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에 해당되는 글 86건

  1. 2011.11.21 곤지암 514고지의 기관총 기습 작전(2/2) (7)
  2. 2011.11.18 곤지암 514고지의 기관총 기습 작전(1/2) (10)
  3. 2011.11.15 북 99식 소총과 아식 보총의 춘천 대결 (9)

곤지암 514고지의 기관총 기습 작전(2/2)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1.11.21 09:42

 밤 11시에 중대장에게 보고하고 목표를 향해 출발하였다. 기관총 1정당 실탄 400발과 소총 실탄 80발, 수류탄 4개씩을 휴대하고 눈을 헤치며 앞으로 나갔다.



 내가 선두에 서서 가는데 눈이 많이 쌓인 곳은 허리까지 빠져 도저히 빨리 전진할 수가 없었다.

 한 발씩 한 발씩 전진해 가는데 달빛은 없으나, 온 산이 눈으로 덮여 찾아 가는데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앞이 안 보였다. 불과 1킬로의 거리를 무려 3시간이나 걸려 고지 중간까지 올라갈 수가 있었다.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서 2개조로 편성하여 좌우에서 은밀하게 올라갔다. 긴장하여 위를 감시하며 올라가는데 아무런 저항이나 움직임도 없어서 정상에 오를 수가 있었다. 정상은 너무나도 급경사이고 암석으로 이루어진 칼날 같은 봉우리였다.



[높은 산이 514고지고 옆 산에 올라가 기습 사격을 한 듯한데 산에 나무들이 뒤덮혀 자세한 지형을 알아보기가 힘들다. 곤지암cc 앞에서 촬영]

 기관총 장치하기도 힘들 정도로 협소해서 분대장과 정상을 둘러보니 바위를 사이에 두고 한정씩 장치할만한 곳이 있어서 기관총 1정은 제 1공격 목표 지점으로 대충 조준해놓고 1정은 정상을 향해 조준 해놓은 다음 중대장에게 보고했다.

 "화기 소대장 이상없이 목표 지점에 도착했습니다."

 "수고했다. 그 곳에서 공격 목표가 잘 보이는 가?"

 "잘 보입니다. 날만 밝으면 적의 움직임을 똑똑히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 소위만 믿겠다. 조용히 대기하라. 이상!"

 분대장이 차고 있는 야광 시계가 2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기관총이 있는 곳에 한 사람을 경계 배치하고 남은 인원은 능선 밑의 바위 옆에 모여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렸다.

 우리는 침묵을 지키면서 날 밝기만을 기다렸다. 동녘 하늘이 뿌옇게 트기 시작하고 조금 지나니 적진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각자 정위치!"

 기관총을 중심으로 대원들을 배치시키고 나는 제 1목표를 직접 조준했다.



 교통호가 훤히 내려다 보였다. 사수에게 인계하고 옆의 기관총을 조준해 보았다. 514고지 정상으로부터 제 1목표 지점으로 연결된 교통호가 한 눈에 들어왔다. 

 분대장이 조준해 논 교통호 복판이 잘 되어 있어서 "움직이는 놈만 있으면 갈겨 대!" 하고 분대장과 사수에게 지시한 다음 중대장에게 보고를 했다.

 "적 진지가 잘 보입니다. 공격 목표를 될 수 있으면 좌측으로 이동시키는 것이 좋겠습니다."

 "알았다! 지원 사격 잘 부탁한다!"

 공격 개시 10분 전.

 드디어 105mm 곡사포와 81mm 지원포 사격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교통호에 명중되는 것은 한방도 없었다. 적군들은 한 놈도 움직이지를 않았었다. 10분간의 지원 포사격이 끝나서야 교통호에서 일제히 나뭇가지로 위장한 중공군이 모습을 나타나더니 사격 자세를 취했다.



 그 때 우리 기관총이 불을 뿜었고 예광탄이 정확하게 중공군 세 놈을 명중시켰다. 다시 두 놈이 일어서다가 불의의 측면 공격을 받고 푹푹 쓰러졌다. 바로 그 때 교통호를 조준하고 있던 분대장이 방아쇠를 당겼다.

 예광탄이 밝히는 지점을 보니 교통호를 따라 내려오다가 정통으로 맞았는지 앞으로 푹 쓰러지며 밑으로 굴렀다. 다시 다섯 놈이 뛰어 내려 오다가 모조리 굴러버렸다. 제 1목표 지점을 보았지만 연막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다. 81mm 박격포는 몇 발씩 연막탄만 쏘아주고 있으나 서북풍이 부는 관계로 좌측 진지는 연막에 싸였다가도 바로 개여서 관측이 잘 되었다.

