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에 해당되는 글 86건

  1. 2011.11.03 국군 대전차 전투와 2.36인치 로켓포 (10)
  2. 2011.10.17 전투 경찰 매복 전술 의 막바지 작전-1955년 (8)
  3. 2011.10.17 1950년 춘천 전투 참전 중대장의 수기(4/4) (26)

국군 대전차 전투와 2.36인치 로켓포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1.11.03 17:52

 6ㆍ25전쟁 개시와 함께 서울 북방 동두천-포천 정면에서 국군이 붕괴했던 큰 이유중 하나는 북한군 선봉에서 밀어 부친 전차 부대에 대한 아무런 수단도, 대책도 없었던 이유도 있었다.


[파괴된 북한 T-34 전차]


 대전차 공격에 대해서 속수무책이었다는 말이다. 초전 서울 북방에서 국군이 대패한 것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그저 전사했던 채병덕 장군과 신성모 국방 장관을 비난하는 감성적 말만 모든 것을 덮어두고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

 그러나 개인적인 의견(필자 : 울프독)으로는 당시 한국군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 하던 미 고문단과 일본 GHQ의 책임도 분석 연구의 대상으로 올려놓지 않을 수가 없다.
 
 국군이 보유했었던 유일한 대전차 무기는 57mm 대전차포와 2,36인치 로켓포가 있었다.  6ㆍ25전쟁 연구에서 이슈가 될 수 있는 것은 이들 57mm포와 2.36인치 로켓포가 적의 T-34전차 파괴에 전혀 효과가 없었다는 설이다. 아니 설(說)이 아니라 6ㆍ25전사의 사실로 내려오고 있는 현실이다.

[1950년 7월 대전 전투때 미 24사단을 지휘했었던 윌리엄 딘 소장의 프랑스 전선 사진. 앞에 57mm 대전차포]



 그러나 내가 이전에 이 블로그에 올린 말고개 전투를 보자. 57mm포가 적 SU-76 측면을 그대로 관통하였었고, 고지에서 발사한 2.36인치 로케트 포탄 한 발이 SU-76 포탑 안으로 들어가 차체가 대파되는 폭발을 유도했었다는 사실이 있었다.

 이것은 전차 파괴에 아무런 역할을 못했었다는 두 무기의 평판을 다시 검토하게 하는 모멘트를 주게 한다. 57mm 포가 전차를 파괴한 것은 여러 번 있었다. 수도사단 18연대 소속 이병형 대위는 [후에 대장] 1950년 7월 12일 청주 남방에서 T-34 전차가 둑을 넘느라 약한 장갑의 하복부를 노출하던 짧은 시간을 노려 철갑탄 두 발을 사격 격파 한 전공을 세운 일이 있었다.

 7월 8일 한국군이 후퇴 중에 충북 진천에서 기갑 연대의 박용실 대위가 M8 장갑차에 장착된 37mm포로 적 전차의 궤도를 사격해서 파괴했었다. 이 37mm포는 적 전차를 전혀 파괴하지 못했다는 57mm포 보다 훨씬 못했었던 파괴력을 가진 포이다.

 그렇다면 2.36인치 로켓포가 적 전차를 파괴한 일은 없었던가?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해병대는 9월 16일 부평으로 진격해서 서울 방향 외곽에 방어 진지를 만들고 일박(一泊)했다. 9월 17일 새벽 서울에서 진격해온 북한 18여단 대대 병력과 이를 지원하는 전차 부대는 조심성 없이 행군 해오다가 부평 부근 언덕에 잠복해 있던 이 해병 중대에 걸려들었다. 

 해병들의 공격 전 오케이 더그라스 병장이 중대가 잠복한 언덕에서 내려와 대기하다가 전차 차체 후방을 강타해서 정지시키고 비슷한 공격으로 두 번째 전차도 파괴 시켰다.

 


[2.36 인치 로케트 포]



 적 전차의 파괴와 함께 퍼부어진 화력과 이에 가세한 해병 1전차대대의 활약으로 적은 완전 섬멸되어 버렸다. 해병들에게도 3.5인치 로켓포가 지급되었지만 일부 부대에는 아직 장비 교체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아 2.36인치 로켓포가 그대로 지급되었었다.

