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불승불패(不勝不敗)의 전략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9.15 07:53

 

  6·25전쟁 발발이전 이전부터 한국정부의 통일정책은 변함이 없었고 그것은 국민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따라서 1.4후퇴 이후 간간히 터져 나오는 휴전에 대해 반대하는  소리는 점점 높아져 갔습니다. 하지만 1951년 전반기부터 미 행정부 내의 대(對) 한반도 정책은“휴전장치 하에 전쟁을 종결한다”는 것으로 바뀌어져 있었습니다. 이것은 전쟁수행 정책결정을 두고 한-미간의 갈등이 표출되는 계기가 되었고 그 정점이 4월 11일 행정부의 휴전정책에 반대해온 맥아더 원수의 해임이었습니다.


[통일에 대한 열망이 컸기에 정부와 국민들은 휴전을 반대하였습니다.]


  맥아더와 달리 미 정부 당국의 정책을 충실히 이행하였던 신임 유엔군사령관 리지웨이 대장은 미 제8군사령관으로 부임한 밴플리트 중장에게 캔사스선과 와이오밍선을 넘어가는 모든 부대의 작전은 유엔군 사령관의 승인 하에 실시하도록 조치하면서 모든 군사작전의 목적은 협상으로 휴전이 되도록 이끄는 것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만약이지만 1951년 후반기가 되면서부터 유엔군이 한반도에 통일한국을 건설할 의지가 있었다면 패주하는 적을 추격하여 압록강까지 진격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 6차 공세를 끝으로 중공군의 전력은 더 이상 회복하기 힘들만큼 약화된 상태였습니다. 특히 유엔군의 해-공군, 기갑전력, 포병전력은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벽이었습니다. 그러나 유엔군은 한국 국민과 정부의 간절한 북진의지를 애써 무시하면서 결코 캔사스선을 넘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감을 회복한 유엔군이 전세를 1950년 10월 수준으로 다시 돌려 버릴 수 있는 결정적인 군사적 호기를 버리면서까지 북진에 소극적인 일차적인 이유는 또다시 북진을 감행할 경우 필연적으로 발생할 막대한 희생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도 유엔군의 입장에서 볼 때 설령 압록강까지 진격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전쟁의 종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중국과 교전 상태였으므로 압록강은 종전의 상징이 될 수 없었고 오히려 강을 사이에 놓고 중공군과 장기전에 휘말려들 가능성이 컸습니다. 만일 완승을 위해 만주로 진출하고 나아가 북경까지 진격해도 중국은 거대한 영토를 배경으로 항전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그것은 이미 지난 중일전쟁을 되돌아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기도 하였습니다.


[중일전쟁 당시에도 일본은 중국을 압도하였지만 완전점령에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서방세계 입장에서 중공군은 두 번째 적에 불과하며 진짜 적은 소련이라는 명백한 사실이었습니다. 따라서 전쟁이 확대될 경우 소련의 직접 개입 가능성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이러한 확전은 6·25전쟁에 미군을 비롯한 서방이 유엔의 이름을 빌려 개입한 최초의 목적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던 것이었습니다. 비록 북한의 도발로 전쟁이 개시되었지만 이번 기회에 통일을 원하는 한국국민과 한국정부의 바람과 달리 이미 6·25전쟁은 우리의 의사대로 진행되기에는 너무 져버린 전쟁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어느덧 이 전쟁에서 완승을 바란다는 것은 전쟁의 성격상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전쟁은 KO승이 아닌 판정승으로 명예로운 휴전을 이끌어 내야하고 이를 위해 적이 휴전회담에 응해 올 수 있도록 적당한 수준의 압력만 가하면 될 것으로 미국은 판단하였습니다. 이것은 현 접촉선을 휴전선으로 가정하였을 때, 차후 방어에 용이한 감제고지를 확보하여 진지를 구축함과 동시에 적이 재차 공세를 감행해 오더라도 더 이상 후퇴함 없이 적을 물리칠 능력을 구비해야 하는 방향으로 군사전략이 대폭 바뀌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미국의 방침은 이기지도 않고 지지도 않겠다는 불승불패(不勝不敗)였습니다.


