킨 특수 임무부대(Kean TF)의 역공격

생생! 6·25/퍼싱의 군사 이야기 2010.04.05 12:33

오늘날 고전 전쟁영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머나먼 다리"(A Bridge Too Far) - 크게 보시려면 클릭을! -

  머나먼 다리는 오늘날 CG와 세트 촬영이 주류를 이루던 영화와 달리 700명에 달하는 공수부대원과 대량의 C-47 수송기, 그리고 40대 이상의 전차와 각종 장갑차량을 동원해 촬영한 블록버스터를 자랑했습니다.

  머나먼 다리! 본 블로그를 방문해주시는 분들 중에 4~50대 이상 되시는 분들 중 이 영화를 한번쯤 감상해 보신 분들이 계실 겁니다.  이 영화는 1944년 후반기를 기해 제2차 세계대전을 보다 빠르게 종전시키고자 하는 연합군 수뇌부의 지나친 성급함이 낳은 최악의 실패인 "마켓 가든 작전"(Operation 'Market Garden')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이 작전은 독일이 국경선에 구축한 요새지대인 "지크프리트 선"을 정면 돌파하지 않고 주변국인 네덜란드의 운하를 따라 건설된 교량들에 공수부대를 강하시켜 점령한 뒤 기갑부대가 통과해 곧장 독일의 군수산업 중심지인 루르로 진격해 들어간다는 기상천외하면서도 한편으로 대단히 무모한 수준을 자랑했습니다.

  영국 제1 공수사단이 점령할 아른헴에는 궤멸직전의 전력이었지만 독일이 자랑하는 정예부대인 무장 친위대 제2 기갑군단 예하 제9 SS 기갑사단 "호엔 슈타우펜"과 제10 SS 기갑사단 "프룬츠 베르크"가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비록 사단이라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의 패잔병 집단이었지만 전투 의지가 충천해 영국 제1 공수사단의 공격을 몇 차례나 격퇴시키며 분전한 끝에 본토에서 증원된 지원부대와 합류해 아른헴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당시 네덜란드 일대에는 빈약한 전력이기는 했지만 무장 친위대(Waffen SS) 제2 기갑군단 예하 2개 기갑사단이 포진하고 있었기 때문이죠.(무장 친위대는 오늘날로 치자면 청와대 경호실과 유사한 군사조직이지만 이들은 전차와 자주포, 병력 수송용 반궤도 장갑차 등을 갖춘 기갑사단들을 여럿 거느린 육군과 동급의 부대였습니다)   특히 네덜란드는 '풍차와 운하의 나라' 답게 운하를 따라 형성된 좁은 도로와 다수의 교량으로 방어전을 수행하는 독일군과 무장 친위대에게 기가 막힌 방어거점을 제공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사전 정찰을 통해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전쟁을 크리스마스 이전에 끝내고자 했던 연합군 수뇌부는 주저없이 "마켓 가든 작전"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당시 영국 제1 공수사단이 점령할 목표였던 아른헴 대교. 하지만 이 교량 일대에는 제9 SS 기갑사단의 견고한 방어선이 구축된 상태였고 연합군의 작전을 간파한 독일군이 속속 지원부대를 급파함으로써 교량 점령은 실패로 돌아갑니다.


  3개의 주요 교량을 장악할 연합군의 3개 공수사단(영국 제1 공수사단 "붉은 악마", 미국 제82 공수사단 "올 아메리칸", 제101 공수사단 "울부짖는 독수리")은 예정된 강하지점에 무사히 강하해 교량 장악을 위해 이동했지만 이들을 지원할 영국 제30 군단의 전차들은 그 시각, 앞서 언급한 네덜란드의 지형을 이용해 성공적인 지연작전을 펼쳤고 결국 무장 친위대 제 2기갑군단이 포진한 아른헴 대교를 점령했던 영국 제1 공수사단은 10,005명의 병력 중 2,163명만 생존해 귀환하는 뼈아픈 참패를 당하게 됩니다.  
이 전투는 빈약한 전력(당시 무장 친위대 제 2기갑군단의 2개 기갑사단이 보유한 전차와 자주포는 다 합쳐야 20대도 채 안되었고 병력은 장교/부사관/병 합계 6,000여명에 불과했습니다)을 보유한 무장 친위대와 완전 편제를 갖추고 강하한 영국군의 정예 제 1공수사단의 정면 대결로 관심을 끌었습니다.


