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차 행주산성 전투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0.03.31 10:51
 

[인천 상륙 작전과 행주 산성 도하에 사용된 LVT 앨리게이터]


  1593년 2 월 12일 한양으로 들어가는 수운[水運]의 통로인 한강을 옆에 둔 행주산성에서 권율이 지휘하는 조선군과 우키다 히데이에가 지휘하는 왜군 사이에 치열한 격전이 벌어져 왜군 수 천 명이 전사 했다.
한국 역사에 길이 기록 된 행주 대첩을 말한다.


[강건너 한강 남안에서 본 행주산성]


  평양성에서 고니시 유키나카를 쫓아낸 명군 이 여송이 한양 공략을 목표로 남하하자 수원 독산성에 있던 권율 장군은 이 여송군과의 협동을 목적으로 은밀히 행주산성으로 이동했었다. 권율 장군은 이 행주산성을 한양 탈환을 위한 중요한 교두보로 보았었다.  한양에 가장 가까우면서 점령 가능한 방어 거점이었고 ‘북에서 내려오는 명군과도 연결이 가능할뿐더러 한강을 통해서 강화도를 확보하고 있는 김 천일 의병대로부터 보급을 받을 수가 있다고 판단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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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의병들은 완전히 한강의 수상권을 틀어쥐고 지금 흑석동
앞에까지 오르내리며 왜군들에게 무력 시위를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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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이 여송의 명군은 벽제관에서 왜군의 기습 공격에 패배하고 후퇴했다. 명군을 내친 왜군은 여세를 서울의 측방을 노리는 권율 부대를 30,000의 대병력을 동원해서 공격했다. 한강을 내려다보는 이 행주산성은 방어 시설이 미약했다. 주변을 흙으로 만든 낮은 토성이 둘러있을 뿐,문루[門樓] 같은 것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이 허술한 곳에 방어진을 친 조선군 병력은 권율의 부대와 강화도를 근거지로 했던 김 천일의 의병과 처영의 승병이 가세한 약 2,300명이었다. 이들은 바삐 허술한 토성 주변에 목책을 세우고 방어를 강화하였다. 행주나루 인근의 마을 주민들도 모두 성에 들어와 전력을 보탰다. 1593년2월 12일 이른 아침, 우키다 히데이에를 총대장으로 한 왜군이 30.000만의 대 병력으로 행주산성을 공격해왔다.




[우키다 히데이에 - 당시 스물 두 살 애송이였지만 57만석의 히젠 영주였으며 히데요시 5대로의 하나였다. 히데요시 사후 이에야스에게 대항했다가 패하고 남양 하지죠지마[八丈島]로 유배되어 50년간 살다가 죽었다]


  이 병력은 고니시 유키나카가 부산에 상륙해서 한반도를 거슬러 한양을 지나 평양까지 진격했을 때 거느렸던 병력의 두 배에 달한다. 왜군들 역시 자기들 목에 바짝 붙어 비수를 겨누는 행주산성의 전략적 가치를 알고 후환의 근절하고자 대군의 적을 동원했던 것이다. 성의 군과 민은 죽기를 결하고 응전했다. 주민들은 물을 길어오고 돌을 날라 와서 수비병들을 도왔으며 건장한 장정들은 돌을 던지며 전투에 직접 일조를 하기도 하였다. 한 때는 성의 한쪽이 뚫려 환갑이 다 된 권율이 직접 칼을 빼들고 달려가 침투한 적을 베어 물리치기도 했다. 화살이 떨어져가자 경기 수사 이 빈이 두 척의 선박에 화살을 가득 싣고 와서 한강을 거슬러 와서 보급을 했다. 보급을 완료한 이 빈의 두 전선(戰船)은 왜군의 배후에 상륙 할 듯이 위협했다.


  행주산성을 쉽게 먹어치울 줄 알았던 왜군은 기세가 죽고 이 빈의 후방 차단 위협에 후퇴하기 시작했다. 아슬아슬하게 버티면서도 용감히 싸운 권율 부대와 행주 주민들의 덕택도 있었지만 이 엉성한 토성에서 왜군을 격퇴한 것은 권율이 한양 공격을 기대하며 가져온 조선의 다연장 로케트포인 화차(火車) 40량과 비격 진천뢰, 수석포라는 투석기[投石機]들의 활약이 컸다. 행주산성 방어에서 화차의 눈부신 활약은 권율이 직접 인정한 것이다.




