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아직도 많은 주민이 전쟁의 상처 안고 있는 곳

생생! 6·25/우리고장 국방유적지 2013.03.28 08:48

강원도 철원군은 한반도의 지리적 중심이다. 예나 지금이나 철원은 정치·군사적으로 요충지고, 교통의 중심지다.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운 고장이었다. 901년 궁예가 마진(후일 태봉)을 건국하면서 철원을 도읍지로 선정한 배경이다. 그런 철원이 광복 이후 조국의 분단과 함께 아픈 역사의 땅으로 바뀌게 된다. 38도선 이북에 위치해 1945년부터 1950년 10월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을 시작하기 전까지 북한의 치하에 놓이게 된 것이다.

 

1951년 후반기부터는 중공군이 이곳을 거점으로 삼아 전세의 역전을 꾀하면서 가장 치열한 고지쟁탈전이 철원 일대에서 전개됐다. 오늘날에도 군사분계선 155마일(249㎞) 중 28%인 70㎞가 철원군을 통과하고 있다. 따라서 철원군은 가는 곳마다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다. 아직도 많은 주민이 전쟁의 상처를 안고 있는 곳, 그곳이 철원이다. 그러나 최근의 철원은 희망의 땅, 미래의 땅으로 변모하고 있다. 

 

한반도의 지리적 중심이며 중부전선 군사적 요충지군사분계선 155마일<249km> 중 28%인 70km 철원군 통과

북한 치하에서 건립된 철원군 노동당사.

 

철의삼각지대 전투 전몰장병 추모비 제막식 장면.

 

철원군에서 운영하는 안보관광코스 지도.

 

 

▶  철의 삼각지전투 전몰장병 추모비

2012년 10월 15일, 철원군 민통선 내에 위치한 평화문화광장에서 웅장한 규모의 철의 삼각지 전투 전몰장병 추모비 제막식이 열렸다. ‘철의 삼각지’란 현재 군사분계선 북쪽에 있는 평강을 정점으로 서남쪽의 철원과 동남쪽의 김화를 잇는 삼각지대를 말한다.

1951년 후반기부터 휴전협상과 함께 전선이 교착되면서 중공군은 철의삼각지 일대를 그들의 기지로 삼아 격렬한 저항을 계속했다. 공중과 해상전력이 미약했던 그들은 유엔군의 항공기 및 함정으로부터 폭격을 가장 적게 받을 수 있는 중부전선의 요충지로 철의삼각지 일대를 활용했다. 그때 미 8군사령관 밴플리트 대장이 전선을 방문해 “적이 전 전선의 생명선으로 사수하려는 철의삼각지(Iron Triangle)를 무너뜨려야 한다”라고 강조하면서 이곳을 철의삼각지라고 부르게 됐다.

철의 삼각지는 산악과 평야가 어우러져 도로망이 사방으로 발달한 전략요충지였기 때문에 중공군은 끝까지 이곳을 사수하려 했다. 이로 인해 철의 삼각지 일대에서는 백마고지, 저격 능선, 수도고지, 금성지구 전투 등 뺏고 빼앗기는 고지쟁탈전이 정전협정 체결 시까지 계속됐다. 지난해 10월에 준공된 전몰장병 추모비는 그때의 치열했던 전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월정리역과 평화전망대

추모비와 인접해 과거 경원선 철도의 월정리 역사와 함께 부서진 열차의 잔해가 남아 있다. 경원선은 1914년 8월 개통된 서울 용산과 북한의 원산을 잇는 223.7㎞의 철도다. 당시 한반도의 중앙부를 남북으로 연결하는 중요한 철도였지만 남북이 분단되면서 비무장지대 주변 31㎞ 구간이 단절됐다.

지난해 11월 20일 철도청은 단절된 경원선 구간 중 연천군 신탄리역에서 5.6㎞를 복원해 백마고지역까지 열차를 운행하고 있다. 월정리 역의 부서진 객차와 화물열차의 잔해들은 경원선이 완전히 복원되기를 기원하는 상징물로 남아 있다.

