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중부전선 최대 격전지는?

생생! 6·25/우리고장 국방유적지 2013.03.26 14:16

북한군 2사단 주력 상대 첫 승 감격 충렬탑 비롯파로호비·자유수호탑·사창지구 전적비 등 수두룩

최근 산천어 축전과 동계 레저스포츠의 도시로 주목받고 있는 강원도 화천은 그 이름만큼이나 자연경관이 화려한 ‘물의 도시’다. 그렇지만 수려한 자연경관도, 소박한 인심도 국가의 전란 앞에서는 무사할 수 없었다. 화천은 지리적으로 서쪽의 철원군과 경기도 가평군, 남쪽의 춘천시, 동쪽의 양구군과 경계를 이루며 서울의 측후방 우회 접근로를 제공하는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지리적 배경에 따라 화천은 6·25전쟁 때 철원·평강·김화로 이어지는 철의 삼각지와 함께 중부전선 최대의 격전지였다. 전쟁 초기 북한군에게 최대의 패배를 안겨줬던 춘천지구 전투와 1951년 5월의 파로호 전투 등 화천 일대의 격전으로 인해 지역에는 충렬탑, 파로호역사관, 대성산지구 전적비 등 많은 국방유적이 있다.

 

파로호 전망대의 수려한 경관.

북한군 2사단 주력을 격파 첫 승을 거둔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충렬탑.

 

 ▲ 6·25전쟁의 첫 승에 빛나는 ‘충렬탑’

화천읍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우두산의 ‘충렬탑’이 시야에 들어온다. ‘충렬탑’은 1950년 6월 25일부터 28일까지 국군 6사단이 춘천지역에서 자발적으로 참전한 학도의용군과 지역 공장의 여성근로자 등 시민의 지원을 받아 우두산 일대에서 북한군 2사단의 주력을 격파하고 첫 승을 거둔 것을 기념하기 위해 1980년에 건립했다.

충렬탑에 오르면 화천읍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여 주민과 여행객의 쉼터로도 활용되고 있다. 화천읍을 통과하는 화천천, 북한강과 화천대교 등 수려한 경관이 주변에 산재해 곳곳을 사진촬영의 포인트로 이용할 수 있다.

 ▲ 고구려 살수대첩을 연상시키는 ‘파로호비’와 ‘자유수호탑’

화천읍에서 동남쪽으로 이동하면 파로호가 내려다보이는 구만리 고개에 다다른다. 그곳에는 파로호역사관과 함께 ‘파로호비’가 있다. 파로호는 1951년 5월 중공군 제6차 공세를 경기도 양평의 용문산에서 물리친 국군 6사단이 해병 1연대, 학도의용군 등과 함께 반격을 가해 중공군 10·25·27군을 격파해 수장한 곳이다.

1955년 이승만 대통령이 장병들을 위문하고 전과를 기념하기 위해 ‘파로호(破虜湖·적을 격파하고 사로잡았다)’라는 친필 휘호를 내리면서 ‘파로호비’를 건립했다. 그때부터 1938년 일제가 건설한 화천저수지를 파로호로 부르게 됐다.

‘파로호비’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는 파로호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무명의 학도병을 추모하기 위해 1975년 화천군이 건립한 ‘자유수호탑’이 있다. 탑에는 ‘조국과 자유를 지킨 곳’이라고 새겨져 있으며 조형물에서 조국의 자유와 평화를 갈망했던 젊은 학도병의 숨결을 느껴볼 수 있다.

이 외에도 구만리 고개 일대에는 ‘자유수호 희생자 위령탑’이 세워져 있어 파로호역사관과 함께 안보·호국의 산 교육장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겨울 파로호의 모습은 주변 고지에 쌓인 눈과 대비되면서 수려한 경관의 화천을 대표하기에 손색이 없다.

시간적인 여유가 된다면 인접한 오음리의 ‘베트남 참전용사 만남의 장’을 방문해 베트남 파병의 역사와 우리나라 현대사에 미친 영향을 생각해볼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서바이벌 게임방식에 의한 전투 체험을 할 수 있으며, 조성돼 있는 생활관을 이용한 숙박도 가능하다.

 ▲ ‘대성산지구 전적비’와 ‘사창지구 전적비’

화천읍에서 서북쪽으로 승용차를 타고 20여 분 달리면 다목리에 이른다. 이곳에는 ‘대성산지구 전적비’가 세워져 있다. 철의 삼각지(철원-평강-김화)의 한 축인 김화지역 사수를 기념하는 상징물이다. 1951년 6월 9일부터 일주일간 국군 2사단이 중공군 58사단 177연대를 섬멸하고 1041고지를 비롯한 승양고개, 비조봉 일대와 김화지역을 사수한 전공을 기리고 있다. 1983년 15사단이 건립했으며, 현재는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로 관리되고 있다.

이곳에서 나오자마자 ‘인민군사령부 막사’라는 팻말을 볼 수 있다. 6·25전쟁 이전까지 화천과 철원 일대를 관할하던 인민군사령부 막사 건물인데, 단층 일자형의 건물로 화강석과 시멘트로 축조돼 있다. 현재는 문화재로 지정돼 화천군에서 관리하고 있지만 출입이 금지돼 내부로 들어갈 수 없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일자형 복도 양쪽에서 내부에 방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목리를 뒤로하고 춘천으로 나오는 길에 사창리의 ‘사창지구 전적비’를 둘러볼 수 있다. 사창지구 전적비는 1951년 4월 10일부터 약 보름간 국군 6사단이 중공군 수중에 있던 사창리를 탈환한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1957년에 건립한 것이다.

 ▲ 구국·호국의 고장으로 거듭나는 화천

이 외에도 화천에는 ‘금성지구 전적비’, 사창리의 ‘충혼탑’ ‘비목공원’ ‘평화의 댐’ 등의 국방유적이 다수 있다. 이 중 ‘비목공원’은 평화의 댐 주변에 조성된 공원으로 국민가곡 ‘비목’이 만들어진 근원지다. 1964년 백암산 비무장지대 산모퉁이에서 우연히 무명용사의 녹슨 철모와 돌무덤을 발견했던 청년 장교 한명희는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어 한동안 머물렀다.

그 후 4년 뒤에 그곳을 방문했던 한명희 씨가 노랫말을 지었고 작곡가가 곡을 붙이면서 그 유명한 가곡 ‘비목’이 탄생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화천군은 매년 6월 비목 문화제를 개최하면서 진중가요 부르기, 주먹밥 먹기, 병영체험, 군악 퍼레이드 등으로 무명용사의 넋을 기리면서 안보의식을 고취하는 지방행사로 발전시키고 있다.

이렇듯 화천은 가는 곳곳이 구국 및 호국정신이 깃든 지역으로 동서울과 상봉 시외버스터미널, 강남 고속터미널에서 화천까지 직통버스를 이용해 방문할 수 있다. 기타 지역에서 화천행 버스가 없을 경우에는 춘천에서 화천행 버스로 갈아타면 된다. 기차나 전철을 이용할 경우에도 춘천에서 내려 버스로 화천까지 이동하면 된다.

겨울철에 화천을 방문한다면 산천어 축제는 물론 파로호에서 잉어, 붕어, 쏘가리 등의 낚시도 즐길 수 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다목리에 있는 이외수 감성마을에 들러 호국선열 및 선배 전우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으로 지킨 이 땅의 아름다움과 넉넉한 자유의 가치를 피부로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김태형 전쟁과평화연구소 연구위원>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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