 


[월미도와 인천을 이은 둑길에 대전차 방어선을 만든 해병대의 3.5인치 로켓포]



 

[1950년 9월 18일 부평에서 미 해병 더그라스 병장에게 차체 후부를 사격당하고 파괴된 T-34전차]



 위의 일화들은 개전 초기 무적의 괴물로 보였던 T-34 전차가 약한 무기에도 파괴되는 약점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한국군이 가졌었던 대전차 무기인 57mm포나 2.36인치 로켓포가 전혀 적 T-34전차를 파괴할 능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부족했었던 것은 이들 대전차 무기의 제한된 능력을 100퍼센트 활용하는 노우 하우를 사전에 알고 있지 못했을 따름이다. 한국군은 북 침공시 이 2.36인치 로켓포를 1,900문이나 보유하고 있었다.


[2.36인치 로켓 포탄]



 단순 논리로 말해서 이들 대량 보유한 로켓포를 잘만 사용했었으면 도로를 따라 내려오던 북 전차의 침공을 상당시간 저지할 수가 있었다. 그렇게 못한 책임을 국군에 지우기는 곤란하다. 서울 북방에서 적 전차에게 파죽지세의 공격을 허용하게 만들어서 국군이 패배했었던 동두천 -포천 전투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큰 규모의 분석이나 세미나 그리고 청문회 같은 것이 없었다.

 6ㆍ25전쟁의 주도권을 쥐었던 미군이 그런 필요를 느끼지 못했었고, 그 후에도 장기간 사회 분위기가 그런 것을 논할 분위기가 아니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개인 의견이지만 6ㆍ25전쟁 초기 동두천-포천의 국군 패배의 원인중의 기본 사항으로 국군 수뇌부의 미숙한 지휘와 정보 판단에 실수한 미 군사 고문단과 도오쿄 GHQ의 책임이 크다.

 큰 피해를 본 우리 입장에서는 말한다면 주한 미 군사 고문단[KMC]의 수뇌부 일부는 배임(背任) 수준의 실수를 했다. 6ㆍ25전쟁 이전부터 북한 군사력 증강에 우려와 걱정을 가진 한국이 전차의 공급을 꾸준히 요청한 것을 거절 한 것이라던가, 6ㆍ25발발 며칠 전부터 긴박해지는 북한 침공 예보 정보를 게으르게 처리한 것 등을 예로 들 수가 있다.

 한국군은 북한이 전차 여단을 구성하고 수 백 량의 전차를 도입했으니 전차를 공급해달라는 말에 고문관 단장 로버츠 준장은 한국 지형에 전차는 필요 없다고 거절했었다. 기갑 병과였다는 그는 지형이 아니라 북한에 전차가 대량 도입된 현실 정보를 애써 보려하지 않았었다.

 전차를 못주겠으면 대전차의 최대 방어 무기인 대전차 지뢰라도 공급해 주었다면 북한 전차들이 초기에 그렇게 날뛰지 못 했을 것이다.(6ㆍ25전쟁 중 피해를 입은 미 전차의 66%가 대전차 지뢰에 파괴된 것이다.)

 북한 침공 시기 논에 물이 차는 모내기 철이었고 그날 비가 와서 도로를 따라 내려오는 북 전차들이 우회하기가 극히 힘들었었다. 전장 환경은 적 전차에게 지뢰 공격을 가하기 아주 유리했었다. 국군은 나중에야 급히 한국으로 공수해온 대전차지뢰를 공급받아 수원에서 20여 발을 설치,두 대의 적 T-34 전차를 잡았었다.

 북한의 공격을 걱정하면 이들은 “북한이 공격하면 미군이 곧 달려 올 것인데 무슨 걱정이냐?“고 응수해서 국군 간부들의 입을 막았었다. 북한이 전차를 대량 도입했다고 하자 한국군에 지급한 57mm와 2.36인치 로켓포가 그런 전차쯤은 문제없이 격파 할 수 있다고 말했었다.


