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다시 38선으로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7.21 08:47

 

  서울의 군사적 의의가 반감되었다 하더라도 탈환한 이상 또다시 적에게 순순히 내줄 수는 없었습니다. 만일 서울을 한 번 더 적에게 내어준다면 그때는 전선이 한강일대에서 완전히 고착화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38선 일대인 임진강을 연하는 선까지는 전선을 밀어붙일 필요성이 절실하였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더 이상 공세를 생각할 수 없도록 적에게 심대한 피해를 강요하여야 했습니다. 지금까지 국군과 유엔군이 반복적으로 공세를 수행하는 동안 중공군과 북한군은 아군이 포위망을 형성하기 이전에 철수를 반복함으로써 주력을 격멸하는데 만족할 만한 효과를 얻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적을 후퇴시키고는 있었지만 격멸한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바로 이때 의정부 북방에 북한군 제1군단과 중공군 제26군이 몰려 있는 사실을 발견하였는데, 이들 중 의정부 서북쪽의 북한군 제1군단은 아군이 밀어붙이면 임진강을 건너 북쪽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포진한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아군이 문산 북방의 교량만을 먼저 차단할 수 있다면 이들을 일거에 포위하여 섬멸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리지웨이는 대구에 위치하고 있는 제187공수연대를 임진강 남쪽에 공수시켜 퇴로를 차단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명령을 받은 제187공수연대는 3월 23일 07시에 대구비행장을 이륙하여 문산 북동쪽에 성공적으로 낙하하는데 성공하였고 북한군 136명 사살과 149명을 포로로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하지만 포로 들을 신문한 결과, 중공군과 북한군의 주력은 공수연대의 투입 바로 직전에 임진강북쪽으로 철수하였음이 밝혀지면서 적의 주력을 차단하는 데 실패하였습니다. 이처럼 의정부 북쪽이 텅 비게 되자 다음날 국군 제1사단이 문산-법원리까지 진출하였고 이어서 미 제3사단과 미 제25사단이 임진강까지 북상하였습니다. 이와 더불어 동해안 지역에서 국군 수도사단과 국군 제9사단으로 편성된 국군 제1군단이 3월 25일부터 양양을 향하여 공세를 개시하였습니다. 북한군 제69여단이 험준한 산악지역을 이용하여 강력히 저항하였으나, 동해상에 배치된 미 함정의 지원 함포사격에 의해 전의를 잃고 붕괴되었습니다. 그리고 3월 27일 수도사단이 남대천을 도하하여 양양을 점령함으로써 한강하구 서쪽을 제외한 38선 일대에서 전선은 다시 형성되었습니다. 또 다시 전쟁이전의 상태로 회귀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군은 다시 38선에 섰고 전쟁이전의 상태로 회귀하였습니다.]


  이렇게 아군이 다시 38선 일대에 정렬하자 미국정부는 38선의 재 돌파에 관한 모든 것을 야전군사령관인 리지웨이 장군에게 일임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지난 1950년 10월에 있었던 북진과는 개념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미국의 의도는 38선 이북을 완전히 회복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현 상태에서 방어에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한 제한적인 돌파만 허용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리지웨이는 지리적으로 방어에 유리한 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으로 이어지는 선에 경고한 방어지대를 설치할 것을 결심하였고 이를 캔사스선(Kansas Line)으로 명명했습니다. 이 방어선은 총 184킬로미터에 이르렀지만 서부전선에서는 22킬로미터는 한강하구를, 중부전선은 16킬로미터에 걸친 화천저수지를 방어에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리지웨이는 4월 1일부터 현 전선을 38선에서 캔사스선까지 밀어 붙이기로 하고 이를 요철작전(Rugged Operation)으로 명명하였습니다. 아직까지 중공군과 북한군은 전열을 재정비한 상태가 아니어서 아군은 38도선을 기준으로 서부에서는 3.2~9.6킬로미터, 동부에서는 16킬로미터까지 손쉽게 북상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사실 애초 캔사스선은 38선 북방에 방어에 유리한 지형을 연결하여 임의적으로 설정한 방어선이었는데, 아마도 미국의 정책 입안자들은 이때부터 대략 이 곳을 기준으로 미래의 군사분계선을 고려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런데 아군이 캔사스선에 이르렀을 때, 중공군의 대부대가 평강-철원-김화를 연결하는 삼각지대(이른바 철의 삼각지대 Iron Triangle)에 집결하여 공세를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가 입수되었습니다.


  이 지역은 원산과 서울의 중간지역에 위치한 교통의 요충지여서 중공군의 차후 공세를 막기 위해서라도 사전에 단속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제8군은 캔사스선 10~20킬로미터 북방에 와이오밍선(Wyoming Ling)을 설정하고, 이를 확보하기 위한 작전에 재차 돌입하였습니다. 4월 11일 개시된 작전의 명칭은 작전명 불굴(Dauntless Operation)이었습니다. 작전명답게 제8군은 쉬지 않고 진격을 재개하여  전선을 한 번 더 북으로 걷어 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최초 공세는 비교적 용이하게 진행되었으나, 4월 22일부터는 도처에서 적의 강력한 저항을 받아 전진이 멈추었습니다.


[중공군은 대응이 거세어지면서 반격이 예상되었습니다. ]


  리지웨이는 이것이 적이 새로운 대공세 준비를 완료하였다는 신호로 해석하였습니다. 지난 4차 공세이후 두 달이 경과하는 동안 중공군의 특이 동향이 없었는데, 그것은 중공군이 공세에 나설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리지웨이는 각 부대에“적의 공세를 중단하고 적의 역공에 대비하여 방어로 전환할 것을 명령함으로써, 국군과 유엔군은 철의 삼각지를 눈앞에 두고 공격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이제 초미의 관심사는 중공군이 언제 어디로 공격해 올 것인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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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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