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뜨거운 감자, 개성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9.30 08:32

  결렬 2개월만인 1951년 10월 25일, 판문점에 급조된 천막에서 휴전회담은 재개되어 두 번째 의제인 군사분계선 설정에 대해 다시 이야기가 오고갔습니다. 어차피 의제 제1항은 회담을 위한 의제선정이었기 때문에 군사분계선 설정이 실질적인 협상의 시작인 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전에 있었던 회의를 통해서 상대방의 주장을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두 달간의 정회기간 동안 쌍방은 각각의 양보 안(案)을 내심 마련하여 두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양측 모두는 어차피 자신들의 주장대로만 군사분계선이 획정되기는 힘들 것으로 충분히 알고 있었고 당연히 휴전 성사를 위해 차선책을 준비하였던 것이었습니다.


[휴전회담을 취재하는 양측 종군기자들의 모습]

 
  해-공군 전력의 절대적인 우세를 반영하여 현재의 접촉선보다 북쪽에 경계선이 설정되어야 한다는 유엔군 측의 주장은 물론 공산군 측의 38선 주장은 각각 철회되었고,‘현 접촉선을 기준으로 하여 군사분계선을 설정한다’는 것으로 사전에 양해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고도(古都) 개성이 쌍방 모두에게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는 지역으로 대두되었습니다. 고려왕조의 500년 도읍지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개성이 우리역사에서 차지하는 상징성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더구나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개성은 전쟁 이전부터 38선 남쪽에 속해 있었으며 당시 우리나라의 최고 산업이었던 인삼의 집산지라는 점도 이곳을 포기하기 힘들도록 만들었습니다. 더불어 이곳을 차지하면 군사적으로 서울의 방어종심(防禦縱深)을 보다 깊게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단지 개성이라는 도시 하나만을 놓고 보면, 그 지리적 위치가 남으로 임진강을 배후에 두고 북으로 송악산을 비롯한 거대 고지군이 도시를 감싸고 있기 때문에 막상 도시를 차지를 하여도 방어는 상당히 불리한 형국이었습니다. 그래서 충분히 개성을 탈환할 수 있었지만 이후 대치상황을 고려하여 이곳까지의 진격을 머뭇거리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반대로 해석한다면 공산군 측에게도 반드시 차지하고 싶은 지역인 개성은 전선이 서서히 고착화 되어가는 시점에서 계속 눌러앉아 차지하기 쉬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특히 휴전이 이루어졌을 때 북한주민들에게“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았다”고 선전하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개성만큼은 점령 하에 두려고 하였습니다.


[1930년대 개성의 모습, 도시 뒤의 북쪽에 거대한 고지가 도시를 감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동안의 실랑이 끝에 유엔군 측은 현재의 접촉선을 기준으로 군사분계선을 설정하되 개성을 남쪽에 포함시키는 대신 중부의 금성과 동부의 고성지역을 약간 후퇴시키는 안을 북측에 제시하였습니다. 이에 북에서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오히려 서부의 옹진과 연안반도를 양보하는 대신에 개성은 물론 중동부의 요충지인 피의 능선 및 펀치볼 일대의 지역과 동해안의 돌출부를 공산군 측에 반환하라는 역 제의를 하였습니다. 이처럼 개성은 휴전이 되었을 때 양측 모두가 반드시 차지하고 싶은 지역이었습니다.


  고심을 거듭한 유엔군의 지휘부는 개성을 양보하기로 결심했는데, 그 이유는 개성을 고집하다가 회담 자체가 결렬될 수 있을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더불어 너무 명분만 강조하여 방어에 불리한 개성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 반대급부로 더 많은 것을 북한 측에 양보하여야 한다는 냉정한 계산도 깔려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결정은 당연히 한국정부와 국민들의 엄청난 반대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처럼 우여곡절을 거듭한 군사분계선의 설치안은 “현재의 접촉선을 변경함 없이 군사분계선으로 한다”라는 내용에 합의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다시 새로운 문제가 생겼습니다.


  현재의 접촉선을 언제 시점으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공산군 측은 협상 당시의 접촉선을, 반면 유엔군 측은 휴전을 조인하는 바로 그 시점의 접촉선을 주장하였습니다. 양측이 그렇게 주장한 이유는 역시 개성이었습니다. 공산군 측은 유엔군이 편리한 시기에 군사력을 이용하여 개성을 점령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가지고 있었던 반면, 유엔군 측은 현재의 접촉선을 군사분계선으로 할 경우 공산군이 지연전술을 사용하여 회담을 지연시키더라도 군사적 압력수단을 사용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리지웨이 유엔군 사령관도“군사력의 사용을 묶어 둔다면, 결코 공산군과 협상이 이루어 질 수 없다”라는 사실을 확고하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군사분계선을 지도위에 표시하는 모습]


  하지만 하루 빨리 전쟁을 끝내고 싶었던 미국 정부는 공산군 측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채근하였고 그 결과 유엔군이 개성을 점령하지 않겠다는 언질을 주어 회담의 성사를 유도하였습니다. 그 결과 11월 23일 격론 끝에  군사분계선 문제는 일단 타결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곧바로 휴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포로문제 등 앞으로도 산적한 많은 문제들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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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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