[M-8 그레이 하운드 장갑차. 37mm 포가 장착 되어 있다.]



 그리고 대전차 공격의 기본 기술조차 교육시키지도 않았었고, 적 T-34전차의 약점에 대해서 알려 주지도 않았었다. 모든 것을 미군에 의존했어야 했던 국군은 그런 큰 소리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1950년 6.25일 북한의 T-34가 밀고 내려오자 한국군의 57mm와 2.36인치 로켓포 사수들은 모두 제일 장갑이 두꺼운 적 전차의 정면을 사격해서 실패하였다. 57mm나 2.36인치 로켓포가 적 전차에 아무 효과가 없었다는 기록은 이 정면 사격에 실패한 전투 경험에서 나온 말이다.

 초기 부평의 해병들이 했듯 국군이 우회와 매복으로 T-34전차를 공격했었다는 무공담은 별로 없고 폭탄을 안고 적 탱크에 돌진했던 육탄 공격의 국군 용사들의 장렬하고 안타까운 이야기만 전해 온다. 

 육탄 공격을 가하고 전사한 장병들만 75-100명 설이 전해온다. 나는 동두천-의정부 전선에서 육탄 공격에 적 105전차여단의 전차들이 실제 파괴 된 사실은 북한 측 인사들의 말에서 확인할 수가 있었다. 105전차여단 정치 장교로 참전했던 오기완 씨의 수기와 내가 중국에서 뵌 북한 최강 연대 4사단 18연대 소대장의 증언은 위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국군의 전차 특공도 단순한 기록에서만 보일뿐 집중적이고 체계적인 조사와 기록은 없었다. 한국군의 전차 공급을 거절하고 대전차 공격의 노우 하우도 전해주지 않은 미군 고문관들의 무신경과 태만함이 빚은 결과일 수도 있다.

 언젠가는 이 블로그에서 국군이 서울 북방에서 패배했었던 원인에 대해서 글을 쓰고 싶은 계획이 있어서 이에 미리 예를 들어 보았다. //끝//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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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omputer Network 2012.02.10 18: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난 이런 행사를 통해 6.25전쟁이 어떻게 전쟁이 났는지 알게되었다.
    그리고 내가 봉사를 많이하고 돈을 아껴써야되는 것도 깨달게되었다
    난 이런 캠페인이 더욱더 개발되어 더 많은 사람들한테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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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차 공격에 대해서 속수무책이었다는 말이다. 초전 서울 북방에서 국군이 대패한 것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그저 전사했던 채병덕 장군과 신성모 국방 장관을 비난하는 감성적 말만 모든 것을 덮어두고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

  5. Chaffee208 2012.05.14 13: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 이름만 차단하면 자신의 패악질이 감춰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시는 건지..?? 요즘 알기로는 야후가 블로그 다 바꿔서 한번 난리가 났던 모양이던데... 아무튼 철 좀 드시죠. 사람 잘못보고는 자신의 과오를 인정치 않으려만 들지말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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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군이 붕괴했던 큰 이유중 하나는 북한군 선봉에서 밀어 부친 전차 부대에 대한 아무런 수단도.

  8. quick loans 2013.09.20 19: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북한군 선봉에서 밀어 북한군 선봉에서 밀어 북한군 선봉에서 밀어

  9. buy instagram followers 2013.11.28 2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중 하나는 북한군 선봉에서 밀어 부친 전차 부대에 대한 아무런 수단도, 대책도 없었던 이유도 있었다.

전투 경찰 매복 전술 의 막바지 작전-1955년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1.10.17 07:04

1950년대 대한민국의 큰 암 덩어리였던 공비들을 소탕한
큰 이유는
전투 경찰의 매복 전술과 포섭 공작, 두 전술이 결합된 것이
치밀하게 전개되어 성과를 거두었었기 때문이다.


전투 경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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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복 전술은 이들의 식량 조달을 차단해서 공비 조직이
고사[枯死]하게 했고 이들 공비들을 적극 포용하는 포섭 공작 전술은
끝내 공비 조직들이 붕괴하게 만들었다.


