추천한다. 무료동영상 공유사이트 유튜브(www.youtube.com)에 이 영화의 전체분량이 게시돼 있다. 영화관에서 보는 화질과 음향은 아니더라도 나름대로의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필자의 관심은 다큐멘터리보다 극영화에 있다. 이런 관점에서 나름대로 고찰한 바에 따르면, 할리우드에서는 6·25전쟁을 소재로 ‘이것이 한국이다’와 같은 다큐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극영화가 제작됐다. 전쟁 발발 후 올해까지 90편 내외의 극영화가 제작돼 상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영화 중에서 3분의 1 정도는 미국에서 DVD나 VHS비디오로 출시됐고, 일부 영화는 DVD로 국내에도 출시됐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영화팬들의 관심은 그다지 높지 못한 것으로 안다. 그러나 올해는 우리가 한 번쯤 이들 영화에 대해 관심을 가져볼 때라고 생각한다.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을 한국인과 미국인이 우정의 피를 나눈 원년으로 본다면, 2010년은 한미 혈맹관계가 환갑(還甲)을 맞는 매우 뜻 깊은 해였다. 이를 계기로 우리 정부와 민간에서는 올해 전쟁의 폐허에서 기적을 일궈낸 우리의 저력을 보여주고, 한미관계의 심화·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2013년까지 기획하고 추진하고 있다. 

 이를 보며 필자도 자그마한 기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을 가져보았다. 그간 해외에 근무하면서 6ㆍ25전쟁에 관한 할리우드 영화 중에서 60장의 오리지널 영화포스터를 수집하고, 그들 영화에 대한 정보도 찾아왔기 때문이다. 이번 주부터 연재되는 본 특집은 이러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연재물을 통해 독자들과 함께 영화 속에 투영된 그때 우리나라와 미국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밝고 활기찬 한미관계의 내일을 설계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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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만큼 시대상을 잘 반영하는 예술도 드물다. 6·25전쟁이라는 자유국가와 공산국가 간의 이념분쟁은 할리우드에서 다양한 영화의 형태로 표현됐다. 그러나 오늘,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인들에게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6·25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를 꼽으라면 5편 이상을 말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할리우드에서는 6·25전쟁을 배경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외하고도 90여 편의 극영화가 제작됐다. 3년간의 전쟁 기간 중에만 20편이 제작됐고, 휴전 후 1959년 말까지 42편이나 제작됐다. 미국인들의 전쟁에 관심이 얼마나 컸는지를 잘 보여주는 증표다. 영화의 주제 또한 사랑·애국·배신·세뇌·스파이·비밀임무 등 다양하다.

 
이런 다수의 영화 중에서 고전으로 분류돼 현재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작품이 드물다. 그러나 전쟁 발발 60주년을 계기로 우리가 그간 접하지 못했던 6·25전쟁 관련 할리우드 영화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당시 미국인들의 가치관, 신념, 한국에 대한 인식들이 거기 녹아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한미관계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유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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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magento daily deal 2012.12.10 18: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게시물이 아주 좋은 그리고 감사합니다!

  3. magento reward points 2012.12.10 18: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필승! 15사단 38연대에서 근무하고 있는 일병 홍원석 입니다.
    한국사에는 많은 전쟁이 있었지만 지금의 분단국가를 만든 6.25 같은 동족상잔의 전쟁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가장 큰 비극이라 생각합니다.

  4. du lich han quoc 2012.12.13 14: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것이 내가 볼 수있는 좋은 공유합니다.

  5. du lich nhat ban 2012.12.13 14: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은 콘텐츠의 실제 조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관심과 함께 기쁨을 많이 날 수 있습니다.

  6. du lich hongkong 2012.12.13 14: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다수의 영화 중에서 고전으로 분류돼 현재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작품이 드물다.

  7. tapetes para recepción 2013.01.08 14: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슬쩍 갈거야 것은 나의 작은 개인용 컴퓨터에서 정상적으로이 사이트를 위쪽으로. 표현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8. magento affilate 2013.01.08 16: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これは私が読んでいる良い記事です。あなたの投稿に感謝します!

