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전투 - 영국군의 해피밸리 전투(제 3편)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0.07.20 09:31

남쪽으로는 얼어붙은 곡릉촌을 도하하여 매내미 고개로 가는

길을 탔던 영국군들도 중공군이 추격 포위하고 

공격했다 .

이 지역은 현재 양주시 장흥면 삼하리다.



영국군의 탈출 출구였던 매내미[큰 고개] 고개에서 본
해피 밸리 격전장.이 전투의 후반에 격전을 벌인 삼하리 벌판.
고가 차도 건너 멀리 철탑 옆에 보이게 우뚝 솟은
산 아래가 불미지 격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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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넒은 들에서도 영국군의 피해가 컸다.

현지에 가면 당시의 전황을 보면 중공군은 압도적인

병력으로 곡릉천 좌우,고양시 선유리와 양주시 삼하리에

직경 1km의 거대한 포위망을 형성해놓은 것으로 보인다.


영국군은 이 포위망을 벗어났어도 매내미 고개를 넘을 수는 없었다.

매내미 고개로 올라가는 가파르고 좁은 곳에서 탈출했던 트럭이

피격당해 불타오르며 길을 막아 버렸다.

이 길은 차 한대가 겨우 통행할 만한 폭을 가지고 있다.


중공군의 박격포가 때렸는지 중공군이 달려와서 고개를

밀봉 공격했는지는 확인 할 수는 없다.

[트럭은 마지막으로 전차와 같이 행군했던 유조차량일 수도 있다.]



삼하리를 가로 지르는 작은 농로에서 전차들과 보병들의
피해가 많았다.
지금은 이 옛 길과 농수로는 없어졌지만
매내미 고개로 통하는 옛길의 흔적같은 것이 보인다.

비닐 하우스 우측 차가 나오는 길은 가파르게 매내미 고개로
연결된 자취가 있다. 대단히 좁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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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롬웰 전차들은 곡릉천 북쪽 고양 선유리에서부터

진드기 같이 달려드는 중공군의 공격 때문에 해치를

닫고 잠망경으로 밀폐 조종을 해야 했었다.

그래서 곡릉천에 빠지는 전차들도 있었다.


그리고 곡릉천을 넘어 삼하리로 이동한 전차들도

밀폐 조종으로 좁은 길을  간신히 타고 가야하는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


소달구지나 다닐 좁은 길을 암흑 속에서 밀폐 조종은
사실 무리였다.

여러 전차가 좁은 길을 벗어나 길옆 수로에 빠지고 길을 막아
전차병들도
전차를 떠나 살길을 찾아야 했다.


삼하리 격전장의 유기 된 전차를 전투 며칠 뒤에 보신 어르신네는

6-7대쯤 되어 보이는 전차들이 포신을 전부 서쪽으로 돌리고

유기 되어 있었다고 말씀 하셨다.


[요약하자면 14대의 전차들은 그 절반인 6-7대가

곡릉천 북쪽에 유기 되었고 나머지 절반이 좀더 전진한

곡릉천 남쪽 농로에서 유기 된 것으로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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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여러 가지를 의미한다.

전차대를 공격했던 중공군이 항상 하는 대로 우회한후
삼하리 서쪽 방향에서
전차대들에게 공격을 해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매내미
고개가 막히거나 선두 전차가
수로에 떨어져 기동로가
막혀 버리자 전차들이 차체를 돌려
서쪽 구파발 방향으로
탈출을 시도했을 가능성도 제시하기도 한다.


[말씀해주신 어르신네는 조종석의 방향이 어느 쪽이었는지를

  잘 기억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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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리의 다른 어르신네는 영국군 전차 2대가 도로를 벗어나

자기 집 논에 들어와서 유기되었다는 말씀을  해주었다.


두대의 전차는 논바닥에 엔진 오일을 쏟아 놓아서

그 논의 농사가 삼년동안이나 잘 되지를 않았었다.