두 전술로서 오합지졸(烏合之卒)화 되어 가던 공비 잔당들은
사찰 경찰들이 정보력을 바탕으로 이 잡듯 잡아 소탕했다.

여기에 경찰의 매복 전술에 몰려 식량 조달 수단을 잃고
갈 데까지 간 공비들을 소탕했던 사례를 소개한다.

이 때는 전쟁이 끝나고도 한참만인 1955년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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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11월 12일 부산일보에 보도 된 공비 이 홍이의
사살과 정 순덕의 체포 기사 -이들이 공비 생활을
무려 14년간이나 했다는 사실이 눈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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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존 공비의 소탕은 장기적이며 지구력이 필요하였다.
그들 공빕 잔당들은 잠복지에서 좀처럼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다른 3자를
통하여 필요한 식량이나 물품을 구입하였기 때문에
노출이 안되었다.


다음은 경찰이 2개월이나 장기 잠복한 끝에 정읍군 당 위원장
신 현복[申 鉉福]과 조직 부장 김 상실[金 相實]을 생포 사살한
특례다.

전기 신 현복과 김 상실이 정읍군 내장면 고당산에 잠복하고 있는 것
알고 있었지만 도대체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 정읍 경찰에서는
1955년 1월부터 4명[ 경사2, 순경2]을 고당산에 고정 배치하여
주야 감시를 하였으나 아무런 꼬리를 잡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이들 4명은 상부에 보고하여 숯굽는 사람으로 가장해
고당산 골짜기에서 숯 굽는 화전민들 속에 끼어 들었다.


고산 지대에는 어디나 숯을 굽는 화전민들이 떠돌아 다니기 때문에
이들은 자주 공비들과 접촉하게 되었고 공비들은 이들을 포섭하여 필요한
물품을 구입함으로서 위험한 보급투쟁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4명의 경찰관은 정체를 철저하게 감춘 채 화전민들과
열심히 숯을 구우면서
공비들과 접촉할 기회를 고대하였다.



1955년 2월 초순경의 어느 날 이곳 숯가마로 15세 정도의 소년이 찾아 왔다.
그는 돈을 후하게 내놓으면서 전지(電池)와 고무신 그리고 소금을
사다가 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경찰관 1 명이 자청해서 사다 주겠다고 인심을 쓰는체 하였다.


다음날 경찰관은 상부에 이를 보고하고 물건을 구입한 다음
산으로 올라가
물건 보따리를 숯가마 앞에 놓아두었다.
소년은 며칠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날 아침에 보니 물건이 없어졌다.
경찰들은 다른 사람이 눈치를 채지 못하도록 감시를 하지 않았다.
일단은 소년을 안심시켜서 계속 접촉하게 해야만 했다.


어느 날 다시 그 소년이 나타나서 쌀을 한 말 사다달라고
하였다.

그의 말인즉 병든 부모를 모신 관계로 자신이 장에까지
갈 수없다는 평계의 둘러 부치기였다..


그리하여 이번에도 잠복 경찰은 상부에 연락하고는 쌀을 사다 놓았더니
다음날 와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받아갔다.


공비 토벌 비상대기조의 오침 - 작업화는 물론 총과 수류탄까지 갖춘
빈틈없는 완전 무장의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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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일 이날은 순경 2 명이 주부식 준비로 산으로 내려가고
경사 2 명만이 남았다.

이날 밤 22시 30분경 산위에서
소년이 앞서고 그 뒤를
두 명의 그림자가 따르고 있었다.


유난히 밝은 달 속에서 두명의 경찰은 그들이 노리고 있던
바로 신현복과 김상실이 나타난 것을 확인 할 수가 있었다.


그들은 마침내 경찰이 잠자고 있는 집으로 들어왔다.
집은 통나무로 만든 [가이]집이고 출입문이 두 곳있었다.


얼마후 앞의 소년이 한쪽 문으로 들어오더니 다른 문으로
나가 두 사람을 불러 들였다.


