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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 6·25/김병륜 기자의 6·25전쟁 2012.03.14 08:55


[북한의 남침 사실을 보도한 조선일보 1950년 6월 26일자 1면]

 ‘화산이 폭발할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지만 언제 터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전쟁은 마치 화산과도 같다. 땅속 깊은 곳에서 마그마가 끓어오르면 약한 지진이 일어나고 아황산가스가 새어 나와 동물들이 죽기도 한다. 이런 징조를 토대로 전문가들은 화산 폭발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화산이 정확하게 언제 폭발할지는 누구도 확언할 수 없다.


 6ㆍ25전쟁도 그랬다. 육군본부 정보국은 이미 1949년 12월 전쟁 가능성을 경고했다. 유양수 전투정보과장 주도로 작성한 연말종합정보보고에는 “1950년 춘계에 북한이 38도선에서 전면 공격을 할 것”이라는 예측이 담겼다. 5월 무렵에는 위기설이 널리 퍼져 군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전쟁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군은 4월 27일부터 29일까지 대기태세, 4월 29일부터 5월 2일까지 경계태세, 5월 2일부터 3일까지 대기태세를 잇달아 발령했다. 5월 9일부터 27일까지 또다시 대기태세가 발령됐다. 총선거를 전후한 5월 27일부터 6월 2일까지는 한 단계 격상된 경계태세가 발령됐다. 6월 11일부터는 가장 높은 비상경계태세가 발령되면서 군의 긴장은 최고도에 달했다. 


[국군의 전신이 되는 창설직후의 국방경비대]


 하지만 전쟁이 터진다는 구체적 징후가 더는 없다고 판단한 군 수뇌부는 6월 23일 24시부로 비상경계태세를 해제했다. 마침 6월 24일이 토요일이라 각 부대에서는 일제히 외출ㆍ외박을 실시했다. 4월 27일 이후 거의 45일 동안 계속된 대기ㆍ경계태세가 해제된 만큼 어느 때보다 많은 병력이 외출과 외박을 나갔다. 부대에 따라 외출ㆍ외박자의 비율에는 차이가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전군의 삼분의 일가량이 병영을 비운 상태가 됐다.

 하지만 육본 정보국 정보상황실 요원들의 판단은 조금 달랐다. 22일부터 23일까지 북한군의 움직임이 여전히 심상치 않았던 것. 22일 고랑포 북방의 북한군 1사단 예하 병력들이 38도선에 보다 근접한 곳으로 이동한 징후도 확인됐다. 춘천 방면에서도 자주포의 이동이 관측됐고, 철원에서도 북한군의 활발한 병력 움직임이 관측됐다.

 전선 곳곳에서 이상한 징후가 나타나자 24일 오전 10시 육본에서 정보국 주도의 긴급회의가 열렸다. 정보국장 장도영 대령을 비롯해 작전국장과 군수국장 등이 참석한 이날 회의에서 육본 정보국 전투정보과 북한반 선임장교였던 김종필(당시 중위) 전 총리를 비롯한 정보국 요원들은 전선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보고했다. 

 


[전쟁직전 국군과 북한군의 대치상황(1950. 6. 24)]


 하지만 현 육본 각 참모부 참모부장 격에 해당하는 국장들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4월 이후 지속적으로 발령했던 대기태세와 경계태세를 해제한 지 겨우 하루가 지난 상황에서 또다시 경계태세를 발령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일까?

 당시 육본 정보국 소속이었던 이영근 씨는 1977년 증언을 통해 “당시 군 수뇌부들은 38선에 배치된 북한 경비대와 인민군이 서로 병력을 교대하는 것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다”고 24일 회의 분위기를 회고한다. 

