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무적해병의 신화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10.05 08:13

  1951년 6월초, 중동부의 산악지역에서 천신만고 끝에 중공군의 제6차 공세를 저지한 국군과 유엔군은 캔사스선 확보를 더욱 공고히 하려 와이오밍선으로의 진출을 개시하였습니다. 지난 공세에서 참혹한 실패를 맛본 공산군은 필사적으로 축차적인 지연전을 실시하였으나 국군과 유엔군의 반격은 공산군의 예상보다 훨씬 강력하여 화천과 양구 일대에 커다란 돌파구를 만들어 버렸습니다. 당황한 펑떠화이는 계획을 수정하여 소극적 방어대신 국군과 유엔군을 역습하여 붕괴위기에 처한 전선을 신속히 안정시키도록 긴급 지시했습니다.


[바다가 아닌 산악지대에서 해병대의 신화가 써지게 되었습니다.]

 
  이때 돌파구 정면에 있는 북한군 제12사단이 펑의 지시로 병력과 장비를 우선 보충 받아, 광치령-대암산-도솔산-대우산을 연하는 산악능선에 배치되었고 이들에게 전선을 사수하도록 엄명이 떨어졌습니다. 북한군은 고지마다 교통호와 엄체호를 구축하고 진지 전방에 지뢰와 부비트랩을 설치해 난공불락의 방어태세를 구축했는데, 그중에서도 요충지는 양구군 동면 팔랑리와 만대리의 경계에 있는 해발 1,148미터의 고지였습니다.


  이곳은 남쪽의 해안분지(亥安盆地 이른바 펀치볼)를 감제할 수 있는 위치로 그 배후에는 중공군과 북한군의 보급 기지가 있는 군사 요충지였습니다. 마치 서울을 해안분지라고 한다면 이들이 점령한 지역은 북한산 같은 위치였는데, 이곳을 확보한자가 당연히 휴전회담에서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는 것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그 중심에 있던 봉우리의 이름이 도솔산인데 일부자료에는 두솔산으로도 표기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적막한 이곳에서 하나의 신화가 써집니다.


  당시 이곳으로 진격하던 부대는 미 제1해병사단이었고 가장 전방에 서있던 미 제5해병연대에게 도솔산 점령 임무가 부여되었습니다. 하지만 위치를 선점하고 있던 북한군 제12사단의 완강한 저항으로 미 제5해병연대는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러자 이를 대신하여 미 제1해병사단에 배속되어 예비로 후방에 빠져있던 국군 제1해병연대가 광치령-대암산-도솔산-대우산 축선을 담당하기로 하면서 국군 해병대가 역사의 전면에 서게 되었습니다.


[도솔산전투를 승리로 이끈 김대식 연대장, 이후 제3대 해병대사령관이 되었습니다.]


  김대식 대령이 이끄는 국군 제1해병연대는 6월 4일 공격을 개시하였으나 강력한 방어선에서 완강히 저항하는 북한군에게 막혀 6월 10일까지도 도솔산을 점령할 수 없었습니다. 김대식 연대장은 적이 예상치 못한 야간에 적을 기습하기로 결심하고 토마스(Gerald C. Thomas) 사단장에게 의견을 건의하였으나, 사단장은 경험부족을 이유로 이를 거절하였습니다. 하지만 연대장의 건의가 집요하리만큼 계속되자 사단장은 반신반의하면서 결국 국군 제1해병연대의 단독 야간작전을 승인하였습니다. 사실 당시까지만 해도 야간에는 공산군이, 주간에는 유엔군이 번갈아가면서 공격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행태였습니다.


  김대식 연대장의 판단은 적중하였습니다. 6월 11일 02시, 방심하고 있던 적을 화력과 조명의 지원도 없이 공격을 가하자, 그동안 철옹성 같았던 난공불락의 전진지가 불과 3시간 만에 돌파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1차 점령 목표였던 대암산을 신속히 확보하였고 이러한 전과에 고무된 토마스 사단장은 쉬지 않고 도솔산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하달하였습니다. 김대식 연대장은 대암산에서 도솔산에 이르는 통로가 매우 협소하기 때문에 1개 대대 단위로 단계별 작전을 계획하고, 6월 15일 아침 제2대대를 선봉으로 하여 3개 대대가 교대하면서 집요하게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아직까지 위치의 우위를 확보하고 있던 적은 완강히 저항하였지만 욱일승천하던 국군 제1해병연대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전의를 상실한 적은 6월 19일 도솔산을 버리고 도주함으로써 역사적인 전투가 막을 내렸습니다. 지금까지 공격에 실패한 미 제5해병연대를 대신하여 전면에 나선 국군 해병대는 도솔산전투에서 미록 123명이 전사하고, 4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지만 반면 북한군 3,000여명을 사살하고, 44명을 포로로 잡는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산술적인 성과보다 그보다 더 큰 의의는 요충지인 해안분지남측을 통제하여 추후 공세가 있을 경우 전술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직접 방문하여 해병대를 격려하는 이승만대통령]


  해병대의 5대전투 중 하나로 기록된 도솔산전투는 바다를 통해 적진에 상륙하는 위험한 작전을 고지에서 재현하였다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였는데, 이것은 이후 한국 해병대의 무한한 자부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국군 제1해병연대의 쾌거를 보고 받은 이승만 대통령은 해병대에게‘무적해병(無敵海兵)’이라는 휘호를 하사했는데 이것은 이후 해병을 상징하는 구호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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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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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olaris 2011.04.26 23: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가 70년대에 해병대에서 제일 나쁜것을 경험한 것은.....

    구타.폭력.착취.누명씌으는짓들..... 그리고 공과사를 구별못하고,,,,,

    군기란 명칭에 괴롭히는짓들,,,,,, 또 규정량 식사가 비정상이고 부식(반찬)꺼리도 타군보다 너무차이나고....

    비정상적인 군기로 핑계는 훈련이라고 말하는 상급자들,,,, 훈련기간 과업표라면 몰라도,,, 거짓말하는 군기론들,,,,

    애국심으로 해병대에 자원입대해서.... 해병대 이름으로 전사및 안전사고와 자살사망한 해병들은 애국자들였는데,,,,,,

    국방부 장관은 해병대에서 안전사고와 자살사망한 의문사를 명예회복시켜줘야한다,,,, 해병대 지휘체제가 잘못되어서..

    사망자와 자살자들,,,, 해병대가 책임지고 명예회복을 시켜줘야한다,,,,, 해병대는 애국심이 강한 젊은이들의 요람터,,,

  2. 2012.05.14 2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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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Marco Models 2013.10.06 19: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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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se mere her 2013.10.14 03: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곳을 확보한자가 당연히 휴전회담에서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는 것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그 중심에 있던 봉우리의 이름이 도솔산인데 일부자료에는 두솔산으로도 표기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적막한 이곳에서 하나의 신화가 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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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극적 방어대신 국군과 유엔군을 역습하여 붕괴위기에 처한 전선을 신속히 안정시키도록 긴급 지시했습니

  14. Golf Lake Vermilion Love Tips 2014.02.13 00: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치에 설 수 있는 것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습니

  15. The Getaway Show Blog 2014.03.31 15: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는 요충지인 해안분지남측을 통제하여 추후 공세가 있을 경우 전술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