[행주 산성대첩의 숨은 공신 화차 - 변 이중이 발명했고 권율은 이 화차들을 한양 탈환에 사용하려고 40문이나 가지고 행주산성에 들어갔었다.]


  행주산성 전투에 참가한 왜군 지휘관들은 모두 일본의 역사에서 이름을 올린 쟁쟁한 유명 인사들이다.(우끼다 히데이에[宇喜多 秀家], 이시다 미쓰나리[石田 三成], 고니시 유키나카[少西 行長], 기쓰카와 히데이에[吉川 廣家])


  이 전투에서 선두에서 기세를 올리며 지휘하던 일본군 총사령관 우키다 히데이에가 중상을 입고 말에서 떨어져 망신스럽게 부하의 등에 업혀 도망치기도 했다.[목숨이 위태로울 정도의 중상이었다.]  남해에서 해전에서 이순신 제독에게 연타의 펀치를 먹었던 와카사카 야쓰하루[脇坂 安治]가 바다를 떠나 이 먼 행주산성에 나타났다가 역시 온 몸에 화살을 맞는 부상을 입고 줄행랑을 놓았다. 나중에 모오리 가문의 모사로서 일본 역사에 기록을 남긴 기쓰카와 히로이에도 큰 부상을 입었다. 도주하는 왜군을 본 권율은 즉각 기병을 풀어 추격해서 130여개의 수급(首級)을 거두었다.


  침략자 왜군을 격퇴하고 360년의 긴 시간이 지나고 그 긴 세월 고요 속에 흐르는 한강을 지켜만 보던 이 행주산성이 다시 한번 귀 터지는 포성에 휩싸인 전장이 되었다. 그 전략적 가치가 다시 주목 받았기 때문이었다. 
동족을 침략해서 형언 할 수 없는 고통의 피를 흘리게 한 북한군대를 내쫓기 위한 UN 군이 반격을 시작한 것이다. 9월 15일 200척의 함선들이 기습적으로 인천 상륙작전을 감행해서 한미 연합군이 적지의 후방인 인천을 점령하고 서울로 진격을 개시했다.



[인천 상륙작전]


  9월 17일 경인가도를 방어하던 북한군을 격퇴해가며 진격한 미 해병대는 아주 중요한 김포 공항을 점령했다. 당황하여 북한군은 위장해서 숨겨 둔 비행기까지 버려두고 도주하였다. 다음 날 해병 전투기 콜세어 기 3개 편대가 일본에서 김포 비행장으로 비래(飛來)해서 작전을 시작하였다.




[세계 최강 대지 공격능력을 가진 미 해병 항공대가 6·25전쟁중 사용했었던 콜세어 기들, 인천 상륙전에 이어 해병대의 장진호 탈출 때 맹활약을 했었다.미 해군도 운용했었다.]


  김포 공항이 점령되었고 이제는 한강 도강 작전이 남았다. 상륙 해병의 일대가 육군과 함께 당시 한강 남쪽에서 유일한  서울시의 일부 도시인 영등포 쪽으로, 다른 일대는 한강에서
도하하여 서울을 서쪽 측면에서 찌르는 작전 계획은 이미 세워 둔 바였다. 도하 할 지점은 김포 공항에서 멀지 않은 행주나루였다. 이 도하를 위해서 해병들은 인천 상륙작전에서 사용했던 수륙 양용 장갑차들을 경인가도를 통해 이곳까지 가져 왔었다. [적으로부터 은폐 된 지금의 개화산 아래가 도하 장비들의 집결지였다.]


  미 해병대는 서울 점령을 위한  한강 도강지점을 세 곳으로 예정하고 있었다. 하류 쪽의 행주 나루와 다음 영등포로 점령이 성공하면 실시할 도하 작전 지점은 여의도 건너 마포 나루였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당 동 길을 내려온 동작진 부근이었다. 한강 도하 작전에는 모두 인천 상륙 작전 때 크게 기여했던 수륙양용전차[LVT]들이 활용 될 예정이었다. 이 LVT들은 태평양 전쟁의 많은 상륙작전으로 그 가치를 이미 입증 받은 전투무기였다. 해병대의 수륙양용전차들이 바다가 아니라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와 도강 작전에 동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첫 한강 도하 작전의 임무가 주어진 부대는 미 해병 1 사단 5연대 3대대였다. 3대대는 대대장 태프렛 중령[대령으로 퇴역, 2004년 작고]의 지휘로 월미도에 상륙하여 섬에 주둔하던 북한군들 일축 해버린 정예 부대였다.