  9. magento reward points 2013.01.08 16: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들 영화 중에서 3분의 1 정도는 미국에서 DVD나 VHS비디오로 출시됐고, 일부 영화는 DVD로 국내에도 출시됐다

  10. magento reward points 2013.01.08 16: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들 영화 중에서 3분의 1 정도는 미국에서 DVD나 VHS비디오로 출시됐고, 일부 영화는 DVD로 국내에도 출시됐다

  11. magento one step checkout 2013.01.08 17: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다큐는 미 해군이 미 국방부의 승인을 받아 제작한 영화이며, 미국 해군·해병대·육군·공군이 촬영한 동영상을 편집하고, 내레이션을 넣은 50분짜리 영화다.

  12. magento daily deal 2013.01.08 17: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나 올해는 우리가 한 번쯤 이들 영화에 대해 관심을 가져볼 때라고 생각한다.

  13. magento mega menu 2013.02.28 17: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물론 한국에서도 한국의 감독과 배우들도 훌륭하게 만들어 낼테지만 제임스 스타일의 3D영화는 어떨지... 생각만으로도 짜릿해지네요. 언젠가 6.25영화를 3D로 보게됬으면...

  14. magento banner 2013.02.28 17: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필승! 15사단 38연대에서 근무하고 있는 일병 홍원석 입니다.
    한국사에는 많은 전쟁이 있었지만 지금의 분단국가를 만든 6.25 같은 동족상잔의 전쟁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가장 큰 비극이라 생각합니다.

  15. magento mega menu 2013.02.28 17: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물론 한국에서도 한국의 감독과 배우들도 훌륭하게 만들어 낼테지만 제임스 스타일의 3D영화는 어떨지... 생각만으로도 짜릿해지네요. 언젠가 6.25영화를 3D로 보게됬으면

  16. magento banner 2013.02.28 17: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솔직히 말하자면, 필자의 관심은 다큐멘터리보다 극영화에 있다. 이런 관점에서 나름대로 고찰한 바에 따르면, 할리우드에서는 6·25전쟁을 소재로 ‘이것이 한국이다’와 같은 다큐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극영화가 제작됐다

  17. Kevin 2013.04.05 21: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로그에 표시됩니다에 내가 정말 존경하고 있습니다. 이 블로그에 놀라운 서비스를 공유 많이

  18. Chatrandom.com 2013.05.02 01: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바타'라는 영화가 국내 개봉영화 흥행순위 1위를 차지했다는 뉴스가 2009년 우리를 놀라게 했다. 우리나라에서 외화가 국내 영화를 제치고 흥행순위 1위를 기록한 것은 1998

  19. onebuckresume 2013.08.04 21: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치고 흥행순위 1

  20. cartoon network arabic 2013.08.15 14: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들의 아름다운 추억은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 시절의 아픈 기억들은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피로 쓴 신화, 백마고지전투(3/3)

생생! 6·25/6·25전쟁 10대전투 2011.12.15 19:57

 1952년 10월 6일, 적들이 역곡천을 고의로 범람시켜 아군의 증원을 차단시킨 후, 제30연대가 점령하고 있던 395고지 일대의 진지에 격렬한 포격을 개시하면서 피의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포격 후 연이어 개시한 중공군의 3차례 공격을 아군이 모두 격퇴하였지만 병력을 대폭 증강한 적이 너무 지쳐있던 아군을 10월 7일 재차 공격하자 고지가 피탈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고 시작이었습니다.

[ 드디어 적들이 대대적인 공격을 개시하였습니다 ]



 후방에 대기하고 있던 제28연대가 즉시 반격에 나서 고지를 탈환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아군은 최대한 불필요한 사상을 막고 전투력을 유지시키기 위해 예비대를 적절히 활용해 순차적으로 작전에 투입하였습니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아군의 희생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고 395고지는 아군과 적들이 흘린 피로 뻘겋게 물들어가면서 양측 모두 인명 피해가 급격히 늘어갔습니다.

