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전투 - 영국군의 해피 밸리 전투(제 1편)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0.07.19 17:35

아래 글은 1951년 1월 3일 밤 서울 북방에서 1.4후퇴를
엄호하고 
철수하던 중 미군이 잘못 투하한 조명탄에 노출된
영국 얼스터 대대가
중공군의 공격에 맞서 장렬히 싸우다가
대대장 이하 157명이 전사한 전투에 관한 기록이다.


이 전투는 북한 운산에서 1950년 11월 말에 미 육군 1 기병사단이

중공군에게 당했던 비극이 남한에서 또 되풀이 됐던 것이라고

평가 할 수가 있다.


6·25전쟁에 참전한 영국군- 영국은 미국 다음으로 많은
육해공군을 파견했었고 그만큼 피해도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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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전투', 또는 '해피 밸리'  전투로 불리는 이 전투는

영국에서도 많이 알려져 있지 않고 미국 전사에도 거의 언급이

되어 있지 않으며 이들이 목숨 바쳐 싸웠던 한국에서는

서글플 정도로 잊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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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스터 연대 약사[略史]에서도 이 비극적인 전투는
언급되지 않고
어물어물 넘어갔다.


영국인들에게 해피 밸리 전투는 치욕적인 패배의 전투로

평가되었고 따라서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는 어느 월남전사 기록에서 한 한국군 소대가 경계에
소홀해서 전멸했던
전투를 단 몇 줄로 간략히 소개 한 사실을
보았을 때
이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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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 책을 많이 읽었다고 생각하는 나에게도 이 해피 밸리 전투는

책에서 거의 만나보지 못했던 전투였다.


나는 2주전 미국 언 라인 북스토어 아마존에 주문한

영국 책자 -Tank war Korea-에서 이 전투를 비교적 자세히 접하고

그 전투가 우리 민족이나 우리 국방사에  의미하는 바 크다고
생각하고
조사에 나섰다.


인터넷을 뒤져 겨우 전투장에 철로가 통과한다는 사실을

알아낸 나는 멍청하게 철로 연변에서 이의 단서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문산까지 왕복했지만 아무런 단서를 찾지를 못했다.


돌아온 나는 고양시와 옆 양주시는 물론 면단위까지
전화를 걸었지만
이 전투에 대해서 아는 사람을
한 명도 만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힘들게 고양시 전문위원 정동일 씨를 만나서
그분의 주선으로
젊은 시절 전투 현장을 생생히 보셨던
이강만 선생님을 뵙게 되었고
나중에 현지를 두 번이나
더 방문해서 이 전투를 증언하시는 여러
현지 어르신네를
만나 자료를 수집하였다.



지도를 들고 여러번 현지 답사를 다녀서 지도가
께끗하지가 않다.맨위의 동그라미가 있는 쟁고개가
영국군이 배치되었던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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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잊혀진 전투는 결코 한 민족이 외면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전투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신했다.

역사적 가치로서 민족의 비극인 1.4후퇴와 엄호하던
영국군들이 다수 희생 된 전투라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얼마 전 파주시 설마리의 영국군 전적지에 많은 영국의
노병들이 다녀갔다.


그러나 설마리 전투 이상으로 의미를 가진 이 전투의 현장에는

전적비는 커녕 아무런 흔적도 없고 기억해주는 이는 오직

옛 격전장에 거주하는 나이 80이 넘으신 토박이
어르신 분들 뿐이다.


나는 이 포스팅에서  해피밸리의 전투의 실상을 알림과 동시에

이 전투에 대한 재평가내지 재인식이 절대적으로

다시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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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1월 1일 암담한 새해가 밝았다.

한 달 전 운산에서 중공군에게 기습당했던 미군은

총 퇴각 명령을 내리고  38선을 되 넘어 서울까지 철수했었다.


