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에 매장된 '월미도 영웅'들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0.07.14 07:54

 


1950년 9월 15일.

맥아더가 총 지휘하는 크로마이트 작전의 크라이맥스인

월미도 상륙작전이 개시되었다.



1950년 9월 15일 월미도로 향하는 7 척의 상륙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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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에서 끈질기게 저항하는 북한군의 보급로와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서 맥아더가 기획한 서울 탈환하기 위한

인천 상륙 작전은 월미도 점령부터 시작되었다.



월미도 상륙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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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도의 주둔했던 북한군은 226 육전대 독립연대의

1개 중대와 918[해안]포병 연대였다.


상륙정에 적재되어 월미도로 향하는 전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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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 구성만 보아도 대단한 정예부대로 보인다.

월미도 공격을 하기 전 미군 당국은 다수의 해병 사상자가

발생하리라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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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북한군은 모두 섬멸되었다.

북한은 이들을 월미도의 영웅들이라는 호칭으로

크게 우상화해서 선전하고 있다.


이들이 여러 척의 미국 군함을 격침시켜

상륙을 사흘이나 늦추었으며 전투기는 물론 섬에
올라온 전차들을
까버리는 영웅적인 전투를 하고
옥쇄 해버렸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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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월미도 상륙 작전의 첫 파로서 월미도에 상륙했던

한 해병의 수기에 월미도 방어가 얼마나 미약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월미도에 상륙의 첫 발을 내디딘 프레드 데이비슨 상병

- 낙동강 전선, 8월 전투 고참이였다-은 이렇게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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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도에 첫발을 디디는 순간, 미치게 조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리는 것은 오직 상륙정의 엔진소리와 상륙정 뱃전에
찰랑거리는
물결소리였다.


저항은 고사하고 이상하게 고요한 월미도의 환경에
어리둥절하고
있는 사이 귀청이 찢어지는 요란한 폭음을 지르며
월미도의 폭연을 뚫고
콜세어 기가 진입해 들어왔다.


고요 속에서 콜세어 엔진의 날벼락 치는 소리에 나는
기겁했다.

고도는 단지 10여 미터밖에 되지 않았다.

콜세어가 발사하는 기총탄의 뜨거운 탄피가 우리들 위에
불비처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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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묘사는 포탄이 난비하고 파괴된 앰트랙들이 여기저기

널려있고  해병들의 시체가 물에 둥둥 떠다니고 비처럼

쏟아지는 포탄 때문에 해안에 고착된 해병들의 이미지로
대표되는
태평양 전쟁의 타라와나 유황도, 오키나와등의
극악한 일본군 저항과는
너무 대조가 된다.



월미도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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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전투 전반 일부 해병들은 전투보다도 손들고 항복해
나오는
북한군들 포로를 수용하느라 바빴다.

이 포로들은 모두 섬 북쪽의 물 없는 수용장에 수용되었다.


월미도 전투에서 북한군은 200명이 섬멸되었고 136명이
포로가 되었다.

반면에 미 해병의 손해는 전사자는 한명도 없고 부상자만

17명 발생했을 따름이다.


태평양 전쟁시 미 해병대의 타라와나 유황도 상륙작전에서

발생했던 막대한 사상자를 생각하면 상륙작전은

상상을 넘는 대 성공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다.


이것은 유엔군이 완벽한 기습을 했었고 수비 북한군 대부분이
남한에서
억지로 징집한 의용군 출신이라는 이유도 있었고
상륙작전 직전
엄청나게 퍼 부운 함포 사격과 항공 공격이
큰 역할을 했다고 봐야한다.


이런 배경에 이어서 실제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북한군 월미도 수비대 주력이 함포 사격과 항공 공격에
놀라
모두 상륙해안의 반대편 인천 쪽 해안으로
도주해서
동굴들에  피신해있었기 때문이다.


북한군이 유황도의 일본군처럼 여기저기 참호에 산재해서

자동화기로 저항했다면 해병들에게 많은 사상자가 안

발생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M-26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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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한꺼번에 격멸해버릴 수 있도록 한곳에 모여 주었으니

월미도 적병 소탕은 단시간 내에 끝낼 수가 있었다.


다른 이유는 모여 준 북한 수비대를 섬멸에

보병들이 아닌 전차들이 나섰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대전차 화기가 발달했다면 그런 과감한 근거리
육박
공격은 전차들이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월미도의 북한군에게 그런 무기는 없었다.



월미도에 상륙하는 해병 전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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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으로 북한군 월미도 수비대가 완전 섬멸된 

월미도 선착장 동굴 전투를 소개한다.


월미도 상륙 작전의 첫 파인 7척의 상륙정이

월미도의 폭 50여 미터의 해안에 도착한 것은

아침 0633이었다,


전차들은 0646 둘째 상륙파에 편성된 세 척의 LCU에 의해서

양륙되었다.


전차들은 해병 1사단 1전차대대 A 중대 3전차 소대의 5량의

M26전차, 1량의 M-4A3 화염 방사 전차, 2량의 M4A3 불도저

전차, 그리고 같은 모델이 M-32 구난 전차들로서
모두 합계 9량의
전차들이 월미도 공격에 가담했다.



M4A3 - 도저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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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소대장 G.G.스위트 중위가 지휘했다.


그러나 상륙 중 M-26 전차 한량이 급한 경사를 올라오다가

조향을 잘못해서 궤도가 벗겨지는 고장이 발생하여
전투에 참여한 전차는
총 8량이었다. 



월미도 동굴 공격에서 화염을 방사하는 해병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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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대는 상륙하자마자 보병과 같이 해발 100여 미터

의 래디오 힐을 점령했다.


이 언덕에 꼭대기에 포격과 폭격에 부서진 무선 송신탑이 있었다.