 제 1목표에 대해서도 계속 사격을 하니 꼼짝 못하고 있다. 그때 중대장으로부터 무전이 왔다.

 "목표 지점에 육박했으니 사격연신하라!"

 나는 제 1목표를 향해 쏘던 기관총 사격을 중지시키고 목표 지점을 관찰했다. 그 때 두 놈이 고개를 들고 일어났다.

 "쏴!"

 총탄은 다시 명중하여 푹 쓰러진다. 적들은 150m 거리의 측 후방에서 사격하고 있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중대장으로부터 다시 사격 연신하라는 지시를 받고 514 고지 교통호를 조준케 했다. 그때 분대장의 기관총이 한 상자를 다 쏘고 실탄을 장진했었다.

 그 틈을 이용해서 뛰어 내려오고 있던 5-6명에게 대기하고 있었던 다른 기관총이 불을 토했고 뛰어 내려오던 적병은 탄력 때문에 정지하지 못하고 모두 기관총 실탄에 맞아 나가 뒹굴었다.

 "소대장님! 점령했습니다."

 탄약수가 소리를 쳐서 제 1목표를 돌아보니 아군 2명이 올라와서 참호를 향하여 M1 소총을 쏘고 이어서 수류탄을 투척하고 있었다. 수류탄 폭음이 나고 뒤이어 10여 명이 올라와서는 514고지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바로 그 때, "쉬익! 쉬익!" 하며 적의 포탄이 우리를 향해 날아왔다. 그러나 너무나도 날카로운 봉우리라 명중시킨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직사포가 아니 곡사포라면 명중이 가능할까, 포탄은 50m 쯤 후방에서 터졌다. 다시 두 발이 날아오더니 전방 산 밑에서 터졌다.

 우리는 그 조준선상 밖에 있었다. 나는 마음을 놓고 514고지 교통호 시발점에 대고 쏘도록 하고, 기관총 1 정을 내가 직접 적의 철수로를 향해 조준했다. 아니나 다를까 적병 수 십 명이 자세를 구부리고 철수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곳을 향해 가로 활대와 세로 활대를 다 풀어놓고 좌우상하로 마구 갈겨댔다.

 더러는 맞아 쓰러지고 더러는 능선너머로 도망쳤다. 공격 소대는 514고지 9부 능선에까지 도달했다. "따쿵!" 소리가 들려 나는 기관총을 놔두고 뒷걸음쳐서 산 뒤로 몸을 낮추며 대원들을 차폐시켰다.

 뒤이어 "따따따---!" 수백발의 실탄이 우리를 향하여 날아왔다. "땡!" 하는 금속성이 들리더니 기관총이 굴렀다. 나는 구르는 기관총을 한 손으로 잡자 옆에 있던 사수가 다리 부분을 같이 잡았다.

 기관총 삼각대에 총탄이 맞아 쇠가 우그러지고 맞을 때의 충격으로 굴렀던 것이다. 포탄과 소총탄도 사격이 중단되어 고개를 들고 보니 514고지 정상에 1명이 뛰어 올라가더니 수류탄을 후사면을 향하여 힘껏 던지고 앉아서 소총을 마구 쏘더니 옆으로 쓰러졌다. 곧이어 10여명이 올라가 앞드려서 도주하는 적을 향해서 쏘았다.


                                           [영화 고지전의 돌격장면]

 81mm 박격포와 61mm 박격포가 도주하는 적을 향해 맹타하고 사단포는 적의 후방 포진지를 향해 때렸다.

 그 때 정찰기 한 대가 날아와 전방을 두 바퀴 돌았는데 무스탕 전투기 3대가 날아왔다. 정찰기는 적진으로 내려 박히는가 했더니 치솟아 올랐고 연막탄이 터져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전투기 3대는 기수를 아래로 쏜살같이 내려 박으며 기관총 사격에 이어 로케트 사격을 하고 치솟았다. 교대로 때리던 전투기는 폭탄 2개씩을 떨어뜨리고 마지막으로 네이팜 탄의 불바다를 만든 다음 유유히 남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이렇게 해서 난공불락이던 514고지는 점령하게 되었다. 중대장으로부터 철수명령을 받은 나는 병력을 인솔하고 제 1목표로 올라갔다.

