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인도주의 작전

생생! 6·25/August의 군사세계 2010.10.14 08:03

  해상철수는 육지의 퇴로가 적에게 차단되었을 경우 사용하는 흔한 전술이지만 제해권이라는 한 가지 전제가 반드시 따라다닙니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제해권의 확보 없이 바다를 이용한 철수는 불가능하고 더불어 제공권까지 장악하였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입니다.  때문에 UN군의 참전과 더불어 제해권과 제공권을 즉시 확보한 아군은 6·25전쟁 중에 해상철수를 적절히 사용하였습니다.


[전쟁 중 바다와 하늘은 공산군 측에서 넘볼 수 없는 벽이었습니다. ]


  전사에 나타난 최초의 해상철수는 개전 초에 고립된 옹진반도에서 성공적으로 빠져나온 제17연대의 철수작전이고 이후 1950년 8월 17일 낙동강방어선의 장사동에서 후방이 고립된 제3사단이 성공적으로 해상 철수한 작전도 중요한 성공사례에 포함됩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6·25전쟁 중에 있었던 해상철수작전이라면 단연코 흥남철수작전을 들 수 있습니다.


[철수를 위해 LST에 전차를 탑재시키는 모습]


  함경도일대로 깊숙이 진군하다가 중공군의 기습참전으로 배후인 원산이 조기에 점령되면서 고립된 10만 5천의 미 제10군단(국군 제1군단 포함)은 1950년 12월 12일~24일 사이에 압도적인 제공권과 제해권을 발판으로 흥남항 일대에 거대한 탄막을 형성시켜 중공군의 남진을 막는 사이에 동해바다를 거쳐 안전하게 후방으로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흥남철수의 대미를 장식한 부두폭파 모습과 마지막 철수선 USS Begor]


  심각한 타격을 입은 미 해병 제1사단 같은 경우도 있었지만 미 제10군단의 대부분 병력들과 더불어 2만여 대의 각종차량과 장비 그리고 3만 5천여 톤의 각종 군수물자까지 이동 전개시키는데 성공하였고 이렇게 보존된 자원은 이후 재 반격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흥남철수작전의 진정한 백미는 공산치하에 남겨질 뻔한 10만여 북한 주민들과 함께 철수한 점입니다.


[역사적으로 유래가 없는 10만의 민간인이 함께 철수하였습니다.]


  빈곳이라면 어디건 상관없이 배가 침몰하지 않을 수준까지 피난민을 태우고 철수하라고 명령이 하달되면서 전쟁사에 보기 힘든 장엄한 인도주의 작전이 흥남부두에서 벌어졌습니다.  영하 20도를 밑도는 맹추위에도 불구하고 피난민들이 철수부대와 함께 자유를 향한 탈출에 올랐고 이것은 이후 한민족 역사상 최단 시기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거주지를 옮긴 문화인류학적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철수선의 갑판을 빼곡하게 메운 피난민들의 모습]


  그런데 흥남철수가 워낙 거대했고 극적이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으나 이보다 조금 앞서 서해바다에서도 감동적인 해상철수작전이 벌어졌는데, 바로 진남포철수작전이었습니다.  사실 중공군의 주력이 진입한 곳은 평안도방향이었고 따라서 이곳을 담당하던 미 제8군이 동부전선의 미 제10군단보다 더 많은 압박을 받아 일부 부대들이 붕괴되는 등 상당히 고전하던 중이었습니다.


[동부전선의 미 제10군단보다 서부의 미 제8군이 받은 압박이 더 컸습니다]


  중공군의 참전이 확인 된지 불과 40일 만인 1950년 12월 4일, 서부전선의 유엔군은 어렵게 차지한 평양을 미련 없이 포기하고 38선을 향하여 후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 대부분의 병력은 경의가도를 통해 빠져 나왔지만 1,700명의 병력들은 퇴각로를 최후까지 지켜야 했습니다.  이들은 진남포를 통한 해상 철수가 결정되었고 중공군이 평양으로 진입하기 직전인 12월 5일 작전이 개시되었습니다.


[얼어붙은 진남포항을 빠져 나오는 철수선]


  마지막 잔여 병력들이 켈리(Samuel G. Kelly) 대령이 지휘하는 수송전대에 탑재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다도 얼어붙은 혹한의 진남포항에는 학정을 피해 피난가려는 수많은 북한주민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12시30분, 선단의 마지막 함정인 호위구축함 포스(USS Foss-DE 59)가 진남포항을 떠날 때는 8,000여명의 피난민들이 선단의 빈자리를 촘촘히 메웠고 철수선에 탑승하지 못한 많은 이들이 100여척의 민간 선박을 타고 함께 남으로 향하였습니다.


[USS Foss의 출항 후 파괴되는 진남포항]


  진남포철수는 열흘 뒤에 개시된 흥남철수에 비해 시기도 겹치고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작은 규모여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처럼 내용상으로는 흥남철수에 못지않은 인도주의적 철수작전이었습니다.  규모가 작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의미가 결코 퇴색될 수 없는 이유는 단 한사람의 생명도 소중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침략자에 맞서 싸웠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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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dissertation writing 2013.01.15 0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코드와 광산의 차이를 발견 할 날 30 분 걸 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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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ChatRandom 2013.04.03 15: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표로 하고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있던 제8군 사령관 밴 플리트는 그의 예상과 달리 중공군의 주력이 중

  5. seo Fort Worth 2013.04.23 19: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난 이런 행사를 통해 6.25전쟁이 어떻게 전쟁이 났는지 알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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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forex scalping system 2013.05.13 21: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발판으로 흥남항 일대에 거대한 탄막을 형성시켜 중공군의 남진을 막는 사이에 동해바다를 거쳐 안전하게 후방으로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14. lightbulb vaporizer 2013.05.22 16: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5사단은 서쪽에서 청송-기계 축선으로 남진하던 제12사단과 보조를 맞춰 영덕-포항 방향으로 대규모의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15. custom writing service 2013.05.25 00: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을 읽고, 마음이 따뜻해졌어요. 단단히 걸어 잠궜던 빗장을 풀고 의심 많은 세상을 향해 두 팔을 벌리면 모두가 친구이고 가족일텐데, 왜 그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되었을까요? 예전에 비해 살기는 좋아졌다고 하는데, 진정 좋아진 것인지 헷갈릴 때가 많아요. 따뜻한 정 많이들 나누시길^^*

  16. http://besteditingservices.org/ 2013.05.27 2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도를 통해 빠져 나왔지만 1,700명의 병력들은 퇴각로를 최후까지 지켜야 했습니다. 이들은 진남포를 통한 해상 철수가 결정되었고 중공군이 평양으로 진입하기 직전인 12월 5일 작전이 개시되었습니다.

  17. rent photobooth nj 2013.06.22 23: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악하였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입니다. 때문에 UN군의 참전과 더불어 제해권과 제공권을 즉시 확보한 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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