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무인도에서 구출 된 미 공군 대령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1.08.17 08:25

 6ㆍ25전쟁 중 적 미그기에 격추된 한 미 공군 조종사가 압록강 앞 바다 낙도에서 37일간이나 연명 하다가 한국 유격대에게 구출된 일이 있었다.

[F-86 세이버]


 6ㆍ25전쟁 중 미군의 지원하에 백령도를 기지로 한국인 유격대가 서해안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미군들이 작명한 "동키 부대" 라는 별칭이 있었다. 동키 부대중 제 15부대인 백마 부대는 평북 출신 대원들로 구성되어 압록강과 대동강 사이 해안 작전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대동강 앞 바다의 초도에도 유격대 기지를 운용하고 있었다. 맵이라는 미군 중위가 고문관으로 초도에 근무를 했었으며, 이들은 원래 북쪽 압록강 앞 바다의 대화도도 점거하고 있었다.

[아래에 대화도가 있다.]


 이곳에는 유엔군이 비밀리에 운용하는 레이다 기지가 있었다. 레이다는 만주 비행장에서 뜨고 내리는 공산기들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으니 유엔기에는 큰 도움의 존재였지만 공산군에게는 눈에 든 가시 같은 존재였다.

 1950년 11월 30일 중공군 148사단은 용암포에서 여덟 척의 선박을 타고 출발, 습격해와 미군 2명과 영국군 1명이 포로가 되고, 유격대는 이틀간 저항하다가 많은 피해를 입고 모두 철수하였다.

[구월산 유격대(동키 부대)의 정찰 연락함 구월호. 유격대 선박들은 어선들을 개조한 것이다. 구월산 유격대 블로그에서 빌려옴]


 이 작은 섬의 유격대를 내몰아내기 위해서 중공군은 그들이 보유한 쌍발 폭격기까지 투입해서 폭격을 해댔다. 섬을 점령했던 중공군은 얼마 후 철수하고 섬은 빈 무인도가 되어 버렸다.

 초도의 유격대 2대대장 백우영의 지휘로 이용섭, 전용호 등 8명의 대원들은 1952년 6월 7일 대화도를 재점령하여 다시 전초기지로 쓸 가능성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대화도로 향했다.

 이 배에는 미군 고문관 맵 중위도 동행했었다. [일설에는 서해상에 추락한 F-51 전투기 조종사를 수색하다가 대화도를 방문했다는 설도 있다.]

[험준한 북한 상공을 나르는 F-86 세이버 편대]


 야간에 섬에 상륙한 그들은 전에 본부로 쓰던 마을의 한 집 마당에 모닥불을 피어놓은 것을 발견하였다. 주민들이 다 철수한 그 섬에서 수상한 인적이었다. 유격대는 그 집을 포위하고 수색에 들어갔다.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어보니 그 곳에 한 백인이 잠을 자고 있었다.

 유격대는 그런 곳에 미군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확인해 본바 그는 수원 기지의 미공군 51전투비행부단장 미군 조종사 알버트 쉰즈 대령이었다.

 그는 1952년 5월 1일 F-86 세이버 전투기로 출격해서 압록강 상공에서 미그기들과 공중전을 벌이다가 피격 당했다. 그는 파괴된 F-86을 가까스로 몰고 서해상으로 나와 비상 탈출했다. 그러나 그를 구조할 헬리콥터와의 연결에 실패했다.

 그는 구명 보트를 저어 가까스로 근처 대화도에 상륙하였다. 찾아보니 사람들이 살던 부락이 있었고 집들을 수색해 보니 약간의 쌀과 찐 옥수수, 양파들이 있었다. 한 집에서는 섬에서 재배한 목화로 만든 큰 솜 덩어리들도 있었다. 그는 솜으로 "SOS"와 "MAYDAY"라는 국제 구조 신호를 만들어놓고 밤에는 모닥불을 피워 구조를 기다렸다.

 그러나 미 공군의 구조 손길은 뻗히지 않았다. 그가 배고픔와 공포로 기진맥진했을 때 기적같이 한국 유격대가 나타난 것이다.

[구출 직후의 쉰즈 대령]


 아닌 밤중에 무장한 유격대의 방문을 받은 쉰즈 대령은 크게 놀랐다. 그러나 백 대장이 "안심하시오! 도와 드리겠소" 라고 하자 그는 비로소 안도의 숨을 쉬었다. 초도로 돌아오는 배 안에서 쉰즈 대령은 굶주렸다는 듯이 배안에 있는 계란 한 줄을 다 먹고 위스키 한 병을 거의 비우다시피 했다.

[쉰즈 대령과 가족]


 초도에 도착하자 그는 무전기로 호출할 수 있는 모든 공군 기관을 불러서 그의 실종 수색을 조기에 단념한 그들에게 화풀이를 했다.

[수원 51전투 비행단 기지, 이 비행단은 현재 오산 비행장을 기지로 쓰고 있다.]


 쉰즈 대령을 구출했던 유격대원 중 백우영 대장을 포함한 5명은 아깝게도 두달 뒤인 1952년 7월 중순 대화도 근해의 작은 섬 우리도[牛里島] 전투 중에 전사했다. 이 때 평안북도 연안 섬들을 탈환하는 공산군의 대공세가 있었다. 알버트 쉰즈 대령의 구출 일화는 라이프지에 한국의 로빈슨 크루소라는 제목으로 크게 소개되기도 하였다. 그는 1971년 공군 소장으로 퇴역하여 은거 생활을 하다가 1985년 작고하였다.    //끝//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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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eb site master 2012.05.23 16: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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