  오늘날 정예부대의 대명사로 꼽히는 독일군, 그 중에서도 해골마크와 'SS' 문자를 달고 다니는 무장 친위대는 멋진 복장과 더불어 절망적인 상황 하에서도 광신적인 전투본능을 발휘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마켓 가든 작전은 상대가 아무리 패전한 부대라도 주밀한 적정 정찰과 치밀한 준비가 동반하지 않으면 패전할 수 있음을 인식시켜준 전투였습니다.

  예정대로라면 무장 친위대 제 2기갑군단의 참패로 끝나 연합군이 독일 본토로 진격해 들어갈 수 있었던 전투였지만 독일군은 예상 외로 분전해 영국군의 진격을 저지함은 물론 차츰 증원부대가 합류하면서 결국 연합군의 패배로 끝났으니까요. 결국 이 전투는 상대가 아무리 궤멸직전의 타격을 입은 패잔병 집단이라도 절대 우습게 봐서는 안되며 철저한 현지 지형정찰 및 다양한 차선책을 마련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6·25 전쟁 중에는 이런 일이 없었을까요?
  물론 있었습니다.  그 대상이 하필이면 미군과 북한군이었다는 점이 불행이었지만요.  1950년 7월 말까지 윌리엄 벤자민 킨 소장의 미 제 25보병사단은 마산 일대에서 방호산 소장의 북한군 제 6보병사단과의 격렬한 전투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습니다. 

  킨 특수임무부대를 지휘한 미 제25 보병사단장 "윌리엄 벤자민 킨" 소장.

  1897년 7월 9일 뉴욕주 버팔로에서 태어나 1918년, 웨스트 포인트 육군 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보병 소위로 임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전선에서 활약한 걸출한 군인으로 제25 보병사단장으로 6.25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당시 미군은 화력과 기갑전력에서 북한군을 압도하고 있었지만 전투의 주도권을 잡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언제나 북한군이 먼저 타격하면 미군이 반격하는 식으로 전개되는 양상이었습니다. 
  때문에 미 제 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은 킨 소장에게 사단 전 병력을 동원해 마산 정면에서 수시로 공세를 감행하는 북한군 제 6보병사단을 격멸한 후 방어선을 진주까지 확대해 북한군의 전력 집중을 분산시키는 과감한 돌파작전을 지시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마켓 가든 작전과 은근히 유사성을 띄고 있지요?  더욱이 제공권은 미 공군이 쥐고 있었던 점, 그리고 북한군의 기갑전력이 연일 지속되는 공습으로 인해 약화되어 가는 점을 보자면 마켓 가든 작전 당시 독일군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특히 공세의 입장에 처해있던 북한군의 사상자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으니까요. 

  현재 이라크에서 작전 중인 미 제25 보병사단 병사들의 모습으로 제25 보병사단의 오랜 역사를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공세는 잘만 성사시키면 현재의 절망적인 전황을 뒤바꿔 부산 일대의 안전을 획득함과 동시에 경북 일대로 집중된 북한군의 공세 전력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낳을 수 있었습니다.  사단장 킨 소장은 이 기막힌 공격을 위해 8월 3일까지 경북 상주 일대에 집결해 있던 제 25 보병사단의 예비대는 물론 한국군 2,447명까지 배속시켜 총 15,334명이라는 대군을 마산 일대에 전개시켰습니다.

  킨 특수임무부대의 반격을 위해 미군은 제89 전차대대를 배속시켜 기갑전력을 증강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공세의 첨병을 맡을 기갑전력에도 심혈을 기울여 제1 해병여단과 M4A3E8 "셔먼" 전차를 장비한 제 89 전차대대, 그리고 M26 "퍼싱" 중전차를 장비한 해병대 제 1 전차대대까지 합류해 총 101대의 전차를 장비함으로써 제 25 보병사단은 사실상 오늘날의 기계화 보병사단(Mechanized Infantry Division)에 준하는 전력으로 강화되었습니다. 