 "분대장 몇 놈이나 죽었나 세어 봐!"

 가슴 높이까지 파논 교통호에는 중공군들이 발 들여 놀 틈도 없이 죽어 있었다. 그런데 총 맞아 죽은 자 같지 않게 옆으로 누워있는 자가 있어서 나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그자의 가슴을 향해 카빈총을 한 발 쏘았다.

 그 중공군은 "아---!" 소리를 지르며 고통의 몸부림을 치다가 죽어갔다.

 "이 뙤놈들 봐라! 죽은 척하고 누워있어 어이 너희들 교통호와 벙커 속에 있는 놈들 모조리 한방씩 쏴 버려!"

 대원들이 모조리 확인 사살을 하니 벙커 속에서 한 놈이 손을 들고 나왔다. 일일이 확인 사살을 한 다음 포로를 나무에 묶어 놓았다. 중대장과 잔여 중대원들이 모두 올라왔다.

 "정 소위 공로가 컸소! 정말 수고했소."

 "아닙니다. 중대원들이 중대장님을 중심으로 단결했었기 때문입니다."

 514고지에 방어 부대를 배치하고 교대 부대가 도착할 때를 기다리는데 1소대장이 보고를 한다.

 "중대장님 뙤놈들 시체가 121구나 됩니다. 이 고지 뒤에 즐비합니다."

 "1소대장 오늘 잘 싸웠어!"

 나는 1 소대장 손을 꽉 쥐고 번쩍 올려주었다.

 "아닙니다. 특공대 덕입니다! 뙤놈들이 고개를 들지 못하니 별로 저항도 받지 않고 점령할 수가 있었습니다."

 광주 곤지암 514 고지 전투에서 중공군을 섬멸하고 고지를 점령했지만 아군들도 실패한 1차 공격과 성공한 2차 공격에서 40명의 전사자가 발생했다. 기발한 기습으로 점령을 했었지만 큰 격전이었다. 이 전투의 특징은 여순 203 고지와 같이 적이 신체적으로 접근 또는 공격해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방심하는 곳에 의외로 화력만은 마음대로 도달하는 허점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1951년 6월 27일 강 건너에 국군이 떠난 것을 안심하고 도강하다가 측면 봉의산에 있던 인접 부대가 1km가 넘는 장거리에서 퍼부은 대전차포와 기관총, 그리고 박격포, 곡사포등의 화력에 섬멸된 북한군의 사례를 생각하게 한다.

 정철모 씨는 후에 중공군에게 포로가 되었지만 탈출해서 북상, 신의주 앞 바다에 있는(유격대가 점령하고 있는) 섬을 거쳐 귀환한 특이한 이력이 있다. 당시 책에는 소령 때 전역하여 공무원을 하다가 개인 사업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몇 년 뒤 잡지에서 보니 정 철모 씨가 6ㆍ25 때 헤어진 연인과 다시 결합했다는 기사가 있던 것을 본 기억이 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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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지암 514고지의 기관총 기습 작전(1/2)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1.11.18 14:19

 10여 년 전 6ㆍ25전쟁 당시 소대장으로 참전한 정철모 씨가 쓴 '탈주 400리'를 읽다가 경기도 광주군 곤지암에서 겪은 514 고지 공격 부분이 흥미가 있어서 기억해 두었었다.

 정철모 씨는 6ㆍ25전쟁 때 청주대학교에 재학하다가 장교로 임관, 당시 6사단 19연대 1대대 1중대 소대장이었다.

 1951년 2월 중공군에게 밀리던 유엔군은 다시 반격을 실시하여 북진할 때, 그의 중대는 경기도 광주군 곤지암 부근에서 중공군이 강력하게 방어하던 514고지에 대한 공격 명령을 받게 되었다.

[곤지암 부근 514 고지]



 화력이 좋은 미군도 1주일이나 공격했는데 점령하지 못했던 고지를, 고지 옆에 절벽을 두고 떨어져 있는 다른 고지로 은밀히 야간 침투에서 적의 참호에 기관총을 가하는 기발한 작전으로 적을 격퇴했다는 스토리다.

 마치 1904년 일본군이 러시아 군이 장악하고 있던 여순의 203고지를 공격했던 상황과 대단히 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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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4년 만주에 상륙하여 쿠로파트킨 지휘의 러시아군을 공격했었던 오야마 지휘의 일본군은 원래 강력히 요새화해 놓은 여순 반도 끝의 여순을 공격할 계획이 없었다.

