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가도의 북한 전차부대 몰살비화'

생생! 6·25/퍼싱의 군사 이야기 2010.05.10 08:46
  2010년 5월 9일,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열린 독소전 승전 65주년 기념 퍼레이드에서 행진하고 있는 T-34/85의 대열입니다.

  1968년에 개봉한 소련 전쟁영화 "유럽의 해방" 제1장 '포화의 돌출부' 중 야코블레프에서 벌어진 무장 친위대 제2 기갑군단과 소련 제1 전차군의 전차전 장면입니다.
  아! 6·25를 방문하시는 분들 중 제2차 세계대전( Warld WarⅡ )에 대해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미하일 비트만' SS 대위( SS-Hauptsturmfuhrer 'Michael Wittmann', 1914~1944 )에 대해 이름을 들어보셨거나 단편적으로나마 이력이나 전과를 아실 겁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138대의 전차와 142문의 대전차포를 격파한 미하일 비트만 SS 대위( 1914~1944 )
  독일의 전사 연구가 "파트리크 아그테"씨의 저서 "미하일 비트만과 제2차 세계대전의 무장 친위대 제1 기갑사단 티거 전차장들". 아직 국내에 정식 출판되지 않아 아쉽게도 영문판을 구입하셔야 합니다( 필자 소장본 )
  미하일 비트만 SS 대위는 티거 전차를 이용, 전쟁 기간 중 138대의 전차를 격파해 독일 전차 에이스 4위에 랭크된 전차병들의 '군신'과도 같은 인물로 그가 지휘한 티거 전차가 등장하면 수십대씩 몰려다니던 소련군의 T-34 전차들이 맥을 못추고 전장의 고철로 변할 정도였습니다.
  특히 1943년 7월 12일, 프로호로프카 대전차전에서 소련 제5 친위 전차군은 789대의 전차 중 323대를 손실하는 패배를 당할 정도였는데 6·25 전쟁 기간 중 같은 소련제 전차를 운용한 북한군도 이와 같은 참극을 당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전장의 사신으로 군림한 Ⅵ호 전차 "티거".  미하일 비트만 SS 대위를 비롯한 전차 격파왕을 여럿 탄생시켰습니다.
  강력한 88mm 전차포와 102mm 두께의 장갑을 두른 "티거" 전차 앞에서는 T-34/76도 맥을 못추었습니다.
  오늘 소개할 일화는 바로 인천상륙작전 이후 벌어진 북한 전차부대의 허망한 최후입니다.  
  아! 6·25를 방문하시면서 낙동강 공방전과 인천 상륙작전 관련 포스트들을 열람하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맥아더 원수의 크로마이트 작전은 대단히 성공적이었습니다.
  1950년 9월 15일에 감행된 크로마이트 작전으로 미 제5 해병연대 3대대와 한국 해병대가 성공리에 인천에 상륙함은 물론 제3파로 상륙한 M26 "퍼싱" 전차 6대가 지원을 해줌으로써 해안을 수비하던 북한군의 진지들을 제압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죠.
  인천에 미군과 한국군이 상륙하자 북한군은 부랴부랴 경인지역의 모든 전차부대를 신속하게 인천으로 급파했습니다.
  문제는 제공권을 상실한 상태에서 전차들을 자력주행으로 이동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정신나간 짓인지를 보여주는 격이 되었다는 것이지만요.
  제공권은 오늘날에도 그 중요성이 입증되고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기간 중 미군의 공습으로 파괴된 탈레반군의 T-55 전차들
  첫 번째 사례는 1950년 9월 16일, 인천시 동쪽 5km 전방에서 질주하고 있던 북한군의 T-34/85 6대가 때마침 근처에서 비행 중이던 미 해병 항공대에게 걸려든 것이었습니다.
  갑작스레 걸려든 월척에 기쁨을 주저하지 못한 미 해병대 조종사들은 신속하게 이들을 덮쳐 네이팜탄과 500 파운드 폭탄을 투하해 3대의 T-34/85를 고철로 만들어버립니다.
  순식간에 절반의 차량을 손실한 북한군 전차대는 도주했지만 얼마 가지 못해 모두 격파돼 이 날 반격을 위해 투입되었던 북한군 전차대는 사실상 전멸한 격이 되었습니다.
 
