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해병 전차대의 서울 관통 작전(1/3)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1.04.01 10:55

1950년 9월 15일 크로마이트 작전의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미 해병대와 육군,
그리고 한국 해병대는 서울로 진격했다.

부천과 영등포 등에서 전차를 동원한 적의 저항이 있었지만,
모두 격파하고 한강을 건너는 도하작전에 착수한다.

미군은 세 지점에서 한강을 도하했다.

행주나루(5연대 7연대)와 마포나루(1연대)
그리고 동작나루(보병 7사단 32사단과 한국군 수도 사단 17연대)였다.

도하에는 인천에서부터 가져온 상륙정(LVT)이 사용되었다.
9월 24일 마포나루를 도강한 해병 1연대를 마지막으로,
해병 1사단은 한강 이북으로의 전개를 완료했다.
한강 돌파에 성공한 유엔군은 서울탈환작전에 돌입하게 된다.

상륙주정으로 행주나루를 도하하는 한미 해병대
(LVT가 바다가 아니라 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는 한국전이 최초이다)

서울탈환작전에 총 5개 연대 한미 해병과 육군이 동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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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남산을 중심으로 동서로 나누어
동쪽 부분은 동작나루를 도하한 미 육군[7사단 32연대]과
한국군[수도 사단 17연대]의 2개 연대가 공격하고,
미 해병 1사단의 3개 연대는 서울 서쪽을 진격했다.
각 미 해병 연대들에는 한국 해병대 1개 대대들이 배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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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는 서울 서쪽 절반 부분을 상중하로 세 등분해서 작전구역을 세분화했다.

서쪽에서 공격하는 해병 두 개 연대중 7연대가 중앙청 부분을
5연대가 광화문 시청 부분을 그리고
마포나루를 도하한 1연대가 남쪽에서 남대문 부분을 담당했다.

7연대와 5연대의 일부는 사직동 뒷산을 넘어 경복궁과 중앙청을 점령했다.
5연대는 서대문 형무소 남쪽에서 서소문 사이 중간 지대가 전투구역으로
주력이 광화문과 시청 쪽으로 진격했다.

1연대는 마포 로타리를 거쳐 서소문로로 따라 시청 쪽으로 진격했었고,
일부는 서울역을 점령하고 남대문로를 따라
신세계 백화점 앞을 거쳐 시청 쪽으로 진격했다.

한미 해병들과 육군의 공격 배치도

해병들은 위에서 말한 줄기 격인 도로만 따라 선(線)의 전진을 한 것이 아니라,
가지에 해당하는 대로 주변의 골목을 다 소탕하고
주요한 거점은 점령하는 면[面]적인 점령을 해가면서
부채살 같은 형태로 진격해 들어갔다.

이들 서울 탈환작전에 해병 1사단 소속 1전차대대[A, B, C, D중대로 구성]가
중대별로 보병연대들에 배속되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전차들은 중대 단위로 분산하여 각 연대를 배속되어 이들의 서울 진격을 지원했다.

해병대의 전차들은 90mm 전차포를 장비한 M26 전차와

105mm 곡사포를 장비한 M4 셔만 전차가 주 장비였었고
화염 방사 M4 셔만 탱크도 있었다.
그 외에 역시 셔만 전차 버디를 개조한 M32 구난차가 있었다.

M26 퍼싱전차는 제 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 유럽전선에서 처음 선을 보였다

1951년 9월 25일 서울 탈환의 막바지 전투가 개시되었다.

07:00 해병들과 육군은 진격을 개시하였다.

주요 공격 목표는 중앙청과 서울시청의 연결선이었다.

중앙에서 진격하는 5연대는 며칠 동안 서울 연희고지 전투 등 격렬한 전투를 겪었다.

손실 병력이 많고, 인원도 부족해서 연대 해병들은 지쳐 있었다.

그래서 중앙의 5연대와 남쪽의 1연대 사이의 성근 틈을 메울(충정로 남쪽 지대)
작은 특별 기동부대가 파견되었다.

이 미니 기동 부대는 B전차 중대의 2개 전차 소대가 주축이었다.


미니 기동부대에 부여된 임무는 현 서강대 뒷산인 노고산의 확보였다.

해병 5연대와 7연대가 공격했던 안산 연맥들-서대문 홍제동 사이의 서쪽
산들인데 지금은 너무 변해서 어디가 어딘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적은 고지는 며칠전 점령하고 있던 북한군이

미군의 치열한 공격을 받고 도망쳐서 비어 있던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해병들이 모르는 사이 북한군은 다시 돌아와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쉽게 생각하고 산에 오르던 해병의 보병들과 공병 소대는
적의 가혹한 집중 사격을 받았다.

기동대 대장 불르스 윌리암 대위는 M4화염 방사 전차 1량과

M26전차 1량을 긴급히 앞으로 전진시켰다.

두 전차는 노고산 왼쪽 평탄한 지역으로 우회하여

사면에 참호를 파고 있던 북한군을 공격했다.

염 방사 전차는 북한군들에게 접근하여 뜨거운 불비를 퍼부었다.

북한군들은 불길을 피해 참호 밖으로 튀어 나와서 정신없이 도망쳤다.

호에서 쫓겨난 그들은 커밍스 중위가 지휘하는

전차 소대가 대기하던 화망[火網]속으로 뛰어 들었다.

화염 방사 전차의 화염을 피해 무턱대고 도망쳐 나왔다가

전차들의 포화에 죽은 북한군은 약 150여명으로 추산되었다.

더 많은 북한군들이 일대에 파둔 방공호 속이나 산자락 민가에 숨어 있다가

공병 소대와 전차들의 합동 공격으로 일망타진 되었다.