[월미도 상륙과 한강 도하 작전을 지휘한 태프렛 중령]


  전쟁 때문에 나룻배의 운행도 중단 된 건너 북쪽 행주 나루는 조용하게 보였다. 나루 우측에 강을 따라 누에처럼 길게 누어있는 행주산성 능선에도 별다른 적정이 보이지 않았다. [미군들은 행주산성을 그 표고를 따라 125고지라고 불렀다.] 그래도 일단 야간을 이용해서 수색대를 보내서 건너 강안을 수색 해보기로 하였다.

  20시 40분, 14명의 해병 수색대가 두 개의 고무보트를 타고 강 건너로 도하하여 수색을 했지만 나루 주변에서 거동 수상자인 민간인 2명을 체포해서 역류했을 뿐, 별다른 적정이 없었다. 4명의 부하들을 데리고 옆 행주산성 쪽으로 정찰을 나갔던 케숀 소위도 길게 누운 능선 중턱까지만 올라가 보고 아무런 적정이 없다고 보고하였다. 하지만 김포 비행장을 탈환당한 북한군은 서둘러서 1 개 대대 병력을 긁어 모아 하필 해병 도강 수색이 있던 그날 오후에 지금  기념탑이 있는 행주산성 정상 부분에 배치해두었던 것이다.
케숀 소위가 정상까지 올라가지 않았으니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보고를 받은 수색대장 호튼 대위는 강 건너에 적정 없음을 보고했다.

[케숀 소위는 행주산성 능선 중턱인 이곳을 정상으로 잘못 알았다.]


  이 정보에 5연대장 머레이 중령[중장으로 전역, 2004년 사망]은 그날로 야간 도하 작전을 감행하기로 했다. 밤사이에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겠기에 일단 중대 규모 부대를 강 건너로 도하시켜 교두보를 확보한 뒤에 익일 5연대 병력과 후속해온 한국군 해병대를 안전하게 도하시키자는 판단 때문이었다.  3대대 1중대가 교두보 확보 부대로 선발되어서 개화산 뒤에서 대기하던 LVT 9량에 승차하여 출동했다. 중대는 엔진 소리도 요란하게 한강 도하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LVT가 중간쯤 건너자 행주산성에서 쪽에서 박격포탄과 기관총탄이 비 오듯 날아왔다. 당황한 연대 본부는 도강 중에 적의 화망에 걸린 LVT들에게 즉시 퇴각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방향을 돌려 돌아오던 9량의 LVT들은 행주 대교 하류 물속 모래톱에 걸려 그중 네 량이 좌초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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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들은 몰랐지만 이 모래톱은 조선 500년 동안 한양의 물류 고속도로였던 한강의 최대 장애물이었다. 무거운 쌀을 싣고 광흥창으로 가던 세곡선이나 무거운 화물을 싣고 마포나 용산 나루로 가던 대형선들은 이 모래톱을 넘지 못해 수면이 최고가 되는 한달 두 번의 사리 때까지 한강 하류 강령포에서 대기 해야만 했다. 조선 수운사에 유명했던 장소가 현대 전쟁에 얼굴을 내밀었다는 것은 이색적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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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상황이 안 좋았던 것은 먼저 건너가서 강변에서 대기 중이던 14명의 정찰대였다. 전투가 벌어지자 도주를 시도했던 두 거동 수상자를 사살하는 바람에 그 존재를 적에게 발각된 것이었다. 적의 화력이 아무런 엄폐도 못한 이들 주변에 쏟아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티니언 섬에 상륙작전을 하는 LVT]