이 전차들은 곡릉천을 건너 매내미로 가던 전차였는데 논으로

들어간 것은 막힌 농로를 우회하기 위함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탈출하는 영국군의 위치에서 본 매내미 고개.
옛 흔적은 찾아 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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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에 투입 된 크롬웰 전차 14대중 한 량도 귀환하지 못했다.

지옥의 전황은 영국군이 대량으로 살상당하고 남은 병력을 수습한

부사관 쇼가 이들을 인솔하고 전장을 탈출함으로서 끝났다.


그는 중공군이 도로 구간마다 달려 붙어 공격을 한다는

중요한 원칙을 죽음의 현장에서 목숨을 내놓고 체득했다.


그는 부하들을 인솔하고 중공군이 붙은 도로를 떠나서

매내미 고개 서쪽 1km 지점의 언덕을 넘어 탈출했다.


그가 인솔하고 나온 부대 인원은 겨우 70명 내외였다.

상황이 종료된 이 때가 1월 4일 새벽 03:40분이었다.


이날 전투에서 영국군은 157명이 전사했다.

원래 208여명이 실종 되거나 전사한 것으로 믿어졌지만

며칠이 지나면서 생존한 영국군이 귀환했고 나중에
포로가 되었던
장병도 귀환하였다.


영국군이 죽거나 탈출한 현장에서는 중공군들의

약탈이 극성을 부렸다.

중공군들은 전투 중간부터 틈만 나면  몇 차례나 사체를
뒤지고
중요 전리품을 챙겼다.    
  


영국군이 격전장에 유기했던 크롬웰 전차.
중공군 점령중 두달이나 이 위치에 있다가 
수복후 회수되었다.
 
현지 어르신은 영국 전차가 작았고 하꼬가다[상자형]이라고
회고 했다.크롬웰 전차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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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 되었다.

삼하리에 사시는 한 할머니는 이렇게 회고하였다.

밤새 총소리와 폭탄소리와 비명소리에 간을 콩알만큼 조리고 있던

식구들은 날이 밝자 필요한 보따리만 싸서 급히 피난길에 올랐다.


피난길은 몇 백 미터 되지가 않았다.

동네 입구에서 지키던 중공군이 집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했다.

난생 처음 보는 중공군들이었다.

식구는 그들의 명령대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 때 아직 소녀였던 할머니는 비로소 마을 주변과 동네 길에

부서진 트럭과 영국군 사체가 즐비한 것을 발견했다.

사체들은 보기에도 처참하고 무서웠다.


전투가 종료되고 몇 시간이 되었는데도 영국군 트럭들은

시동이 꺼지지 않고 계속 엔진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할머니는 너무 끔찍해서 한손으로 눈길이 발길만 보이게 가리고

부들부들 떨면서 집으로 돌아와 며칠간 집밖으로 나가지를 말았다.


밤에는 젊은 영국 군인의 귀신이 찾아와 구슬피 울 것 같은

두려움도 들었다.


중공군들은 자기들 사체만 치우고 자기들이 마구 함부로 하며

약탈하던 영국군의 사체는 그대로 내 팽개쳐 놓았었다.


서울이 점령되고 마을의 중공군이 떠나자 동네 어른들이 모여서 

먼 이국에서 젊은 나이에 이 세상을 뜬 불쌍한 외국 젊은이들의

유해를 거두어 정중히 장례지내 주는 것이 도리가 아니냐는 원칙이

확인되었고 동네의 성인들은 모두 영국군 전사자 매장 일에

자원하고 나섰다.


침략군이니 뭐니 하며 매장을 반대하는 빨갱이스러운

인간들은 이 인간적인 도리를 논하고 실행하는 상황에

한 명도 나오지 없었다.


동네 사람들은 영국군인들이 그렇게 도달하려고 노력했던

전장의 끝 매내미 고개 우측 언덕에 길고 깊은 장방형 묘지를 팠다.


그리고 동네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영국군 유해들을 거두어서

자기들이 마련한 장지로 운구해갔다.

동네 분들은 영국군 유해들을 가능한대로 정중히 취급했다.