서울은 6·25전쟁 초기 석달간 북한의 정떨어지는 행패 경험과
정부의
피난 권유로 시민들은 피난을 떠나고 있었다.


정초  새해 첫날인 이날 서해안을 따라 멀리
평북 안주까지 북상했다가 
서울로 철수했던 영국군 29여단은
명에 따라 거꾸로 북진 길에 올랐다.


서울 북방에서 서울을 방어하고 있던 국군 1사단에 추격해온
중공군이
압박을 가하고 있으니 측면을 찔러서 궤멸시키라는
명령이었다.


그러나 릿지웨이의 서울 철수 결정으로 이 명령은 1사단의
철수를
엄호하고 중공군의 진격을 지연시켜 유엔군과
서울 시민의
피난을 엄호하다가 다시 명에 의해 적절한
후퇴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부대는 다시 후퇴하여 진지를 구축하고 중공군의 내습을 기다렸다.

이들이 배치된 산등성이는 내린 눈으로 하얗게 덮여서

더욱 을씨년스럽게 보였다.



중공군의 공격 위치에서 본 쟁고개 최고 고지- B중대가
점령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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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상한 영국군의 영국 29여단은 3개 대대였다.

한개 대대, 즉 후시리에 대대는 우측 송추에서 방어선을

형성했고 로얄 울스터 라이플 대대는 좌측, 즉 서쪽의 고양군과
양주군 경계선인 도로 좌우에 방어선을 만들었다.

다른 대대인 그로스터 대대는 후방에 예비로 전개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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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로스터 대대는 4개월 뒤인 1951년 4월 22일 파주군

적성면 설마리 임진강가에서 중공군 대병력의 기습을 받고

섬멸당하는 비극을 겪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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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은 고양읍에서 3킬로 지점이고 고양군과 양주군 경계선인

‘작은 고개’지역이었다.

현재는 ‘쟁고개’로 불린다.


여기서 직선거리로  3킬로 남쪽 후방에 ‘큰 고개’라는

이름을 가졌던 매내미 고개가 있다.

매내미 고개가 휠씬 가파르고 높아 이런 대칭되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당시 두 고개는 직선이 아니라 활대와 같은 구부러진

둥글게 휘어진 좁은 길로 연결되어 있었다.


영국전사는 이 작은 고개를 채근현이라고 기록하고 있고
이 해피 밸리 전투를 채근현 전투라고 표시한 것도 있는데 

현지의 어르신네들을 전혀 들어보지를 못한 지명이라고 
말씀하였다.


한국에 파견된 29여단 소속 얼스터 연대는 1793년

북부 아일랜드에서 창설된 유서 깊은 부대였다.



로얄 얼스터 라이플스 연대의 부대 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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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파견된 얼스터 부대는 연대의 1대대였다.
역사적으로 여러 전투에서 용명을 날렸다.

이들은 전사에 라이플스라는 애칭으로 통한다.



1차 대전 프랑스 솜므 전선에서의 얼스터 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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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얄 얼스터 라이플 대대의 대대장 행크 칼슨 중령은 병으로

일본의 병원으로 후송되어 있었고 대대는 부대장인

토니 브레이크 소령이 대대장 대리로 대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보병 대대에 에슬리 쿠퍼 대위가 지휘하는
크롬웰 탱크 14대가 배속되었다.

크롬웰 전차 - 무게 28톤, 75mm 포, 2정의 기관총을 장비했고
시속 40마일이라는 쾌속을 자랑했지만 장갑이 약한 단점이
있었다. 주조 기술이 아닌 리베트 결합의 구식 기술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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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퍼 대위는 영 여단의 후사르 [경기병]대대소속으로
이 지원전차 부대
를 로얄 아티렐리 부대에서
크롬웰 전차 8대 ,정찰 중대에서
크롬웰 전차 6대를
배속 받아 총 14대의 전차로서 편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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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퍼의 전차가 10랑이라는 설도 있으나 위의 14량 설을 채택한다.