  지휘관 호튼 대위는 장비들을 주변에 은폐시키고 건너편으로 되돌아 퇴각하라고 지시하고 자신도 강에 뛰어들었다. 모래톱에 걸린 4량의 LVT중 두 량은 몸부림쳐서 겨우 빠져나와 김포 쪽으로 철수했지만 아직도 두 량의 LVT는 모래톱에 걸려 있었다. 승무원들은 역시 지시에 따라 수영으로 김포 쪽으로 철수해서 좌초 된 LVT에는 아무도 없었다. 박격포 탄이 계속 강 수면에 떨어져 근탄을 맞은 호튼 대위는 기절하고 말았다. 그는 부하들에 의해서 비어있는 LVT로 긴급 후송되었다. 그와 그 부하들은 심야에 김포에서 보낸 고무보트로 구출되었다. 그날 두량의 LVT가 좌초되고 강을 건너갔던 정찰대원 한 명이 행방불명되는 피해를 입었다.[그 정찰대원은 숨어 있다가 다음날 구출 되었다.]


  성급하게 서두르다가 좌절을 맛 본 해병 3대대는 준비를 단단히 하고 다음날 새벽 다시 도강 작전을 실시하였다. 도하 작전은 익일 9월 20일 새벽 6시 45분에 개시되었다. 지금 신 행주 대교가 있는 지점이 도강 지점이다. 도하 지점에 대한 포병 준비 사격이 여명과 함께 포병에 의해서 실시되었지만 근탄이 많아 수면에 떨어지는 포탄들도 적지 않았다. 6량의 LVT가 먼저 강에 들어서서 북쪽 나루로 향했다. 적의 박격포 사격이 치열했지만 전부 도강에 성공했다.



[9월 20일 새벽 도하 작전을 감행하는 해병대. 적의 박격포탄이 강 수면에 떨어지고 있다.]


  행주 나루 강변에 도착 즉시 3소대부터 하차하여 행주 성의 긴 능선의 강변을 따라 나있는 오른쪽 오르막 사면을 따라 공격을 개시했다. 2 소대는 LVT를 타고 그대로 90도로 길을 오른쪽으로 꺾어 달려 행주산성 능선의 우측에 붙었다. [현재 음식점들이 많은 지역이 공격개시선이었다.] 부대원을 내려놓은 LVT는 장비된 50구경 대공 기관총으로 정상의 적에게 지원사격을 했다. 적의 저항은 격심했다. 특히 적들이 밤새 참호를 파고 기관총 진지를 구축해놓은 강변 쪽 사면을 공격했던 3 소대 쪽에 적의 화력이 집중되어 3소대에서 사상자가 속출했다. 김포 비행장에서 출격한 4 기의 콜세어 기들이 기관포와 폭탄으로 공중 지원에 나섰지만 고지에 붙은 북한군은 끈질겼다. 북한군들은 권율 장군이 했듯 행주산성을 성공적으로 방어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지도 모른다.


  중대장 맥멀린 대위는 예비대로 보유했던 1소대를 직접 지휘해서 고전하고 있는 3소대 지원에 나섰다. 두 소대는 오르막 능선을 따라 전진을 해서 겨우 5부 능선까지 점령했다. 그러나 중대장 맥멀린 대위까지 부상을 입는 격전을 벌여야 했다.



[행주 산성 전투에서 부상당한 해병의 후송]


  공격을 더 계속해야 하나 고민하는 순간에 비교적 저항이 적었던 좌측 능선을 전진했던 2소대장이 무전 보고를 했다.  저항하던 고지의 북한군들이 퇴각하기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맥멀린 대위는 부상을 잊고 혼신을 다해 부하들을 휘몰아서 행주산성 고지로 돌진했다. 마침내 고지는 해병들에 의해서 점령당했다. 북한군은 무질서하게 행주산성 동북쪽 급사면을 뛰어 내려와 논으로 도주하고 있었다. 이 곳은 현재 인천 공항에 들어가는 공항 고속도로의 인터체인지가 있는 곳이다.


  행주산성은 논들에 둘려 싸인 고도와 같아서 은폐나 엄폐없이 퇴각할 수가 없다. 공중에서 지원하던 콜세어 기의 편대장은 회심의 미소를 뗬다. 훤히 노출된 논에 뛰어든 북한군들은 문자 그대로 닭장의 닭들처럼 콜세어 기들의 화력 앞에서 피할 수가 없었다. 콜세어 기들은 번갈아 가며 논 속에서 도주하는 북한군에게 기총 소사와 로케트 공격을 가했다. 콜세어 기의 20mm 기관포는 네 발 중 한 발이 고폭탄이라서 지면에 맞으면 폭탄처럼 폭발하는 위력이 있었다. 논에 핏물들이 흥건해지며 북한군은 이곳에서 지리멸렬해버렸다.




