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계곡의 까마귀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0.09.03 08:09
여순 사건 김지회의 최후 



수더분한 인상의 어린 여자가 높은 계급의 국군 장교들과 같이

같이 있는 사진이다.


옆의 정모를 쓴 장교는 세브란스 의전을 나오고 만주군에서

군의관이 되었던 원 용덕 장군 이다.


해방 후 한국군으로 넘어 오면서 자기 주특기가 아닌
정규 군 쪽으로
돌아서 이 사진을 찍을 때는 호남 지구 토벌대의
사령관이었다.


왼쪽의 방풍 고글을 쓴 사람은 함 준호 대령이다.

6·25전쟁 발발과 동시 서울 북방 전선에서 적 전차포 사격에
전사했던 용맹한
장교다.


사진 속의 군복을 입은 여자는 보통의 여자가 아니다.

여순 반란 사건의 수괴 김 지회의 처 조 경순이다.


갓 20살의 제주도 비바리로서 전직 간호사였다.

그 녀가 일했던 광주의 도립 병원에 입원했었던 육군 중위
김지회와
사랑에 빠져 그의 처가 되었고 여순 반란 사건에
휘말려 들어간
비운의 여인이다.

여순 사건을 일으킨 14연대는 광주에 주둔했었던
4연대에서 갈라져 나온 부대라서 김 지회가 광주 도립 병원에
입원했었고  조 경순이 김 지회와 만나게 된 운명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녀가 남로당 군사 총책 이 재복의 레포로
김 지회 포섭의 임무를 띄고 그에게 접근했다는 설이 있는데
그 녀의 친지와 동료들은 이를 강력 부인한다.]


지리산에서 김지회와 빨치산 활동을 할 시기 항상 빨간 스웨터를

입고 다녀 언론에서 '빨간 스웨터의 공비 여두목'이라는 엽기적인

칭호를 받기도 했다.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고 했다.

분명히 한 지아비의 아낙으로 평범하게 살아 갈 수도 있었을
간호사가
하필이면 국군 역사에서 오점을 찍은 군 반란 주모자

김지회와 인연을 맺어 그를 따라 빨치산이 된 것이다.


그 녀는 국군의 기습에 남편과 헤어져 산간을
헤매다가 체포 되었다.


1948년 10월19일 밤.

제주도 반군 토벌을 위해 여수에서 승선을 준비하던

14연대 소속 지 창수 상사 지휘하는 좌익 병사 40여명들이
간부들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켰다.


감언이설과 선동으로 부대 장악 뒤 신분을 노출한 김지회[
중위 -육사 3기]가 반란군의
총 지휘자가 되고 2개 대대의
병력을 몰고 여수 시내로 쏟아져 나가 지
방 좌익분자 600명과
함께 경찰관 가족과 양민들 400여명을 학살했다.


이들 반도들의 일부가 다음날 아침 09:30 기차를 탈취하여

순천으로 북상했다.

미리 연락이 있었던 순천 주둔 홍 순석 중위
[육사 3기 - 김지회와 동기]가
반란에 동참하여 이곳 순천에서도
경찰 400명을 포함한
500여명을 살해하는 무참한 학살이 이어졌다.


정부는 즉시 토벌군을 조직해서 이들을 제압하며 반란 9일 만에

여수를 해방시켰다.

반란군들은 지리산으로 도주하여 지리산 토착 공비들과
합류하여
기세를 올렸다.

그 기세는 얼마 가지 못했다.

11월 8일 구례에서 백 인엽 중령이 지휘하는 9연대를
야간 기습을 했다가
대패를 하고 그 세력이 급속히 약화 되었다.


이 전투 중에 김지회의 처 조 경순이 도주하면서 잃어버린
핸드백이 발견되었다.

패주한 김 지회 부대는 지리산에 잠적하여 약탈 행각을
계속하며
겨울을 났다.


봄이 되자 군은 토벌작전을 본격적으로 전개했다.

1949년 3월1일 지리산 지구 전투 사령부가 설치되고 사령관에

정일권 준장이 임명되었다.