 긴급 회의가 별다른 결과를 내지 못하고 끝난 가운데 24일 오후 3시 채병덕 총참모장(현재의 참모총장)이 육본 정보국장실을 방문, 전선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후 자신에게 결론을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육본 정보국은 전 전선에 걸쳐 육군 첩보대(HID) 소속 첩보파견대를 38선에 투입시켜 현장 상황을 다시 한 번 체크하기로 했다.

 장도영 당시 육본 정보국장은 2001년 펴낸 회고록에서 “24일 첩보대 김병계 소령에게 지시해 첩보장교가 지휘하는 5~6명으로 구성된 정찰반을 하나는 개성에서 계정으로, 또 다른 정찰반을 동두천에서 전곡으로 투입시켰다”고 증언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도 2006년 1월 펴낸 ‘6ㆍ25전쟁사 2권’에서 당시 첩보파견대 요원들이 옹진, 백천, 개성, 고랑포, 동두천, 포천, 강릉 등 총 7개조로 나눠 투입됐다고 설명한다.

 당시 육본 정보국의 김종필 전 총리가 당시 중위 계급으로 정찰계획을 직접 기안했다는 주장도 있다. 김 중위가 작성한 정찰계획에 따라 김경옥 대위가 인솔하는 정찰조는 개성 방면을, 김정숙 대위가 이끄는 정찰조는 연천 방면을 정찰하려 했다는 것. 여하간 이들이 38도선 이북에서 현장 상황을 정찰한 후 보고를 보내오면 이를 토대로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 군 수뇌부의 판단이었다.

 육본 정보국 소속 첩보대 요원들이 현지 정찰을 위해 이동하던 시점, 서울에서는 육본 장교클럽 신축 축하 파티가 열렸다. 파티 자체는 미 군사고문단 요원들도 참석하는 공식적인 모임이었던 만큼 채 총참모장을 비롯한 50여 명의 고급 장교들이 참석했다.

 공식 파티는 24일 밤 10시에 끝났지만 25일 0시를 넘겨 이어진 2차 비공식 모임까지 참석한 이들도 있었다.

 6월 19일부터 추적추적 계속 내리던 비는 24일 오후가 되자 폭우로 바뀌었다. 정찰요원들이 폭우를 뚫고 전방에 도착했을 때쯤인 25일 0시를 고비로 빗줄기가 점차 약해져 보슬비로 바뀌었다. 전방의 빗줄기는 한결 부드러워졌지만 서울 삼각지에 자리 잡고 있던 육본 정보국 사무실의 긴장감은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전방에서 올라오는 보고 내용이 갈수록 수상쩍었기 때문.

 25일 새벽 1시 육본 정보국 상황실 일직 장교로 근무 중이던 김종필 중위에게 정보국 옹진파견대의 긴급 보고가 올라왔다. 국사봉 북쪽 능선에서 수 미상의 대병력 이동이 관측됐다는 내용이었다. 새벽 3시에는 문산 임진강 부근에서 북한군이 도하용 주정을 운반하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정보국 요원들의 걱정대로 전방에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이 분명했다.

 운명의 25일 새벽 4시 경기도 연천 전곡 방면에서 침투하고 있던 육본 정보국 첩보대 요원들은 번쩍 번쩍하는 불빛을 보았다. “미리 조준해 놓고 일제히 사격하는데 처음에는 번쩍번쩍할 뿐 소리는 없어 마치 번개가 치는 것 같았다”는 것이 정보국 최학모 중위의 증언이다. 최 중위가 보았던 불빛은 바로 북한군 M1938 122㎜ 곡사포의 일제 사격 장면이었다. 


[포격을 가하는 북한군 포병]


 하지만 그를 비롯한 그 누구도 그 불빛이 군ㆍ민간인 포함해 300만 명이 넘는 대규모 인명 피해를 발생시키는 비극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채 총참모장은 첩보대 요원들의 보고에 따라 경계태세 발령 등 조치를 결정하려 했으나 그에게 최종 보고가 올라가기도 전에 북한군 남침이 시작된 것. 육본 정보국 요원들이 그토록 우려하던 북한군의 전면 남침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지만 누구도 날짜는 알 수 없는 화산 폭발’처럼 그렇게 시작됐다.