[해병들이 확보했던 행주 교두보를 통하여 서울을 탈환할 병력과 장비가 쏱아져 들어갔다.]


  3대대의 행주산성 고지가 확보 되자 공병에 의해 도하 시설이 설치되고 2대대 병력들이 LVT에 승차하여 도강, 피로 확보한 행주산성을 우측으로 끼고 그대로 능곡과 수색 사이 경의선으로 돌진해서 철로 주변 95고지와 51고지들을 점령했다. [지역을 확보하면 주변 고지부터 점령하는 전술 원칙에 해병은  특히 철저했다. 이 선[先] 고지 점령 원칙 고수가 장진호에서  해병들이 겹겹으로 싸인 포위망을 뚫고 탈출함에 큰 기여를 했다.]




[행주 산성 정상에서 본 95고지. 해병들은 95고지 점령후 오른 쪽으로 진격해서 두 고지를 더 점령하고 이날 작전을 종료하였다.]


  이어서 전차 9량이 도강해서 2대대를 지원하자 이들은 철로를 따라 더욱 전진해서 수색역이 보이는 지점에서 경의선을 감제하는 중요한 대덕산과 망월산을 점령하여 서울로 들어가는 서쪽 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보병들과 함께 서울로 전진하는 해병대 M 26 퍼싱 전차]


  두 산을 점령한 뒤인 15시 45분 한강 북방 교두보 작전 종결을 했다. 9월 20일 최초의 한강 이북 교두보 확보 작전에서 적병 200여명을 사살했지만 해병대도 43명이 전사하는 상당히 큰 피해를 입었다. 




[한미 해병대가 LVT를 타고 도하 했었고 나룻배가 오가던 강길에는 지금 큰 행주 대교가 놓여있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곳이 해병들이 공격을 개시했던 행주산성 후방부이다.]


  한국 해병대는 인천 상륙 작전 뒤 김포공항을 습격하라는 특명을 받고 한강을 건너 김포 반도에 침투한 북한군 107연대를 격멸하고 다음날 9월 21일 한강을 도강해서 연희 고지와 중앙청 탈환의 전공을 쌓았다. 행주 교두보를 확보한 것은 서울 북한군의 서울 방어선의 서쪽 측면을 그대로 두들겨 부수어 서울 탈환의 큰 전기를 이룬 것이다.


  350년 전 한양 탈환을 위한 행주산성의 전략적 가치를  중시하고 한강을 도강해서 점령했었던 권율 장군이 예지가 정확했었다는 사실을 현대에서도 입증 된 것이 이번 2차 행주산성 전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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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티런 2010.03.31 11: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사는곳 근처라 관심이 가게되네요.
    오늘도 좋은 역사 잘 읽고갑니다~

  2. 오지코리아 2010.03.31 11: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행주산성이 왜란때부터 중요한 격전지였군요.
    전쟁이야기는 읽을때마다 재미있긴한데,이젠 전쟁이 없어야겠죠.

  3. oxkm 2010.03.31 15: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새롭네요. 당시에 울 아버님도 성동사는 빨갱이 놈들이 잡을려고 했었다고 하더군요,,,,,
    자랑스러운 곳이라 조상 대대로 삶의 터전이라 지금도 앞으로도 아기고 잘 보존토록 하겠읍니다,,,,,,,,,,,

  4. 꿈꾸는 세상살이 2010.03.31 15: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행주산성 주위의 논으로 도망치는 적군이 그려집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행주산성의 중요성이 다시 강조되는 것 같습니다.

  5. Polaris 2010.03.31 21: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지역은 내가 터줏대감이지,,,,글이야기 눈에 선한 지역 나의 발자취길들,,, 돌뿌리 추억길 지역,,,,,복괴군 후퇴로...

    경사면에,,, 화전 30사단 지역으로 퇴로... 행주산성지역은..... 사춘기시절에 나의 새 사냥터들....고양군 귀신 터줏대감,,,

    눈에 선하다..... 60년대초에,,,, 5.16 군사혁명난후에,,,,, 공기총들고,,,, 멧새.종달새.참새.산비둘기,,,,잡던 시절...

