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다시 한강으로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7.01 09:34


 

  실험삼아 실시한 울프하운드작전의 성과는 기대이상이었습니다. 중공군에게 지난 두 달간 유엔군이 일방적으로 짓눌려왔지만, 생각보다 현재 상황이 결코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중공군에 대해 가지고 있던 막연한 두려움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유엔군이 반격할 차례였습니다. 하지만 리지웨이는 결코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성급하였던 지난 북진의 결과가 돌이킬 수 없는 참담함이었음을 그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리지웨이는 신중한 반격을 결심합니다.]


  썬더볼트(Thunderbolt)작전으로 명명된 이번 작전은 서두르지 않고 한 단계씩 앞으로 나가는 방식으로 예정되었습니다. 유엔군은 서부전선을 오산과 여주를 연하는 선에서부터 한강까지를 총 5개의 통제선으로 구분하였고 이를 차근차근 점령해 나가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작전의 진정한 핵심은 진격 그 자체보다 중공군의 소탕이었습니다. 그는 단지 지리적인 점령은 그다지 의의가 없고 중공군을 최대한 소모시켜 버리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한 전제 요건으로 중공군이 우회할 수 있는 틈을 주지 않고 전선을 최대한 오밀조밀하게 연결하면서 밀어붙이는 것이었습니다. 리지웨이는“오로지 적을 죽이는 것이 목적이다”라고 강조하면서 이제까지 부대들이 산개하여 도로를 따라 앞으로 나가는 방식에서 탈피하여 부대의 좌우가 완전하게 연결된 상태로 전진하도록 조치했습니다. 또한 적을 섬멸한 후 사전에 정한 5개의 통제선을 통과할 때는 군단장의 승인을 받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1951년 1월 25일, 오산-여주를 연하는 선에 정렬하고 있던 미 제1군단 25사단과 미 제9군단 1기병사단이 공격을 개시하였습니다. 청천강 일대에서 지난 11월 24일에 있었던 크리스마스 공세이후 꼭 2개월만의 이루어진 유엔군의 공세였습니다.


[1951년 2월 포격당하는 적진을 관측하는 미 제25사단 병사들]


  손에 손잡고(hand in hand), 어깨를 나란히(shoulder to shoulder)하라는 리지웨이의 의도대로 유엔군은 조심스러운 전진을 계속했습니다. 초반에 오산, 수원, 이천 등에서는 적의 저항이 있었으나 예상보다 경미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리고 1월 31일, 선도부대가 안양-양평을 연하는 선에까지 도달하였습니다. 그러자 리지웨이는 주력을 앞으로 투입하여 본격적인 공세로 전환하라고 예하 군단들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제부터 서울의 초입인 한강을 향해 내달릴 준비를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강을 향해 계속 진출하기 위해서는 수리산과 관악산이라는 장애물을 넘어야 했습니다. 더불어 중공군의 저항강도도 서서히 강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중공군 제150사단 예하 1개 연대가 점령한 수리산 일대는 수원에서 영등포에 이르는 1번 국도와 수원에서 인천을 연결하는 42번 국도를 동시에 통제할 수 있는 거점이었는데 이곳을 터키여단이 증강 된 제25사단이 공격하였습니다. 싸움이 고지전으로 격렬해지자 문제는 보급이었습니다. 아군은 50여명의 노무자가 지게를 이용하여 고지위로 보급을 추진하는데 성공하였지만 중공군은 그들이 보유한 탄약과 보급품을 소모하자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치열한 공방전 중공군이 공격을 멈추고 도주하면서 전투가 막을 내렸습니다.


  2월 9일, 제8군은 한강으로 가는 길목의 마지막 장애물인 관악산까지 도달하였습니다. 이곳의 중요성을 알고 있던 중공군은 고지정상 일대에 기관총과 박격포를 배치하고 완강히 저항할 태세를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국군 제1사단의 공격에 중공군은  저항을 포기하고 도주하였습니다. 그리고 추격을 계속한 국군 제1사단은 다음날인 영등포-노량진 일대에 진출함으로서 먼저 한강선에 도착하여 있던 미 제3사단과 연결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지난 1월 4일 서울을 내주고 한강을 건너온 지 한 달 만에 아군은 다시 한강에 섰고 이제부터는 서울 탈환을 결정해야할 차례였습니다.


[혁혁한 전공을 세운 터키군의 모습 ( 사진은 군우리전투 당시 )]


  그런데 신중한 리지웨이는 유엔군 전력이 중공군에 비하여 월등히 우세하지 못한 현재의 상황 하에서, 성급한 서울 재탈환은 군사적으로 그다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는 서울 점령이전에 중부전선을 남양주-가평선까지 끌어올려 서울의 동측방을 포위하여 배후를 안정시킨 후 한강을 도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비록 일단 여기서 진격이 멈추어 아쉬움은 남았지만 서부전선의 아군은 훗날을 기약하며 전력 재정비에 몰입하였습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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