전투현장에 가서 확인해 봐도 14량 설이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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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군은 더 대형인 84mm [20파운드]로 장비된

센츄리언 전차도 있었으나 근처 지형이 좁은 농로들로 이루어져

중전차의 기동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서 더 소형인 크롬웰
전차를
보냈으나 결과는 그 판단과 전혀 다른 반대 방향으로
움직여서
파견 전차대 전멸이라는 비극을 가져왔다.


얼스터 대대의 동쪽에는 3킬로 지역에는 앞서 말한 후시리에
대대가
배치되어 있었고 서쪽 1.5킬로 떨어져  즉, 고양을
지나 지금의
구파발 쪽은 미군 25사가 배치되어 있었다.


두 대대는 긴급 전개했던터라 이어진 긴 전선을 만든 것이 아니라

지역의 고지등 중요한 곳만 점령하는 거점 방어의 형태를 취했다.

얼스터 대대는 도로 양쪽의 여러 고지들을 점령해서
방어 호를 구축했다.


천지가 얼어붙은 추운 신년 첫 날을 보내고 다음날인
1951년 1월 2일도
중공군이 나타나지 않았다.

단지 한국군 1 사단이 띄엄띄엄 철수해갈 따름이었다.

영국군 장병들은 온 몸이 냉동 될 만큼 추운 겨울밤을 버티어 냈다.


다음날 3일 날 새벽 5시, 드디어 도로 우측 최전방고지이며
근처를
감제하는 최고 높은 고지에 배치된 B중대 후방 고지의
D중대를
중공군이 공격해왔다.


중공군의 서쪽으로 침투해서 북쪽을 향해 배치된

D중대의 측면을 공격했다.

몰 소위가 지휘하던 4소대는 이 기습에 별다른 저항을 못하고

고지 아래로 밀려 내려왔다.


이어서 중공군의 공격은 확대되어 최고 고지인 B중대의
고지도 점령했다.

전방의 A중대 고지도 빼앗겼다.



쟁고개[작은 고개] 좌측 언덕이다 - A 중대가 점령하고 있었다.
중공군은 양 고지를 공격해서 점령했다가 영국군의 반격으로
패퇴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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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공군은 64군의 116사단 전위 부대였다.

지역을 공격할 때 지역 최고 고지부터 확보하는 전술의
기본이
중공군의 전술에도 적용이 되었다.


대대장 토니 블레이크는 적이 진지강화를 하기 전에

빼앗긴 고지를 탈환하기로 하였다.


대대가 가진 가용한 모든 화력이 고지의 중공군에게 퍼 부어졌다.

박격포와 탱크들이 한참을 두들긴 후 A중대가 가파른 고지를

기어 올라가 반격을 했다.


적의 사격을 무릅쓰고 능선에 올라간 부대는

전방 고지의 중공군을 박살 낼 항공공격을 요청했다.


미 공군의 F -80슈팅 스타기 4기 편대가 내습해서
네이팜탄을 투하했다.

고지를 점령했던 중공군은 백주에 숨을 곳이 없었다.

정확한 네이팜 공격으로 중공군 전원 몰살이라는 위력을 발휘했다.


A중대가 고지를 쉽게 탈환하자 영국군은 지역에서 제일

높은 B 중대의 전방 고지를 공격해서 재점령했다.


점심이 조금 지나 끝난  이 전투에서 적군은

약 30구의 시체와 2명의 포로를 남기고 도주했다.

얼스터 대대에는 네 명의 전사자가 발생했다.


얼스터 대대가 그 작년 11월 초순 한국에 온 이래

최초의 전투를 승리로 장식했다.

대대원들의 사기도 높아졌다.


그러나 영국군이 선전(善戰)하는 동안 후방 서울의 미 8군은

다음날 4일을 완전 서울을 철수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고

전방 부대들은 그날 중으로 중공군과의 접적을 끊고
철수 하도록 명령했다.