귀순한 전 북한 병사들로 구성 된 편의대.
공비로 변장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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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경찰은 잠자는 척 하다가 사람들이 들어오자 갑자기
일어 나면서 각자
한 놈씩 밖으로 몰고 나가서 격투를 벌였다.
이 사이에 소년은 도망치고 말았다.


유도가 3 단인 김경사는 쉽게 한 놈을 때려 눕혔으나 이 경사는
상대방의 체구가 워낙 커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이를 바라 보는 김 경사는 한 놈을 깔고 앉아 있어 지원 할 수가 없었다.
목적은 두 공비의 생포에 있었지만 죽일 수도 없었다.

이 경사는 서로 물고 치고 있는 격투를 계속하다가 끝내는 비탈을
둘이 맞잡고 굴러 떨어져 골짜기 냇가에서 서로 졸을 집어 들고
던지기 시작했다.


상황을 판단한 김 경사는 마침내 한 놈만 생포하기로 하고
깔아 뭉개고 있던 놈을 달아나게 하고는 등 뒤에서
카빈 총으로 사살한 다음 이 경사한테로 달려가 몸집이
큰 김 상실을 생포 한 것이다.


이 결투는 30분이나 계속 되었으며 이 경사는 공비에게
팔을 물려 심한 부상을 입고 있었다.


이로써 2 개월 동안 끈기 있는 잠복으로 끝내 마지막
붉은 뿌리를
도려내고 만것이다.

토벌 작전에 일망 타진 된  공비들 여자  공비들이 많음에 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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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1만명의 세력을 자랑하며 남한 정부를  타도하고
공산 정부 수립까지 꿈꾸었던 남한 공비들은 몰락을
거듭하여 전쟁이 끝난 1955년에도 약 40여명의
망실 공비들먼이 준동했었다. 

이 마지막 망실 공비들을 끝까지 추적해서 1963년 11월 마지막
공비 이 홍이를 사살하고 여공비 정 순덕을 체포한 주인공도
경찰들이었다.



1963년 11월 사살 된 이 홍이의 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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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 6ㆍ25 블로그의 작년 글에 무기와 기동력이 변변치 않았던
경찰들이 준동하는 공비들을 토벌하기 위해서 매복 전술을
고안해서 치밀하게 전개하는 작전을 소개했었다.


윗 사례는 경찰의 매복 전술 때문에 몰릴대로 몰린
공비들이 본연의 임무인 유격 활동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은신에 급급했던 말기의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끝//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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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춘천 전투 참전 중대장의 수기(4/4)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1.10.17 07:01

6월 28일 오후 3시경, 제 7연대 부연대장 최 영수 중령이
써 보낸 서면 명령이 제 1대대장 김 용배 소령에게 왔다.

‘제 1 대대는 즉시 금병산 방어진지에서 철수하여
 
모래재[沙峴]로 이동하라“ 는 내용이었다.

제 1 대대의 제일 후미 중대가 금병산을 떠난 것은
오후 4시[16;0]경이었다.


이리하여 춘천 지구 전투는 치열한 공방전 3일간 반 만에
막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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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 독에게 자신의 전투담을 들려 주는  이 대용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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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춘천 전투에 대해서 쓴 이 대용 장군의 회고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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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춘천 지구 전투에 대한 평가
이 전투의 전략적 평가는 하지 않겠다.
단지 어찌하여1개 연대가 열세한 화력을 가지고도 절대
우세한 화력과 기동력과 4배나 되는 병력 우세에다가
기습이라는 이점까지 가지고 감행한 북한군을 3일간이나
춘천 지구에서 호각[互角]으로 싸우고 막대한 피해를
적군에게 입혔는지의 그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원인에 대해서 증언한다.

가. 제 7연대는 방어 시설의 사전유비(事前有備]가 있었다.
제 7연대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춘천지구 방어를 위한
제 1대대에 진지를 중요한 곳에 구축해놓고 이 진지 점령에 대한
사전 훈련이 되어 있었다.


이 진지는 6ㆍ25 첫날 적군의 남침을 측방 또는 정면에서
저지 시키고 6ㆍ25 둘째 날은 적군을 옥산포에서 북쪽으로
쫓아 내고 큰 심리적 타격을 주며 아군의 사기를 충전시키는
거점 역할을 했다 .