  반면 북한군 제 6보병사단이 동원한 T-34/85는 겨우 25대로 약 2개 대대 규모에 불과해 1 : 4의 열세에 놓여 있는 상태였고 총 병력 역시 7,500명 수준에 불과해 1 : 2로 미군이 우세했습니다.  
공세를 감행할 증강된 제 25보병사단은 사단장 윌리엄 벤자민 킨 소장의 이름을 따 "킨 특수임무부대"로 명명되었고 공격 개시 일자는 8월 7일로 정해졌습니다.

  1950년 8월 7일, 킨 특수임무부대는 전방의 북한군 제 6보병사단을 격멸하고 마산 - 진주 일대를 탈환하기 위해 전차들을 앞세워 진격했습니다. 
하지만 이 작전은 예상 외로 시작부터 꼬이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당일, 북한군 제6 보병사단도 공세를 감행했기 때문입니다. 

  북한군 제6 보병사단은 팔로군 시절의 전투경험과 소련에서 판매한 T-34/85 전차라는 이점을 절묘하게 접목시켜 킨 특수임무부대의 반격에 대응했습니다.

  우측에서 진격하던 헨리 피셔 대령의 제35 보병연대는 곧바로 북한군 제6 보병사단의 공격 제대와 정면 충돌해 이들을 격퇴한 후 진격했지만 곧 Su-76 대전차 자주포의 지원을 받는 북한군 500명의 공격을 받아 고전하던 중 때마침 도착한 항공지원을 통해 간신히 격퇴시키고 자정까지 무촌리의 3차선 도로까지 진출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연대장 피셔 대령은 예정과는 전혀 다른 북한군의 공격 앞에 당황했지만 이것은 양반에 불과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드윈 오드웨이 대령의 제 5해병연대 전투단이 담당한 좌측의 진동리 일대에서는 그야말로 피아가 뒤섞인 혼전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죠.

  8월 7일, 오전 제 35보병연대가 공세에 돌입하던 시각 운이 나쁘게도 막 끼기 시작한 농무( 濃霧, 짙은 안개 )로 인해 항공지원은 어림도 없는데다 협곡과도 같은 지형으로 인해 오드웨이 대령은 연대를 횡대가 아닌 각 대대별로 종대 대형을 이뤄 진격하는 상대적으로 위험한 대열을 갖추지 않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나마 20여분간의 공격 준비 포격으로 북한군의 사상자가 속출했기만을 기도하는 수밖에는 달리 방도가 없었죠.

  8월의 폭염과 산악지대는 북한군에게 기가 막힌 이점을 제공한 반면 킨 특수임무부대에게는 크나큰 장애물로 다가왔습니다.

  다행히 공격은 순조롭게 진행돼 제1 대대는 서진을 지속했고 2대대는 여우고지라 불리던 야반산의 북한군 진지를 점령하기 위한 공세에 돌입했습니다.  

  하지만 작전 계획은 1대대가 독도법의 판단 착오로 인해 당초 점령해야할 목표인 곡안리가 아닌 고성 도로 상에 위치한 우색재를 점령하는 실수를 범하면서 틀어졌습니다.
  

  특히 2대대가 지산리에 도착할 무렵 이 방면으로도 북한군 제6 보병사단의 공세가 시작돼 피아 간의 격렬한 혼전이 벌어져 통신병과 전령들은 어디에 포격 지원을 요청해야 할 지 난감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진동리와 마산 간에 가설되었던 야전 전화선( 군 복무를 하신 분들은 잘 아실 일명 "삐삐선" )이 전차에 의해 절단됨에 따라 유선 통신이 사실상 두절돼 더 이상의 작전 수행은 물론 사단장 킨 소장이 예하 부대들을 통제하는데 지장을 초래했습니다.  

  더욱이 8월은 그야말로 군인들에게는 가급적이면 영외 활동을 꺼리게 만들기 충분한 폭염이 쏟아지는 시기였고 때마침 이 지역의 기온은 무려 44도나 되었습니다.  
이런 기후에서 일사병 환자가 속출하지 않으면 정말 이상한 일이었고 실제 킨 특수임무부대 내에서 일사병 증세를 보이며 쓰러지는 병사들이 늘어갔습니다.

