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의[全義]의 군목 학살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1.07.08 10:22

 6ㆍ25 전쟁중 북한은 자주 국군과 미군들을 학살했었다. 금강과 대전 중간의 충남 연기군 전의면에서 발생한 미군 학살은 최초의 집단 학살 사건이었다.

<1950년 8월 17일 왜관 303고지에서 북한군에게 학살당한 1기병 사단 5연대 H중대 화기 소대원들의 손이 묶여있다. 지시한 북한군 군관 김광택과 학살을 자행한 전병덕은 포로가 되었다가 생존자의 지적으로 전범으로 기소되었다.>


 전의의 학살 사건이 세계 전사에 잔인한 학살 사건의 하나로 기억되는 것은 북한군이 낙오한 부상병을 위해서 기도하던 군목과 부상병을 무자비하게 쏴 죽인 야만성 때문이다.

 근대의 전투에서 종교인들을 저항이나 첩자등의 이유로 몰아 학살한 경우는 있었지만 기도라는 경건한 종교 예식을 올리는 성직자를 학살한 경우는 없었다. 전의의 목사 학살 사건은 북한 공산당의 원초적인 잔인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한국전에 투입된 미군들은 7월 5일 오산 첫 전투에서 북한군에게 대패하고 물러나 평택에서 싸웠지만 여기서도 패배하였다. 미군들은 조치원, 천안 등에서 연패를 당하면서 남쪽을 향해 후퇴를 계속하고 있었다. 북한군을 상대로 제대로 훈련되지도 못하고 편성도 되지 못한 미군 1개 사단만을 파병했으니 역부족일 수밖에 없었다.

 7월 12일 24사단장 윌리암 딘 소장은 사단의 세 개 연대, 19연대, 21연대, 그리고 34연대에게 금강을 건너 남쪽으로 철수하고 다리는 모두 폭파하라고 명령하였다. 금강선을 방어선으로 삼을 작전 계획에 따른 것이었다.

 7월 16일 03:00에 북한군은 19연대 지역에 맹포화를 퍼붓고 금강을 건넜다. 연대는 치열한 접전을 벌여 강을 건너온 북한군을 모두 강 건너로 다시 격퇴했다.

<금강 전선에서 포사격을 하고 있는 미 포병>


 하지만 이 순간에 적의 소부대가 미군들의 전선을 우회 침투한 것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북한 침투부대는 미군의 후방을 기습하고 전방과 후방 대전 사이의 보급로에 장애물을 설치하고 19연대를 고립시켰다.

 학살은 1950년 7월 17일 대전 북방 도남이라는 농촌 인근 야산에서 발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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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남은 현재의 공주시 반포면 도남리 같다. 근처에 금강 휴양림이 있다. 그런데 학살 사건 명칭은 전의 학살이라고 한다. 한국 지리에 어두웠던 미군은 종종 이런 명칭의 오류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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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투한 북한군은 서울을 점령했던 북한군 사단중의 하나인 3사단 소속으로서 사단장은 소련군 출신인 이영호였다. 그들의 도로 차단은 미군들로 하여금 당장 탄약 추진과 부상자 후송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었다. 후방으로 가는 도로가 봉쇄되자 생명이 경각에 달린 중상자들을 빨리 후송해야 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16일 13시경 19연대장은 사단장 딘 소장에게 후방 도로가 차단되었음을 보고했다. 딘 소장은 도로 봉쇄를 분쇄하고 보급로를 뚫으라고 지시으나, 북한군은 6정이나 되는 기관총을 도로 좌우 언덕에 설치해놓고 반격하는 미군들에게 사격을 가했다.

<북한군에게 점령당하기 전의 대전 역 앞>


 미군은 도로를 개통시키기 위해서 여러 번 공격했지만 그 때마다 실패했다. 자기 힘으로 걸을 수없는 중상자들부터 시급히 후송해야 했다. 이들의 치료는 경각을 다투는 문제였다. 연대는 할 수없이 중상자들을 짚차에 승차시켜서 도로 봉쇄선을신속히 돌파하는 것을 시도해보기도 했으나 북한군의 기관총 사격에 번번이 좌절 되었다.

 14:00에는 후방에서 오는 보급 차량들이 북한군의 차단에 막혀서 오도가도 못하고 대전에서 북상하고 있는 기갑 부대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탱크 한 대가 도로 봉쇄를 뚫고 전방의 19연대에 도착해서 부상당한 지휘관 한 명을 태우고 철수했다.

 19:00. 석양이 지자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다고 본 19연대 연대장은 도로 봉쇄선 동쪽의 산악 지대로 우회하여 후방으로 중상자들을 후송하라고 지시했다.

