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예상을 벗어난 위기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6.14 08:30

 

  서울에 미련을 두지 않고 37도선까지 후퇴한 아군은 1월 6일 평택-안성 간에 설정된 방어선을 점령했으나 예상과 달리 중공군이 서울에서 추격을 멈추었습니다. 마치 중공군의 그림자에 놀라 허겁지겁 도망간 꼴이 되어버린 제8군은 이러한 의외의 상황에 상당히 당황하였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중공군의 제3차 공세 목표는 유엔군 격멸이 아니라 서울의 점령이었고 여기에서 그 동안의 계속된 공세로 지쳐있던 부대를 재편할 예정이었습니다. 어쨌든 중공군은 최초 등장이후부터 매번 예측을 벗어나는 행태를 보여 계속하여 아군을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만큼 중공군은 알려진 것이 없는 미지의 군대였던 것이었습니다.


[유엔군에게 있어 중공군은 아직까지도 미지의 군대였습니다.]


  이처럼 1951년 들어서자마자 숨 가쁘게 서울을 내주고 물러났지만 양측 주력이 팽팽히 길항하던 서부전선은 곧바로 소강상태에 들어갔습니다. 가평-춘천 지역으로 공세를 펼친 중공군 2개 군이 국군 제2, 5사단 지역을 돌파한 후 서부전선과 연결을 시도하여 이곳에도 일시적으로 위기가 조성되기도 하였으나 1월 8일을 전후해 일제히 멈추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중공군의 모습과 달리 북한군이 공세를 벌인 홍천-원주 지역은 전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국군 제8, 3사단이 담당하던 전선이었는데, 정면에 북한군 2개 군단이 압박을 가함과 동시에 후방에서 암약하던 유격대가 아군의 배후를 공격하여 왔습니다.


  이들은 순식간 영월-단양 일대까지 진출하면서 제8군의 후방 병참선을 위협하면서 순식간 위기가 고조되었습니다. 당시 이곳으로 진출한 북한군 제2군단 10사단은 안동지역까지 급속 남하하여 아군을 초긴장상태 몰아넣었습니다. 한마디로 1950년 여름 북한군의 최대 진격선과 비슷한 수준이었고 진출속도는 오히려 당시를 초과하였습니다. 위기를 직감한 제8군사령관은 급격히 무너지고 있던 국군 제3군단을 1월 3일자로 미 제10군단에 배속하여 중부전선의 위기를 수습하도록 명령하였습니다. 당시 미 제10군단은 대구 및 부산 등에서 부대를 정비하고 있던 중이었고, 이곳에는 군우리에서 학살과 같은 참화를 겪고 망신창이가 되었던 미 제2사단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미 제2사단은 중부전선의 최대 위기처인 원주를 사수할 임무를 부여받았습니다.


[당시의 요도]


  이제 1951년 1월 초, 유엔군의 최대 관건은 서부전선보다 원주를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북한군이 원주를 돌파하여 청주-대전방향으로 진출한다면, 서부전선에 포진한 유엔군 주력은 후방이 차단될 가능성이 농후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서울을 내어주고 중공군의 공세가 주춤한 1월 4일 이후부터는 북한군의 공세가 극성을 부린 원주가 제8군의 최대 관심지역으로 부각된 것이었습니다. 북한군 제5군단은 피란민으로 위장했던 부대를 원주 정면에 투입함과 동시에 원주 서측 문막에 제12사단을 투입하여 방어에 나선 미 제2사단의 후방을 위협했습니다. 군우리의 악몽이 떠오르는 위기의 순간이었습니다.


  포위당하여 몰 살 당할 악몽을 경험하였던 미 제2사단은 퇴로차단을 우려해 1월 7일 밤, 원주 남쪽의 목계 방향으로 철수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원주의 전략적 가치를 잘 알고 있는 군단장의 명령으로 현지사수로 목표를 바꾸었고 1월 8일 아침, 항공기의 근접지원과 함께 역습을 감행했습니다. 그리고 격렬한 공방전 끝에 1월 11일 오후, 원주를 감제할 수 있는 요충지인 247고지를 확보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4일간의 전투에서 북한군은 막대한 피해를 입고 철수하게 되었고, 미 제2사단은 제8군의 위기를 수습하는 쾌거를 올렸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전투를 기화로 미 제1사단은 군우리에서 당한 패배의 앙금을 털어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게 되었던 점입니다.


[원주를 공격하는 미 제2사단 (1950년 1월 10일 사진)]


  1950년 12월말, 연합사령부를 구성하면서 공산군 측 지휘권을 펑떠화이가 모두 차지하게 되었던 것을 내심 김일성과 북한 군부가 반발하였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중부전선에서 있었던 북한군의 단독공세가 사전에 중국 측과 조율되었던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전투는 북한군에게 단독 공격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만들었고 더욱 더 중국 측의 의도대로 전쟁이 진행되도록 만들어 버렸습니다.


  중공군은 제3차 공세는 마오쩌둥의 지침에 따라 서울점령이라는 작전목표를 손쉽게 달성하였지만 국군과 유엔군은 서부전선의 주력을 보존하여 후일을 기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 바다를 통해 후퇴한 미 제10군단이 즉시 전선에 재투입되기에 곤란한 상황이어서 상대적으로 중동부전선의 방어선이 얇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일 이때 중공군이 북한군과 함께 원주지역으로 전력을 집중하였다면 상황은 수습할 수 없는 국면으로 치달았을 가능성이 농후했습니다. 하지만 마오의 명령에 따라 예정보다 빨리 제3차 대공세를 개시한 중공군도 준비가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아군은 간발의 차이로 위기를 수습하였던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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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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