    행주산성 나룻터에,,,, 화전.능곡.백마.일산 파주 원능.벽제.일영.송추....... 고양군 터줏대감 사춘기시절... 한국 정통문화의 산교육장,,,,,


    추억속에 고양군........ 이지역에 항상 가면........ 기분이 이상했던 고양군일대,,,

    화전에서,,, 60년대에,,, 낙하산 쟘프에 사고도 기억이 난다,,,,북괴군 퇴로 들판에서 낙하산 사고,,,,,

  6. Polaris 2010.03.31 21: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춘기시절에,,,, 20대 시절에,,,,, 봄이되면.... 생각나게 하는... 나를 부르는 고양군,,,,,

    아지랑이 피는 이른봄에,,,, 행주산성에 해변가 뚝으로,,, 일산도,,,, 봄나들이 가던,,,, 혼자서 가던 추억길들,,,

    나의 엄마 품속같은곳.... 고양군 곡창지대 하늘을 바라보던 추억속에 하늘,,,,, 달밝은 밤에,,, 친구집에 놀로가서

    보름달보던 추억속에 고양군,,,, 겨울철 곡창지대로,,,, 종달새 잡으로 다니던,,,, 몸보신하던 새사냥터,,,,

    원능.벽제.송추로 새사냥갈때...... 산속에 들어가면 ????????? 무장공비 생각들이 문득 문득 생각에 겁나던 산속들..

    1.21 사태에 무장공비 청와대 루트?????? 근처들도.....지금생각하믄 겁나던 나에길들,,,, 나는 그때 뭣도모르고,,

    고양군 사냥가면.... 붉은 삐라가.... 엄청나게 많은....경찰사갔다주면,,,, 엄청나게 줍어서 갔는데,,, 연필한자루...

    상금주기 바랬을텐데.... *(^-^)*ㅋㅋㅋㅋ

  7. 유 량 2010.05.26 16: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재미있게 잘 읽었읍니다.
    몇가지 건의를 필자와 국방부 해당 사업단에.
    전사를 18세 되던 해부터 읽어왔는 데, 한국전사의 취약점은 전장(battlefield)의 세세한 지도와, 연관되는 전투양상의 시간적 진전(Time-Sequence), 관련부대운용의 상세(부대배치의 상세, 군수,지원, 인접 세력분포, 등등)등의 기호화 표시(: 정확한 전사지도)등이 지극히 해외의 기준급들에 비해 미흡하다는 것이지요. 물론 취약한 예산지원 탓이 겠지만, 이의 지원에 대폭 상향된 예산이 배정되고, Documentation을 수행하는 분들이 여러각도에서, 지원을 받아, 그 이용자가 확대될 뿐만 아니라, 민족/세계의 거대한 전쟁이, 사회에 더욱 많은 인식이 되어 기대되는 사회발전의 수혜를 주기를 기대합니다.

    통상 흔한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이에 종사한 이들이 더욱 나은 사기와 발전을 갖도록 재삼 부탁드립니다.

    . . .

    늦은 봄-여름-가을에 걸쳐 행주산성이 3시방향에서 보이는 위치에서의 김포평야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다웁다.
    특히 안개낀 날들이나, 가을의 황금 빛 물결들에서. 위의 스토리에서 기인하는 지는 몰라도 이 지역은 이상하리 만큼, 푸르른 서기가 항상 감돌고 어리는 것을 방문자들은 느끼게 될 것. . .

    민족의 성역으로, 다시 태어나고, 연관된 사업이 좋은 관광지로서도 발전되길 기대.

    작성자에 再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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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survival kit in a can 2012.10.21 0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늦은 봄-여름-가을에 걸쳐 행주산성이 3시방향에서 보이는 위치에서의 김포평야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다웁다.
    특히 안개낀 날들이나, 가을의 황금 빛 물결들에서. 위의 스토리에서 기인하는 지는 몰라도 이 지역은 이상하리 만큼, 푸르른 서기가 항상 감돌고 어리는 것을 방문자들은 느끼게 될 것.

  12. indonesia rattan furniture 2012.12.30 21: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 가을의 황금 빛 물결들에서. 위의 스토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