오합지졸로 보이는 이들 포로들 121명의 포로들은
단 두 대의 전차가 후방으로 호송했다.

서울 서쪽에서 서울로 진입하는 해병 전차대
후미가 불도저가 달린 M4A3 전차, 앞이 M26

12시경에야 이들의 소탕을 완료한 커밍스 중위의 전차 소대는
5해병 연대를
지원하기 위해서 5연대와 1연대의 배치 경계선[충정로 선]을 되 넘어 왔다.

루이스 체스티 풀러 대령이

(과달카날에서 대대장으로 전설적인 무공을 세움. 미 최다 무공훈장 수여자임)
지휘하는 1연대는 공격개시 신호와 함께
운행용 전차 철로가 깔린
마포 가도를 따라 서울 심장부로 공격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과달카날 대대장 때의 루이 체스티 풀러
미 해병대의 마스코트인 핏불 테리어와 닮은 인상으로 유명하다

서울 진입의 전투는 바리케이드 전투로 불린다.
북한군은 인천상륙 직후부터 서울 시민을 동원하여
주요 도로 요충지에 2-300미터의 간격으로 전진 방해 바리케이드를 만들었다.

흙을 담은 가마니를 주로하고 돌과 온갖 잡동사니를 쌓아 올려 만든

이 바리케이드 주변에는 적의 지뢰와 저격수와 반 탱크 총이 배치되어 있었다.

북한군 병사들은 빌딩의 지붕이나 창문마다 득실거렸다.

그들은 전진하는 미군들을 저격하거나 휘발유로 만든 사제 폭탄을 던졌다.

바리케이드들의 극복은 매우 느리고 위험하지만

해병들은 즉석에서 체계적인 방법을 고안해서 사용하였다.

먼저 보병들이 바리케이드 주변의 저격수나 기총수들을 사살하거나 패주시켰다.
다음에 공병들이 뛰어 들어 지뢰를 제거하고
그 후에 전차가 바리케이드를 깔아뭉개서 진격로를 열었다.
바리케이드를 한 개를 돌파하는 데에는 약 1시간 정도가 걸렸다.
매우 느린 속도였다.

북한군이 서울 시민들을 강제 동원해서 구축한 바리케이트

나중에 참전장병들이 악몽같이 길게 느껴지던 시가전은
욱한 연기와 화재가 발생한 빌딩들과 사살된 적 시체,
공포에 질려 이리 저리 도망 다니는 서울 시민들 사이에 전개되었다.

구식이 다 된 M4A3 셔만 전차는

서울시의 아주 좁은 골목에서 톡톡히 제 몫을 해내었다.
셔만 전차의 주포는 76mm였다.
그러나 한국으로 출동한 셔만 전차는 근접전용 단포신 105mm포였다.

M26 퍼싱 전차는 90mm 주포의 긴 포신 때문에

사격할 때마다 장애물에 걸려 곤란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M4 전차의 짧은 포신의 105미리 주포는 도로 주변 장애물에 구애 받지 않고,

방 어느 목표든지 360로 회전하여 포를 조준하고 발사할 수가 있었다.

105mm 포신의 M4 셔만 전차. 1951년 춘계공세에서 지뢰에 파괴된 상태

기동이 불가능한 상태에서도 계속 사격한 사실이 전차 옆의 포탄피들이 말해준다.

그래서 지원을 요청하는 보병들에게 신속한 화력을 제공하는 등

서울 시가전 맞춤형 탱크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105mm 포신의 M4 전차 중에는 불도저가 달린 전차도 있었다.

불도저 전차들은 일본군 참호나 동굴 진지를 밀어내는 용도로 사용되었는데

월미도 상륙작전에서 불도저는 파놓은 굴속에 숨어있던
북한군들을 매장하는 임무를 해냈다.

서울에는 이런 것들이 없었으나 불도저 전차는

바리케이드를 제거하는 용도로 안성맞춤이었다.

해병전차들은 북한군의 저격수나 지뢰의 위험뿐만 아니라
북한군의 14.5mm 반탱크 총에 여러 번 저격당하기도 하였다.

14.5mm 반탱크 총

퍼싱 전차는 전면 차체에 3인치의 두께,
포탑에 4.5인치의 두께의 장갑을 가지고 있었다.

14.5mm의 적탄들은 전차의 두꺼운 장갑을 뚫지는 못했다.
그러나 명중한 자리에 직경이 1인치, 깊이가 반 인치되는 큰 흔적을 남겼다.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반 탱크 총이 전차의 잠망경을 파괴하는 경우도 많았다.
잠망경이 파손되는 것은 전차의 기동에 막대한 지장을 받기도 하였다.

시가전에서 생각치도 않은 장애물이 나타났다.
도로에 늘어진 전차용 전선들이었다.
도로변에 서 있다가 넘어진 전선들과 전화선들도 같은 골치거리였다.

전선들은 전진하는 전차의 궤도에 이끌려 들어와 둘둘 말려 지기도 했다.
전선에는 전봇대가 붙어 있어 그냥 전진하기도 힘들었다.

전차병들은 할 수없이 저격의 위험을 무릅쓰고
전차에서 내려와 전선들을 절단하여 제거해야 했다.

해병들은 전차에 장비한 절단기를 사용했지만 다 잘라내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귀찮아진 전차병들은 전선 뭉치들을 포탑에 묶어서 아예 잡아끌었다.

뽑힌 전봇대가 전차에 질질 끌려오다가 보면
어느새 전선과 전봇대는 전차에서 떨어져 나갔다.(계속)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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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주나루(5연대 7연대)와 마포나루(1연대)
    그리고 동작나루(보병 7사단 32사단과 한국군 수도 사단 17연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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