송신탑 때문에 래디오[무전기]힐이라는 명칭을 받았다.

이곳은 시야가 좋아서 사방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M-32 구난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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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대는 이 시야가 트인 진지에서 상륙 해병의

포사격 지원을 했다.

인천의 군사시설 목표에 포사격을 했고 북한 군 일개 소대가

점거하고 있던 소 월미도의 37mm 대공 기관포 진지를 격파했다.


그러나 월미도 북부 반대편 해안으로 진격했던 보병들로부터

긴급한 지원 요청을 받았다.


상륙 후 별다르게 저항을 보이지 않던 북한군 수비대 주력이

모두 월미도 북쪽 인천을 바라보는 해안에 있는
구 선착장근처에
구축해둔 여러 방공호와 근처 언덕의
참호 및 건물에
몰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이들이 수류탄관 기관총으로 저항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차의 지원이 필요하였다.

소대장 스위트가 지휘하는 3량의 전차가 달려갔다.


소대장 전차의 포수 바시로 카바리아가 90mm 주포로 

방공호안에 사격을 하고 로데스의 M4A3 화염방사 전차가 지원을 

하는 형태로 동굴들을 하나씩 제압해 갔다.


포격전 해병대는 동굴들 입구에서 통역을 시켜 한참동안

항복을 권고했지만 북한군은 극소수를 제외하고 나오지를 않았다.


그래도 나오지 않자 90mm 주포가 불을 뿜었다.

고폭탄이 터지고 이어서 화염이 방사되자

불에 검게 그으른 북한 병들이 손을 들고 밖으로 기어 나왔다.

하나하나 동굴을 제압해 나가면서 다시 포로를 30여명 확보했다.



월미도 지도 - 포로 수용소였던 수영장과 동굴 전투가
있었던 북쪽끝 노스 포인트에 유의 - 진격 화살표가
가리킨 곳이 동굴이 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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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공호 전투 중 소대장 스위트가 본부 소대에서 파견 나온

인사계 무어 상사를 만나기 위해서 하차해서 이야기 하는

사이에 무어 상사는 스위트의 후방으로 접근하는 북한군을

발견하고 외쳤다.

“ 소대장님! 조심 하시오!”
뒤를 돌아본 스위트는 급히 권총을 꺼내 그 북한군을 사살했다.


둘 다 재수가 없었다.

그 북한군은 장교였으며 손을 머리에 얹고 있었다.

그 손에는 항복의 표시로 흰 수건을 쥐고 있었다.


북한군이 접근하지 않거나 휜 수건을 흔들었어도 그는 그렇게

오인 사살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위트는 큰 쇽크를 받고 목사를 만나 참회하겠다고 다짐했다.


방공호에서 주변에서 저항하는 북한군들도 모두 섬멸 되었다.


항복하지 않고 저항하는 적들이 숨어있는 동굴은

두 불도저 전차로서 바위와 흙을 떠 입구를 모두 매몰하였다.


땅굴의 입구를 모두 막아서 적을 질식사 시키는 전술은

태평양 전쟁에서 미군이 동굴 속에서 끝까지 저항하는
일본군에게
고전하면서 개발한 전술이었다.


이 전투 도중 한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월미도와 인천을 잇는 연육교 끝에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북한군 장갑차 한 량이 용감하게 출현했다.

전차장 세실 풀러톤의 M-26전차가 자랑하는 긴 90mm 포신이
불을 뿜었다. 

장갑차는 산산 조각이 되었다.


미 해병대는 포로들을 심문해서 얻은 결과로 굴속에서 질식해

죽은 북한군 숫자를 100-150명으로 추정하였다.
월미도에서 전사한 북한군이 200명 정도였으니 포격과 폭격에
죽은 북한군 저항 병력을 빼면 나머지는 거의 이 동굴에
피신해 있다가 죽었다고 봐야한다.



호송되는 포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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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장 타프렛이 이 동굴들이 소탕 되고 해상의 1사단 본부에

월미도를 모두 점령했다고 보고 한 것은 아침 10경이었다.


월미도 완전 점령 뒤 소월미도를 점령하는 보전포
합동 공격이 있었다.

월미도에서 뻗어나간 연육교로 연결된 직경 500미터 소월미도는

전차의 엄호와 월미도 해병들이 쏴주는 81mm 포의 지원과
콜세어 기들의 
항공 폭격으로 해병대는 사상자 없이 
이 섬을 점령할 수 있었다.


그래도 월미도 상륙작전에서 저항다운 저항을 한 것은

이 소월미도의 소대 병력이었지만 워낙 거센 불벼락에는

버티지를 못했다.


오전 11반경 소월미도를 완전 점령한 해병들은 휴식을 취하면서

저녁 다시 밀물이 들며 해병들이 인천해안에

상륙 작전을 할 때까지 경계와 휴식을 취했다.



해병대의 서울 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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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지금까지 거국적으로 영웅화 하고 있는

월미도 수비대들은 북한을 수호하는 치열한 전투를
마지막 한사람까지 하고 전원 산화하는 그런
영웅적인 전투를 한 것은 아니었다.
 


월미도 수비대는 화력에 놀라서 바다에 면한 진지를 이탈하여

후방 동굴에 피신했다가 전차들의 일방적인 공격을 받고

별다른 수를 써보지 못하고 다 격멸된 엉성한 방어를 했다.


영웅들의 옥쇄와는 거리가 한참이나 거리가 있는
저질부대가 졸렬한 전투를 했던 것이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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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haffee2080 2010.09.15 16: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래 북한군의 뻥이 좀 심해야지요..... ㅎㅎㅎ

  2. 코튼 맨 2010.10.02 18: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래 전력이 부족하면 별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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