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최대의 패배를 감수한 중공군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9.06 08:36

  미 제3사단이 운두령 일대를 차단하자 리지웨이 유엔군사령관은 돌출 고립된 중공군을 소탕하라고 밴 플리트 제8군사령관에게 지시하였고 이 명령은 예하 군단장에게 즉시 하달되었습니다. 당시 명령을 받은 제10군단장 알몬드는 미 해병 제1사단을 홍천 북방의 한계(철정)로부터 양구 방향으로, 미 제2사단은 한계-인제 방향으로 공격하여 중공군의 퇴로를 차단하도록 하였고, 운두령을 점령했던 미 제3사단으로 하여금 포위망에 갇힌 중공군을 격멸하도록 조치했습니다. 하지만 국군 제3군단의 몰락으로 동부전선을 모두 책임지게 된 미 제10군단의 작전 반경이 너무 컸고 더불어 험악한 지형으로 말미암아 진출이 상대적으로 지지부진하였습니다.


[험악한 지형으로 미 제10군단의 반격은 지지부진하였습니다.]


  반면 5월 25일경 서부전선에서는 임진강까지, 중부전선에서는 춘천까지 전선을 걷어 올리고 있었습니다. 제10군단의 이런 부진에 대해 밴 플리트는 군단장을 독촉하였고 고심하던 알몬드는 미 제2사단이 한계-인제를 신속히 돌파하여야 전선을 밀어붙일 수 있을 것으로 결론내리고 공격에 박차를 가하도록 하명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미 제2사단은 선두에 나설 선봉부대로 사단에 임시 증원된 제187공수연대 2대대에 2개 전차 중대를 배속하여 게르하트(Gerhardt) 특수임무부대를 편성하였습니다. 하지만 불가피한 사전으로 부대편성이 지연되자 전차 1개 소대(4대)와 수색분대(인원11명, 지프 3대), 공병 1개 소대(트럭 2대)로 부대를 축소 편성한 후 이를 제72전차대대의 부대대장인 뉴먼(Charles A. Newman)소령으로 하여금 지휘하도록 조치한 후 급히 출발시켰습니다.


  그런데 뉴먼의 부대는 중공군이 철수하며 설치하였을지도 모를 대전차 장애물을 공병이 탐지한 후 전진하였고 있었기 때문에 진격이 상당히 지체하였는데, 공교롭게도 이런 진격 모습을 헬기에서 알몬드가 보게 되었습니다. 이를 목도한 알몬드는 현장에 즉시 착륙하여“지금은 지뢰 따위를 걱정할 때가 아니다. 귀관은 지뢰에 부딪칠 때까지 최고속도로 진격하라”고 단호한 명령을 하달하였습니다. 군단장의 명령을 받은 뉴먼은 모든 것을 운에 맞기고 적이 혼비백산할 정도의 신속한 속도로 부대를 쾌속 진격시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알몬드의 판단대로 불과 3시간 만에 적진을 무려 30킬로미터나 돌파하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뉴먼의 부대는 쾌속 진격하였고 그것은 옳은 선택이었습니다.]


  뉴먼의 부대가 적진을 뚫고 신속한 속도로 진출하자, 철수 중에 있던 중공군은 지뢰를 매설할 틈도 없을 만큼 혼비백산하여 도주하기 바빴던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항복한 포로들을 너무 많아 불과 4명의 공병대원이 80명의 포로를 감시하는 위험한 순간도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뉴먼부대에 후속하여 진출한 미 제10군단에 의해 속사리까지 진출하였던 중공군의 주력 2개 군의 후방은 완전히 차단되면서 일거에 궤멸되었으며, 단 1개 군만이 뉴먼 부대가 소양강 도하지점을 차단하기 전에 겨우 포위망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완벽한 승리였습니다.


  전사에 유엔군의 제3차 반격작전으로 기록된 이번 작전으로 유엔군이 지난 3월경에 휴전선으로 구상하던 캔사스선(Kansas Line 임진강-연천-화천호-양양)을 다시 확보하는 것은 물론 오히려 이를 10~20킬로미터 넘어선 북방인 와이오밍선(Wyoming Line)까지 진출하였습니다. 이것은 휴전을 희망하던 유엔군이 내심 북으로 최대한 올라갈 수 있는 정책적 목표선이었고 더 이상 올라갈 생각은 없었습니다. 따라서 정치적, 군사적으로 목표를 이룬 유엔군은 여유를 가지고 중공군의 반응을 기다리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중공군의 최대의 패배를 기록하였습니다.]


