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p. 유서를 써 놓고 적 전차 사냥에 나섰던 공병대원들

생생! 6·25/만화형 전쟁사 "우리가 겪은 6ㆍ25전쟁" 2013.11.20 15:28

Tip. 유서를 써 놓고 적 전차 사냥에 나섰던 공병대원들

 


특공대장 김영석 소령의 유서


 

6 26일 저녁 국군 제1사단이 최후방어선으로 철수할 때, 공병대대원들은 남하하는 적 전차를 파괴하기로 결심하였다. 25일 임진강 교량의 폭파에 실패했다는 책임감에서 우러난 충정이자 투혼이었다.

 

특공대장에는 공병대대 부대대장 김영석 소령이 나섰고, 대대본부와 중대에서 지원자 21명을 선발하여 3개 분대를 편성하고, 통신병 1명과 서세성 성사를 선임하사관으로 임명하였다.

 

특공대원들은 야전 천막 안에 모여 한잔의 술로 순국을 다짐한 뒤 23명 전원이 유서를 써서 대대부관(인사장교)에게 맡겼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폭약을 차량에 싣고 공장 문산 방면으로 떠났다.

 

특공대는 82고지 서쪽에 있는 도로변에 개인호를 파고 적 전차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당시 특공대원이 휴대한 폭약은 TNT 1파운드짜리 20개를 한 묶음으로 하고 사각형을 이룬 가운데에 수류탄 1개를 끼워 넣어 만든 것으로, 수류탄 안전핀을 뽑고 전차에 돌격하도록 고안한 것이었다. 그러나 핀을 제거하고 폭발할 때까지 3초의 여유밖에 없어 사실상 목숨을 내던지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따라서 이들은 특공대보다는 결사대라 불러야 옳을 것이다.

 

특공대가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적 전차를 기다리는 중 여명이 밝아올 무렵, 82고지 정상에서 적인지 아군인지 식별할 수 없는 1개 소대 규모의 병력이 다가왔다.

 

특공대장은 즉각 개인호에서 공격태세를 갖추고 기다리다가 근처에 이른 병력이 이북 사투리를 쓰는 것을 확인한 뒤 공격명령을 내렸다. 특공대는 20~30m 거리에 모여든 그들을 향헤 일제 사격을 가하였다. 적들은 미처 도망칠 틈이 없어 표적이 넘어지듯 주위에 쓰러졌다. 불과 10분 안팍의 총격전이었다. 그러나 밤에 적의 전차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들은 적 전차 폭파 대신 총격전에서 노획한 소화기 10여 점을 회수하여 봉일천의 전선으로 귀환하였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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