 ‘6·25전쟁’ 어느 것이 올바른 용어인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불법 남침함으로써 일어난 전쟁은 공식적으로 ‘6·25전쟁’이라고 부른다. 과거에는 ‘6·25 사변’ ‘6·25 동란’ ‘한국전쟁’ 등 여러 용어가 혼용돼 왔다. 하지만 2004년 4월 교육인적자원부가 학계 전문가들의 감수를 거쳐 교과서 편수용어를 확정한 이후에는 ‘6·25전쟁’이 사실상 공식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등 법률ㆍ행정명령ㆍ규칙은 물론이고 국방부가 간행하는 각종 공식간행물에서도 원칙적으로 ‘6·25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6ㆍ25전쟁 연구의 중심기관인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펴내고 있는 전쟁사 시리즈도 1990년대까지 ‘한국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나 2004년 이후 ‘6·25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서 2005년도에 발행한 6ㆍ25전쟁사(3권)]


 ‘한국전쟁’이란 용어의 경우 한국에서 벌어진 수많은 전쟁 중에 유독 ‘6·25 전쟁’만을 ‘한국전쟁’이라고 부를 수 없다는 견해 때문에 교과서 용어로 채택되지 않았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여전히 ‘한국전쟁’(Korean War)이 일반적인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사변'은 ‘전쟁 상태에 이르지는 않았으나 경찰 이상의 무력이 사용되는 난리’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공식 용어로 채택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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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성! 9715부대 상병 박태수입니다.

    6.25전쟁의 개전에 관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있어서 잘 읽었습니다
    특히 6.25전쟁에관한 어느것이 올바른 용어사용인가 하는 대목에서는 다시금 6.25전쟁에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현재 육군 상병의 계급을 달고있지만 6.25전쟁=한국전쟁 아닌가?
    6.25전쟁이나 6.25동란이나 그게그거 아닌가? 중요한가? 등의 우문을 품었던 저의 생각에 반성하게 됩니다.
    6.25전쟁의 역사에관한 저의 무지를 깨닫고 최근 부대내의 도서관에 방문했는데 6.25전쟁에 관한 서적이 즐비했습니다.이렇게 가까운곳에 많은 정보가 있는데 그것을 모르고 있었던 내 자신이 안타깝습니다.
    또 뿐만아니라 인터넷 정보검색을 통해서 쉽게 접할 수 있고 국방부의 6.25전쟁 사업과 관련해서도 손쉽게 알아볼 수 있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이 안타깝습니다.
    물론 초등교육부터 고등교육까지 또 대학에 올라가서도 교양과목으로 6.25전쟁에 관하여 배워왔습니다.
    6.25전쟁의 발발과정,의의,피해,후에 미칠 영향등 다양한 측면에서
    지금껏 배워왔습니다. 그러나 전술적인 측면이라던지 이같은 국방부 자료는 더 심화되고 더 정확한 자료를 다루고 있는 것 같아 매우 유용한 것 같습니다.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라는 말도 있듯이 6.25전쟁은 전쟁 기간도 길고 수없이 많은 전투가 있었습니다.따라서 군인이라면 알아야할, 반드시 배워야하는 우리의 슬픈 과거입니다.
    교단에서도 군에 와서도 지속적으로 시행되고있는 6.25교육에서 더 나아가 국방부 차원에서 왜 6.25전쟁 60주년 사업을 펼치는지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하나하나 읽어가면서 아 6.25전쟁의 이 시점에는 한국이 이러한 상황이었고 전술적인 측면은 무엇이 있고 의의는 이것이구나 하며 글 하나 하나가 군인으로서 각루심골할 내용이구나 하고 생각됩니다.
    군인들 뿐만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남북의 첨예한 이념갈등,미소냉전,정치혼란과 경제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발발한 6.25전쟁에 관해 교과서나 상식수준에서는 알수 없는 6.25전쟁의 개전,발발,과정,교훈,의의 등을 알아간다면 어떠할까 생각이 듭니다.
    권력 완충장치가 없는 북한의 끝없는 도발,아직 휴전중인 우리의 현실을 해결 할 수있는 근본적인 방법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튼튼한안보정신임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가능케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글에 관심을 가지는것 하나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방을 지키는 의무를 가진 저이지만 6.25전쟁의 세세하지만 중요한 이러한 사실은 몰랐듯이 필히 배우고 가슴으로 느껴야 합니다.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충성