철수 명령은 오후 3시에 얼스터 대대의 오른쪽 미 25사단에

제일 먼저 하달되었다.


철수 명령을 먼저 받은 미군의 25사단은 번개같이 움직여서

불과 한 시간 반만이 오후 네 시 반에 철수를 완료했다.


중공군에게 데인 경험이 많은 미군은 다가올 밤이라는 것이

중공군의 기습에 어떤 역할을 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영국군의 우측 송추 쪽 후시리에 대대도 얼스터 대대보다

한 시간 먼저 철수 통보를 받고 철수를 완료했다.


후시리에 대대도 이날 하루 전방에 밀려온 중공군과

격전을 치러서 200여명을 사살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 대대의 철수 특징은 차량을 먼 후방에 대놓고 도보로

적전 이탈을 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승차를 완료한 시각은 다음날 새벽 1시였다.


얼스터 대대에게 철수 명령이 떨어진 것은 인접 퓨시리에 부대가

철수명령을 받은 시각으로부터 한 시간이나 지난 18시 30분이었다.

이미 어둠의 그림자가 찾아 올 시각이었다.


얼스터대대에 전방에 중공군이 집중되어 있었던 상황에

철수 명령도 제일 늦게 받았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클릭~~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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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opohobag 2010.07.20 13: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이 블로그를 발견하고 아주 푸욱 빠졌습니다. 매일같이 시간만 나면 쉬지않고 읽고 또 읽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자료와 답사를 거친 후에나 쓸 수 있을지 모르는 글들입니다

    거의다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보니 또 새로운 기사가 올라왔네요.

    더위에도 쉬지 않고 수고하시는 필자를 격려하기위해 삼계탕 한 그릇과 커다란 수박이라도 한통 들고 방문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글들을 여러사람들의 블로그에도 이어 올리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만
    네이버나 다음에 카페를 만들어도 좋겠구요

    아무래도 널리 읽혀지려면 여기저기 붙이는 게 좋을 듯한데
    이 엄청난 力作을

    누구나 읽을 수 있게요

  2. 몰러요원 2010.07.26 07: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끔 울프독님의 블로그에 들려서 개 이야기도 보고 가고 물고기 이야기 도 보고 갑니다.
    많은 블로그가 있지만 이렇게 전사를 직접 현장까지 둘러보고 써주시는 분은 참 드믈게 봅니다.

    비밀에서 왔다 갑니다.

    몰러 드림

  3. 보도연맹은 빨갱이 2010.10.12 18: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쟁통에는 무고한 희생은 어쩔수 없는거 아닌가
    보도연맹 빨갱이들이 죽창들고 인민재판 한건 왜 언급을 안 하는지

  4. nogiuook 2011.05.17 02: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이 안보입니다. 솜즈사진을 제외하고는

  5. Jewellery Making Supplies 2011.10.30 00: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더 알고 싶어서 찾다 보니 좋은싸이트가 있네요,,,

  6. country wide insurance 2012.05.28 11: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놀랐입니다. 당신은 절대적으로 지식뿐만 아니라 스마트 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사람들이 당신을 위해 주제가 매력 만들기 실현있을 무언가를 작성했다. 나는 미래에 관한 것이 활용할 것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7. obat herbal pelangsing 2012.09.19 16: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훌륭한 콘텐츠! 우리는 이전에 telemedicine를 인식하지있어. 이 사실에 매우 도움이 방법은 수행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초래할 실제로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교육 제작 회사 및 정원 트리트먼트와 관련된 기사 내용을 만들 수로 돌아가서. 귀하의 웹 사이트가 저에게 많은 도움을해야합니다.

  8. rattan indonesia 2012.12.30 21: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원 트리트먼트와 관련된 기사 내용을 만들 수

  9. jus mengkudu 2013.02.23 23: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반적으로 나는 전체 기사를 읽은 적이 있지만이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