 여순을 그저 포위만 해놓고 만주 평야로 북진해서 적의 주력과 결판을 낼 계획이었는데, 일본 해군의 요청에 의해서 여순 항에 숨어있던 러시아 극동 함대를 파괴하기 위해서 방향을 바꾸어 여순을 공략했었다.

 그러나 일본군은 막강한 적 요새 방어에 엄청난 피해만 입고 물러서야했다. 피해만 늘어가고 시간이 가던 중 여순 앞 바다에서 초계 항해하던 일본 해군은 여순 방어선과 동 떨어진 외딴 곳에 203고지를 발견하고 육군에 통보했다.

[1904년 11월 203고지]



 거리가 멀지만 그 곳에서는 여순 항내가 잘 보였다. 점령 후 관측소를 설치하고 육군 포병으로 항내의 러시아 함대를 하나하나 조준 포격을 하면 정박 상태의 극동 함대를 모두 격침시킬 수가 있었다. 

 일본군은 203고지에 전력을 집중했고 이를 뒤늦게 알게 된 러시아 방어군은 격렬하게 저항했었지만, 치열한 혈전 끝에 203고지는 결국 일본 함대에 점령당했고 여순 항내의 러시아 극동 함대는 육군 중포의 장거리 사격에 모두 격파되었다.

[203고지 점령 직후 일본 육군중포들을 대규모 화력을 여순 항내에 퍼부었다. 불타고  있는 곳은 유류 저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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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철모 씨 부대는 경기도 이천을 지나 곤지암의 오향리 북쪽 514고지를 향해서 약 30리 쯤 되는 곳으로 갔다. 미군이 일주일 동안 공격했지만 피해만 입고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한 곳을 6사단 19연대 1대대 1중대가 인계 받았다.

 1중대의 첫 공격은 실패했다.

[좋았던 시절의 중공군이 미군 포로들을 호송하고 있다. 기고만장했던 그들에게 가해지기 시작한 반격은 불과 두달후 부터 시작되었다.]



 여기서부터 다시 정 철모 씨의 글을 옮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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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억세게 재수가 없는 날이다. 많은 피해만 입고 실패한 중대장은 화를 참지 못해서 술만 마시고 있었다. 4시경이 되었을 때 대대장과 작전장교가 모처럼만에 우리 진지로 올라왔다. 중대장과 소대장들이 마중을 하자 대대장은 한다는 소리가

 "중대장! 며칠간 공격하느라 수고했소. 허나 여보 저 고지하나 점령 못하고 많은 사상자만 내요? 머리를 써야지 머리를! 매일 꼭 같은 방향으로 공격을 하니 점령할 수가 있소? 앞으로 나가서 한 번 봅시다."

 관측이 잘 되는 곳으로 나가 엎드려서 전방을 관측하며 중대장은 적의 배치 상황과 화력에 대한 설명을 하고 공격 실패의 이유를 설명했다.

 "중대장! 공격에 실패한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소? 공격 방향을 바꾸어요! 저 뾰족한 봉우리에도 적군이 배치되어 있소?"

 "그 곳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됐어! 돌아갑시다."

[국군 포병의 사격]



 중대 지휘소로 돌아온 대대장은 상황판에다 붉은 색연필로 공격방향을 긋고 화살표시를 했다. 그리고 뾰족한 봉우리로 화살 표시를 한 다음

 "정 소위는 몇 소대장인가?"

 "화기 소대장입니다?"

 대대장은 바로 작전 명령을 내렸다.

 "정 소위도 이리와! 내 설명을 잘 들어! 중대장, 내일 다시 여명 공격하시오. 내일은 1개 소대를 전면 우측 능선으로 공격시키되 적의 수류탄 투척거리내로 접근하지 말고 양동 작전만 하도록.

 적의 관심은 그 쪽으로 집중시키고 주공[主攻]은 1개 소대로는 이제까지 공격을 하지 않았던 제일 좌측 능선으로 시키쇼. 적으로부터 노출된 지점이고 경사도가 심하나 공격 개시와 동시에 연막탄을 계속 쏘아서 관측을 차단시켜 주겠소.

 그리고 정 소위는 기관총 2정을 가지고 적의 측 후방에 위치한 이 뾰족한 봉우리를 점령하고 공격 개시와 동시에 적이 머리를 들 수 없도록 지원 사격을 하시오. 이 고지 높이로 보아서 적 진지가 환히 보일거야. 정 소위는 특공대원 8명을 차출해서 이리 데려 오시오."