  T-34/85의 천적으로 자리매김한 M26 "퍼싱" 전차는 경인가도 일대에서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북한군 전차부대의 시련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는데 바로 다음날, 이번에는 미 해병대의 매복에 걸려들었기 때문이죠.
  
9월 17일, 05시 45분.
  미 제5 해병연대는 부평구 일대를 감제할 수 있는 원통이 고개 일대에 방어진지를 구축합니다.   당시 배치는 89고지 후방에 약 500m의 종심 방어구획을 설정한 후 M20 3.5인치 "슈퍼 바주카"와 75mm 무반동총, 그리고 M26 퍼싱 중전차 순으로 이뤄졌죠.

  때마침 부평구 동쪽을 통과하는 경인가도를 따라 T-34/85 6대와 보병 2개 중대가 이동 중이라는 보고를 받은 제5 해병연대는 서둘러 방어전에 착수했습니다.
  오전 6시, 원통이 고개로 진입한 T-34/85 전차대는 보병과 상호 연계 하에 매복한 선두 소대 지역을 통과, 마지막 전차가 직각으로 굽은 구간을 막 지나치게 됩니다.
  그러자 70m 후방에 위치한 3.5인치 "슈퍼 바주카" 사수가 즉시 T-34/85의 후부를 조준 사격했고 전차는 그대로 대폭발을 일으켰습니다.
  이를 신호로 75mm 무반동총과 "슈퍼 바주카"가 불을 뿜음과 동시에 M26 "퍼싱" 중전차들이 달려와 90mm 포탄 세례를 퍼부어주었습니다.
  순식간에 당한 매복공격으로 T-34/85 6대는 제대로 된 반격조차 해보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전멸했고 연계 작전 중이던 보병 250명 중 200여명이 사살됩니다.
  이렇게 엄청난 전과를 거둔 미 제5 해병연대의 사상자는 부상 1명이 전부였으니 단 1명의 전사자도 내지 않은 채 북한군 공격제대를 궤멸시키는 대 전과를 거둔 셈이었습니다.
  격파된 T-34/85의 잔해를 지나치고 있는 미군 BAR 사수의 모습
  북한군의 반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미 해병대는 M26 퍼싱 1개 중대를 앞세워 김포 비행장으로 진격합니다.
  원거리에서 육중한 M26 "퍼싱"을 발견한 김포 비행장의 북한군 수비대는 별다른 도리없이 퇴각했고 사실상 적 전차의 반격조차 받지 않은 미 해병대는 그대로 비행장에 무혈입성했습니다.