이 때 이일을 한 어르신네는 눈을 반쯤 뜨고 고통스런 표정으로

숨을 거둔 금발의 영국군을 보니 가슴이 메어지더라고 했다.


동네 분들은 아픈 마음으로 유해들을 판 묘소에 일렬로

한명 씩 최대한 편하게 눕혀서 안치했다.


그리고 겨울이 가고 봄이 어른거리는 3월이 되었다.

두 달 간 동네 여기저기에 방치한 영국군의 트럭이나 전차들은

아무도 손대지 않아 그대로 있었다.


서울이 탈환되고 유엔군이 고양군에 들어오고 불과

수일 뒤에 영국군이 찾아왔다.


그들은 영국군이 피해를 당한 지역을 돌아보고 전사자들의

행방부터 찾았다.


동네 어른들이 잘 모셨다고 말하고 집단 묘역으로 안내하자

그들은 안심한 듯 고마움을 표하고 돌아갔다.


그 뒤에 영국군이 그 묘역에 자주 찾아왔다.

일요일에는 수십 명이 여러 대의 트럭을 타고 와서

추모 예배를 드리고 갔다.

그렇게 얼마 시간이 지나자 영국군은 그 묘역에 위에 위령비

[또는 추모비]를 세웠다.


매내미 고개 바로 우측 농원의 바로 뒤에 위령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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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 전투가 왜 해피 밸리 전투로 명칭이 붙었는지

짐작이 간다.

1차 세계 대전 1917년 4월 11-12일에 있었던 아라스 전투에서
전사한 영국군 12 사단의 장병들을 안치한
Monchy-le-Preux 의
군 묘지 명칭이 해피 밸리[HAPPY VALLEY] 영국군 묘지다.
76명이 잠들어 있다.



프랑스 카레 근처 영국군 해피 밸리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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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힌트를 주어서 이 영국군 묘역을 발음하기 힘든

현지명대신 해피 밸리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 나중에
전투 명칭까지로
발전한 것 같다.


이 참혹한 전투는 해피한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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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군인이나 민간인의 추모 발걸음이 계속 이어지다가

전쟁이 끝났다.


어느 날 묘역이 분주해지더니 영국군의 유해를 모두 영국으로

이장해 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며칠간 묘역을 다시 파고 영국군의 유해를 수습하는
작업이 이어졌다.

유해는 모두 발굴되어 아마천으로 정성스럽게 싸여져
관에 놓여졌다.


동네 사람들은 그들 영령들이 고향으로 가는 길을 안도와

허전한 마음으로 전송했다.


유해가 영국으로 운구 되어 가고도 영국군이 세운 위령비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몇 년이 지나자 이 위령비가 쓰러져 버렸다.


행정당국이 이 사실을 영국 대사관에 알리고 이를
바로 잡아야 하는데
그때의 지방 행정부서나 당국은
연락수단도 시원치 않았고 해서
그대로 두어 버리는
무심한 대응을 했다.


동네 사람들도 오고 가면서“저것 다시 세워야 하는데---”
하면서도
자기일과 무관하니 안타까운 마음만을 느꼈을 뿐이었다.


몇 년이 그대로 지난 어느 해인가 비석이 보이지 않았다.

풍문에 영국으로 가져갔다는 말이 들려왔다.


주민들은 한국인들이 쓰러진 위령비에 몇 년씩 관심을 안 가져 준

사실에 영국 당국이 서운하게 생각하고 이 비를 본국으로

가져갔다고 하면서 미안하게 생각했다.


한 어르신은 이 비석을 영국이 가져간 때가 작은 고개와 매내미

고개를 직선으로 잇는 큰 도로가 뚫릴 무렵인 1980년이라고

이야기 해주었다.


조사를 해보니 위령비는 그 보다 훨씬 전에 영국으로

이전시킨 것이 발견되었다.


영국 측의 자료에 의하면 이 비는 1962년 영국으로 가져와

북 아일랜드 얼스터 부대가 주둔했던 벨리메나의
세인트 패트릭 기지에 재건립했다고 되어 있다.