 전투 개시 불과 3일이 경과하였을 때, 돌아가며 방어와 탈환에 나섰던 제28, 30연대들은 더 이상 전투에 투입되기 곤란할 만큼 출혈이 심하였습니다. 하지만 적 제113, 114사 또한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고 전선에서 물러나야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양측 모두 예비로 아껴두었던 제29연대와 제112사 마저 동원되었고 이들 또한 처절하게 피를 흘려 고지를 적셔갔습니다.

[ 부상당한 9사단 장병들 ]



 1952년 10월 6일부터 장장 열흘에 걸친 전투로 무려 12차례의 쟁탈전이 벌어졌고 7번이나 고지의 임자가 바뀌었습니다. 해발 400미터도 되지 않는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양측이 퍼부었던 포탄만 해도 무려 30만 발 정도로 추정되고 하루 동안에 주인이 서로 뒤바뀐 경우도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아군의 인내심은 중공군을 압도했고 이런 놀라운 9사단의 모습에 중공군은 서서히 질려갔습니다.

 결국 10월 15일, 9사단의 놀라운 분투에 중공군은 백기를 던졌습니다. 사실 중공군 38군은 지구에서 사라졌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더 이상 투입할 자원도 없었습니다. 고지 주변에서 확인된 중공군 시신만도 1만 4,389구였는데 이는 38군의 60퍼센트 정도였고 부상자까지 따진다면 38군이 전투를 지속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한마디로 무참하게 녹아버린 것이었습니다.

[ 더 이상 감내할 수 없을 만큼 중공군의 출혈이 커졌습니다 ]



 아군의 피해도 컸습니다. 3,146명의 국군이 고지를 사수하기 위해 희생됐습니다. 하지만 전쟁 내내 국군이 하나의 거점을 사수하기 위해 이렇게 엄청난 희생을 각오하고 대대적인 승리를 거둔 경우도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이 전투의 후유증이 얼마나 컸던지 중공군이 더 이상은 피를 부어대는 고지전에 매달리지 않도록 만들어버렸습니다. 병력을 마구 소모할 줄만 알던 중공군도 무서움을 느끼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국군은 철원평야를 아군의 통제 하에 두면서 작전 주도권을 계속 행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395고지는 전투 중 실시된 엄청난 포격으로 말미암아 높이가 1미터정도 낮아졌을 정도로 황폐화됐는데, 능선의 모습이 마치 말 등처럼 생겼다 하여 이후 백마고지로 명명되었고 국군 역사의 성지가 되었습니다. 더불어 적 1개 군단을 궤멸시킨 제9사단에게는 백마부대라는 영광된 호칭이 부여되었습니다.

[ 백마고지전투는 전설이 되었습니다 ]



 이 글 처음에서 설명한 것처럼 전쟁 중반기이후부터 벌어진 고지전은 승리로 전쟁을 끝맺겠다는 의지보다는 휴전을 염두에 둔 차선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랬다고 전투가 쉬웠던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전쟁 지휘부를 당혹하게 만들만큼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렇게 무서운 희생을 감추고 지켜낸 것이 바로 대한민국이었고 그중에서도 백마고지 전투는 자유의 증거라 하겠습니다.  //끝//

 P.S. 이로써 ‘생생 6ㆍ25’코너에 지난 1여 년간 연재한 ‘6ㆍ25전쟁 10대 전투사’가 끝났습니다. 본 연재는 관계기관 간행 공간사를 기본으로 최근까지 연구된 자료를 참고하여 집필하였습니다. 군데군데 오타가 있고 생략한 부분도 많았는데, 이는 전적으로 집필자의 능력부족 때문이며 이 점에 대해 양해의 말씀을 구하고자 합니다. 혹시 이후에 내용과 관련하여 질문이 있으면 ‘http://blog.chosun.com/xqon (august 의 軍史世界)’에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august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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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avtomati.net 2013.05.21 18: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근 몇 년 동안 우리가 우려하고있는 것은, 늦은 중 하나의 샘플을 살펴 신발을 체크 아웃하고 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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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what does bubblegum casting do 2014.03.23 19: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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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Get more about Networking Ninja 2014.03.29 18: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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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jeffrey killino 2014.05.07 18: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용한 정보. 내 행운에 우연히 웹 사이트를 발견하고, 운명의 트위스트는 사전에 대해 온 않은 이유는 그다지 놀랍지도 있어요!!!