 21:00. 약 100여 명의 19연대 인원들이 도남의 동쪽 산속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30명 정도의 환자들과 동행했다. 그중 20명은 중상을 입어 걸을 수가 없어서 들것에 싣고 운반했다. 이들이 어두운 산길을 올라 산 능선 부근에 도달했을 때 중대장은 들것 운반 병사들이 너무 지쳐서 더 이상 중상자들을 후송할 수가 없다고 판단하고 그 자리에 남겨 놓고 가도록 결정했다.

 연대 의무관 린턴 J 버트리와 군목 허만 G. 펠헬터 군목이 이들 중상자들 옆에 잔류하기로 하였다. 후속하는 미군 부대가 오면 이들을 계속 후송할 계획이었다. 군의관 버트리 대위는 팔에 적십자 완장을 차고 있었다.

<오른쪽 고지가 포로들이 죽은 303고지다.>


 군의관이라는 국제적인 표식이었다. 펠헬터 군목도 자신이 미군 소속 군목이라는 표식을 팔에 차고 있었다. 두 사람 다 아무런 무기도 소지하지 않았었다. 상식으로 보아도 이들이 비무장이고 비전투원임을 알아 볼 수가 있었다.

 그대로 밤이 새고 아침이 왔다. 버트리와 펠헬터 군목은 북한군 정찰대가 접근하고 있는 소리를 들었다. 이들은 미군 후방에 침투한 북한군 3사단 정찰대였다. 살기 띈 이들에게서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은 펠헬터 군목은 버트리 대위에게 도망치라고 말했다.

 버트리 대위는 그대로 뛰어서 그대로 도망쳤다. 북한군은 따발총으로 달리는 그에게 사격을 가했다. 버트리 대위는 발목에 관통상을 입는 중상을 입었지만 탈출에 성공했다.

 버트리 대위를 놓친 북한군은 펠헬터 군목에게 다가왔다. 펠헬터 군목은 운신을 못하고 들것에 누워있는 중상자들을 위해서 마지막 기도를 드리고 최후의 성사를 올렸다. 전방에 있던 19연대 사령부와 연대 본부중대 요원들은 망원경으로 먼 후방 산위에서 있던 이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았다.

 북한군들은 딱콩 총[아식 보총]과 따발총[PPSH 41]들로 무장하고 있었다. 기도를 올리고 있는 군목에게 다가온 북한군은 군목의 머리와 첫 발을 쏘고 등에 또 한 발을 쏘아서 그를 절명시켰다.

 그리고 이어 따발총으로 휘둘러 들것 위에서 운신도 못하는 20여명의 미군 중상자 전원을 사살했다. 피의 학살이 끝나자 북한군은 철수하였다.

<303고지에서 학살당한 미군 포로들을 위한 기도를 하고 있는 군목>


 지켜보던 19연대 본부 요원들은 경악했지만 불리한 전황에서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다. 연대는 적의 압박에 철수하는 다급한 상황에사 학살당한 유해중 세 구만 가까스로 회수할 수가 있었다.

 끝까지 남아 중상자들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한 펠헬터 군목은 군목으로서는 최고의 수훈 십자 훈장을 수여받았는데, 미국의 명예 훈장 다음 등급의 무공훈장이었다.

 이 학살 사건은 세계에 알려졌고 비난이 쏟아지지 당황한 북한의 전선 사령관 김책은 사단장 이영호에게 학살 금지령을 내렸다. 그러나 말 뿐인 조처로서 김일성의 동서인 105전차 사단의 유경수 부대는 2개월 뒤인 낙동강 전선 왜관 부근 고지에서 포로로 잡은 미군 1개 소대를 모두 학살하여 세계를 다시 분노케 했었다. 그러나 이 학살 때 살아남은 미군들이 있어서 그 후 포로들 중에 학살자들을 가려내서 처벌했었다.

<303고지 탈환후 미군에게 붙잡힌 포로중에서 학살범을 지적하는 생존 포로>


 전쟁중 북한군은 학살을 자주 저질렀는데 방 호산이나 김웅, 이권무 등 모택동군 출신 사단장들은 학살을 별로 자행하지 않았지만 유경수나 최용진같은 김일성 부대 출신 사단장들과 이청송, 이영호 같은 소련군 출신 사단장들은 학살을 자주 해댔다.

 이 학살 사건은 후에 미 의회에서 조사에 착수했었기 때문에 군의관 버트리 대위는 의회에 나가 증언을 하여야했다.

 제네바 협약이니 뭐니하는 것이나 미의회의 조사 등 인류 보편의 도덕에 기본으로 하는 서방측의 규탄들을 김일성은 비웃음으로 대응했을 뿐이었으며, 그는 죽을 때까지 정적 숙청과 남파 간첩을 통한 학살의 손을 놓지 않았다. //끝//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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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ag manufacturer 2011.07.23 21: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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