김지회 홍순석 일당은 화개장터에서 토벌군의 군의 9연대 3대대를

기습해서 토벌대에게 타격을 주기도 했으나 3월 11일부터 시작된

대 토벌 작전으로 반란군에 대한 포위망이 좁혀가자 이들 주력
500명은 지리산을 빠져나가 일로 북상하여

덕유산으로 이동 하였다.


이 때부터 이 작전지역을 담당했던 한 웅진 대위의 3연대
3대대가
토벌의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3 대대장 한 웅진 대위. 육군 소장으로 예편,
박 정희 장군과 친하게 지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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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순석은 별도의 부대로서 거창쪽으로 이동해서 위천, 북상,

지서들을 습격해서 국군 토벌대의 주력을 분산시키는 작전을
쓰면서
덕유산으로 들어갔다.

공비들은 산악을 타면서 하루 56킬로 이상을 기동하는
도피 기술을 발휘해서 토벌 군에게 좀체 꼬리를
잡히지 않았는데 이 위천 지서 습격으로 행방이 들어났다.

한 웅진 대대는 수색의 방향을 덕유산으로 바꾸어
토벌의 압력을 가중했다.

3월 28일부터 덕유산에 집중된 국군이 포위망이 좁혀들자

이들은 일부 부대로서 거창을 습격하는 양동 작전을 쓰면서 다시
지리산으로 복귀하다가 4월4일 지리산 북쪽 괘관산[1251 미터]
북쪽 천전동에서  한 웅진 대대에게
포착되었다.

적 병력은 약 100여명으로 추측되었다.
대대는 박격포 화력을 반란군에게 가해서
큰 타격을 주고 여러곳으로 분산 도주하게 하였다.

이 계관산 전투가 김지회 홍 순석 부대의 운명을
결정 짓는 결전장이 되었다.


이후 김 지회 홍 순석 부대는 작은 소부대로 분산되어 대부대로서의
전투력을 상실한 상태로 도피를 계속하였다.


콩가루같이 흩어져 지리산으로 도주하던 김지회 홍순석의 지휘부는
지리산 뱀사골 입구에서 정보망의 거미줄을 친 국군에게 다시
걸려들었다.


 

 

작전개요도- 하단에 김지회가 죽고 조경순이 체포된
반선리와 달궁 부락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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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웅진 대위가 지휘하던 3연대 3대대 정보과 선임 하사관

김 갑순 상사는
4월 8일 과원 두 명을 대동하고 산내면 반선리에
들어가 이 마을 주막
여주인에게 물었다.
" 여기 반란군이 온 일은 없었습니까?"
여주인은 미남인 김갑순 상사에게 호감을 보이며 대답했다.
" 가끔 와요."

김 상사는 화장품을 건네주고,

“그들이 오면 요구하면 밥과 술을

  다 제공해주고 가능하면 재우십시오. 
  그들이 잠이 들면 입석리 3대대 본부로 
알려 주기 바랍니다.
  나중에 후사하겠습니다.”라고 부탁했다.


줄기차게 김지회 일당을 추적하던 3대대는
반선리에서 6킬로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동해서 야영 중이었다.


반선리는 20여 호의 민가가 있는 작은 부락이었다.

김 갑순 상사의 부탁에 주모는 새겨들었던 모양이다.


다음날 4월 9일 새벽, 00:30에 대대 본부에 반선리 부락 청년

단장이 달려와 주막에 공비 30여명이 나타나 술과 밥을 먹고

잠들어 있다고 신고했다.


대대는 즉시 출동 가능한 대대 본부 요원 60명을 트럭과 쓰리쿼터
2 대에
분승시키고 달려갔다.


주막에서 주린 배에 밥과 술을 마시고 잠들었던 김 지회 일당은

트럭의 엔진 소리를 듣고서야 깨어나  허둥지둥 도주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의 반응은 너무 늦은 것이었다.

트럭의 토벌군은  달려오면서  도주를 시도하는
이들에게  맹렬한 사격을 가했다.