  20. buy instagram likes fast 2014.05.13 15: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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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George Bobrovskis 2014.05.14 15: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마움은 영원히 기억하고 간직해도 결코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중에는 수십만

춘천 군민(軍民)이 만든 6ㆍ25 진지, 아직도 남아있다!(3/3)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1.12.06 08:43

 11월 19일 토요일 11시, 나는 164고지로 올라가는 등산로 입구가 있는 신북면 천전 초등학교에서 아드님의 차를 타고 온 이 장군과 만났다. 이어서 철원군 갈말읍 문혜리에서 먼 길을 온 박상국 대령과 인사과장 송동섭 대위가 도착했고, 이어서 춘천 대첩 선양회 황한석 회장과 성길수, 지종호  부회장 등 세 명이 각자의 차를 타고 도착했다.(이들중 지종호 부회장은 건강 문제로 산에 오르지 못하고 밑에서 대기했다.)

 서로 인사가 끝나고 이 장군이 세밀하게 작성한 춘천 전투의 전투기록과 상황도를 7연대장 박상국 대령에게 기증하고 간단히 기념 촬영을 했다.

[164고지를 뒷 배경으로 전투자료를 전달하는 이대용 장군과 7연대장 박상국 대령]



 “앞으로는 박 대령이 춘천 전투 전사의 전문가가 되도록 하시오.”

 박 대령이 이지적인 미남 면모가 인상적이라 알아보니 이대용 장군의 육사 및 미 육군 대학의 40년 후배라고 한다. 

[왼쪽부터 황한석 회장, 박상국 연대장, 이대용 장군, 지종호 부회장]



 이어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걱정스럽게 생각했던 이 장군은 상상을 뛰어 넘게 산을 잘 올랐다. 나의 권유로 지팡이는 가져 왔지만 마치 산신령처럼 산길을 걸었다. 산 능선에 붙으면서 참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앞에서 박 대령과 송 대위의 같이 가던 이 장군은 추억을 참기 힘든 상황인지 연신 주변에 둘러보았다.

 “우리가 만든 참호가 맞아! 전쟁 뒤에도 사용한 흔적이 있구먼! 그 때는 모래 주머니를 사용하지 않았어!”

[능선에서 부대 배치를 설명하는 이 대용 장군]



 “여기는 3 중대가 배치 되었었지. 우리 1중대는 제일 북방에 배치되었고, 2중대는 반대편 샘밭 쪽을 향해서 배치되어 있었어.”

[참호-아직 오리지날인 사각형의 모양을 많이 유지하고 있다.]



 능선을 따라 가면서 과묵한 박상국 대령이 참호를 보고 말했다.

 “이 전투 호들이 제대로 만들어졌네요. 개인호는 능선 정상이 아니라 능선 전사면 약간 아래에 배치하게 되어 있는데 이 진지들이 정확히 그렇게 구축되어 있습니다.“

 이윽고 164고지에 도착한 이대용 장군은

 “그 때는 능선 양쪽 전방이 다 보였지... 시계가 아주 좋았어! 지금은 나무가 우거져서 안 보이는 군.”

[기념탑 앞의 이대용 장군, 박상국 대령, 황한석 회장, 맨 왼쪽은 성길수 부회장, 맨 오른쪽은 연대 인사과장 송동섭 대위]



 그리고 김용배 대대장의 명령에 의해서 1대대가 일제히 참호를 뛰쳐나와 1,500미터의 돌격을 개시했었던 그 때의 긴장된 상황을 정확한 기억력으로 회고하였다.



 박 대령은 이 장군으로 부터 옥산포 전투의 모든 것을 빼지않고 흡수하려는 듯 휴대폰 녹음기로 모두 녹음을 한다. 마치 무술의 도인이 애제자에게 비전의 무술을 전수하는 옛 무협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나게 한다.

 보병 전투 지휘관인 박 대령은 선배로부터 듣는 자기 지휘 7연대 전사를 정말 열심히 경청했다. 내려가는 길이 험하지만 어느 단체에서 설치했는지 잡고 내려가는 줄을 매어 놓아 한결 수월했다. 