월정리역과 인접한 구역 내에 평화전망대가 자리하고 있다. 이 전망대는 2007년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지어졌다. 1층 전시실에는 6·25전쟁과 철원을 실감 나게 보여주는 전시실, 2층은 전망대로 구성돼 있다.

 
▶ 민통선 내에 위치한 제2땅굴

제2땅굴은 서울 동북방 100㎞ 지점, 철원군 근동면 광삼리의 민통선 내에 위치하고 있다. 제2땅굴의 발굴은 1973년 11월 그 지역 경계병이 지하로부터 미상의 폭음을 감지하면서 시작됐다. 청음활동(聽音活動)과 함께 당시 농업진흥공사에서 지하수 개발을 위해 도입했던 시추 장비를 투입해 작업을 계속한 결과 1975년 3월 19일 북한의 기습남침용 땅굴의 전모가 드러났다.

땅굴 발견 당시 북한은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는 등 남북화해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땅굴의 발견으로 무력 적화통일을 획책하는 북한의 이중적 행태를 입증할 수 있었다. 남침 야욕을 포기하지 않은 북한의 이중전략을 볼 수 있는 현장이다.



▶ 백마고지 전승비·북한 노동당사 건물

경원선 백마고지역이 개통됨에 따라 백마고지 전적지 방문이 용이해졌다. 백마고지는 1952년 10월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 3㎞ 북방에 있는 395m의 작은 무명고지를 사이에 두고 국군9사단과 중공군 38군 3개 사단이 12차례의 공방전을 벌인 곳이다. 철원평야와 주변의 도로를 통제하는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열흘이 채 되지 않은 전투 기간에 고지의 주인이 24번이나 바뀌는 공방전이 계속됐지만 국군의 승리로 매듭짓게 됐다. 그러나 전투 중 피·아의 인명피해가 2만여 명이나 됐으며, 양측이 발사한 포탄만 해도 30여만 발 가까이 된다. 전투가 끝난 후 고지 정상 일대는 풀 한 포기 남아 있지 않아 공중에서 내려다 본 고지의 모습이 마치 백마가 누워있는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백마고지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백마고지를 지나 평화로를 따라 동쪽으로 1㎞쯤 이동하면 6·25전쟁 이전 북한이 건설한 철원 노동당사의 골조를 볼 수 있다. 1946년 초 북한이 이곳을 지배할 때에 건설한 러시아식 건물로 지상 3층 규모다. 현재 1층은 각방 구조가 남아 있으나, 2~3층은 골조만 남아 있다.

 
▶ 안보와 관광의 복합적인 변신 철원

철원은 안보광광을 자원화한 대표적인 지자체다. 철원군청 또는 철의삼각전적지관광사업소에서 안보관광 신청을 하면 제2땅굴~평화전망대~월정역~철원두루미관~노동당사 등의 안보 관광이 당일로 가능하다. 철원테마관광으로는 삼부연폭포~승일교~고석정~직탕폭포~도피안사 등의 당일 관광도 가능하다.

특히 철원은 비무장지대를 끼고 있어 면적에 비해 주민이 적고, 미개발 지역이 많아 철새들의 도래지로 이름이 높다. 겨울에는 엄청난 수의 철새가 철원 평야를 찾아온다. 철원군의 마스코트가 두루미일 정도다.

                                                     <한태근 전쟁과평화연구소 이사·연구위원>

Posted by LG Innotek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womarbramy.pl 2013.04.07 00: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의견은 대개 비슷하게 양수 바랍니다. 정의견은 대개 비슷하게 양수 바랍니다. 정

  2. http://essays.mightystudents.com 2013.07.04 10: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플리트 대장이 전선을 방문해 “적이 전 전선의 생명선으로 사수하려는 철의삼각지 공중과 해상전력이아 있지 않아 공중에서 내려다 본 고지의 모습이 마치 백마가 누워있는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백마고지로 불리게 됐미약했던 그들은 유엔군의 항공기 및 함정으로부터 폭격을 가장 적게 받을 수 있는 중부전선의 요충지로 철의삼각지 일대를 활용했다. 그때 미 8군사령관 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