  여기에 8월 12일, 킨 특수임무부대는 미 제 24 보병사단의 대전 전투 다음으로 최악의 패배를 당하게 됩니다.
  이 무렵 북한군 제 4보병사단이 창녕군 영산면 동부로 진출함과 동시에 제 3보병사단도 대구 공략을 위해 낙동강 도하를 시도하는 등 전선은 한 명의 병사라도 아쉬운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당시 봉암리에 위치한 킨 특수임무부대의 포병대대를 기습 공격한 Su-76 대전차 자주포로 여기에 탑재된 76.2mm 포는 곡사포로도 운용이 가능했기 때문에 10km 내에서 포격 지원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찰나에 예하 제555 포병대대와 제90 포병대대가 봉암리 일대에서 T-34/85 2대와 Su-76 대전차 자주포를 앞세운 북한군 제 6보병사단 13보병연대(연대장 한일동 대좌)의 포위 공격을 받아 문자 그대로 풍비박산 나는 처참한 패배를 당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막강한 화력을 발휘하는 포병대가 가장 취약할 때는 바로 이동할 때입니다. 이 때는 반드시 보병이나 전차의 엄호가 필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필자 제공 )
  킨 특수임무부대의 참패를 교훈삼아 오늘날 한국군은 주요 보병사단의 기계화를 추진하는 것 못잖게 포병대와 보병대, 전차부대 상호 간의 협동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필자 제공 )

  포병이 무서운 때는 오로지 포병 진지를 점령해 완전 방열을 마치고 포격을 감행할 경우일 뿐, 이렇게 트럭에 견인되는 상태에서는 그야말로 무방비 그 자체였으므로 전차를 앞세운 보병들에게는 이처럼 손쉬운 목표물이 없었습니다.  이 패배로 인해 봉암리는 "포병의 묘지", "피의 협곡"이라는 별칭이 붙어버렸고 킨 특수임무부대는 화력 지원을 담당할 3개 포병대대를 순식간에 손실해 전력에 큰 타격을 입었고 결국 8월 13일, 사실상 작전은 중단되어 3일 후인 8월 16일 15시 50분을 기해 부대가 해체, 각각 위급한 전선으로 투입되면서 6·25전쟁 최초로 시도된 미군과 한국군의 공세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킨 특수임무부대의 마산 - 진주 공세는 아무리 열세인 적이라도 충분히 대비를 한 상태라면 결코 만만치 않으며 항시 적정에 대한 주밀한 정찰은 물론 포병대대와 같이 이동 중에는 무방비 상태인 지원부대의 엄호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적으로부터 각개격파 당할 수 있다는 교훈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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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꿈꾸는 세상살이 2010.04.07 11: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원과 엄호,
    이것은 작전을 돕는 것이 아니리 이 자체로도 하나의 작전임을 알아야 한다.
    이동중 경계가 느슨하고 노출되는 순간,
    화력의 우세만 믿고 미완의 계획으로 덤비는 공격 등은 부족한 작전계획에 속한다.

    우수한 장비나 물자를 잘 운용하는 것이 작전을 구사하는 지휘관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2. 하인츠 하르멜 2010.04.08 13: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른헴 전투에서 펼친 무장 친위대의 활약상 잘 보고 갑니다. 킨 특수임무부대는 북한군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이 아닌가 싶네요

  3. 남기호 지방인 2010.04.29 14: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930 년대에 로우 컨트리스 1 차대전식 요새화 철거했다면, 1940 년대 화력전 시대에 몇 차례 기동 및 대전투로 전쟁의 향방이 결정되었을수도 ? ... 마켓 가든 작전 경우에, 연합국 지원으로 건설된 요새에 연합국이 당했을수도 ? ... (지나친 요새화는 양날의 칼)

  4. 미하일 투하체프스키 2010.06.01 19: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머나먼 다리 현충일날 특선영화로 자주 방영해준 영화... 재미있게 봤습니다.

  5. 김형래 2010.07.11 07: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머나먼 다리를 현충일에 특선영화로 틀어주곤 했는데 그 때의 기억이 새롭게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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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sympathy message guide 2013.06.15 16: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병 전투사에서 가장 풍성한 이야기꺼리를 남겼고, 그래서 포병 밀리터리 매니아의 최고 관심을 받고 있고, 또 그래서 그 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