    akdlshtm1@gmail.com

  6. 김민구 2012.06.05 13: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충성!
    128연대 본부중대 일병 김민구입니다.
    예전에도 지금에도 많은 군인들의 정신교육 시간엔 6.25전쟁이 토대가 되어 나오거나,
    수많은 연관을 짓게 되어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선 안되는 전쟁임에 틀림없음을 다시한번 되새겨줍니다.
    아마 지금 이 포스팅글의 바로 1. 개전은 그중 하나인 우리 군의 방심의 사태에 대해 확고하게
    말해주고있습니다.
    과연 어떨까요. 6.25 전쟁의 시작점도 우리군의 준비태세를 방심으로 인해 무단하게 풀게 됨으로써
    더 큰 인명피해와 끝내 전쟁의 후퇴를 만들어 냈다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아마 이글을 본뒤에도 장병들이 느끼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안일한 근무태도가 그렇지 않을까요?
    저희 육군 , 아니 군인들의 태도는 대부분 이 길다면 긴 2년을 빨리 채움으로써, 끝내버리고 싶은게 대부분 일 것입니다.
    고로, 군복무에 있어서도 자기 할것만 대충 해두고 안일해 버리는 태도가 대다수 입니다.
    이 안일한 태도가 6.25 전쟁의 시작점이었던 방심과 다를것이 무엇일까요.
    자신의 경계근무나, 행정업무나, 여러 업무에 대해서 조금만더 관심을 가지고, 이 하나의 일에
    대해서도 조그마하지만 개개인의 집중력과 안일함이 배제되어 그 효과를 낸다면
    우리 군은 이 6.25 전쟁의 1. 개전 당시의 자칫한 방심으로 일해 일어난 참혹한 결과를
    조금 더 나아지게, 더 태세를 갖출 수 있는, 더 강하고 단일화된 군대를 만들 수 있지않을까요.
    단지 역사를 그당시에 일어난 자칫한 방심으로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에대해 그렇게
    짧게만 생각하면 그 역사는 그렇게 끝나고 앞으로 들춰지지 않을 것입니다.
    역사를 보고, 현재 자신의 삶에 조금이나마 돌아보게 해보십시오.
    6.25 그때의 안일함이 현재의 자신에게도 적용되고 있지 않습니까?
    군인 들만이 아니라 큰 사회에서도 이 포스팅 내용인 1. 개전 은 큰 의미가 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한번 자신을 되돌아볼 시간을 가질 때가 지금인 것 같습니다.
    좋은 감상 되었습니다.
    충성!

    bico4@naver.com

  7. 2012.07.12 14: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8. 신창균 2012.08.04 14: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충성! 1107 공병단 130환경대대 상병 신창균입니다.



    전쟁 발발 위험을 화산폭발에 비유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6.25 전쟁의 개전상황을 보니 북괴군을 항상 주의 깊게 감시하고 경계해야 할 대상이란 것을 다시 느꼈습니다.

    하지만 전쟁의 위험이 항상 있는데 국군의 3분의 1이 휴가 나간 점이나 6.25 전날 밤의 장교들의 축제 등은 많이 안타까운 점이었습니다.