더구나 달빛까지 훤해서 공비 일당은 멀리 벗어나지 못하고
여기저기에 비명을 지르고 자빠져 나갔다.


이 반선리 전투에서 홍 순석과 정치부장, 후방 부장등 김 지회 부대

수뇌부중 17명이 죽고 문화부장을 위시해서 7명이 생포되었다.


순천에서 반란을 주도했던 홍 순석은 농구화에 토끼 가죽으로
만든 조끼를
입고 있었으며 홍 순석 이름이 새겨진 도장을 가지고
있었기에 신분을
쉽게 확인 할 수 있었다.


생포된 자들은 김 지회와 그의 처 조 경순이 자신들과 같이
기습현장에 있었다고 했으나
두 부부의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3대대는 일대에 병력을 투입하여 며칠간 김 지회 부부를 계속
수색했지만
부부의 행적은 묘연하였다.


그러던중 4월 13일 반선리에서 5킬로 남서쪽으로 떨어져
지리산에 
더 가까운 덕동리 달궁 부락에서 여자 한 명이 낀 수명의

공비 일당이 나타났다는 정보가 입수되었다.


김갑순 상사는 2 명의 과원을 데리고 그 마을로 들어가서
잠복했다가
일당을 사로잡았다.


소문대로 빨간 스웨터를 입고 있은 여자는
김 지회의 처 조 경순이었다.


김 상사가 조경순을 심문했지만 조 경순도 반선리에서 기습을
받은 뒤
김 지회와 헤어져 그를 찾아 다니는 중이라고 했다.


김상사는 이 자백에 김지회가 부상을 입고 도주 하다가
반선리 인근에서
죽었을 것이라는 추리가 들었다.


반선리 전적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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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순 상사는 주민들에게 근처에서 까마귀가 몰려

다니는 곳이 있는지를 탐문 수사했다.

주민들은 인근 연장리 골짜기에서 까마귀 떼가 몰린다고
귀뜸해주었다.

이에 부근을 수색했던바 반선리 주막에서 600미터 떨어진
후미진 곳에서
까마귀에게 심하게 훼손된 시체 1구를 찾아냈다.


너무 훼손이 심해서 신원 확인도 불가능했다.

이 시체를 조 경순에게 보여주니 조 경순만이 그를 알아보고
울음을 터뜨렸다.


김 지회의 등에는 화개장터 전투에서 입은 부상의 상처가
있었는데
이를 조 경순만이 알아보았던 것이다..


김 지회는 반선리 기습에서 총상을 입고 사력을 다해
여기까지
도주 해 와서 죽었다.


이렇게 해서 김 지회 홍 순석 두 육사 동기생은 야망을 품고

내지른 반란의 불장난을 6 개월 만에 허망하게 끝내야 했다.


3대대는 전원 일계급 특진의 영광을 입었다.

공이 큰 김 갑순 상사는 특별 훈장 수여와 함께 상금 백만원이
지급되었다.



여담이지만 남은 공비 잔당들은 자기들의 지도자를 신고해서

죽게 만든
반선리 주막 여주인을 그냥 두지 않았다.


주막 여주인의 최후는 이 태 지음 ‘남부군’에도 소개되어있다.

여주인은 무참히 살해당하고 주막집은 불태워진 뒤 파괴 되었다.


김지회와 홍순석에 대한 사진은커녕 그들의 간단한 약력 정도도

구할 수가 없다.

국군 역사의 치욕이라는 여순반란 사건의 주모자인 두 사람의

관련 자료는 모두 폐기 된 것 같다.


단지 주모자 김 지회가 함흥고보 졸업생으로 북한 강동 정치학원
[ 대남 침투 훈련기관] 출신이고 시조 시인 이 은상씨의 추천을 받고
육군 사관학교에 입교했다는 자료만 발견할 수가 있었다. 