영국으로 가져온 이유에 대해서 위령비 일대가
도시화 되어가고
있어 소멸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장소는 큰 도로 하나 뚫렸을 뿐이고 지금도

전혀 도시화가 진행되지 않았다.


영국이 위령비를 가져간 이유는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인데

동네 분들 말씀대로 비가 수년간 쓰러진 채 방치 된 사실에

자극을 받고 가져갔다는 말이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한국인들이 위령비를 앞으로도 그렇게 함부로 방치되면

종내는 없어질 것이라는 염려 때문에 가져간 것이라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듯하다.


목숨을 바쳐 지켜준 나라의 냉대에 영국이나 영국 영령들이

화가 날 만도하다.


얼스터 연대는 1968년 로얄 인니스킬링 푸시리에 부대와

합병하여 로얄 아이리쉬 레인저스 부대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였다.  


비석이 서 있던 부대의 기지도 얼마전 폐쇄 되었다.

이 기구한 비석은 2008년 5월 벨파스트 시청으로
이동하여 현재는 다른 전쟁 기념 동상들과 함께
시청의 마당 한구석에 전시되고 있다.
시청을 찾는 관광객들은 다 둘러 볼 수가 있다.



위령비가 있는 벨파스트 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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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방문해서 만난 고양시의 격전지 현지 주민 한분은

삼년 전에도
영국인들 세 명이 이 지역을 찾아와서
비석 위치와 격전지 위치를
물어보았다.


자신은 전혀 아는 바가 없어 별 도움이 못되었다고 했다.

그 영국분들은 주변 여기저기를 반나절이나 헤매다가
낙심한체 돌아갔다.

이 사실은 아직도 영국인들이 해피 밸리를 완전히
잊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지금 한국이 빈곤에서 벗어나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서
6·25전쟁 때
참전하신 분들의 방문 행사도 하고  전적 기념지도
많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영국군 얼스터 부대가 크게 희생했던 이 해피 밸리
지역에는
희미하게 전해오는 전설 같은 영국군 이야기만
남아 있을 뿐
아무런 흔적이 없다.


서두에서 말했듯 파주군 설마리 전적기념 공원과 너무나
대조가
된다.



파주시 적성면 설마리 영국군 전적비 -
우리 한민족에게 해피 밸리 전투에서 희생한 영국군 장병들의
가치는 설마리에서 산화한 장병들 희생의 그것과 다를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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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비극인 서울 시민의 1.4 후퇴를 결사 엄호하다가

희생한 영국군의
영령들이 한국의 국민들에게 이렇게
잊혀 진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희생 영령을 위로하고 기리기 위한  전적 기념 공원이
전투지에 건립되어야
할 것이고 한국인의 무심함에 서운했던
영국인들이 가져갔지만
또 다시 갈 곳을 잃고 북 아일랜드
벨파스트 시청에 보관되어 있는
그 위령비도 
삼고초려(三顧草廬)의 간청으로 다시 찾아와 

이곳에 건립되기를 염원해본다.

그것이 1.4후퇴의 처절한 상처를 적지않게 입었던
동방예의지국 한국인들이 꼭 해야 할 보은의 성의라고
감히 이야기 하고 싶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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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20 22: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김현수 2010.07.23 12: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령들이시여 편히 잠드소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국민들은 그대들을 영원히 잊지 않습니다

  3. 바부퉁이 2010.07.23 22: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병 1개 중대로 증강된 전차 중대를 먼저 출바시켰으면, 야간에 소음 으로 인해 집결해있던(철수전 집결했는지는... 배치된 상태에서의 철수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략적인 장소가 아군의 기도가 노출되고, 그 위치로 어렵풋이 박격포의 조명탄을 솼다면, 바로 노출되어 전위부대인 전차 중대부터 공격 당하지 않았을까 하네요... 또한... 그때까지 중공군의 전술을 잘 몰랐던 영국군의 지휘관으로써는 당연한 선택이라고 할수도 있을거 같습니다(물론 잘못된 선택 이었죠)

  4. 강헌 2010.07.24 09: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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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car insurance quotes 2012.05.28 10: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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