 이 장군은 당시에 학생들만 군에 협조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1950년 6월 25일 1대대의 진지 투입부터 인근 부락민들이 3-40명이 달려와 포탄과 실탄, 그리고 중화기 등을 진지까지 운반하는 것을 도와주었다는 사실이었다.

 개전 초기부터 국군을 도왔던 춘천 주민들은 7연대가 낙동강 전선까지 철수하며 지연전을 할 때까지 따라와서 여러 궂은일을 해주었다는 말도 해주었다. 전투가 치열해지고 자원 봉사자들에게도 적의 총탄이 날아오자 일부 자원 봉사자들은 자기들이 입은 흰 한복을 칡넝쿨을 둘러서 위장을 하더라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었다.

 그 때 급박한 상황이었던 군은 식사 대접 외에 아무 것도 못 해준 것이 미안한 감정으로 남는다는 회상도 했었다.

[참호]



 이 장군은 나무 숲 사이로 약간 보이는 옥산포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쪽에 솔밭이 있었는데 그 때 공격할 때 병력 일부가 그 솔밭 사이로 돌진했었지!”

 나는 전번에 옥산포를 방문했을 때 옥산포와 164고지 능선의 사이에 위치한 이 숲을 눈 여겨 보았었다. 이 장군은 그 때 소나무들 키가 사람 키를 조금 넘는 높이였다고 했지만 지금은 거대한 거목들로 성장해있다.

 지도를 보니 상금솔이라는 명칭이 표시되어있었다. 생태적으로 보호받고 있는 숲으로 보인다. 이 숲이 생태적 가치외에도 더해서 역사적 사연도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동네 뒤에 멀리 병풍처럼 둘러진 솔밭이 돌격 부대가 통과한 상금솔밭이다. 지금은 거목들이 되어 있다.]



 사족이지만 포스팅 직전 아래 글을 추가한다. 7연대 1대대 옥산포 돌격에 자주포와 중포의 지원을 받던 적 2개 대대는 완전 패닉(panic-공포)에 빠져서 패주했다. 얼마나 놀랐는지 그들은 멍청하게 마비되어 있다가 공격대대가 1,500미터를 거의 달려 옥산포에 도달했을 때에야 겨우 몇 발 쏘고 패주했다.

 자주포병들까지 차를 버리고 줄행랑을 쳤다.

[북한의 자주포 SU-76]



 이런 기갑 무기와 중포로 지원받는 두배나 더 큰 적에게 돌격을 명한 김용배 대대장의 용기와 직관의 지휘가 볼수록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1대대 돌격에 놀란 자주포병들은 차를 버리고 도망쳤지만 한명은 불을 지르고 도주를 시도하다가 사살되었다.

[교통호  안에 나무가 자라고 있다. 세월의 한 자국이다.]



 사단과 연대 지휘소가 있던 봉의산에서 지켜 본 허영호 소령은 1대대가 164고지 능선에서 밀물처럼 쏟아져 내려가며 함성과 함께 감행한 돌격은 참으로 무서운 기세였다고 감탄하던 것을 이 장군이 기억하고 있다.

[김용배 대대장이 만주에서 일본군에 근무할 때의 사진.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왔다가 다시 소집되어 가서 오랫동안 일본군 생활을 했었다.]



 그는 이대용 장군에게 자신의 일본군 복무를 후회하는 말을 자주했었다. 

 적의 붕괴를 정확히 읽고 돌격을 명한 김용배 1 대대장의 지휘 감각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이는 책에서 배우는 기술이 아니라 ‘직관’에 의한 것이었다. 클라우제비츠는 나폴레옹은 승리는 그가 가진 승리의 비결이 남이 갖지 못한 직관의 힘이었다고 분석했었고, 이 직관을 불어로 꾸되이(coup d'oeil)라고 명명했다.