[514고지의 아랫쪽 계곡]



 "넷!"

하고 대답한 나는 기관총 분대원 중에서 건장한 대원으로 8명을 선발하여 데리고 갔다. 대대장은 술 한 병을 가져 오라고 하였다.

 "1중대는 수차 공격을 했으나 많은 사상자만 내고 번번히 실패했다. 제군들은 특공대로서 적의 측 후방에 위치한 저기 보이는 저 뾰죽한 고지를 점령하고 공격 부대를 지원해야 한다. 내일의 공격 성패는 제군들 손에 달려 있다. 특공대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주기 바란다!"

 대대장은 의미심장한 훈시를 하고는 한사람씩 악수를 하고는 술을 따라 주었다.

 "정 소위! 저 고지에도 경계병 몇 명은 있을지 모르니 은밀하게 접근해서 처치하고 지원하도록 하게. 무운을 비네!"

 나는 대원들에게 준비상황을 일일이 알려주고 대기하고 있었다.

 "중대장님 밤 11시 정각에 출발하겠습니다. 눈이 많이 쌓여서 두 시간은 잡아야 되겠습니다."

 "도착하는 대로 즉시 보고하고 수시로 적의 움직임을 알리시오. 정 소위만 믿겠소 !"

 "염려 마십시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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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99식 소총과 아식 보총의 춘천 대결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1.11.15 08:07

[1950년  대의 봉의산과 오른쪽 춘천 시내  봉의산 오른쪽에 북한군이 전차를 앞세우고 들어온 소양교가 보인다.]



 1950년 춘천 전투는 16포병대대와 7연대의 선전(善戰)에 의해서 북한군 2사단은 큰 타격을 입었다. 초조해진 군단장 김광협은 양구 쪽의 전선에서 공격했던 정예 7사단 병력 일부를 춘천으로 돌렸다. 결국 전차를 앞세운 7사단이 앞장서서 소양교를 건너 춘천을 점령했다. 이 때가 1950년 6월 28일 정오경이었다.

[SU-76, 소양교 앞에서 두 량이 격파되고 자주포 대대장 현파 소좌가 크게 부상을 입고 후송되었다. 28일 공격한 T-34는 이 자주포를 밀어 버리고 소양교를 건넜다.]



 여기서 춘천 시내에 진주한 북한군 두 사단에 대해서 간단히 알아보자.

 북한군 2사단은 소련군 특무장(원사) 출신 이청송이 사단장이었고 1948년 10월에 나남에서 창설된 사단이다. 춘천 북방에서 그들과 대결한 국군 6사단 7연대보다 4개월 정도 늦게 태어난 부대다.

 7사단은 49년 모택동 군대에서 북한군으로 전입한 부대였다. 부대원들이 중국 내전에서 실전을 경험한 노련한 부대원들이었다. 사단장은 모택동 군에서 간부로 있다가 북한군에 편입된 전우였다.

[북한군 7사단장 전우]



 이들의 기본 무장에 특징이 있었다. 북한에서 창설된 2사단은 모두 소련제 무기로 무장되어서 사병들이 장비한 화기는 소련제 모신 나강 소총이었다. 북한군은 이 총을 아식 보총[我式 步銃]이라고 불렀다.


 구경은 7.62mm였다. 19세기 말 1891년도에 탄생해서 1ㆍ2차 대전을 다 겪은 소총이었다.

 반면 모택동 군에서 북한군으로 넘어 온 7사단은 기본화기가 모두 일제 99식 소총이었다. 일제 99식 소총은 일 패전 후 만주에 진주한 소련군이 항복한 일본 관동군에게서 대량으로 압수한 것들이다. 그들은 일제 소총뿐만아니라 기관총 화포 그리고 탱크들까지도 모택동 군에게 넘겨주었다. 6ㆍ25 침공에 참가한 조선족 부대가 거의 소련 모신 나강이 아닌 99식 소총으로 장비하였었다.

 동두천 방향에서 의정부 전선과 미아리 고개 돌파, 서울 입성, 한강 도강 오산의 스미스 부대를 격파했었던 북한 최강 부대 북 4사단 18연대 소대장이었던 중국 동포 말씀은 소대장들에게는 따발총이 지급되었었지만, 병사들은 모두 99식을 들고 싸웠으며, 서울 점령 뒤에야 소련제 모신 나강이 지급되었다.