칼 맑스가 놓아준 무지개 다리를 타고 오르는 모택동이나
김 일성을 보고
무산자 혁명이라는 무지개 자락을 잡으려 하다가
무참히 까마귀의
밥이 되고 거의 잊혀진 김 지회나 홍 순석과는
그들의 생전에는 꿈꾸기도 싫은 최후였을 것이다.


여순 반란 사건은 대폭적인 숙군[肅軍]의 도화선에 불을 질렀다.

일본군 헌병대 오장 [하사]출신 김창룡의 공산당 소탕은

무자비하고 철저했다.

여순 사건의 발발은 아직도 국군 내부에 발
붙이고 있던 좌익들을 소탕해버리는 계기가 되었다.

숙군의 개시와 함께 남한 공산 세력의 뿌리를 뽑으려는
정부의 노력은 계속되어 김 지회 시체가 발견되고
며칠 뒤인 49년 4월 18일 공비 토벌을 위한
지리산 지구 전투 사령부가 설치되고 정 일권 소장아 부임했다.

토벌은  다음 해 1950년 1월 15일 지리산 지구가
해체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계속된 토벌에  남부의 공산 세력은 거의  소멸되었다고 판단한
정부는  1950년 2월 5일 호남 지역의 계엄을 해제하였다.
여순 사건이 발발한지 실로 1년 3개월만이었다.

해방후 이데오르기의 혼란 속에서 잘못된 꿈을 꾸었던 많은

이 땅의 젊은이들이 그리고 체 게바라와 같은 이상가들이 이렇게

자신도 파멸하고 가족도 파멸하고 죄 없는 주변사람들에게

피해만 주고 비명 속에 죽어갔다.


글 앞 머리에 나온 조 경순의 최후는 ?

그녀는 1949년 사형을 선고 받고 9월에 처형되었다.

아직 소녀티도 못 벗은 비바리, 그 녀의 죽음은 남편 김 지회의

죽음과 달리 연민의 정을 금할 수가 없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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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야나 2010.09.14 19: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순반란사건은 일면 대한민국을 구원한 사건이기도 하지요....여순반란사건으로 인해 숙군을 통하여 군내부의 좌익을 모두 축출할수 있었읍니다.....만약 군내부 숙군이 없이 6 25가 터졌다면 박헌영의 말대로 남한 군내부에서 봉기가 일어났을거고 유엔군참전전에 대한민국은 끝장났을지도 모릅니다....역사란 참 아이러니하지요?

  2. chaffee2080 2010.09.18 09: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 울프독이 자기 블로그에 글쓰기를 막아놨네요. 그럼 뭐 이제 여기서나 건건히 평을 달아드리리다. 사람을 잘못본 실수는 인정하지 않고 글쓰기 막기와 블로그 차단이라. 후후 어디 봅시다. 옹졸하고 비루하네요.... 까마귀같이.

  3. 이기자 2010.12.31 17: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제 제2의 김창룡이 나서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사회 온갖 곳에; 숨어있는 프락치들, 아니 일부 놈들은 공공연히 대놓고 씨부려대고 있지. 정치권, 가짜 성직자놈들...

  4. homeownerinsurance and pittbull ownership 2012.05.26 12: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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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calculator 2012.06.07 11: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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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Chat Random 2013.04.03 0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북한군은 아군의 핵심방어선인 캔사스선과 후방

  8. rc helicopters 2013.04.25 1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으로 전하던 신념은 후세에도 전해지리라 믿습니다. 비극적 전쟁에서 우리와 함께 싸워준 미군은 그 당시에도 저희에게 힘을 주었다는게

  9. chatrandom 2013.04.27 05: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순 사건을 일으킨 14연대는 광주에 주둔했었던
    4연대에서 갈라져 나온 부대라서 김 지회가 광주 도립 병원에
    입원했었고 조 경순이 김 지회와 만나게 된 운명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10. Bookmark Access 2013.05.11 06: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군을 통하여 군내부의 좌익을 모두 축출할수 있었읍니다.....만약 군내부 숙군이 없이 6 25가 터졌다면 박헌영의 말대로 남한 군내부에서 봉기가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