[클라우제비츠]



 그 직관은 영어에서 말하는 improvision이나 일본 국민작가 시바 료타로가 표현한 전각(戰覺)과도 같은 뜻인 듯하다. 독일 장군 롬멜이 이 본능의 감각에 의한 전투 지휘에 능했었고, 이스라엘의 아리엘 샤론과 중국의 임표의 전투 지휘에 이런 면모가 보인다. 임진란의 영웅 이순신 장군의 전투 지휘에도 이 직관의 흔적이 뚜렷한 해전이 여럿 있다.

 삼년간 일선 전투 지휘관을 하면서 수 십 번의 전투를 경험한 이대용 장군이지만 항상 김용배 장군의 전투 솜씨를 격찬하기에 본 필자가 알아 본 내용을 소개했다.

 김용배 대령은 연대장 재직시인 1951년 7월 중부 전선에서 적의 포격에 전사했다. 고향 문경에 그를 기린 용배 공원이 있다. 사후 준장으로 추서되었다.

 방문에서 새로 들은 정보는 그 뿐만 아니었다. 우리와 동행한 춘천 선양회의 황 회장은 164고지 능선에 학생들과 병사들이 공들여 판 방어 진지가 옥산포 전투에서 한번만 사용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자기가 어린이였던 1.4후퇴 시에 이 164고지를 점령한 국군과 옥산포가 아닌 샘밭에서 정면으로 능선을 공격해온 중공군과 벌인 격전을 직접 목격했다고 했다. 눈이 하얗게 쌓인 들판을 새까맣게 덮은 중공군 대병력이 164고지 능선을 공격했다가 능선 진지에서 쏘는 국군의 사격에 첩첩히 쓰러진 시체에서 흘러내린 피가 눈 벌판을 붉게 물든 전투 상황을 동네의 창고 틈새로 내내 지켜봤다는 것이다.

 이 장군의 중대가 돌격을 개시한 시점이기도 한 성황당 고갯길을 만나 내가 전번에 내려왔던 옥산포 쪽이 아니라 반대편으로 내려가 황석환 회장이 접대하는 막국수 점심 식사로서 이번의 방문을 마감하였다. 시골인 샘밭에 대형 막국수 식당이 있었다.

[이대용 장군의 맞은 편이 지 종호 부회장. 1950년 국군 포병 16연대 입대했던 노병. 건강때문에 산에 올라가지는 못했지만 끝까지 기다렸다가 일행과 자리를 같이했다.]



 정말 뜻밖의 옛 격전지 방문이었었지만 끝까지 정정하게 산행을 종주한 이 장군의 건강도 경탄스러웠다. 옛 격전지를 후배 지휘관에게 보여주고 자신의 전투 경험을 들려준 이 장군은 세상에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행복한 기분이었다.

 식당에서 이 장군은 60년 만에 옛 격전지를 방문한 감동을 자신이 치열하게 겪었던 전투를 정확한 기억으로 거침없이 풀어냈다.

[제일 젊은 덕에 진로 개척, 전방 정찰, 후방 연락, 이 장군 수발등을 도맡아 정신없이 뛰어다닌 송 대위 - 소담스런 식욕으로 체력 소비를 해결한다.]



 

[이 장군은 식당문을 나서서 전방에 보이는 봉의산 자락을 가리키며 1대대의 소양강 전투를 자세히 설명한다. 역시 열심히 경청하는 박상국 연대장과 황한석 회장]



 얻은 바가 컸던 방문이었다. 7연대장 박상국 대령과 송동섭 대위가 대선배를 모시는 깍듯한 지극 정성도 인상 깊었지만, 이날 내내 동행하며 열심히 경청하는 춘천 대첩 선양회의 황회장과 두 명의 회원들의 자발적인 성실함은 또 다른 감동이었다.

 황 회장은 자신의 직업이 농부라고 말했었고, 다른 회원들도 평범한 자영업자들이라고 했었다. 황 회장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전적지외에 혹시 내가 알고 있는 춘천 지역 다른 전적지도 있는지도 진지하게 물어 보았다.

 민간인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춘천 일대 호국 유적지 관리를 하고 있는 것은 아주 특이한 일이었다.