  한편 중공군도 1951년 5월, 제6차 공세가 대 참패로 끝나버리면서 현재와 같은 재래식 장비와 군수지원 체제하에서는 결코 유엔군에게 치명타를 가져다 줄 수 없다는 사실을 뚜렷이 인식하고 전략을 바꾸었습니다. 중국도 한반도의 전쟁에 무한정 자신들의 피를 가져다 바치기에 곤란한 상황이 이르렀을 만큼 지난 제4차부터 제6차 공세에서 당한 희생이 너무 컸습니다. 따라서 제6차 공세 이후 중공군의 작전은 대규모 공세를 지양하고, 자신들이 장기인 야간전투, 근접전투 등을 통해 현상을 유지하는 소규모 작전으로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중공군도 이런 방식으로 미군을 이길 수 없었고 결국 휴전을 생각하였습니다]


  이제 중공군이 택할 수 있는 방책 또한 유엔군이 원하고 것처럼 적당한 선에서 체면의 손상을 받지 않고 전쟁을 중지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휴전회담에 응하는 것이었고 묘하게도 양자의 이해가 맞아 들어갔습니다. 결국 전쟁의 가장 중요한 세력인 미국과 중국의 이해가 합치됨으로써 휴전은 가시화되면서 협상이라는 정치적인 전쟁으로 6·25전쟁의 성격이 확연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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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도승우 2010.09.22 05: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cal.30으로도 관통가능하다던 94식 장갑차따위를 놀란듯 보는 중국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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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성!
    1107 공병단 130환경대대 상병 신창균입니다.

    항상 6.25 전쟁때 통일한국이 생겼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미국과 중공군 그리고 배후의 소련군까지 복잡하게 얽힌 냉전 상황에서 어쩌면 휴전이 최선의 방안이었던걸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찌됐든,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된 나라 한국이 참 아쉽고 아쉬웠습니다.
    통일이 된다면 세계에서 손꼽히는 강국이 될 한반도의 힘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 생각으로는 북한은 오래가지 못하고 한국에게 흡수될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김정일 사후 , 김정은이 북한 3대 공식 지도자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이미 김정남과 북한판 왕자의 난에서 승리를 했지만, 이것은 완전한 승리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기본적으로, 김정은은 개혁 개방을 강조하지 않고 선군정치만 강조하는 정책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반복하면 무엇이든 믿게 할 수 있다"는 히틀러의 선전상 요세프 괴벨스의 이론을 신봉한다는 북한 당국은 기아와 무너져 내리는 북한의 경제를 선군정치라는 환상으로 진실을 덮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김정남은 중국의 덩샤오핑식 개혁개방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소련이 무너지고 고르바초프도 개혁,개방을 주장하여 러시아 경제를 살렸고, 중국또한 덩샤오핑식 개혁개방을 추진하여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G2국가의 경제적 위상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김정남은 북한에서 광명성총회사라는 자본주의식 대기업 회사를 세웠습니다. 이것은 김정일의 폐쇄정치를 부정한 김정남의 왕자의 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김정은 직접지시하여 조사와 급습함으로써 김정남의 개혁에 대한 시도는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김정남은 북한 내부의 왕자의 난에서 패배했지만, 배후에 중국이 보호해주고 있습니다. 즉, 중국은 결국 북한 정권을 변화시켜 개혁, 개방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하나의 압력카드로 김정남을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김정남은 중국 당, 정, 군 재계 고위층 인사들의 자녀들의 그룹인 태자당이 직접 김정남을 비호하고 있습니다. 태자당은 중국의 최고파워 그룹으로 불리고 있는 그룹입니다.

    북한은 아직까지도 김정은 내부의 지도자 체제를 완벽히 굳혔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중국이 북한에 대한 압력카드로 김정남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북한의 상황을 이용해서 북한의 내부분열을 이끌어낼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항상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정남과 김정은 둘 다 상대함으로써 북한의 일관된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게 하는게 아니라 두 명의 지도자가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북한은 그 폐쇄된 경제구조와 혼란스러운 정치상황 등으로 언제든지 붕괴 될 수 있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6.25 전쟁 때 중공군, 미군, 소련 등 국제 정치상황에서 전쟁을 종결짓지 못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북한체제는 불완전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입니다. 이제는 조금이라도 빨리 통일한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좋은 글 읽고 있습니다.

    충성! 수고하십시오!

    tlsckdrbs123@hanmail.net

  14. true religion jeans outlet 2012.11.29 13: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록 6.25 전쟁 때 중공군, 미군, 소련 등 국제 정치상황에서 전쟁을 종결짓지 못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북한체제는 불완전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입니다. 이제는 조금이라도 빨리 통일한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5. 박성천 2012.12.17 21: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북한군의 전력에 대해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나 또한 얼마 전까지 그렇게 생각했다.
    하나 북한군에 당하고, 중공군에 당한 국군과 유엔군
    지금은 다를까? 아니다
    지금도 별 차이 없다.
    우리는 흔히 6.25를 무승부로 보는데 착각이다.
    6.25전 개성은 남한의 땅이었다.
    그곳에는 넓은 평야도 있고 그유명한 개성인삼도 있고
    하지만 지금은 6.25이후 북한땅이다
    맞다. 판정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