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해병의 신화, 도솔산전투(1/2)

생생! 6·25/6·25전쟁 10대전투 2011.10.19 18:23

학자마다 조금씩 견해가 다르기는 하지만 6ㆍ25전쟁 당시에 중공군의 대공세는 모두 7회에 걸쳐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중 휴전직전이던 1953년 7월에 금성천 일대에서 벌어져 휴전협상에서 주도권을 쥐려했던 7차 공세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공세는 1950년 10월 참전한 이후 일정한 간격을 두고 매월 한차례씩 벌어져 1951년 5월의 6차 공세까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패턴을 보였습니다.

[중공군의 공세는 1951년 6월을 끝으로 일단 막을 내렸습니다.]


여기서 6차 이후 7차까지 휴지기가 길었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전쟁을 승리로 끝내겠다는 중국의 의지가 6차 공세이후 사라졌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1.4후퇴를 불러온 3차 공세까지 연이어 성공하였을 때까지만 해도 중공군은 자신감이 가득 차 유엔군의 휴전제의를 거부하였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전력을 수습하고 중공군의 약점을 간파한 아군의 저항에 그들은 희망을 접어야 했습니다.

1951년 봄에 연이어 벌어진 4~6차 공세는 상당히 격렬하였지만 중공군은 더 이상 감내하기 힘들만큼 많은 피해를 보았고 결국 아군의 반격에 서서히 밀려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즉, 중공군은 지금처럼 인해전술을 앞세운 공세로는 더 이상 아군을 제압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닫고 전략을 완전히 수정하여야 했습니다. 그것은 또한 미군을 한반도에서 완전히 몰아내고 최종적으로 승리를 쟁취하겠다는 의지를 접은 것이었습니다.

[중공군은 약점이 노출되자 더 이상 피해를 감내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승리를 포기하였다는 것이 패배를 의미하는 것은 물론 아니었습니다. 중공군도 어느덧 휴전을 생각하였고 그러기위해서 자신들이 좀 더 유리한 위치에 있을 때 종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느끼게 되었는데, 사실 아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것은 산악이 많은 한반도에서 좀 더 상대를 감제하기 쉬운 고지를 선점하는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지금까지 공세만 하던 중공군이 방어를 위해 더 깊게 참호를 파는 경우까지 생겼습니다.

중공군의 공세를 저지한 아군이 1951년 6월초, 현재의 휴전선과 얼추 비슷한 곳에 설정한 와이오밍선까지 전선을 걷어 올리고자 반격을 개시하였습니다. 아군이 화천과 양구 일대에 커다란 돌파구를 만들어 버리자 당황한 공산군은 병력을 증강하여 해안분지를 내려다볼 수 있는 광치령-대암산-도솔산-대우산을 연하는 산악능선을 선점한 다음 지뢰를 매설하고 참호를 파서 난공불락의 방어선을 구축하였습니다.

[북한군은 도솔산 일대를 요새화하였습니다.]

모양을 빗대어 이른바 펀치볼(Punch Bowl)로 불린 해안분지는 여의도의 6배 정도가 되는 넓은 땅이지만 만일 공산군이 장악한 남쪽 능선을 확보하지 못한 체 휴전을 한다면 이곳을 확보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당연히 아군은 공산군의 방어선을 점령하여야 했고 격전은 예고되었습니다. 사방이 1000미터가 넘는 거대 봉우리로 연결된 능선 중에서도 핵심은 북쪽 능선을 좌우로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 도솔산이었습니다.

그리고 장진호 전투에서 불같은 투혼을 보여준 역전의 용사들인 미 해병 1사단 5연대에게 도솔산 점령 임무가 부여되었습니다. 반면 이곳을 막기 위해 동원된 부대는 후방에서 재편과 훈련을 마친 북한군 12사단이었습니다. 연일 공군의 맹폭과 포병의 무시무시한 불벼락이 도솔산에 퍼부어질 만큼 화력은 미군이 강하였지만 고지의 최종 점령을 위해서는 네발로 기어 올라가야 했으므로 위치를 선점한 북한군이 절대 유리하였습니다.

[도솔산 인근에서 바라본 해안분지]

적들은 땅굴 속에 몸을 숨긴 체 포격을 회피하다가 아군이 정상 가까이 올라오면 참호로 튀어나와 격렬하게 저항하였습니다. 상륙전에는 귀신이었지만 첩첩산중의 고지전에서는 능숙하지 못하였던 미 해병 5연대는 많은 피해를 입고 철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구원투수로 미 해병 1사단에 배속되어있던 국군 해병 1연대가 나서게 되었고 그것은 전사에 영원히 빛날 신화가 쓰여 지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김대식 대령이 이끄는 해병 1연대는 만반의 준비를 완료한 후 6월 4일 공격을 개시하였으나 이미 강력한 방어선을 완비하여 놓은 체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반격을 가하는 북한군 12사단의 완강한 저항에 번번이 막히면서 6월 10일까지도 목표물을 점령할 수 없었습니다. 워낙 험준한 고산준령이다 보니 도솔산은 단지 의지만 가지고 있다고 점령할 수 있는 그런 목표물은 아니었습니다.(계속)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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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Info Jakarta 2013.04.10 18: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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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sample condolence messages 2013.06.11 15: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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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area rug cleaning nj 2013.06.18 16: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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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plumber freehold nj 2013.07.03 16: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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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cipto junaedy 2013.07.24 12: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지만 북한 10사단 도하에 대비해 미군의 사단급 부대가 현풍에 주둔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북한 측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있다. 북한은 10사단에 견제의 역할을 맡기려 했는지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결정적 순간 1개 사단을 그냥 놀리는 결과가 된 셈이다.

  14. dui defense 2013.07.30 05: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군의 사단급 부대가 현풍에 주둔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북한 측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있다. 북한은 10사단에 견제의 역할을 맡기려 했는지

  15. quickbuys usa 2013.09.20 19: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둔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북한 측 주장둔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북한 측 주장

  16. Read More about Silva Lining Forestry 2014.02.13 0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단급 부대가 현풍에 주둔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북한 측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있다. 북한은 10사단에 견제의 역할을 맡기려 했는지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결정적 순간 1개 사

  17. Xyg Fcs Tips 2014.03.31 19: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배속되어있던 국군 해병 1연대가 나서게 되었고 그것은 전사에 영원히 빛날 신화가 쓰여 지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18. Xyg Fcs Homepage 2014.03.31 19: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깰 수 없고 수많은 중공군 전사자들과 형평이 마지않는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연 때문에 유송림이 북한에 있는

  19. is bubblegum casting legitimate 2014.04.07 19: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날은 수업이 없는 날이였지만 이곳 학생들은 하나둘씩 학교로 모여들고 있었다.
    바로 군 장병들이 운영하는 공부방 활동이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20. Stewart Rich 2014.04.10 17: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날은 수업이 없는 날이였지만 이곳 학생들은 하나둘씩 학교로 모여들고 있었다.
    바로 군 장병들이 운영하는 공부방 활동이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21. Stewart Rich 2014.04.10 18: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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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군 장병들이 운영하는 공부방 활동이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