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수백년 호국의 전통 잇는 창녕의 국방유적

생생! 6·25/우리고장 국방유적지 2013.04.08 08:55

천연적 장애물 등으로 항상 전란의 중심에 서 있던 곳, 6·25 당시 낙동강 물을 핏빛으로 물들인 최대 격전지

 

경상남도 창녕군은 낙동강변을 따라 풍요로운 평야와 빼어난 명산, 다양한 유적지를 가진 살기 좋은 지역이다. 그러나 대구~마산을 잇는 교통 요충지, 천연적 장애물인 낙동강 등으로 임진왜란 이래 항상 전란의 중심에 있었다. 특히 지역 내의 항일의병운동, 기미독립만세운동, 6·25전쟁 등의 영향으로 주민들의 외적에 대한 항쟁의지와 호국의식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50년 8월 초, 국군과 유엔군은 쾌속 남진하는 북한군의 저지를 위해 낙동강을 끼고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하게 된다. 이때 창녕의 낙동강 돌출부에서 북한군과 미군 사이의 처절한 전투로, 강물을 핏빛으로 물들인 혈투가 벌어졌던 격전지로도 유명하다.

박진 전쟁기념관 전경.

 

창녕군 낙동강 박진대교.

 

창녕군 명승지 소개 지도.

 

 

▶ 박진 지역에서의 치열한 전투

창녕군 남지읍의 낙동강 돌출부 지역, 한적한 시골에 폐교된 학교를 보수해 만든 아담한 박진 전쟁기념관이 있다. 기념관 앞 150고지에는 유엔군 전승비가 우뚝 솟아 있다. 그곳에서는 박진대교와 북한군 도하출발점이었던 박진나루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이 지역에서 오래 거주한 노인들은 전투가 끝난 후 마을 옆 능선에 미군과 북한군의 시체 수백 구가 처참하게 뒤엉켜 있던 광경들을 생생히 기억한다.

이곳 박진지역에서 부산 점령을 위해 마지막 발악을 하던 북한군 2·4·9·10사단과 미 2·24사단, 미 25사단 일부 및 미 해병 임시 5여단이 2주간에 걸쳐 사투를 벌였다. 북한군 최정예 4사단은 8월 5일 야간에 박진나루터를 이용, 은밀히 기습 도하에 성공한다. 특히 북한군은 강제 동원한 현지 주민과 의용군들을 이용해 박진 나루터에서 가마니 등으로 수중교를 만들어 전차, 차량, 대규모의 병력 등을 도하시켰다. 칠흑 같은 야간에 수중교작업을 하는 동안 숨져간 억울한 생명의 수효는 아무도 모른다. 악착스러운 북한군은 미군과 치열한 전투 끝에 8월 11일에는 20여㎞ 떨어진 영산까지 진출한다. 만약 영산을 통과해 밀양을 북한군이 점령하면 낙동강 방어선은 와해될 수밖에 없었다. 아슬아슬하게 미 25사단 27연대와 해병 5임시여단의 긴급 증원으로 미군은 북한군 저지에 성공했다.

 
▶ 전장 상황 생생히 기억하는 현지 주민

박진 전쟁기념관 옆에서 조상 대대로 농사를 지어온 정만진 씨(78·창녕군 남지읍 월하리 거주)는 당시 15세로, 전장 상황 당시를 생생히 기억해냈다.

“1950년 여름, 어렴풋이 38선에서 전쟁이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8월 초순께 갑자기 시골 벽지인 이곳에 많은 미군이 트럭을 몰고 왔다. 강변에서 전화선을 가설하는 미군들이 던져 주는 건빵과 초콜릿에 시골 소년들은 열광했고 미군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을 때는 서로 앞다퉈 나섰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곳에서 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며칠 후 마을 사람들은 긴급하게 영산으로 피난을 가라는 지시에 따라 고향을 떠났다. 특이한 일은 미군들이 박진에 들어오기 전, 강 건너편에서 고향을 밝히지 않는 낯선 피난민 여섯 명이 마을로 들어왔다. 나중에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한 일부 주민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북한군 특수공작대로 도하에 성공한 북한군과 합류했다고 한다.”
 

▶ 영산 호국공원·낙동강변 남지철교

박진나루에서 자동차로 20여 분 밀양 방향으로 달리면 전형적인 한국의 시골도시 영산 읍내가 나온다. 영산 시내 중심부의 호국공원에는 곽재우 의병장 기념비, 3·1운동 봉화대, 영산지구전투 전적비 등이 있다. 인구 수천에 불과한 이곳 영산면은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의병장이 왜군을 격파한 이래 전통적으로 호국정신이 강한 곳이다. 특히 1919년 삼일 만세운동 때 24인의 지역주민 결사대는 현 호국공원이 위치한 남산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다. 그리고 만세운동은 영산보통학교 학생, 주민, 결사대원들이 주축이 돼 영산과 창녕에서 3월 말까지 계속됐다. 뒤이어 찾아온 6·25전쟁에선 피아 격전의 틈바구니에서 이 지역 민초들이 미군을 도와 낙동강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데 기여했다.

또한 낙동강변의 남지읍에는 1931년에 건설된 아름다운 철제 트러스교가 있다. 현재 이 교량은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으나 전쟁 당시에는 허리가 끊어지는 아픔을 겪었다. 이제 그 상흔을 깨끗이 씻고 바로 옆에 똑같은 모양의 신 남지철교가 우람하게 버티고 있다.
 

▶ 애국을 실천하는 창녕군 청소년

이제 이 지역에서도 전쟁체험을 생생하게 증언해 줄 사람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신세대들은 일반적으로 ‘호국, 애국, 전쟁…’이라는 단어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곳 창녕지역은 또 다른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 해마다 수학여행철이나 피서기에 많은 지역 청소년들이 박진 전쟁기념관이나 영산 호국공원을 찾는다. 특히 해마다 3월 개최되는 ‘영산 삼일민속제’에는 각종 민속놀이와 더불어 삼일운동 봉화봉송, 호국공원 방문행사에 수많은 학생들이 적극 참여하고 있다.

창녕군은 세계 람사르 습지로 등록된 우포늪, 국내 최고의 수질을 자랑하는 부곡온천, 남지 유채꽃 축제, 화왕산성 억새 숲 등 다양한 볼거리가 대부분 자동차로 30분 거리 내에 있다. 또한 6·25전쟁 최대 격전지이며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만든 낙동강 전투지역의 관광벨트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신종태 전쟁과평화연구소 연구위원>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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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llectio Cyprus Advice 2014.02.15 14: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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