  반면 펑떠화이가 아군의 허점을 노려 야심만만하게 개시하였던 중공군 제6차 공세는 이렇게 참담한 실패로 막을 내렸습니다. 초기에는 그의 의도대로 순조롭게 목표가 달성되는 듯 했으나 속사리까지 진출하였던 부대들이 공격 기세를 상실한 상태에서 유엔군에게 후방이 차단되자 오히려 함정에 빠진 격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펑은 아군의 방어선에서 국군이 취약하다는 나름대로의 정확한 분석을 하였지만 스스로의 약점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중공군의 능력을 벗어난 과도한 전략을 구사하였던 것이고 그 결과 중공군은 이번 공세에서 6·25전쟁 참전이후 가장 처참한 패배를 경험하였습니다. 펑은 지피(知彼)는 하였지만 지기(知己)를 몰랐습니다.

Posted by LG Innotek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health insurance for your home 2012.05.25 1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은 좋은 블로그 사이트를 배포 있어요. 나는 감사 내가 사람을 지적으로 연결 필요하다고 반드시 여기에 다음과 같은 좋은 게시물을 확산. 이 특정 하나는 확실히 블로그 게시물을 교육하고 있습니다. 블로그의 결과로 사람에게 소중한 의견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2. home insurance costs 2012.05.25 12: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은 환상적인 웹 사이트를 배포했을 수도 있습니다. 나는 심각하게 표현에 대해서는 사실 우리와 함께이 특정 즐거운 게시물을 확산 감사 원한다. 하나는 영리 기사가 될 수 있는지 확인하십시오. 블로그가 현재 유용하게 풍경을 공유에 관하여 감사합니다.

  3. home insurance mail estimates 2012.05.25 12: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누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여가 활동이 완전히 신선한 완전히 준비하는 데 도움이됩니다 그 또한 고상한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작은 친구의 천사가 성취해야하는 경향이있다. 그들은 확률의 수를 고려하는 위협하지 않습니다. 한랭 단계 내부 웹사이트 웹사이트 웹사이트 방문자 차폐 특성은 그들이 아늑한 유지할 수 있습니다.

  4. 만슈타인 2012.08.15 15: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이오밍선과 캔사스선 돌파 사이에 그런 작전 사연이 있었군요. 항상 돌파전이나 포위전 국면에서 소수의 부대가 결정적 돌파나 포위를 하는 게 역사에 종종 있었는데 여기서도 그랬군요.

  5. 신창균 2012.08.15 16: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충성!
    1107공병단 130환경대대 상병 신창균입니다.

    77편 최대의 패배를 감수한 중공군 편을 잘봤습니다.

    동부전선을 모두 책임지게된 미 제 10군단의 너무나 큰 작전반경, 험악한 진형이라는 핸디캡을 이겨내고 전선을 밀어붙인 제 10군단이 활약이 눈부셨습니다. 특히 알몬드가 “지금은 지뢰 따위를 걱정할 때가 아니다. 귀관은 지뢰에 부딪칠 때까지 최고속도로 진격하라"라고 단호한 명령을 내렸던 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의 결정은 옳았고, 그에 따라 불필요한 희생을 줄이므로 많은 목숨을 구했고, 적군을 와해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지도자의 올바른 판단력과 단호한 결정력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펑더화이의 야심만만하게 개시하였던 중공군 제 6차공세가 참담한 실패로 무너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피는 알앗지만 지기를 몰랐던 펑더화이의 전쟁전술에서 지기의 중요성을 여실히 깨달았습니다. 지기를 몰랐던 대가는 6.25 참전이후 가장 처참한 패배였던 것입니다.


    항상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충성!

    tlsckdrbs123@hanmail.net

  6. Chatrandom.com 2013.04.03 16: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제 방향으로 공격하여 중공군의 퇴로를 차단하도록 하였고, 운두령을 점령했던 미 제3사단으로 하여금 포위망에 갇힌 중공군을

  7. chatrandom 2013.04.27 05: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 제3사단이 운두령 일대를 차단하자 리지웨이 유엔군사령관은 돌출 고립된 중공군을 소탕하라고 밴 플리트 제8군사령관에게 지시하였고 이 명령은 예하 군단장에게 즉시 하달되었습니다.

  8. Social Bookmark 2013.05.13 00: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지만 국군 제3군단의 몰락으로 동부전선을 모두 책임지게 된 미 제10군단의 작전 반경이 너무 컸고 더불어 험악한 지형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