이 진지구축 공사에는 춘천 남녀 고등학생까지 동원되어
군관민의 긴밀한 협조관계를 상징하기도 한다.




나. 아군 사단 포병의 활약이 크게 빛났다.
6.25 첫날의 우리 사단 포병의 활약을 눈부셨다.
제 7연대 제 1대대가 출동하여 방어 진지를 점령할 때까지





즉 25일 오전 10시 30분까지는
아군 사단 포병의 단독의 맹렬한
효과적인 집중 포격으로
북한 공산군 대부대가 5번 국도[화천 -춘천 가도]
한계울과 역골일대에서
상당한 피해를 입어 춘천을 향하여
더 남진을 못하고
주저하고 있었다.







맨 윗쪽에 한계울과 역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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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도 아군 사단 포병은 아주 효과적으로 제 7연대를 지원해주었다.


다. 제 7연대는 공세적 방어를 했다.
6ㆍ25 첫날 야간에서 제 1대대 및 제 2대대에서 소수의
기습 부대를 적진 깊숙이 보내 야간 기습 교란 공격을 감행했고
연대 수색대도 그랬었다.


그리고 6월 26일 오전에 제 7연대 1대대가 옥산포의
적군 부대에
대한 기습 파쇄 공격은 아주 돋보였다.


라. 7연대 지휘관들의 전투 지휘력이 탁월했었다.

1대대 지휘관 김 용배 소령의 대담한 전투 지도도 돋보였고
7연대장 임 부택 중령의 대국을 보는 지휘도 빛이 났었다.


마. 지형은 방어에 유리했다.

국도 5번 도로[화천 -춘천가도]의 접근로는 대부대의 기동공간으로서는
너무 좁아 공격 대부대의 기동에 제한을 받아야 하고 46번 도로[양구-춘천]
접근로는 아주 협소하여 대부대의 기동 공간은 전혀 없었다.

그리고 북한강과 소양강이 춘천을 감싸주고 봉의산이
높이 솟아 방어에는 아주 유리한 지형이다.


제 7연대는 이 방어에 유리한 지형을 전술적으로 잘 이용했다.
단 소양교를 폭파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었다.


바 .북한군을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은 전투 경험.

제 7연대는 1949년 8월,9월에 인제로부터 관대리 [冠垈里-현재의 新南]
38 선을 넘어 온 북한군 1 개 여단과 맞서 8연대와 협조하여
약 1개월간의 전투 끝에 북한군을 38선 이북으로 격퇴시킨 전투 경험이
있어 북한군을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고 사기가 드높았다‘


4. 추가 부언

이상 춘천지구 전투 제 7연대 제 1 중대 전투 개요 기록은 내가 [이 대용 장군]
전투시 자주 기록해 놓은 수첩과 살아 오면서 출간한 ‘압록강 푸른 물’
‘통곡하는 승리자,‘국경선에 밤이 오다’등등의 저서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그대로 옮겨 쓰고 또한 나의 기억에 기초해서
제 7연대 제 1 중대의 춘천지구의 전투 경과를 그대로 적은 것이며
날짜는 추호도 착오가 없다는 것을 명백히 밝혀 둔다 .
시간에 대한 오차는 반[半] 시간 정도는 있을 수 있으나 거의
대부분은 정확 할 것이다.


제 7연대 제 1중대의 기록은 정확하지만 타 부대에 대한
언급의 정확성은 그 당사자들에게 일임하는 것이며 나의 진술은
차질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니 타대대나 타 중대에 대한
나의 언급은 단지 참고로 할뿐이며 신빙성을 크게 두지
말 것을 부탁한다.

현재 발간된 전사 책자들에는 크게 잘못된 부분이 많다.
앞으로도 계속 더 정확성을 기하기 위하여 전사 수정 작업을
주의 깊게 하여야 할 것이다.


전사 기록은 정확한 진실성이 생명이다.
그렇지 못 할 때는 죽은 전사가 된다.
위선자들의 허위 선전의 도구가 된다. //끝//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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