 전사 해설사로서 나는 이 방면에 안 좋은 기억들이 많다. 숨겨진 전사의 전적지를 알려 주고 이를 잘 관리하도록 권고했다가 담당 관리들의 무지하고 게으른 반응에 기가 막혔던 것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올해 봄 외국인 참전 용사가 전적지를 방문할 때도 해당 지역의 전사를 포함한 역사 담당자는 나의 동행 요청을 거절했었다. 생각해 보니 그 날이 이번과 같이 토요일이었다. 춘천 민간단체의 사람과 달리 공무원인 자신은 휴일에는 편히 쉬어야겠다는 복지부동(伏地不動) 의 게으른 이기심이 발동한 행위였다.

 그 방문은 겨우 국방부 6ㆍ25 사업단의 도움으로 잘 마무리 할 수가 었다. 지금도 그 외국인 참전 용사는 나에게 고맙다는 메일을 보내고 있다. 그 전적지는 나중에 참전국의 대사와 무관(武官)도 방문했었다. 지역의 역사를 담당한다는 그는 내가 다섯 번이나 찾아 가서 발굴한 전사를 도용해서 지역내 군 부대를 돌아다니며 강연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었다. 이런 일을 겪은 필자에게 춘천의 보통 시민들의 이러한 자발적인 호국과 숭모의 정신이 매우 특별하게 느껴졌다.

 춘천 시민에게는 무엇인가 호국의 충정이 유전인자로 내려온 것이 아닌가 한다. 6ㆍ25 개전 초기 춘천 방어시 1사단 사령부가 있었고, 소양강 전투의 방어선이었던 봉의산에는 과거 춘주성이 있었다.

 1953년 9월초에 고려를 침공한 몽골군은 성 주변을 목책으로 둘러싸고, 호(豪)까지 둘러 판 뒤에 성에서 농성하는 군민을 수 십 차례나 잔혹하게 공격했다.

[군민 모두 산화한 옥쇄 전투의 춘주성]



 안찰사 박학기와 문학이 지휘하는 성의 군민은 물이 떨어져 마소를 죽여 그 피를 마시며 저항했지만 식량과 시석(矢石)이 떨어지자 남은 600명의 병력으로 최후의 돌격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몽골군의 집중 사격에 성을 둘러싼 호를 넘지 못하고, 모두 장렬하게 전사하고 말았다. 몽골군은 성으로 난입하자 노약자들만 남은 성민들은 끝까지 저항하였다. 몽골군은 이들 성민들은 모두 몰살해 버렸다. 세계에 잘 알려진 미국의 알라모 요새나 이스라엘의 마사다 요새에서 있었던 군민 옥쇄의 처절한 역사가 춘천에도 있었다.

 그 유전자가 면면히 흘러 900년의 세월이 지나 1950년 국가 위기에 반응하는 어린 남녀 학생들의 국방 의식으로 나타났었고, 그 유전자 더 흘러 이런 호국 의식을 기리는 민간 단체까지 나온 것이 아닌가한다. 그런 자랑스러운 호국의 전통이 이번에 방문했던 군의 7연대 장병들과 춘천의 어린 학생들이 공사한 방어 진지도 춘천의 민관군 노력의 보존으로 장래에도 길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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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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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성 ! 상병 박성현 이었습니다.
    21sunghyun@naver.com

  5. منتديات 2012.11.20 02: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때는 능선 양쪽 전방이 다 보였지... 시계가 아주 좋았어! 지금은 나무가 우거져서 안 보이는 군.”

  6. boca Raton plumber 2013.04.28 03: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생님. 남기신 글을 보고 댓글을 쓰는데 전해질 지. 생생한 묘사와 주변지식, 경륜이 녹아있는 해석을 읽고 당장 뵙기를 청하고 싶으나 제가 있는 곳이 미국입니다. 남보람 소령이라고 합니다. 워싱턴 디씨에서 6.25전쟁 비밀해제 자료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연락을 할 지...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

  7. 울프 독 2013.05.01 14: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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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Payday loans 2013.09.23 21: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밀하게 작성한 춘천 전투의 전투기록과 상황도를 7연대장 박상국 대령에게 기증하고 간단히 기념 촬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