 99식 소총은 이전의 38식 소총을 구경을 바꾸고 총신을 짧게 한 것이다. 구경은 7.7mm다.

[99식 소총. 전 모델 38식 6.5mm의 구경과 총신의 길이를 바꾼 것이다.]



 두 총의 구경은 비슷하지만 실탄의 크기는 일제 7.7mm탄이 작다. 즉 추진 장약의 양이 작다는 양이고 따라서 탄속도 느리고, 총소리도 분명히 다르다. 이런 각기 다른 소총을 들고 춘천에 들어 온 두 사단은 북한군의 맹포격으로 불이 붙어 사방으로 퍼진 춘천의 화재 진압부터 해야 했다.

 시가전을 각오 했었던 두 북한군 사단이었지만, 국군은 질서 정연하게 철수해서 춘천 남방 원창 고개에 전개하고 있었다. 춘천 시내로 진주한 북한군 2사단은 밤 9시경 춘천 우체국에 전술 지휘부를 설치했다. 겨우 한숨 돌린 북한군은 여기 저기 자리를 잡고 춘천 첫밤의 숙영에 들어갔다.

[춘천 시내로 앞장서 들어 온 전차와 같은 T-34 형]



 그러나 밤이 깊어지자 긴장했던 북한군 한 명이 움직이는 물체를 보고 총 한 발을 발사했다. 사격 군기가 형편없었던 것을 보면 중국 대륙에서 실전을 많이 겪은 노련한 7사단 병사가 아니라 신편한 2사단 병사가 아닌가 한다.

 이 총성에 근처에 있던 다른 사단 사병이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기들 소총의 발사음과는 전혀 다른 총성이었다. 이미 북한군 2 사단은 침공 첫 날(6월 25일)적진에 몰래 침투해온 7연대 특공대에게 기습을 당해서 혼난 일이 있었다.

 이어 26일 밤에는 소양강 북방에서  7연대 1대대와 2대대에게도 각각 기습을 당해 야간 신경이 고도로 날카로운 상태였었다.

 “국방군 아새끼들의 야습이다!”

 크게 놀란 그는 호들갑을 떨며 즉각 사격을 했다. 그의 호들갑에 놀란 동료들도 이에 합류했다. 실수로 총을 쏘았던 부대도 그냥 있지 않았다. 그들은 대규모 사격에 더 놀랐다.

 “국방군 간나들이 또 습격했다!”

 순식간에 두 북한 사단이 벌이는 총격전의 총성이 심야의 춘천 시가지를 뒤 흔들었다. 사격에 가담한 소총들만 해도 수천 정이었다. 한참을 이 짓을 하던 뒤늦게야 군관들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인접 부대 지휘관끼리 유선으로 확인하고 자기들이 서로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즉시 사격 중지 명령을 내렸지만, 공포에 질린 병사들은 말을 듣지 않았다. 군관들은 욕을 하며 권총을 빼들고 말렸지만, 놀란 사병들은 좀체 사격을 멈추지 않았다.

 서로의 총격전은 무려 한 시간이나 계속 되다가 겨우 끝이 났다.

[1949년 군장 검사하는 7연대 장병들]



 자세한 뒷 이야기는 없었지만 이렇게 마구해 댄 난사에 죽은 북한군들도 상당히 될 것으로 생각된다. 북한군끼리 벌인 오합지졸(烏合之卒)스러운 사격전은 김일성에게까지 알려져 그렇지 않아도 춘천 공격전에서 크게 점수를 잃은 군단장 김광협과 2사단장 이청송, 7사단장 전우가 모두 해임당하는 결과를 가져 오게 했다. 

 *여담이지만 7 사단은 안동 공격 뒤에 12사단으로 변경했다. 6ㆍ25 전사에서 매우 혼란스러운 테마지만 이를 확인하기가 곤란했었다. 마침 참전 7사단 중국 동포의 증언에 있기에 여기에 후기한다.*  //끝//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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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omputer Network 2012.02.10 18: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난 이런 행사를 통해 6.25전쟁이 어떻게 전쟁이 났는지 알게되었다.
    그리고 내가 봉사를 많이하고 돈을 아껴써야되는 것도 깨달게되었다
    난 이런 캠페인이 더욱더 개발되어 더 많은 사람들한테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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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ChatRandom 2013.05.02 01: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950년 춘천 전투는 16포병대대와 7연대의 선전(善戰)에 의해서 북한군 2사단은 큰 타격을 입었다.

  9. wholesale picture frames 2013.05.05 01: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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