  이렇게 성공적인 작전을 치르자 미 해병사단은 서울로 진격하는 과정에서 혹시 모를 북한군의 저항에 대비해 전차들을 중대단위로 각 연대에 배속시키는 여유까지 보여줍니다. 
  T-34/85는 성능상으로 나쁜 차량은 아니었지만 수적으로 열세인데다 제공권마저 빼앗긴 상태에서의 운용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었습니다.
  인천 일대에서 북한 전차부대를 몰살시킨 여세를 몰아 9월 20일, 서울 탈환을 위해 영등포로 진입한 제1 해병연대는 덕고개 일대에서 북한군 보병 1개 대대와 T-34/85 5대의 역습을 받아 치열한 교전을 치른 끝에 이 중 3대를 격파하는 전과를 거두었습니다.
  9월 21일에도 영등포 방면으로 T-34/85 5대가 쳐들어오자 해병대원들은 즉시 3.5인치 "슈퍼 바주카"를 발사하여 이 중 1대를 격파하고 2대를 부분 파괴하는 전과를 거둡니다.
  서울 방어전 과정에서 북한군은 T-34/85를 집중시켜 운용하는 것이 아닌 중대 단위로 축차투입하는 실책을 범했는데 만약 집중운용되었다면 설령 이기지는 못해도 미 해병 전차대에게 적잖은 피해를 입혔습니다.
  사실 M26 퍼싱이 투입된 상황이라면 응당 북한군도 122mm D-25T 전차포를 갖춘 IS-Ⅱ "스탈린"으로 응수해야했지만 중공에만 50대가 판매된 상황이라 별다른 수가 없었죠.
  북한군으로서는 미 해병대의 M26 "퍼싱"을 격파할 수 있는 IS-Ⅱ "스탈린"이 필요했지만 이 전차는 중공군이 50여대 가량 보유하고 있었을 뿐 북한에는 1대도 없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이로써 미 제1 해병사단은 상륙 후 4일 동안 24대의 T-34/85를 격파하는 전과를 거두었습니다.
  이는 상당한 수준의 전과라 할 수 있었는데 9월 25일까지 5일 동안 12대를 추가로 격파함으로써 경인가도 일대에서 T-34/85 36대를 격파했습니다.
  당시 북한군 1개 전차연대 편제가 40대였으니 이 전투를 통해 북한군은 금쪽같은 T-34/85를 1개 연대분이나 손실한 셈이었습니다.
  반면 미 해병대의 M26 "퍼싱" 피해는 겨우 2대로 9월 19일, 미 제73 전차대대 A중대 소속 차량이 안양시 북방 2마일 지점에서 도로 장애물을 제거하던 중 북한군의 저항을 받은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북한군은 크로마이트 작전 기간 중 미군을 저지하지 못한 채 1개 연대의 T-34/85를 손실하는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즉, 전차전으로 입은 피해가 아니었으니 사실상 북한 전차부대는 M26 퍼싱을 1대도 잡지 못하고 1개 연대 분의 T-34/85를 손실한 셈이 되어 더 이상 전차 전력이 남아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인천상륙작전의 성공과 경인가도 일대에서 북한 전차부대가 궤멸당한 것은 전선에 크나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9월 18일, 그 동안 방어전으로 일관했던 한국군 제1 보병사단 "전진부대"가 마침내 반격에 나섰고 23일을 기해 북한군은 총 퇴각, 아니 패주를 시작했습니다.
  북한군은 총 퇴각 과정에서 사실상 몇 대 남지 않은 전차들을 대부분 손실했고 결국 중공군 참전 직전까지 보병 잔당으로 저항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제105 전차여단 역시 조치원 일대에서 완전히 와해되어 여단장 류경수 소장은 견장을 떼어낸 야전상의만 착용한 채 북으로 도주합니다.
  이로써 용명을 떨쳤던 북한 전차부대의 신화는 경인가도의 몰살극으로 막을 내리기 시작했고 이후 보병 주도 하에 소련으로부터 긴급 수송된 소수의 T-34/85로 저항하는 신세에 놓여버렸습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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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만슈타인님 2010.05.14 18: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경인가도에서 이런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군요. 다음에는 미하일 비트만 대위의 활약상을 좀더 다뤄주세요 ^^

  2. 정영식 2010.06.11 16: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치열했던 공방전이로군요

    마치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해안으로 기동하던 독일 기갑부대가 전함의 포격과 항공기 폭격을 당한 것과 유사한 맥락 같습니다.

  3. 김수민 2010.07.19 21: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북한군이 경인가도 일대에서도 치열하게 격전을 벌였었네요

    해군 출신이지만 육군의 치열한 희생을 보자면 머리가 숙연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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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레밍 2012.10.28 22: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 구소련 전쟁영화 박진감이 대단하네요 탈출한 전차병들끼리 개싸움을 벌이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