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Post로 보는 6·25전쟁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시작되어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에 조인함으로써 종결된 전쟁으로 우리 땅에서 일어난 동족 상잔의 비극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발발한 ‘국제전’이자 UN 창설이후 최초로 유엔군을 파병한 전쟁이었던 6·25전쟁은 3년 1개월 2일 이라는 긴 세월(시간)동안 지속되었다. 처음 1년 동안 거의 대부분 주요한 작전과 전투들이 치뤄졌고, 그후 2년은 정전을 위한 휴전협상을 계속하면서도 전선에서는 서로 한 치의 땅을 더 뺏기 위해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던 특이한 전쟁이었다.
1단계는 북한군 남침 이후 낙동강선까지 밀려 내려간 시기로, 남한 국토의 10%만 남기고 다 빼앗기는데 3개월도 채 안 걸렸다. 이때는 유엔이 신속히 한국을 지원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7월 한달 동안 일본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 3개 사단이 차례로 전선으로 투입되지만 시간을 벌기위한 ‘지연전'(시간을 얻기 위하여, 결전을 피하면서 적의 전진을 늦추는 전투)
으로 낙동강 일대까지 후퇴를 거듭한 이후에야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시킬 수 있었다. 6·25전쟁기간중 유엔 16개국이 지원하기도 했지만 이때는 미군과 영국(8. 20) 만이 지원하여 한반도가 조기에 공산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2단계는 인천상륙작전으로 승기를 잡은 국군과 유엔군이 반격하여 북진하는 단계로, 13일 만에 서울을 탈환하고 초산과 혜산진까지 북진하여 통일의 기쁨에 들떠있었다. 북한 전 지역을 불과 2개월 10일 만에 접수하였다. 이때는 38선을 돌파하여 북진하는 문제나 평양을 점령하기 위해 국군과 미군간 벌인 선의의 경쟁, 초산과 혜산진의 압록강을 연하는 선까지 진출해 통일된 조국을 꿈꾸었던 가슴 벅찬 감동을 맛보았던 시기이기도 하다.
3단계는 중공군이 개입하여 다시 서울을 빼앗기고 국군과 유엔군이 재반격을 하는, 중공군 개입 및 재반격기이다. 약 7개월간 지속되었다. 중공군 약 100만 여 명이 5차례에 걸쳐 대대적으로 밀고 내려오는 상황 속에서 국군과 유엔군은 속수무책으로 밀렸다. 이때 7개 사단 규모의 중공군에 포위된 미 해병1사단의 결사적인 후퇴작전이 있었고, 피난민 10만명을 포함하여 국군과 유엔군이 흥남항을 통해 철수 하였습니다. 이후 국군과 유엔군은 다시 총반격으로 문산-화천-대포리를 연하는 선까지 북진하였다.
4단계는 전쟁발발 만 1년 만에 소련의 UN대사 말리크의 휴전제의로 휴전협상이 진행되는 가운데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한 ‘고지(전략적으로 유리한 높은 곳의 진지) 쟁탈전’을 계속했던 전선교착 및 휴전 시기이다. 약 2년의 기간이었다. 휴전선 확정과 반공포로 문제로 지루하게 협상을 벌이는 이 사이에 백마고지 전투, 피의 능선 전투, 철의 삼각지 전투 등 많은 희생을 야기한 전투들이 벌어졌고 반공포로 석방 등 많은 논란 속에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에 조인함으로써 오늘날의 휴전선이 확정되었다.
6·25전쟁은 우리세대에 일어난, 아직도 끝나지 않은 ‘현재 우리의 전쟁’이며 3년 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300 ~ 500만 명이 희생된 ‘잔혹한 전쟁’ 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3년 1개월 2일간 계속된 전쟁으로 무려 500만 명의 인명피해와 1천만 이산가족, 10만명의 고아가 발생했다. 남북한 인구 3,000만 명의 절반이 넘는 1,800만 명이 피해를 입었다. 전체 가옥의 60%에 해당하는 293만 호의 집과 건물 5만 3천여 동이 파손되었고 철도·교량 630km가 파괴되는 피해를 입었다. 특히 전화가 네 번씩이나 휩쓸고 지나갔던 수도권 일원은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가장 못난 놈이 ‘제 땅에서 전쟁 일으킨 놈’이라는 말이 있다. 이 민족에게 이 많은 피해를 입힌 김일성이 못난 놈 중의 못난 놈이 아닐 수 없다. 남북한을 공산주의로 만들어 보겠다는 욕심에서 전쟁을 일으켰지만, 정작 전쟁을 일으킨 북한은 세계 최빈국이 되었고 전쟁을 극복한 우리는 ‘세계 선진국’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역사의 준엄한 심판이 아닐 런지.
2010년은 6·25전쟁 60주년이다. 다른 나라 몇 백년 걸린 성장을 단 반세기 만에 해내다보니 역사도 쉽게 잊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6·25전쟁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국내·외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기에 자유와 평화, 번영과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노병천의‘이것이 한국전쟁이다’에서 발췌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