    비상경계태세가 계속 유지되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우리나라가 종전국이 아닌 휴전국이라는 사실에 명심하고 항상 철두철미한 대비태세를 보여야 감히 북괴군이 도발을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북괴군은 항상 평화지향이라고 외치면서도 연평도포격이나 천안함피격 사건 같은 도발을 합니다. 그런 모순적인 북괴군을 보며 북괴군의 화전양면전술이 얼마나 무서운 전략인가 생각합니다.

    또한 6.25 전쟁 용어의 개념도 새롭게 알아 좋았습니다.

    항상 좋은 게시물 올려 감사합니다. 그에 보답하여 좋은 활동하겠습니다.



    충성!

  9. منتديات 2012.11.20 01: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6•25전쟁은아직현재진행형입니다. 휴전선을마주보고수많은병력,화력이모여있습니다.가슴아프지만이것이현실입니다.전쟁의참혹함을경험하지못한젊은세대가북괴의만행을모르고종북세력의선동에휩쓸리는것같아아쉽읍니다!

  10. 박수영 2012.12.04 21: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충성! 39사단 제119보병연대 4대대 5870부대 이병 박수영입니다.

    39사단 신병교육대대에서 신병교육과 더불어 정훈교육을 받으면서
    '6.25전쟁에 대해 다시 한번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국방일보를 구독하다가 우연히 국방부 6.25 사업단의 블로그를 알게 되었고
    이 기회를 통해 6.25전쟁에 대해 다시 한번 되짚어보는 기회가 된 것 같아 기쁩니다.

    이 포스팅을 보며 유비무환의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 느꼈으며,
    국방에 있어 유비무환의 자세는 언제나 갖추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속도로 교통사고의 가장 큰 원인이 졸음운전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몇 초동안이라도 긴장이 풀린다면 큰 사고로 이어지는 원인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긴장하고 유비무환의 자세를 지켜야 합니다.

    6.25전쟁이라는 아픈 역사를 또 다시 겪지 않기 위해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다 바친 호국영령들의 명복을 빌며 그들을 잊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yeong3509@nate.com

  11. 2012.12.12 19: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2. 1군사령부 상병 권영근 2013.02.17 16: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충성 1군사령부 61대대 상병 권영근입니다.

    적이 언제 침입할지 모르는 상황이 너무 괴롭습니다. 그렇다고 안일하게 있다가 당할 수 있습니다. 바라건대 우리땅에 평화가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igronixon@hanmail.net

  13. Social Bookmarking 2013.05.11 03: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외박자의 비율에는 차이가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전군의 삼분의 일가량이 병영을 비운 상태가 됐다.

  14. sms lån 5000 2013.08.05 0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과적으로 전군의 결과적으로 전군의 결과적으로 전군의

  15. spotify premium codes 2013.08.13 04: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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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http://dangerousgarciniacambogia.com 2013.08.22 17: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적으로 전군의 삼분의 일가량이 적으로 전군의 삼분의 일가량이

  17. Magento theme tutorial 2013.09.16 18: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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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Magento theme tutorial 2013.09.16 18: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속도로 교통사고의 가장 큰 원인이 졸음운전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몇 초동안이라도 긴장이 풀린다면 큰 사고로 이어지는 원인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긴장하고 유비무환의 자세를 지켜야 합니다.

  19. Magento video tutorial 2013.09.16 18: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적이 언제 침입할지 모르는 상황이 너무 괴롭습니다. 그렇다고 안일하게 있다가 당할 수 있습니다. 바라건대 우리땅에 평화가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20. Descending Path Tips And Tricks 2014.02.15 23: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황이 너무 괴롭습니다. 그렇다고 안일하게 있다가 당할 수 있습니다. 바라건대 우리땅에 평화가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21. Advice by Genbx 2014.03.29 19: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마 지금 이 포스팅글의 바로 1. 개전은 그중 하나인 우리 군의 방심의 사태에 대해 확고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