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후방을 향한 공격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5.25 23:50


  기뢰에 막혀 바다 위를 한 달 동안 무의미하게 맴돌다가 원산에 겨우 행정 상륙한 미 제1해병사단은 11월 16일이 되었을 때 인공호수인 장진호(長津湖) 인근의 하갈우리(下碣隅里)까지 진격하였습니다. 개마고원(蓋馬高原)초입인 이곳은 협로로 연결되어 있어 앞으로 나갈수록 전진이 어려웠고 더구나 해발 고도 1,000~2,000미터의 고산지대여서 기온이 영하25도까지 내려가는 혹한이 연일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맥아더가 최종공세를 명령하자 동부지역의 미 제10군단도 11월 27일 진격을 개시하였는데, 이때 군단장 알몬드는 제1해병사단에게 장진호에서 낭림산맥을 넘어 강계방향으로 진격하여 서부전선의 제8군과 연결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너무 앞만 보고 공격만 하다가 벌어진 전선의 간격을 막기 위해 내린 고육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스미스(Oliver P. Smith) 미 제1해병사단장은 보급로와 임시 비행장 건설이 먼저 이루어진 후에야 사단을 이동시키기로 결정하여 진출은 더딜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철저한 준비는 이후 놀라운 기적을 연출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장진호 전투를 승리로 이끈 올리버 미 제1해병사단장 ]


  준비를 마친 미 제1해병사단은 제7해병연대가 유담리(柳譚里)로, 제5해병연대가 무평리 방향으로 공격을 개시하였지만, 11월 27일 중공군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쳐 공격이 저지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단순한 저항이 아니라 10배가 넘는 엄청난 규모의 중공군이 만들어 놓은 포위망 안으로 제1해병사단이 유인되어 있던 상태였고 이런 놀라운 사실이 정찰대에 의해 확인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방팔방에서 제1해병사단을 향하여 중공군의 공격이 개시되었는데, 더불어 밤에 영하 30도 가까이 내려가는 기온은 오히려 중공군 보다 더 무서운 적이었습니다.


  11월 30일, 유엔군사령부로부터 철수명령이 하달되자 사단장은 가장 앞서 있던 양 연대를 12월 4일, 사단사령부가 있는 하갈우리로 철수시키는데 성공하였습니다. 무려 중공군 4개 사단의 집요한 방해를 물리치고 600여명의 들것 환자와 함께 부대건제를 유지한 상태로 이룬 놀라운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미 제1해병사단이 이곳에 이룩한 신화의 시작에 불과하였습니다. 이제 하갈우리에는 4,300여명의 부상자를 포함한 10,000여명의 병력과 1,500여명의 피란민 그리고 1,000여대의 차량이 집결하여 있었습니다.


[험로를 통하여 철수하는 미 제1해병사단 병사들]


  중공군 제9병단 예하 8개 사단에 포위된 이들이 황초령을 넘어 함흥까지 철수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이때 병력만 공중으로 철수하라는 제의가 들어왔으나, 사단장은 최소한 2개 대대가 마지막까지 활주로에 잔류해야 하는데 이것은 이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것은 불명예스러운 행동이고 해병대 역사상 그 같은 경우는 없었다고 일언지하 거절하였습니다. 단지 4,300명의 부상자만 수송기로 사지를 탈출하였고 나머지 병력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12월 6일, 철수를 시작하였습니다. 이때 스미스 사단장은“우리는 철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적을 격멸하고 후방을 향하여 새롭게 공격하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훈시를 내렸습니다.


  유담리와 하갈우리에서 미 제1해병사단을 격멸하는데 실패했던 중공군 제9병단은 4개 사단을 황초령 일대에 추가 투입하였지만 해병대의 의지는 중공군을 압도하고 있었습니다. 해병대는 살인적인 혹한과 더불어 그들을 가로막는 중공군과 사투를 거듭하면서 황초령을 넘었고, 12월 11일 드디어 함흥을 거쳐 흥남에 도착하여 철수작전을 완료하였습니다. 중공군은 미 제1해병사단을 포위 섬멸할 경우, 미 국민들이 입게 될 심리적 충격을 잘 알고 있어 연일 매체를 통해 포위섬멸은 시간문제라고 선전하던 중이었고 미국 언론들도 미 제1해병사단의 포위와 철수과정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자존심을 건 상징적인 전투에서 미 제1해병사단이 결국 포위망을 뚫고 철수하는데 대 성공을 거두었고 그 여파는 실로 대단하였습니다.


[그들은 다른 방향으로 공격을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미 제1해병사단은 전사 393명, 부상 2,152명, 실종 76명의 피해를 입었지만 이와 맞섰던 중공군 제9병단은 거의 궤멸되어 이후 4개월 동안의 부대정비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중공군이 미 제1해병사단에게만 매몰되어 있다 보니 함경도 깊숙이 진출한 미 제10군단이 안전하게 철수할 수 있었습니다. 미 제1해병사단의 살신성인과 같은 투혼으로 아군은 전력을 보존하였고 반면 중공군은 이후 벌어진 제3차 공세에 제9병단을 동원할 수 없었습니다. 그 결과는 바로 대한민국의 수호였습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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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ar insurance 2011.10.08 19: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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